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19)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18화
열심히 돌렸던 행복 회로가 선우이경의 말에 힘없이 바스러졌다.
쓸데없이 혀를 굴린 ‘예아~’가 참을 수 없이 거슬렸다.
예찬이 질색하는 사이 강해솔은 재빨리 선을 그었다.
“저는 아닌데요. 얘만 이상한 건데요.”
예찬은 듣지 못한 척 도지윤 팀장을 향해 말을 걸었다.
“도 팀장님은 어쩐 일로 오셨나요?”
“예찬이 말 돌리네.”
선우이경과 달리 현대인의 지성과 교양을 갖춘 도지윤은 예찬의 말을 훌륭히 받아 주었다.
“오늘 PiPiPi 작곡가님이 회사에 왔었다고 들어서요. 어떻게 된 일인지 잠시 들었습니다.”
“……또요?”
예찬의 뇌리에 데뷔 앨범을 준비하고 있을 당시, PiPiPi의 곡을 거절했던 것이 떠올랐다.
‘삼고초려라도 하면 같이 작업할지도 모르겠다고 반쯤 농담처럼 생각했는데…….’
벌써 두 번이나 왔다.
이러다 진짜로 현대판 삼고초려가 실현될지도 모르겠다.
PiPiPi의 이름이 나오자 조금 전까지 뻔뻔하게 자신은 멀쩡하다며 발뺌하던 강해솔이 예찬을 흘깃거렸다.
어딜 어떻게 봐도 눈치를 보는 형상이다.
‘사고라도 쳤나? ……혹시 때렸나?’
그래도 PiPiPi가 워낙 짜증 나는 스타일이니 몇 대 때린 것 정도는 정당방위지 않을까.
예찬은 삼고초려에 관한 생각은 대충 치우고 강해솔을 향해 뜬금없이 물었다.
“화장실 같이 가 줘?”
“……한 대 맞을래?”
나름대로 분위기를 풀어 보려는 시도였으나 통하지 않았다.
그래도 ‘맞을래’ 소리를 입에 담는 걸 보니 폭력을 쓴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게 아니면 왜 그렇게 눈치를 보고 있어.”
어서 말해 보라고 예찬이 멍석을 깔아 주자, 흉흉한 눈빛으로 노려보던 강해솔이 순식간에 풀이 죽었다.
‘아니, 기를 죽이려던 건 아닌데.’
당황스럽다는 듯 예찬이 눈을 크게 뜨자 잠시 입을 삐죽거리던 강해솔이 한숨과 함께 오늘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사실 PiPiPi 작곡가님한테 우리 앨범을 들려 드렸어. 너 올 때까지 숙소에서 기다리면 안 되냐고까지 하셔서, 그땐 그렇게라도 해서 포기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음, 좀 성급했던 거 같다.”
강해솔은 정말로 면목이 없다는 듯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이게 끝?’
예찬은 조금 김이 빠졌다.
유혈 사태, 혹은 그와 비슷한 상황을 각오했는데 그에 비하면 참으로 시시한 일이 아닌가.
‘역시 양아치의 얼굴에 소심한 영혼.’
자리에 앉은 예찬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그걸로 돌려보내서 다행이네.”
옆에서 선우이경도 추임새를 넣었다.
“그럼 그럼. 해솔이 욕봤다.”
“고생하셨습니다.”
도 팀장도 짧고 굵은 말로 강해솔을 치하했다.
강해솔은 이번엔 민망한 듯 눈을 내리깔았다.
“그, 음…… 다들 그렇게 얘기해 줘서 고맙습니다. 그래도 다음번엔 멤버들이랑 회사와 상의한 후에 지르겠습니다.”
고분고분한 대답에 선우이경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하고선 큰 소리를 냈다.
“와, 해솔이 너무하네! 나랑 도 팀장님이 아까부터 괜찮다고 했을 땐 ‘그래도, 그래도……!’ 이러더니! 예찬이가 끼니까 바로 수긍하네?”
‘그랬어?’
예찬의 귀가 번쩍 열렸다.
얼굴에서 민망한 기색을 순식간에 지운 강해솔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뭘 또 그렇게 비약해요.”
“이경이 형은 정말 섭섭해!”
“스물세 살이나 먹은 형이 자기 이름을 삼인칭으로 말하는 걸 듣는 제 마음이 더 섭섭하지 않을까요.”
“해솔이 변했어! 예전엔 이렇게 반항적이지 않았는데!”
