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20)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19화
채은성은 후드를 뒤집어쓴 다음, 끈을 최대한 당기고 돌아왔다.
꼭 우비를 입은 것처럼 얼굴만 동동 떠 있는 게 웃기다고 생각했지만 복숭아들은 귀엽다며 무척 좋아했다.
1위 수상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한 뒤, 이런저런 근황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그러면 다음에 또 만나요!”
“안녕~!”
“제가 끌게요!”
“의탁아, 조심…….”
“악!”
“아이고 늦었네.”
종료 버튼을 누르려고 튀어 나간 정의탁이 발이라도 꼬였는지 탁자 위로 엎어졌다.
선우이경이 탄식을 흘렸다.
“안 다쳤어?”
“의탁이 살아 있지?”
예찬과 선우이경이 다가가자, 정의탁은 두 사람에게만 들릴 정도의 크기로 빠르게 속삭였다.
“……창피해서 못 일어나는 거니까 잠깐만 못 본 척해 줘요.”
“얘들아! 의탁이가 창피해서 못 일어나는 거래! 잠깐만 뒤돌아 있자!”
“아, 이경이 형 진짜!”
벌떡 일어나는 걸 보니 정말로 다친 덴 없는 것 같다.
그사이 예찬은 엎어진 삼각대를 세워 스타 라이브 종료 버튼을 눌렀다.
넘어지면서 거실 어딘가가 화면에 비쳤을 수도 있지만, 팬들에게 보여서 안 될 물건은 없으니 괜찮을 것이다.
예찬은 비니를 벗으며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아무튼 다음번엔 비니 말고 다른 걸 준비해 봅시다.”
“네, 선생님~”
스마트폰을 확인해 보니 그새 또 축하 문자가 여기저기서 들어와 있었다.
이번에도 의례적인 답장을 보내던 예찬은 문득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김대훈한테 연락이 안 왔는데?’
그것도 꽤 오랫동안 오지 않았다.
달갑지 않다는 눈치를 줘도 헤실거리며 달라붙던 놈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연애 시작했나? ……연락이 끊겨서 다행이라고 봐야 할지.’
“예찬아, 잠깐만 이리 와 줄 수 있어?”
“네.”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에, 예찬은 생각을 멈추고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 * *
레굴루스의 팬들은 오늘도 축제 분위기를 한창 즐기고 있었다.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의 성적이 심상치 않다 싶더니, 기어이 지상파 1위까지 쟁취했기 때문이었다.
[NJ의 대형 신인 레굴루스의 저력은 어디까지?] [진정한 실력파 아이돌의 등장. 레굴루스의 데뷔부터 오늘까지.] [팬덤뿐만 아니라 대중까지 사로잡은 ‘당싶말’]밥을 안 먹어도 배를 부르게 하는 기사들이 쏟아진 것은 물론이요, 레굴루스의 1위 기념사진과 영상도 빠르게 올라왔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것은 스타 라이브였다.
요 보름간 지긋지긋하게 봐 온 비니 때문에 분노를 쏟아 내는 팬들이 좀 있긴 했지만, 예찬의 ‘어여삐 봐주세요.’ 발언 이후론 깔끔하게 사그라졌다.
다음부턴 비니를 쓰지 않겠다는 약속도 받아 냈고 말이다.
‘비니루스여, 이제 안녕……!’
레굴루스가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있을 때, 팬들은 시원한 마음으로 화면 속 비니에 안녕을 고하고 있었다.
[의탁아, 조심…… 아이고, 늦었네.]‘악!’하고 정의탁이 비명을 지르기 전까진 말이다.
정의탁과 부딪혔는지 휙 흔들린 화면이 테이블 위에 놓인 물건들을 비췄다.
[안 다쳤어?]– 의탁아!!
– 뭐야?? 어떻게 된 거야??
– 의탁이 다쳤어??
– 얘들아 괜찮아?ㅠㅠㅠㅠㅠ
– eng plz~
멤버들과 팬들이 정의탁을 걱정하는 사이에도 말이다.
[……창피해서 못 일어나는 거니까 잠깐만 못 본 척해 줘요.]정의탁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팬들은 채팅창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다행이다ㅠㅠㅠㅠ
– 의탁이 안 다쳤나 보네ㅠㅠㅠㅠ
스타 라이브가 종료된 후, 팬들은 자연스레 화면에 비친 물건들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 마지막에 보인 거 비타시드 띠부띠부씰 맞지?
