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22)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21화
띠부띠부씰을 가지고 요란을 떨던 멤버들은 ‘수요 아이돌’이 시작하자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예찬은 요즘 들어 종종 생각했다.
그냥 이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가서 소란 떠는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누구 하나 몰아서 놀리는 걸 좋아한다고 해야 하나.’
[이번 주도 무사히 찾아왔습니다, 수요 아이돌!] [네, 그렇죠. 이번 주도 안 잘렸어요.] [이 주 연속 휴방이래서 ‘야, 이건 틀렸구나!’ 했었거든요. 드디어 갈 때가 왔구나, 했죠.]밑도 끝도 없는 중년 MC 두 사람의 자학 개그로 포문을 연 ‘수요 아이돌’은 여느 때보다 화려한 세트장을 뽐냈다.
“평소랑 좀 다른데?”
“그러게요. 왜 뭐가 많지?”
심상록과 채은성이 다른 멤버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두 사람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타이밍 좋게 MC들이 세트장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희 세트장이 원래 좀 휑하지 않습니까.] [좀이라고 하면 보는 시청자분들이 황당해할걸요.] [누님, 좋게 넘어가 주시죠. 아무튼! 오늘은 무려 삼 주 만에 돌아온 만큼 더 특별하게 준비해 보았습니다. 세트장만 봐도 뭔가 느껴지는 기운이 있지 않나요?]MC의 말에 세트장 곳곳에 설치된 보컬 포지션을 은유하는 소품들을 찍은 영상이 반짝반짝하게 보정되어 흘러나왔다.
더 연상인 MC가 산통을 깼다.
[저기 뒤에 현수막 걸어 놨잖아. 아이돌 메보 특집이라고.] [아, 진짜! 딱 멋지게 발표하려고 분위기 잡고 있는데 너무하시네!] [자, 그럼 오늘의 아이돌 여러분 들어와 주시죠!]화면이 휙 돌아가며 세트장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아이돌들을 비췄다.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는 이가원의 뒤로 예찬이 보이자 멤버들이 소리를 질렀다.
“하예찬이다!”
“예찬아! 여러분! 쟤가 제 동생이에요!”
“잘생겼다!”
“사랑해요, 하예찬! 우윳빛깔 하예찬!”
‘얘들을 어쩌면 좋지…….’
초등학생도 아니고 아는 얼굴이 보였다고 이렇게 야단법석을 떨다니.
“하…… 우리 멤버가 수요 아이돌에 나오다니!”
채은성은 정말로 깊게 감명받았는지 꼭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다 곱게 모으고 있었다.
그 사이 세트장으로 들어온 아이돌들이 제각기 자기소개를 시작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유피테르의 메인 보컬 이가원입니다.] [잠깐만요, 가원 씨! 오늘이 무려 메보 특집 아닙니까. 메보 특집답게 자기소개 전에 히트곡 한 소절 불러 주시죠!] [어우, PD님. 이런 말씀은 없으셨잖아요.]이가원이 장난스럽게 제작진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수요 아이돌의 단골이기에 칠 수 있는 장난이었다.
[아, 해 줘요. 해 줘!] [노래 불러 줘! 유피테르 노래 불러 줘!]MC들이 바닥에 드러누워 땡깡을 부리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은 이가원은 자연스럽게 지난 앨범의 하이라이트 한 소절을 불렀다.
시원하게 쭉 뻗은 고음에 우렁찬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기도 똑같네.’
TV에서 고개를 돌려 옆을 보자 우휘겸을 비롯한 몇 멤버들이 눈을 빛내면서 조용히 소리가 나지 않게 손바닥을 부딪치고 있었다.
“예찬아, 너는 무슨 노래 불렀어?”
“온마유겠지.”
“당싶말이 요새 대세인데도요?”
“제일 유명한 건 츄유프 아닌가?”
“설마 다음 앨범을 부른 건 아니겠지, 하예찬?!”
“스포해 달라고 조르지 말고 조금만 기다립시다.”
예찬의 말이 대체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멤버들은 다 같이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이상한 놈들.’
이가원의 인사가 끝나고 데뷔 순서대로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그러면 다음은 아우름 씨. 어때요, 할 수 있겠어요?] [아, 형님! 제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애 취급하십니까!]유피테르와 마찬가지로 올림포스 소속 아이돌인 케레스의 메인 보컬 아우름, 본명 금필도가 씩씩거리며 목을 가다듬었다.