“제가 오죽했으면…… 아니, 뭐 그만할게요.”
“거기서 그만두면 더 이상하지!”
정신 사나운 대화를 듣던 도지윤 팀장은 먼저 일어나 보겠다며 작업실 문을 열었다.
예찬도 도 팀장을 배웅한다는 핑계로 그 뒤를 따랐다.
강해솔이 선우이경과도 꽤 친해진 것 같아서 참 흐뭇했다.
* * *
하루하루 여름이 깊어져 감과 동시에 레굴루스의 앨범 작업도 막힘없이 진행되어 갔다.
그리고 예찬과 배새벽, 심상록이 참여한 알메겐 녹화가 있던 주의 금요일.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DBS의 음악 방송 뮤직캐슬에서 기어코 1위를 수상했다.
음악 차트 순위가 심상치 않은 것을 인지한 팬들이 앨범 공구를 진행했다는데, 결과가 잘 나와서 다행이었다.
이미 활동이 끝난 신인의 데뷔 앨범 수록곡이 1위를 한 것이 흔한 경우는 아닌지라 여기저기서 축하 메시지가 날아왔다.
– 츄마프 남지유 형 : 레굴루스 뮤캐 1위 미쳤다!! 축하해!!
– 유피테르 황시우 선배님 : 내가 전에 당싶말 좋다고 했던 거 기억하냐? 앞으로 황시우 형 말고 황금귀 형이라고 부르든가ㅎ
– 츄마프 기태랑 : 형님! 정말로 축하드립니다! 저도 요새 매일 당싶말 스밍 중입니다!
– 츄마프 박나길 형 : 작곡 천재 하예찬! 오랜만이다 요새 잘 지내? 오늘 우연히 뮤캐 보고 연락해 봤어~ 너희 앨범 준비는 잘……
– 현지영 트레이너님 : 뮤캐 보고 완전 놀랐네! 레굴루스 ㅊㅋㅊㅋ~~~! 내가 다 뿌듯하다!
– 계정엽 작곡가님 : 당싶말 잘 듣고 있어. 1위 축하한다.
– 유피테르 이가원 선배님 : 1위 축하해요^^ 1위 기념으로 맛있는 거 사 줄까요? 메보끼리 친목도 도모할 겸?^^
옆에선 배새벽이 이 때아닌 역주행의 계기를 만들어 준 원로 배우 길원종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길원종 선생님. 저 배새벽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아, 벌써 소식 들으셨군요. 예, 예. 전부 선생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맹하긴 하지만 예의 하나는 깍듯한 녀석이다.
예찬은 메시지들에 답장을 보낸 뒤 아직도 통화 중인 배새벽을 피해 주방으로 빠졌다.
“너도 물 줄까?”
주방에 있던 우휘겸이 아는 척을 해 왔다.
예찬은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저었다.
“나 잠깐 통화 좀.”
우휘겸은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예찬은 이상한 느낌에 곧바로 우휘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휘겸.”
“…….”
“……숨은 쉬어.”
“하아……!”
아니나 다를까, 우휘겸이 소리를 죽이겠답시고 숨까지 참고 있었다.
예찬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내쉬는 우휘겸을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았다.
‘얘도 참 허우대는 멀쩡한데…….’
예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뒤, ‘당싶말’ 역주행의 또 다른 공로자인 알메겐 PD에게 전화를 걸었다.
“PD님, 레굴루스 하예찬입니다. 지금 통화 가능하실까요? 네, 맞아요. 오늘 1위를 했네요. 하하, 전부 PD님과 알메겐 덕분이죠.”
잠시 후 통화를 끝낸 예찬에게 우휘겸이 미지근한 물이 든 잔을 건넸다.
꽤 오랫동안 통화가 이어진 터라 예찬은 흔쾌히 잔을 건네받았다.
“고맙다.”
“아니야, 예찬이 네가 고생하네.”
예찬은 레굴루스의 리더이자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의 작곡가였다.
그러니 예찬이 이번 1위에 대한 인사를 돌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우휘겸은 한 사람에게만 일을 몰아주게 되어 미안한 듯했다.
‘소심하긴.’
이 팀엔 참 소심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아주 마음에 든다.
예찬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이런 고생이라면 감사하지.”
거짓말이 아니다.
1위를 시켜만 준다면 365일 내내라도 할 수 있었다.
‘……365일은 너무했나? 아니, 그래도 1위인데 좋지 않을까?’