└ 맞는 듯 ㅋㅋㅋㅋ
– 얘들 진짜 야무지닼ㅋㅋㅋ 캡처 보니까 비타시드 공홈에 올라온 도감 순서대로 모으고 있는 듯ㅋㅋㅋ
└ 심지어 중간중간 없는 건 자리 비워 둠
며칠 전, 레굴루스의 첫 광고인 비타시드 CF가 대대적으로 공개되었기에, 팬들은 범세혁이 곱게 모아 둔 띠부띠부씰의 정체를 바로 알아챘다.
– 애들 비타시드 광고한 다음부터 엄청 사 먹었는데 띠부씰은 개구려서 다 버렸다고ㅠㅠㅠㅠ
– 애들한테 없는 거 가지고 있는데 주고 싶다 얘들아 누나랑 공덕역에서 직거래할래?
– 책받침 어디 건지 찾음 이제 띠부씰 풀셋 카피 ㄱㄴ
└ 나도 링크 좀
– 책받침 옆에 보이는 거 도감 아님? 비타시드 홈피랑 비슷한데
└ 헐 진짜네 도감까지 뽑은 거야?? 진짜 귀엽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광고주님 우리 레굴루스가 비타시드에 이렇게 진심입니다
다음 날, 레굴루스의 스타 라이브에 나온 책받침과 띠부씰이 들어 있는 비타시드 제품들이 온라인에서 전부 품절이란 기사가 떴다.
레굴루스는 팬들의 뜨거운 성원에 감사하며, 공식 SNS에 지금까지 모은 비타시드 띠부띠부씰 현황을 멤버별로 곱게 찍어 업로드했다.
화제가 된 책받침의 주인공인 범세혁부터, 가장 많은 띠부띠부실을 모은 강해솔.
그리고 그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것은 채은성이었다.
– 해솔이 의외다ㅋㅋㅋ
– 와 진짜 많이 모았어ㄷㄷㄷ
– 이 정도면 강해솔이 비타시드 창문 한 짝은 해 줬음
– 얘들아 찐은 채은성임…… 은성이 정리한 거 한 번만 봐주라…… ㅎㄷㄷ
└ 보고 옴 이건 진짜 광기다
채은성은 떼지 않은띠부띠부씰을 opp 봉투에 넣은 다음 앨범에 하나씩 꽂아 두었다.
보는 사람마다 절로 감탄을 자아낼 만큼 깔끔하고 철저한 소장이었다.
그 외에도 어딘지 어설픈 정의탁의 컬렉션과 중복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고 대충 한데 뭉쳐 둔 배새벽.
희귀한 것만 모은 선우이경이나 자기 취향에 맞는 특정한 씰만 모은 우휘겸처럼, 모으는 방식에서도 멤버들의 성격이 보였다.
– 의탁이는 왜 이렇게 흔한 것만 모으지? 농담 아니고 다섯 번씩은 본 것들 같음
└ 나름대로 열심히 모은 거 아님? 우리 집에도 어지간한 거 다 있음ㅋㅋㅋ
– 새벽이 생긴 건 진짜 섬세 그 자체인데 저렇게 털털한 반전 모먼트 너무 좋다고
– 이경아 탐나는데 나한테 팔 생각 없냐
– 휘겸이 설마 복숭아만 모은 거니……
└ 이 남자의 팬 사랑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ㅠㅠㅠㅠ
└ 사랑하는 방식이 너무 귀엽잖아ㅠㅠㅠㅠㅠ
심상록은 모을 생각이 없어서 멤버들이 달라고 하면 다 줬다는 자필 쪽지에 앞으로 분발하겠다는 추신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예찬은 숙소와 작업실 곳곳에 붙어 있는 띠부띠부씰을 한 장으로 편집해서 올렸다.
사실 예찬은 띠부띠부씰이 나올 때마다 별생각 없이 보이는 곳에 붙이고 잊었는데 다행인지 멤버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띠부띠부씰은 원래 붙이라고 있는 거 아닌가요?]예찬이 함께 올린 한마디에 팬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 예찬이 말이 맞지 떼었다 붙였다 하라고 띠부띠부씰이자너
– 크 우리 천재 아기 사자 역시 똑똑해 나도 예찬이 따라 냉장고에 붙였다
└ 이따가 엄마한테 등짝 맞으실 듯
– 난 원래 스티커도 안 씀
└ 스티커는 원래 보관하려고 사는 거 아님?
– 근데 가구에 저렇게 붙이니까 너무 애기들 사는 집 같지 않아?
└ 정답! 애기 아홉이 사는 베이비 하우스입니다^^
└└ 근데 그 집에 신준일도 살지 않냐?
└└└ 눈새처럼 신준일 언급하지 말라고;
└└└└ 준일이 괴롭히지 마라 요새 일 열심히 하잖어
└└└└└ 준일이니?
