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21)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20화
확신에 찬 정찬양의 표정에 잠시 망설이던 박마루가 말했다.
– 말해 줬다면 당연히 고쳤겠지.
– 그래,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근데.
정찬양은 기다렸다는 듯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 너흰 절대 안 고쳐.
박마루도, 최선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찬양이 비아냥거렸다면 어떤 수를 말로라도 반박했을 텐데, 정찬양은 그저 진실을 말하는 사람처럼 당당하기만 했다.
마치 미래를 보고 오기라도 한 것처럼.
굳어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본 정찬양은 어깨를 으쓱이고 신발을 신었다.
– 내가 답답했던 걸 알겠다고?
– …….
–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현관문이 닫힐 때까지 정찬양은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최선은 그의 등에서 날것의 분노를 느꼈다.
처음으로, 정찬양의 본질을 본 기분이 들었다.
그날 이후, 박마루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멤버들과 정찬양을 대했다.
‘쟤도 참 대단한 놈이야.’
“써니, 써니. 너는 뭐 먹을 거야?”
“어? 어디서 시키기로 했는데?”
그사이 배달 음식으로 합의를 봤는지 박마루가 싱글벙글 웃으며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었다.
“요 앞에 중국집!”
“아, 그럼 난 볶음밥.”
“오케이. 간짜장 하나랑 삼선 짬뽕 하나, 누룽지탕 하나에 볶음밥 맞지?”
메뉴를 확인하는 박마루를 향해 바닥에 엎드린 이희샘이 말했다.
“마루야, 탕수육 빠졌다. 그리고 유산슬 하나 추가해 줘.”
“희샘이 형, 안 먹는다고 하더니 제일 많이 시키네요.”
“형은 원래 할 때 하는 스타일이야.”
“이 정도 시키면 군만두는 서비스로 주나?”
그래도 시답잖은 대화라도 오고 가니 어느 정도 분위기에 활기가 돌았다.
최선도 엷게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빠르게 도착한 음식을 식탁에 늘어놓자 이희샘이 좋아 죽겠다는 얼굴로 젓가락을 들어 올렸다.
“닭가슴살 먹자던 희샘이 형 어디 갔어요? 실종된 희샘이 형을 찾습니다.”
“그 희샘이 형은 이제 없어. 와, 냄새 미쳤다. 대훈아, 형 짬뽕 한 입만.”
“잠깐, 차라리 덜어 줄게요! 형들의 한 입은 믿을 수가 없어.”
하이에나 같은 이희샘의 눈빛에 김대훈이 자신의 그릇을 사수했다.
“덜어 먹으면 새 그릇 써야 하잖아. 설거지 귀찮아.”
“잘 먹겠습니다!”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최선은 볶음밥을 숟가락으로 듬뿍 퍼서 입에 넣었다.
밥알이 한알 한알 기름으로 코팅된 볶음밥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진짜 맛있다. 이게 사람 사는 거지.”
“그래, 우리 여태까지 너무 안 먹고 살았다니까. 희샘이 형이랑 선이 넌 몸무게 앞자리가 5라고 하지 않았어?”
박마루의 말에 최선은 얼큰하고 뜨끈한 짬뽕 국물을 한 모금 들이켠 후 대답했다.
“우린 키가 작잖아.”
“야, 우리라고 묶지 마라?”
171cm인 최선보다 딱 2cm 큰 이희샘이 정색했으나 아무도 들어 주지 않았다.
“그래도 그건 아니지.”
“나는 이제 5 아니야. 형 6 찍었다.”
“와, 진짜요? 그래서 닭가슴살 타령했구나.”
정찬양과 어색해진 후, 아닌 척하면서도 정찬양의 눈치를 보던 멤버들은 평소에 그렇게 싫어하던 아이돌용 식단을 철저히 지켰었다.
그러나 정찬양이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 기미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솔로 준비를 한다고 숙소에도 잘 들어오지 않게 되자, 식단을 때려치운 건 물론이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다이어트의 적이라는 중식이나 분식류도 시켜 먹게 돼 버린 상태였다.
‘나도 앞자리 아슬아슬한데.’
최선이 잠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이, 이희샘이 제법 아프게 김대훈의 볼을 꼬집었다.
“남 말처럼 하지 말지? 너도 볼살이 아주 통통하게 올랐거든?”
“으아, 아프잖아요!”
“대훈아, 살쪄서 여친이 싫대? 그래서 요새 폰 안 보는 거야?”
“뭐라는 거예요! 그전에 서로 얘기해서 잘 정리한 거거든요?”
