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18)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17화
최근 유피테르는 활발한 대외 활동을 이어 가고 있었다.
연차가 쌓일 대로 쌓인 아이돌답지 않게 선공개 곡으로 음악 방송에 무려 3주째 성실하게 얼굴을 비추는 것은 물론.
유명한 예능이라면 공중파와 지상파를 넘어 아이튜브까지 출석 도장을 찍고 있었다.
‘알콩 메이커, once again’도 제법 승승장구하고 있는 예능이기에, 유피테르가 게스트로 참여한 것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그렇지만 하필 넷 중에 이가원과 황시우가 참여했다는 점이 예찬의 신경을 긁었다.
출연진이 정해지기 전, 이번 녹화에 참여하는 레굴루스 멤버가 누구인지 확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더더욱.
– 예찬 씨랑 상록 씨라고 전달했더니, 바로 시우 씨랑 가원 씨가 나오신다고 하더라고요.
촬영 시작 전 스태프가 지나가듯 전한 말이 사실이라면 이 두 사람은 예찬을 목적으로 이 자리에 참여했을 확률이 높았다.
아니, 지금 하는 짓들을 보니 확신해도 좋았다.
‘이 자식들, 자꾸 치대네.’
아무래도 저 수집가들에게 단단히 찍힌 모양이다.
“예찬 씨, 지난 활동 땐 왜 ‘수요 아이돌’에 안 나왔어요?”
황시우와 입씨름을 멈춘 이가원이 부담스럽게 살가운 말투로 물었다.
‘수요 아이돌’은 CBC의 예능으로 이름처럼 매주 수요일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이었다.
출연하는 아이돌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팬들이 보고 싶어 할 만한 코너들만 꽉꽉 채우는 걸로 유명한 이 프로그램은 아이돌 팬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나와 줬으면 좋겠는 방송 1위로 꼽히기도 했다.
참고로 꼴찌는 같은 CBC의 ‘전국 아이돌 체육 대회’였다.
콘셉트가 콘셉트인 만큼 ‘수요 아이돌’에는 세간에서 듣보나 망돌이라 부르는 아이돌들도 출연하곤 했다.
데뷔 전부터 최상급의 인지도를 자랑한 레굴루스가 K-pop 팬들의 빛과 소금과도 같은 프로그램에 나가지 않은 이유?
단 하나였다.
“아, 출연 요청을 받지 못해서요.”
CBC는 N-net의 적자 레굴루스에게 음악 방송의 문은 열었으나, ‘수요 아이돌’의 문은 단단히 걸어 잠갔다.
다른 방송사 음방에만 레굴루스가 나와 화제성을 뺏기는 건 싫으니 음방은 나오게 하고, 오직 CBC에만 있는 아이돌 특화 예능에는 배제한 것이다.
‘졸렬…… 하긴 한데 놀랍진 않네.’
믿기 어려울 만큼 사소한 일에도 자존심을 세우고 갑질을 하는 경우가 허다한 게 이 바닥이었다.
‘수요 아이돌’에 출연하지 못하는 게 아쉽지 않냐고 묻는다면 아쉬웠다.
이클립틱들 또한 레굴루스가 꼭 나와 주길 바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다행인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란 것이었다.
아무리 양심에 털이 난 CBC라 해도 추석 특집 ‘전국 아이돌 체육 대회’에 레굴루스를 부르면서 ‘수요 아이돌’은 모른 척 입을 닦을 수 없을 테니까.
‘이번까진 힘들겠지만, 다음 앨범부턴 나갈 수 있겠지.’
예찬의 말에 잠시 생각하는 기색을 비친 이가원이 반갑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혹시 메보 특집에 같이 나가지 않을래요? PD님이 같이 나올 사람을 제가 추천해도 된다고 했거든요.”
“메보 특집이요?”
의외의 제안에 예찬이 순간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전에 봤던 거 같기도 하고.
“같은 회사 친구들이랑만 나가는 건 좀 뻔해 보여서, 예찬 씨가 같이 나와 주면 좋을 거 같아요. 와, 진짜 재미있겠다.”
생글생글 웃어 대는 이가원은 벌써 예찬이 출연을 승낙한 것처럼 방정을 떨었다.
‘……확실히 나쁘진 않은데?’