잠시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예찬은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우휘겸이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마침 배새벽도 통화가 끝났는지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다들 연락 잘 돌렸어? 그럼 이제 1위 감사 영상 찍자!”
최근 직업 만족도가 하늘을 뚫다 못해 우주까지 찌를 기세인 매니저 김건호가 말했다.
멤버들은 이번에도 비니를 주섬주섬 주워 썼다.
“이거 언제까지 써야 해?”
“티저 공개할 때까진 써야 하지 않을까?”
“아득하다, 아득해.”
“근데 이젠 너무 익숙해졌어. 안 쓰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어색해.”
요란한 색의 모자를 나누어 쓴 멤버들은 이내 자리를 잡았다.
다섯이 소파에 나란히 앉고 넷은 그 뒤에 섰다.
“예찬이부터 차례대로 한 마디씩 하는 거야!”
여느 때와 같은 순서로 1위 기념 영상과 사진을 찍은 뒤엔 그대로 스타 라이브를 켜기로 했다.
“탁자에 삼각대 올려 둬야 하니까, 위에 있는 거 좀 치우자.”
“네~!”
매니저의 지시에 밝게 대답한 범세혁이 주섬주섬 늘어놓은 책받침이며 종이를 치웠다.
뭔가 싶어서 봤더니 비타시드의 띠부띠부씰을 번호순으로 정리해서 붙여 둔 책받침이었다.
최근 멤버들이 눈에 불을 켜고 모으고 있는 숙소의 잇템이었다.
‘무슨 종인가 했더니 도감을 인쇄했네. 지독하다, 지독해.’
얼핏 봐도 책받침에 스티커가 꽤 촘촘히 들어차 있었다.
범세혁이 저만큼이나 모았으면, 범세혁보다 더 지독한 채은성은 다 모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는 희귀한 띠부띠부씰이 동네 장터에 올라왔다며 직거래를 하러 나가려고까지 했었다.
‘정의탁이랑 배새벽도 열심히 모으는 것 같고. 해솔이 형도 은근 모았던데. 내건 어디에다 뒀더라?’
“시작할게!”
매니저의 말에 예찬은 다시 본업에 집중했다.
“둘 셋, 빛나는 당신의 별!”
“안녕하세요, 레굴루스입니다!”
힘찬 인사 후, 멤버들은 꼭 짠 것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곧장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당싶말 1위를 축하합니다~!”
“복숭아들 고마워요!”
“복숭아들 덕에 1위 했어요!”
채팅창에 댓글들이 쏟아졌다.
대충 지켜보니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멤버들을 귀여워하는 게 4할 정도, 당싶말 1위를 축하하는 것도 4할 정도, 그 외의 댓글이 1할 정도.
마지막으로 분노를 쏟아 내는 댓글이 1할 정도였다.
– 오늘도 어김없이 외모 봉인구 차고 왔고요~^^
– 제발 그 빌어먹을 비니 좀 치워!!
– 색깔 실화냐ㅠㅠㅠ 얘들아 누나에게 자비 좀ㅠㅠㅠㅠㅠ
– 저 형광 초록은 꼭 한 명은 쓰더라ㅋㅋㅋㅋㅋ
– 비니 태우러 갈 사람 모집합니다 (1/100)
– No hat plz.
‘음, 생각보다 더 싫어하는군.’
이클립틱들이 비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분노가 거셀 줄은 몰랐다.
‘얼마 전까진 스포 안 하려고 노력하는 게 가상하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그러고 보면 머리를 염색한 지 벌써 보름이 넘게 지났다.
귀엽다고 웃어넘기는 데에 한계가 온 모양이었다.
예찬은 분개하는 팬들을 달랬다.
“복숭아들, 다음부턴 비니 말고 다른 걸로 할게요. 오늘까지만 어여삐 봐주세요.”
채팅창이 이번엔 9할 이상 비니 이야기로 뒤덮였다.
– 난 비니 좋아!
– 괜찮아! 귀여워!!
– 애들한테 뭐라고 하지 좀 맙시다 애들 눈치 보게 만들어서 좋아요?
– 예찬아 예뻐ㅠㅠㅠㅠㅠㅠ
– 오늘까지라고 약속한 거다?? 누나 믿는다??
– 어여쁘다 하예찬!!
– 형광 초록이라도 제발 바꿔 주면 안 될까……
예찬의 옆에서 채팅을 읽고 있던 오늘의 형광 초록 담당 채은성은 조용히 화면에서 벗어나 비니를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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