김대훈이 억울하다며 펄쩍 뛰었으나 믿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 대훈이, 활동을 해야 음방 같은 데서 여친을 만들 텐데 안 됐네. 올해는 전아체도 안 나가는데.”
“그렇지, 그렇지. 사나이 김대훈이, 인생에서 여친 없는 기간보다 여친 있는 기간이 더 긴 남자가 아니냐.”
“차를 사, 차를. 남들은 다 차에서 데이트하더만.”
“희샘이 형, 대훈이 미자잖아.”
“아하.”
“형들 어디 나중에 연애만 해 봐요. 내가 제일 먼저 기자들한테 찌를 거야.”
문자 내역까지 전부 캡처해서 보낼 거라며 김대훈이 이를 갈자 다른 멤버들이 낄낄거리던 순간.
도어락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공기가 가라앉았다.
“…….”
잠시 후, 현관을 통과한 정찬양이 피곤한 얼굴을 하고서 멤버들이 모여 있는 방향을 쓱 바라보았다.
최선은 저도 모르게 식탁 위의 음식들을 가릴 뻔했다.
‘들어오자마자 냄새 다 났을 텐데 뭔 등X 같은 짓이냐.’
“찬양이 왔어? 오늘은 일찍 왔네?”
“응.”
“그, 작업은 잘되고?”
“응.”
나름대로 붙임성 있게 말을 거는 박마루에게 정찬양은 단답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식탁 위에 늘어진 음식에 잠시 시선을 두더니 별 반응 없이 방으로 향했다.
“……쟤는 왜 하필 오늘 들어오고 난리냐?”
“하필…… 이라고 하기엔 저희 요새 매일 이랬죠.”
“아, 몰라.”
“에이, 그래도 찬양이가 아무 말 안 했잖아.”
박마루의 말에도 가라앉은 분위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최선에게도, 다른 멤버들에게도 정찬양의 태도는 더 이상 멤버들에게 기대하는 것도, 실망할 것도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짜 짜증 나! 내가 왜 눈치를 봐야 하냐고! 확 은퇴라도 해 버려?”
다행히 성질을 부리는 이희샘에게 아직 계약 기간이 남아 있다며 농담을 건넬 만큼 눈치 없는 사람은 없었다.
최선은 조용히 숟가락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조금 전까지 맛있게만 느껴지던 볶음밥이 기분 나쁠 정도로 버석거려서 도무지 삼킬 수가 없었다.
* * *
8월 초, 레굴루스의 미니 앨범 2집의 타임테이블이 공개되었다.
정식 앨범 발매일은 9월 5일 월요일.
해외 차트를 노리기 위해 금요일에 발매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시기상조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다음 날, ‘수요 아이돌’ 메인 보컬 특집에 참여한 예찬은 촬영 중 츄마프 탈락 연습생들로 이루어진 그룹 ‘가온다’의 데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타임테이블에 적힌 데뷔 일은 레굴루스보다 사흘 이른 9월 2일 금요일.
타임테이블의 공개 시점과 앨범 발매일까지 이전의 리스피릿 놈들이 떠오르는 행보였으나, 체급이 달라도 너무 달랐기에 예찬은 개의치 않았다.
그로부터 닷새 후, 레굴루스의 첫 콘셉트 포토가 공개되었다.
송스반 호수를 배경으로, 푸른 하늘 아래 시원하게 드러난 멤버들의 머리카락이 전원 흑발이라는 것을 확인한 팬들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멤버들 또한 더 이상 갑갑한 모자나 두건, 혹은 우스꽝스러운 가발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더없는 기쁨을 표하며 스타 라이브를 켰다.
[여러분, 저희 이제 대놓고 보여 드릴 수 있어요! 자! 실컷 보세요! 네? 제 머리는 이미 생일 라이브 때 보셨다고요?]팬들의 댓글에 당황한 예찬의 표정이 그날 라이브의 하이라이트였다.
스타 라이브가 끝나고 NJ는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행보를 보였다.
라이브가 끝나고 정확히 30분 뒤, 멤버들이 모자를 쓰지 않은 바람에 공개를 미뤄 두었던 예찬의 생일 파티 영상이 올라왔다.
그다음 날엔 콘셉트 포토 2차 공개가 있었다.
송네 피오르에서 찍은 사진들은 정말로 예술 그 자체였기에, 팬들은 아낌없이 환호성을 질렀다.
열렬한 반응에 멤버들은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며 웃었다.
같은 날, 앨범 구성이 공개되고 예약 판매가 시작되었다.