명실상부한 톱 아이돌 이가원이 꽂아 준다면, 그것도 제작진 측에서 네 마음대로 하라고 아예 인사권을 건넨 상황이라면, ‘수요 아이돌’ 측에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 ‘수요 아이돌’ 쪽에서 오히려 감사할 일이었다.
‘이가원 핑계를 대고 자연스럽게 레굴루스에게 문을 열 수 있으니까.’
CBC와 N-net의 윗선이 어떻게 되든 어차피 추석까지란 데드라인이 정해져 있는 싸움인데 대충 때려치우고 빨리 실적을 남기고 싶지 않겠는가.
이가원과 함께라는 건 좀 불편하지만, 대의를 위해 회사와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대답하려던 순간이었다.
“넌 예찬 씨가 뭐냐, 예찬 씨가. 듣는 사람 불편하게. 어이, 동생.”
두 사람의 대화를 아니꼽게 바라보던 황시우가 갑자기 거리감을 훅 좁힌 호칭을 입에 담았다.
예찬은 검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저요?”
아, 표정 관리 안 됐다.
“풉! 야, 너야말로 갑자기 친한 척하니까 우리 예찬 씨가 황당해하잖아. 어디다 대고 동생이래?”
“시끄러워, 멍청아. 흠흠, 거, 나보다 어리잖아. 그리고 우리가 초면인 것도 아니고. 그러면 동생이지. 안 그래?”
“아, 네. 동생이죠.”
“어휴, 예찬 씨 영혼이 너무 없다. 저 바보한테 안 맞춰 줘도 돼요.”
또다시 예찬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티격태격했다.
‘역시 화장실에 갔어야…….’
“아무튼 수요돌 나갈 거면 메보 특집 말고 작곡돌 특집에 나가자. 그게 훨씬 재미있을걸? 여차하면 형이 재미있게 해 줄게. 형 한 유머 한다.”
형만 믿으라며 황시우가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쿵쿵 두드렸다.
그에 맞춰 이가원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황시우, 괜히 남의 떡 넘보지 마시지? 그리고 너 작곡돌 특집 말고 래퍼 특집 나가기로 했잖아.”
‘누가 남의 떡이냐.’
이가원의 말을 들은 황시우는 혀를 한 번 차더니 예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럼 래퍼 특집 나갈래?”
“네?”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이 양반, 진짜 막 나가네.
다행히 험한 말을 하기 전에 이가원이 먼저 황시우의 헛소리를 비난했다.
“예찬 씨 포지션이 메인 보컬인데 무슨 래퍼 특집이야. 제발 되는 대로 말하지 마시죠?”
“너는 ‘Don‘t bother’를 직접 보고도 그 말이 나오냐? 얘 랩 좀 하거든?”
예찬이 메인 래퍼 포지션을 맡았던 츄마프 경연곡을 언급하며 황시우가 빈정거렸으나 이가원은 단호했다.
“잘하는 거랑은 별개지. 래퍼 포지션이 아닌데 나왔다가 무슨 소리를 들으라고.”
“윽.”
상식적인 지적에 황시우의 입이 봉인되었다.
예찬은 이쯤에서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로 했다.
“말씀 감사합니다. 그러면 회사 측에 전달해서 검토해 보겠습니다.”
“그래요, 그래. 아, 정말 재밌을 거 같지, 시우야?”
“지금 불난 집에 부채질하냐?”
‘그만 좀 싸워라, 이것들아.’
다행히 두 사람의 싸움은 이어지지 않았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출연진들과 스태프들이 돌아오며 촬영이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예찬 씨, 연락 기다릴게요. 상록이도 잘 들어가고, 새벽 씨도 다음에 또 봐요.”
보람찬 얼굴을 한 이가원은 예찬의 어깨를 친근하게 두드린 후, 멤버들뿐만 아니라 매니저에게도 붙임성 있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황시우는 그런 이가원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쫄래쫄래 쫓아갔고.
“가원이 형이 왜 연락 달라는 거야?”
올림포스의 전 연습생 심상록은 이가원의 메인 보컬에 대한 집착을 익히 알고 있기에 걱정스레 물었다.
“이번에 수요돌에서 아이돌 포지션별로 특집을 할 건가 봐요. 같이 메보 특집에 나가는 게 어떠냐고 권해 주셨어요.”
“수요돌? 반가운 소식이네.”
심상록은 정말로 기쁘단 얼굴로 웃었다.