케레스는 유피테르의 1년 후배로 무려 19명의 멤버로 데뷔한 그룹이었다.
처음엔 유피테르보다 외모나 실력 면에서 떨어진다는 평이 주를 이루었으나, 데뷔 8년 차인 지금은 예능이든 연기든 각자 자기 먹고살 길을 찾아갔기에 무척 안정적인 느낌이었다.
‘탈퇴한 멤버도 많아서 인원수도 그럭저럭 평범해졌고.’
케레스는 자진 탈퇴와 계약 해지, 재계약 불발, 퇴출 등의 다양한 사건과 사고를 지나 현재는 멤버가 레굴루스보다 적어진 상태였다.
메인 보컬인 아우름은 이가원보다 네 살 연상으로, 곧 입대를 앞두었는데도 자칫 고등학생으로 착각할 만큼 동안이었다.
덕분에 조금 전처럼 어린애 취급을 받는 것이 밈처럼 되어 있었다.
본인도 사실 동안을 유지하기 위해 피부과를 거르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은 불카누스의 메인 보컬 불이야, 본명 이야엘의 차례였다.
[불난 집에 부채질 좀 하지 마라! 여러분을 향한 사랑을 매일매일 담금질하는 불카누스의 메인 보컬, 불이야입니다.]불카누스의 멤버들은 전원 예명으로 ‘불’자 돌림을 사용하고 있었다.
‘소속사가 미쳤냐는 얘기가 많았지.’
이러고 떴다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이듬해 데뷔한 리스피릿에게 철저하게 밀려 버려서 회생의 여지가 없었다.
올림포스의 팬들이 계륵도 못 된다며 못마땅해하는 불운의 그룹이었으나, 사실 메인 보컬인 불이야를 포함해 멤버들의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너와 나 사이에 반짝이는 Bubble~ 안녕하세요, 버블리의 메인 보컬 앙큼상큼 체리입니다!] [어우, 체리 씨! 너무 상큼하네요!]이어 데뷔 2년 차인 4인조 걸그룹 버블리의 메인 보컬 체리가 인사를 했다.
예찬은 그녀가 리스피릿의 난봉꾼 김대훈과 매 회차당 5할 이상의 확률로 사귀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본명은 알지 못했다.
[유리 구두는 이제 No, No. 네, 안녕하세요! 영원히 깨지지 않는 다이아몬드의 메인 보컬 가을입니다.]다음 순서는 작년에 데뷔한 6인조 걸그룹 다이아몬드의 메인 보컬 조가을이었다.
예찬은 그녀 또한 김대훈과 매 회차 5할 이상의 확률로 사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둘 다 이번 생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대기실에서 잠깐 인사를 나눴을 때 확인한 바에 의하면, 여자 아이돌 둘은 이가원이 아니라 제작진 측에서 섭외했다고 했다.
마지막 순서는 올해 데뷔한 예찬이었다.
[오직 나의 너를 만나고 싶어. 빛나는 당신의 별, 레굴루스의 메인 보컬 하예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지난 데뷔 앨범의 타이틀곡인 ‘Only my you’의 한 소절을 부른 예찬이 고개를 꾸벅 숙이자 또다시 난리가 났다.
“하예찬, 미쳤다! 잘생겼다!”
“예찬아, 형이야!”
“하예찬을 체조 경기장으로!”
“하예찬을 돔구장으로!”
“하예찬을 예술의 전당으로!”
별의별 장소를 다 부르며 예찬의 이름을 부르짖는 멤버들을 보며 예찬은 코웃음을 쳤다.
집중해서 모니터링하기엔 다소 힘겨운 환경이었으나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하예찬을 국회로!”
아니, 거긴 아니지.
* * *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순조롭게 채널을 키워 가고 있는 새내기 아이튜버 남지유는, 같은 아이튜버 동료 기태랑과 함께 ‘수요 아이돌’ 메인 보컬 특집을 시청하고 있었다.
“와, 예찬이 형 진짜 노래 잘한다! 한 소절만 들어도 뭔가 남다르지 않아여?”
‘그건 네가 예찬이 극성 팬이라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거야.’
남지유는 현실을 지적하는 대신, 다른 충고를 건넸다.
“그래도 어디 가서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자칫 잘못하면 이상하게 말 번지는 거야.”
괜한 걱정이라기엔 한 다리 걸치면 이어져 있는 업계에서 일하는 사이였다.