* * *
지난 컴백 활동이 끝난 이후, 리스피릿 멤버들은 데뷔 이래 가장 한가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리스피릿의 이름은 여전히 드높았다.
대형 신인에게 한 번 음방 1위를 내줬다고 해서 총판 300만 장을 파는 그룹이 망할 리는 없지 않은가.
팬덤에서도 외부 작곡가의 곡을 가져다 쓴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긴 했으나, 그래도 다음 앨범에서는 멋지게 이를 만회해 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여전히 리스피릿은 대한민국 아이돌의 정상이었다.
‘다음 앨범이라…….’
최선이 냉소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과연 다음 앨범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멤버가 다 같이 거실에 나와 있었지만, 이희샘과 박마루는 말없이 자기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거기에 김대훈은 어울리지 않게 뉴스를 쳐다보고 있었고.
‘저걸 본다고 하긴 그런가?’
정확히 말하자면 그저 화면이 움직이는 걸 보고 있었다.
지난 컴백 때 정찬양과 나머지 멤버들이 제대로 부딪힌 다음부터 계속 이런 상태였다.
‘대훈이가 제일 심각하지. 전에는 폰에서 손을 떼질 않았는데, 얼마 전부터는 아예 충전도 안 하는 거 같고.’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정찬양은 솔로 앨범 준비를 한다며 며칠째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시간을 확인한 박마루가 입을 열었다.
“찬양이는 오늘도 안 들어오나 보네. 뭐 시켜 먹을까?”
“시켜 먹지 마. 배달 음식은 다 살찐다. 냉동실에서 대충 닭가슴살이라도 꺼내 먹든지.”
이희샘이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귀찮다는 듯 말했다.
저 형의 몹쓸 말투만 아니었으면 정찬양과 사이가 이렇게 벌어지지 않았을까?
문득 짜증이 치민 최선은 눈살을 찌푸리려던 걸 참았다.
‘그래, 다 핑계지.’
정찬양의 말대로 이희샘만의 잘못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이었다.
그렇지만 억울한 마음도 있었다.
‘원래 우리 나이 때는 좀 즐겨도 되는 거 아니야? 지금까지 열심히 했으니까, 좀만 살살 하자는 게 그렇게 욕을 처먹어야 할 일이냐고.’
얼굴이 알려져 있으니 남들처럼 어딜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재채기 한 번 잘못해도 터무니없는 루머가 떠돌고, 이성과 눈인사라도 건네면 열애 중이란 기사가 뜬다.
한 적도 없는 일을 봤다는 증인은 또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이런 상황에서 초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상념 위로 박마루의 밝은 목소리가 겹쳐졌다.
“에이, 닭가슴살만 먹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 모처럼 비활동기인데 맛있는 거 먹으면서 즐겁게 지내야지! 활동 준비하면 또 쫙 빼고!”
이희샘의 뾰족한 말에도 박마루는 사람 좋게 웃었다.
이번엔 그 웃음 위로 며칠 전 새벽, 잔뜩 찌푸려진 박마루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 새벽, 최선은 숙소에 옷을 가지러 온 정찬양과 마주쳤다.
정찬양은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본 순간 분노가 욱 치밀어 올랐고, 방금 떠올린 것과 똑같은 생각을 그대로 쏟아 냈었다.
말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보고 있던 정찬양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 평범하게 살고 싶었으면 아이돌을 하지 말았어야지. 그동안 누릴 건 다 누려 놓고 평범 타령이라…….
한심해 죽겠다는 눈빛이 더없는 모멸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때 박마루의 방문이 열렸다.
– 그만해.
– 박마루, 너도 최선 말에 동의해? 그럼 이참에 둘이 사이좋게 은퇴하든지.
– ……우리가 잘못한 거 알겠어. 네가 답답했던 것도 알겠고. 그렇지만 우린 같은 팀이잖아.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다면 먼저 말해 줬어야 하는 거 아니야?
팀의 리더로서, 너는 그렇게 당당하고 떳떳하냐며 외치는 박마루의 얼굴이 괴로움으로 일그러졌다.
박마루의 먹먹한 감정이 그대로 파도처럼 밀려와 최선을 잠식했다.
최선은 입술을 꽉 깨물고 정찬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찬양은, 놀랍도록 무표정했다.
– 같은 팀이라.
조금 전까지 비웃음으로 가득하던 것이 거짓말처럼.
그 얼굴에선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 마음에 안 드는 점을 말하면 고쳤을 거 같아?
그렇게 되묻는 정찬양에게 당장이라도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 너희가, 정말로?
그러나 정찬양의 얼굴엔 절대로 그럴 리 없다는 확신이 강하게 서려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