같이 있던 황시우가 유피테르의 래퍼인 만큼, 자신이 랩 특집을 권유받지 못한 것이 섭섭할 만도 한데, 그런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인배라고 해야 하나.’
“예찬이 형, 나갈 거예요?”
‘수요 아이돌’의 애청자인 배새벽이 드물게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였다.
“아마도?”
“그러면 우리 이번 활동 때는 ‘수요돌’에 나가요?”
“그것도 아마도?”
“오!”
정말로 기뻤는지 배새벽은 차 시트에 앉은 채로 주먹을 쥐고 자기 허벅지를 리드미컬하게 두드렸다.
그런 배새벽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심상록이 말을 건넸다.
“새벽이는 수요돌 나가면 뭐 하고 싶어?”
“저 눈 가리고 랜덤 플레이 댄스요.”
“아이고.”
배새벽이 망설임 없이 제일 난이도가 끔찍한 코너를 부르자 심상록은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냈다.
“그거 진짜 하고 싶구나.”
“네.”
예찬의 말에 배새벽이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포기한 게 아니었군.’
그렇지 않아도 배새벽과 범세혁은 연습실에서 다 같이 ‘눈 가리고 랜덤 플레이 댄스’를 해 보자고 졸라 댔었다.
안타깝게도 연습실 대장인 선우이경 선에서 그 요청은 기각되었다.
멤버 전원이 눈을 안대로 가리고 무작위로 재생되는 노래에 맞춰 대열을 바꾸고 춤을 춰야 하니, 부상의 위험이 크다는 게 이유였다.
‘뭐, 앞으로도 딱히 크게 다친 사람은 안 나와서 장수하는 코너지만.’
“상록이 형은 어떤 코너가 좋아요?”
“난 서로 쓰는 프로필이 해 보고 싶었어.”
배새벽의 물음에 심상록 또한 막힘없이 대답했다.
심상록도 수요돌에 어지간히 나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예찬이는?”
“전 펀치게임이요.”
이쯤 되면 자신에게 질문이 날아올 차례였기에 예찬은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들이 영 시원치가 않았다.
“펀치게임이요?”
“음…… 좋아하는 거랑 잘하는 게 다를 수도 있지. 나는 예찬이 응원해.”
‘이 자식들이.’
흥분하면 지는 거다.
예찬은 마음을 다스리며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전했다.
“팔씨름을 생각하신 거 같은데, 팔씨름이랑 펀치력은 좀 다르죠. 저 펀치게임은 좀 칩니다.”
“…….”
“그, 음…… 대단하다, 예찬아!”
예찬은 정말로 진실을 말했다.
그러나 배새벽은 안타깝다는 듯 말을 잃었고, 심상록은 티 나는 거짓말로 예찬을 추켜세웠다.
‘두고 보자…….’
이 이상 말을 섞어 봤자 소용이 없었다.
결과를 눈앞에 들이밀지 않는 이상 저 둘은 계속 저런 반응일 것이었다.
‘수요 아이돌’은 필수 코너 몇을 제외하면 회차마다 랜덤으로 그날의 프로그램이 정해졌다.
예찬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우리가 나가는 주엔 꼭 펀치게임 시키길.’
팔씨름 8위의 설욕을 하고야 말 것이다.
* * *
“헤이, 브라더. 예찬 이즈 백.”
강해솔만 있을 게 분명한 작업실의 문을 흥겹게 열자, 강해솔 옆으로 도지윤 팀장과 선우이경이 앉아 있었다.
“…….”
“Yo!”
잠깐 당황한 것 같던 선우이경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더니 예찬을 향해 현란하게 손짓했다.
“오우, 예찬! 마 브로! 헤이, 컴 인! 싯 히어, 예아~!”
‘……젠장.’
어느새 재미있어 죽겠단 얼굴이 된 선우이경은 본인의 트레이드마크인 윙크까지 날리며 옆자리를 툭툭 두들겼다.
“…….”
예찬은 입을 꾹 다문 채 도지윤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다음 작업실 문을 닫고 들어왔다.
‘나는 부끄럽지 않다. 나는 부끄럽지 않다. 나는 부끄럽지…….’
그러나 이어진 선우이경의 말에 결국 목덜미까지 새빨갛게 붉어지고 말았다.
“이야, 너희 되게 힙하게 인사하는구나! 앞으론 나도 좀 껴 줘. 예아~”
‘……빌어먹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