게다가 이곳엔 사람의 말을 악의적으로 재해석해 퍼트리는 놈들도 득실득실했다.
이상한 놈에게 잘못 걸렸다간 ‘기태랑이 하예찬 말고 다른 그룹 메보들은 그걸 노래라고 하는 건지 의아해하더라’, 라며 떠들고 다닌다는 헛소문이 온 동네에 퍼지고도 남았다.
“헙, 조심할게여!”
마냥 해맑아 보이는 기태랑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이 몹쓸 생태계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면 다음 코너를 만나 볼까요?] [바로바로 코끼리 코 10번 돌고 나무 블록 쌓기!]“아니, 그런데 왜 이런 짱짱한 메보들을 불러 놓고 노래랑 전혀 상관없는 게임을 하는 거에여?”
다시금 수요돌에 집중한 기태랑이 인력 낭비 아니냐며 불만을 토했다.
“그럼 뭐 고음 대결 같은 걸 하길 바랐어?”
“그렇져. 아니면 절대음감 게임이라든지여.”
“흠, 그런 게임으로 승패가 갈리면 팬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네?”
화면 너머에서 표정만은 날카로운 예찬이 취권처럼 현란한 발놀림을 자랑했다.
나무 블록을 꼭 쥔 손이 태풍을 만난 나뭇가지처럼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예찬의 필사적인 노력을 본 다른 아이돌들의 반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반은 벽을 붙잡고 꺽꺽대고 있었다.
남지유도 무심코 웃음이 새어 나올 뻔했다.
헛기침을 한 남지유가 다시 설명을 이어 갔다.
“우리 메인 보컬이 팬들에겐 세계 최고일 텐데, 그렇게 실력으로 등수를 나눠 버리면 1등이 아닌 아이돌의 팬들은 재미없지. 차라리 다 같이 협력하는 게임 같은 거라면 모를까.”
“아.”
다른 프로그램이라면 그래도 보컬 능력으로 경쟁시키겠지만, 수요돌은 철저히 출연진 친화적인 프로그램이었다.
그 덕분에 아이돌 팬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거고.
[와, 이걸 성공하네!] [예찬이 독하다!] [여러분, 이게 바로 서바이벌 출신의 힘입니다!]훌륭하게 블록을 쌓은 예찬은 주변에서 쏟아지는 칭찬에 엄지를 치켜올리는 것으로 답했다.
비록 다리에 힘이 풀려 반쯤 엎어진 채라 영 멋은 안 났지만 말이다.
다음 게임도 남지유의 예상대로 보컬 실력과는 관계가 없는 게임이었다.
같은 성별끼리 둘씩 짝을 지은 가운데, 예찬은 케레스의 아우름과 손을 꼭 붙잡고 진지한 얼굴로 탱고 스탭을 밟고 있었다.
‘나도 수요 아이돌에 나갔었는데.’
남지유는 잠시 저 스튜디오 안에 있었던 과거를 떠올렸다.
그때 좀 더 열심히 했다면, 지금쯤 자신도 메인 댄서 특집 촬영에 참여할 수 있었을까?
아무래도 영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츄마프에서라도 좀 더 열심히 했으면, 지금쯤 레굴루스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영 상상이 되질 않는다.
“예찬이 형 멋져여!”
어느새 다시 수요돌에 몰입한 기태랑이 예찬의 이름을 부르며 응원했다.
화면 속 예찬은 대선배의 허리를 과감하게 뒤로 꺾은 채 탱고 마지막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멋지다!] [예찬이 터프하네!]화면 속 MC들은 분명 예찬과 첫 만남일 텐데, 그새 예찬의 매력에 푹 빠졌는지 목소리에 호의가 가득했다.
‘쟤는 정말 뭐든 열심히 하는구나.’
츄마프 시절과 다름없이 언제나 예찬의 눈은 열의로 반짝반짝 빛났다.
저렇게 잘생기기만 해도 이미 이 지구를 위해 할 일은 다 한 것 같은데.
심지어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게다가 랩도 수준급이었다.
팬 서비스?
말해 뭐 하겠는가. 입만 아프지.
그런데도 예찬은 항상 누구보다 노력했다.
잘하는 애가 열심히까지 했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절로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기태랑이 그랬고, 남지유가 그랬다.
레굴루스 멤버들도 그렇고, 자신의 월급 12개월 치를 날린 신준일 PD도 그럴 것이다.
남지유는 만약 자신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예찬처럼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