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17)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16화
이 이상 회사 로비를 소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았던 정의탁은 일단 14층으로 PiPiPi를 데리고 왔다.
오슬로에서의 별자리 좌담에서 예찬에게 PiPiPi가 회사에 찾아왔었다는 얘기를 전달받긴 했는데 설마 이렇게 또, 그것도 금방 찾아올 줄은 몰랐다.
“네? 예찬 씨가 없다고요?”
“네.”
예찬을 만나러 왔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던 PiPiPi가 순식간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혹시 언제쯤 돌아올까요? 늦게라도 상관없는데…….”
남의 회사에 죽치고 기다리겠다는 말을 참 당당히도 했다.
드물게 외부 촬영을 나가는 멤버는 어지간히 늦지 않은 이상 연습실에서 고생하고 있을 멤버들을 보러 회사에 꼭 얼굴을 비췄다.
“오늘 촬영이 정말 늦게까지 이어질 예정이라서요. 아마 숙소로 바로 들어갈걸요?”
그러나 굳이 눈앞의 작곡가에게 사실을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한 정의탁은 범세혁을 힐끔거렸다.
눈치 없이 무슨 소리냐고 끼어들까 봐 걱정했는데, 아직 뜯지 않은 띠부띠부씰이 혹시 조명에 비추면 보이지 않을까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정의탁은 사무적인 미소를 지으며 타고 왔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던 엘리베이터 문이 바로 열렸다.
“예찬이 형한테는 오셨었다고 전해 드릴게요.”
“그러지 말고 이따 숙소로 같이 가면 안 될까요?”
PiPiPi가 간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에두른 축객령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다.
“숙소는 좀……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네요.”
정의탁은 그동안 예찬에게 배운 필살기, ‘레굴루스는 공동체’를 사용했다.
어지간한 권유는 다 거절할 수 있는 궁극의 필살기였다.
“잠깐이면 되는데…….”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네요.”
같은 문장을 반복하며 곤란한 듯 웃자 PiPiPi도 포기했는지 어깨를 늘어트렸다.
정의탁은 다시 한번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예찬이 형한테는 제가 오셨었다고 꼭! 전해 드리겠습니다.”
PiPiPi는 풀이 죽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형들 손을 빌리지 않고 돌려보내는 데 성공했다.
정의탁이 뿌듯한 기분으로 PiPiPi를 배웅하려던 그때.
복도 저편에서 익숙한 인영이 나타났다.
“너희 거기서 뭐 해?”
강해솔이었다.
“해솔이 형! 형 어제 방울토마토 촌장님 뽑은 거 저랑 바꿀래요? 사과 용사님 어때요?”
“범세혁 너 양심이 없구나?”
방토 촌장과 사과 용사를 트레이드하려고 하다니, 도둑놈 심보가 따로 없다며 코웃음을 친 강해솔이 다가왔다.
이때까지 정의탁은 아무런 걱정도 없었다.
왜냐면 정의탁에게 있어서 PiPiPi는 그저 그 많은 츄마프 연습생 중 자신을 뮤즈라고 떠벌렸던 조금 독특한 취향의 작곡가였기 때문이었다.
‘나 빼고 다른 형들한텐 관심도 없잖아. 아, 예찬이 형한테는 생긴 것 같지만.’
멤버들에 대한 자부심은 하늘을 찌르는 것에 반하여 자신에 대한 평가는 박한 정의탁은 그런 PiPiPi가 이해되지 않았다.
정의탁 자신을 최고로 좋아해 주는 복숭아들처럼 그저 고맙다고 생각하기엔 좀 불편했고.
그러나 PiPiPi는 강해솔을 보자마자 엘리베이터에서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강해솔 씨!”
“……아, PiPiPi 작곡가님.”
낯선 얼굴을 발견한 강해솔의 표정이 단번에 딱딱하게 굳었다.
낯가림쟁이가 은근 많은 팀에서도 꽤 낯가림 랭킹 상위권에 드는 멤버다운 반응이었다.
‘어쩌면 예찬이 형이 해솔이 형한테는 PiPiPi 작곡가님에 대해서 더 푸념했을지도?’
평소 자석처럼 붙어 있는 두 사람인 만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합니다.”
힘차게 뛰쳐나온 것치곤 말이 없는 PiPiPi를 대신해 강해솔이 먼저 인사를 했다.