7월 말부터 8월 중순에 이르는 이 기간 동안 레굴루스는 NJ 자회사의 광고를 세 개 더 찍었고, 비타시드에서는 레굴루스 특별 띠부띠부씰을 한정판으로 내놓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앨범 녹음과 뮤직비디오 촬영도 당연히 끝냈다.
그리고 또다시 다음 날 자정.
콘셉트 포토 3차로 정장을 차려입고 찍은 증명사진이 예찬을 시작으로 한 시간씩 간격을 두고 공개되었다.
“오늘은 그나마 좀 한가하네.”
“그러게. 적응이 안 된다.”
주방 쪽에서 맏형 두 사람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예찬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주에 촬영한 ‘수요 아이돌’ 메인 보컬 특집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일찍 숙소로 돌아왔더니, 다들 기운이 넘치는 모양이었다.
‘요새 정말 바빠서 우리 리얼리티랑 알메겐은 시간 날 때 몰아 봤으니까. 이 시간에 숙소에 있는 건 정말 오랜만이긴 하군.’
“다 보면 다시 연습실 갈까?”
“다 씻었는데요?”
“또 씻으면 되지.”
범세혁도 몸이 근질근질한지 정의탁을 쿡쿡 찌르고 있었다.
정의탁은 한 번 튕기더니 금세 그 제안이 끌린다는 얼굴이 되었다.
“진짜 우리 띠부띠부씰도 추가된 거 맞아? 사진이 하나도 안 올라오잖아!”
여전히 띠부띠부씰 수집에 혈안이 되어 있는 채은성이 이번에도 꽝이라며 툴툴거렸다.
비타시드 측에서 특별히 레굴루스 한정판 띠부띠부씰을 전부 보내 주겠다고 했을 땐 직접 모으는 쪽이 보람 있다며 멋지게 거절해 놓고, 막상 생각처럼 잘 나오지 않자 마음이 초조해진 모양이었다.
‘비타민을 너무 먹어서 기운이 넘치나.’
“어.”
그 옆에 앉아서 자기 몫의 비타시드 음료를 뜯던 배새벽이 묘한 소리를 냈다.
채은성의 고개가 휙 소리를 낼 정도로 거세게 돌아갔다.
“뭐야? 설마……?”
“추가된 거 맞네요.”
배새벽이 묘하게 자랑스러운 손길로 방금 막 뽑은 따끈따끈한 띠부띠부씰을 들어 올렸다.
머리통에 딸기를 뒤집어쓴 채은성 스티커였다.
“와악!”
채은성이 비명을 내질렀다.
참고로 레굴루스 한정판 띠부띠부씰은 다들 과일을 뒤집어쓴 캐릭터 형태인데, 복숭아를 제외하고 각자 마음에 드는 과일을 골랐다.
거침없이 딸기를 선점한 채은성에게 모두의 눈길이 모였던 기억이 예찬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 너 어디서 딸기 좋아한다는 말 안 한다며.
– 맞아. 내가 좋아하는 건 딸기가 아니라 논산 딸기니까.
그런데 왜 골랐냐는 눈빛을 보내자 채은성은 더없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 그렇지만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딸기를 고르는 건 더 참을 수 없단 말이야!
평범한 예찬이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놈이었다.
어쨌든 무사히 딸기를 차지한 채은성은 처음으로 보는 자신의 한정판 띠부띠부씰에 엄청나게 흥분했다.
“나다! 새벽아, 그거 형한테 팔아!”
“일 없습니다.”
“왜 없어! 있어!”
“없어요.”
“있어 줘!”
두 사람의 소란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주방에 있던 맏형 둘과 방에 있던 다른 멤버들까지 하나둘 거실로 모여들었다.
“뭐야, 한정씰 나왔어? 누구 나왔는데?”
“나도 좀 보여 줘!”
“저도요!”
“와, 새벽이가 뽑았나 보네. 축하해.”
그런데 정작 숙소 내에서 띠부띠부씰에 진심인 사람 1, 2위를 다투는 강해솔이 조용했다.
소파에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던 강해솔이 예찬의 시선을 느끼고 작게 손짓했다.
예찬은 얌전히 시키는 대로 옆에 딱 붙어 앉았다.
잠시 주변을 살핀 강해솔이 예찬의 귀에만 들리도록 작게 속삭였다.
“난 이미 우리 씰 세 개 모았어.”
어째 굉장히 뿌듯한 목소리다.
고개를 돌리자 착각이 아니라는 듯 자랑스러운 얼굴을 한 강해솔이 보였다.
강해솔은 기어이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다 모으면 공개하려고 말 안 한 거니까, 너도 비밀 지켜라.”
……사람이 행복하면 됐지, 뭐.
예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