PiPiPi는 무척이나 사회성 없는 태도로 인사를 받았다.
그래도 다음으로 이어진 말이 어색한 분위기를 꽤 풀어 주었다.
“‘Only my you’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서 끝났다면 훈훈하고 좋았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적당히’를 모르는 PiPiPi는 곧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다음 앨범도 강해솔 씨와 하예찬 씨가 작업하시는 걸까요? 곡은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나요? 총 몇 곡이 들어가죠? 외부 작곡가는 섭외하지 않은 건가요? 앨범의 콘셉트는?”
‘그걸 외부인한테 말할 리가…….’
정의탁은 황당함을 감추지 않은 얼굴로 PiPiPi를 대놓고 바라보았지만, PiPiPi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광기로 빛나는 PiPiPi의 두 눈에 당황한 강해솔은 인상을 찌푸렸다.
“죄송하지만 앨범에 대한 건 보안상 말씀드리기가…….”
“남은 자리가 있다면, 아니! 자리가 없더라도, 제 곡을 들어 보시죠. 없던 자리도 만들어질걸요?”
강해솔의 눈가가 슬며시 찌푸려졌으나 PiPiPi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장담컨대 지금 준비된 곡들보다 뛰어날 겁니다.”
자신만만한 PiPiPi의 번들거리는 눈과 목소리에는 기이한 힘이 실려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듣고 정의탁은 소름이 돋았고, 강해솔은 앨범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부심을 자극받았으며, 범세혁은 얼른 나머지 띠부띠부씰을 확인하고 싶었다.
강해솔은 업계 관계자와 대화하기 위해 뒤집어쓰고 있던 제 나름대로 붙임성 있는 가면을 던져 버렸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꼭 들어 보고 싶네요. 과연 저희가 만들고 있는 앨범에 어울릴지.”
차가운 얼굴에 걸맞은 서늘한 목소리는 주변의 온도를 적어도 5도 이상 내려가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솔이 형?”
“작업실로 가시죠.”
불안한 표정으로 자신을 부르는 정의탁에게 슬며시 고개를 저은 강해솔은 PiPiPi를 끌고 작업실로 향했다.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정의탁은 거칠게 자기 머리를 헤집었다.
“아, 저래도 되나?”
대화 내내 꿋꿋하게 띠부띠부씰을 확인하던 범세혁이 말했다.
“같은 작곡가니까 느껴지는 게 아닐까? 뭔가 전파가 통했다든지!”
“일단 이경이 형한테 말해야겠어요! 우리도 얼른 연습실에 갑시다!”
태평하기 그지없는 범세혁의 말을 깔끔히 무시한 정의탁은 그대로 연습실로 달음박질쳤다.
* * *
작업실에 도착한 강해솔은 말없이 PiPiPi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PiPiPi 또한 입을 다문 채 안주머니에서 꺼낸 USB를 그 위에 올렸다.
USB가 연결되었다는 알림 이후, 이윽고 PiPiPi가 준비해 온 비장의 작품이 작업실 안에 울려 퍼졌다.
‘좀 괜찮은 스피커를 쓰는군. 아주 좋아.’
소파에 앉은 PiPiPi는 만족스럽게 가만히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강해솔의 뒤통수를 보았다.
강해솔이 만든 곡을 들어 본 결과, PiPiPi 자신보단 못해도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작곡가라는 것은 알았다.
그러니 감히 이 작품의 가치를 몰라보는 일은 없으리라.
레굴루스가 어떤 곡을 준비하고 있든지 이 곡으로 잡아먹을 자신이 있었다.
곡이 끝나 갈 무렵엔 당장이라도 강해솔의 표정을 확인하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놀랐겠지? 이런 곡을 준다니 감동했을 거야. 울고 있으면 곤란한데.’
어쩌면 곡의 가치에 맞는 금액을 준비할 생각에 아득해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작업하고 싶었던 거니까 비용은 좀 친절하게 책정할 예정인데 말이지. 후후. 내 관대함에 정말 울어 버릴지도?’
PiPiPi의 상상이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레굴루스가 이 모든 영광은 이 시대의 천재 작곡가인 PiPiPi 덕분이라며 감격에 겨운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부분까지 흘러갔을 즈음, 강해솔이 고개를 돌렸다.
“잘 들었습니다.”
“아, 네.”
끝?
설마 그걸로 끝?
PiPiPi의 얼굴에 투명하게 비치는 마음을 읽은 강해솔은 잠시 고민했다.
‘곡 작업 과정은 전부 백업해 뒀고, 날짜 제대로 나오고, 앨범 작업하는 영상도 잔뜩 있고…… 표절 시비가 생겨도 질 일은 없겠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강해솔은 녹음 앱을 켰다.
최악의 사태를 상정하면 증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의심해서 미안합니다, PiPiPi 작곡가님.’
같은 작곡가를 잠재적 도둑놈 취급하는 것이 강해솔도 달갑진 않았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곡을 들려주는 것이니 이 정도의 보험은 들어 두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눈에 띄지 않게 스마트폰을 뒤집은 강해솔이 입을 열었다.
“저희 앨범에 들어갈 곡들, 들어 보실래요? 아직 완성은 아니지만.”
“……당연히 좋습니다!”
PiPiPi의 눈이 호승심으로 불탔다.
강해솔을 작게 고개를 까딱거리고 곡을 저장해 둔 폴더를 찾았다.
딸깍, 딸깍.
이번에도 몇 번의 마우스 클릭 소리가 들린 후, 스피커를 타고 곡이 시작되었다.
연속 재생 설정을 마친 강해솔은 조용히 책상 옆에 밀어 두었던 우유가 든 머그잔을 들었다.
“…….”
노래가 재생되는 동안 PiPiPi는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았다.
모든 곡이 끝나자 강해솔은 소리 없이 홀짝이던 우유를 내려놓았다.
“작곡가님의 곡은 정말 좋지만, 저희의 이번 앨범과는 어울리지 않아서요. 들어 보셨으니 느끼셨겠죠?”
PiPiPi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말 많은 작곡가가 침묵하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한 답이 되었다.
츄마프에서 ‘시나브로’를 들었을 때부터 느꼈지만 정말 대단한 작곡가다.
이렇게 앨범에 들어갈 곡을 들려주는 편이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저 작곡가를 포기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듣기에도 우리 앨범은 지금 기승전결이 완벽하거든.’
아직 토대나 겨우 세운 정도지만, 그럼에도 결과물이 벌써 기대가 되었다.
확실히 자신만만한 태도가 이해가 갈 만큼 PiPiPi가 들고 온 곡은 ‘시나브로’나 ‘칠일 동안’을 아득히 뛰어넘은 퀄리티를 뽐내고 있었다.
가수라면 누구나 탐낼 만큼 반짝이는 곡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넣어 줄 틈이 없었다.
“……늘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을 지키던 PiPiPi는 갑작스레 벌떡 일어났다.
“배웅해 드릴까요?”
“아니요, 됐습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뚜벅뚜벅 작업실을 걸어 나가는 PiPiPi를 바라보며 강해솔은 생각했다.
‘……방금 오늘은, 이라고 하지 않았나?’
* * *
한편 회사에 누가 찾아왔는지 알 리 없는 예찬과 배새벽, 심상록은 ‘알콩 메이커, once again’ 촬영에 집중하고 있었다.
“잠시 끊었다 가겠습니다!”
스태프의 말에 배새벽과 심상록이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자리를 비웠다.
예찬은 촬영 내내 꼿꼿하게 세우고 있던 등에서 힘을 빼고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시차 적응도 안 됐을 텐데 괜찮아요?”
건너편에 앉아 있던 오늘의 특별 게스트가 그런 예찬을 향해 살갑게 말을 붙였다.
예찬은 최선을 다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선배님!”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피로는 목의 천적이거든요.”
보컬은 목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말에 그 옆에 앉아 있던 또 다른 게스트가 코웃음을 쳤다.
“어련히 후배님이 잘하고 계실 텐데 잔소리는. 꼰대 다 됐네, 꼰대 다 됐어. 내가 보기엔 우리 하 후배는 알아서 잘할 스타일이야. 작곡한 곡만 들어 봐도 딱 견적 나오지.”
“그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곡을 보면 작곡가의 스타일이 보인다니까?”
“…….”
체통 없이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며 예찬은 자신도 멤버들과 같이 화장실에 가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알콩 메이커, once again’의 오늘 자 게스트는 유피테르의 메인 보컬 이가원과 리더 황시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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