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23)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22화
각 그룹의 메인 보컬들이 코끼리 코 돌고 나무 블록 쌓기에 이어 커플 댄스, 즉석 랩 대결까지 온갖 게임을 섭렵하는 사이 레굴루스의 숙소 거실에선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허억, 허억…… 너무 웃었더니 배가 아파…….”
“나, 난 숨을 못 쉬겠어! 사, 살려줘……!”
‘이 자식들이.’
예찬은 팔짱을 낀 채로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있는 멤버들을 노려보았다.
그 사이 마지막 코너인 대야 노래방이 시작되었다.
대야 노래방은 유명한 옛 가요나 애니메이션 주제가 등을 한 소절씩 외워서 부르는 게임으로, 틀리는 즉시 머리 위에 매달린 대야가 팀 전원에게 떨어졌다.
가학적이라는 이유로 한동안 모습을 감췄었지만, 대야 재질을 플라스틱에서 고무로 리뉴얼하며 요즘 여러 예능에서 다시 등장하는 코너였다.
“오, 대야 노래방! 추억이네.”
“그러게! 반갑다!”
선우이경이나 심상록은 반가운 눈치였으나 막내 둘은 전혀 모르겠단 얼굴이었다.
열두 번째 도전 만에 성공을 축하하는 팡파르가 울렸다.
[성공! 성공했다!]오늘 총 열한 번 대야에 머리를 얻어맞은 메인 보컬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성공의 기쁨을 나눴다.
그 와중에 다들 철저한 프로 의식으로 동성만을 끌어안고 있었다.
[와, 뇌세포 신나게 죽었을 거 같아. 지금 아이큐 검사하면 한 자리 나올지도.] [하하, 우름이 형. 아무리 그래도 한 자리는 좀…….] [가원아, 형은 지금도 두 자리다.] [고마워, 대야야. 쪽.] [응? 체리 씨 지금 대야에 뽀뽀한 거예요? 왜?] [우리 몇 번 만에 성공한 거죠? 열두 번? 아~ 아깝다! 두 번만 빨랐으면 한우 회식인데!] [네, 오늘 가요계의 훌륭한 선배님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큰 영광이었고, 앞으로도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어허, 하예찬 군! 왜 벌써 끝내려고 해! 오늘 밤새야지!]대야 노래방이 끝나고 그새 좀 친해진 아이돌들이 떠드는 모습이 보너스 영상처럼 나오며 ‘수요 아이돌’ 메인 보컬 특집 편이 끝났다.
멤버들은 방송을 시청하는 내내 예찬을 치켜세웠던 것처럼,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예찬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재밌었다!”
“동요도 잘 부르는 우리 메보!”
“우리 리더!”
“하예찬을 청와대로!”
“하예찬을 우주로!”
그 와중에 자꾸 예찬을 이상한 곳으로 보내려는 음모가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있었다.
누구보다 진지한 얼굴로 TV에 집중하던 신 PD가 진지한 얼굴로 입을 뗐다.
“계속 노래랑 상관없는 미션만 하다가 마지막은 노래였네요. 그것도 경쟁이 아니라 협력하는 형태로.”
신 PD의 말대로다.
아마 래퍼 특집과 댄서 특집도 비슷하게 관계없는 게임들로 경쟁을 붙이다가, 마지막에 랩과 춤으로 화합하는 장면을 연출할 것이다.
예찬은 소파 등받이에 기대어 앉아 있는 신 PD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구성 괜찮죠?”
“……그렇네요.”
신 PD가 지휘봉을 잡은 레굴루스의 데뷔 리얼리티는 이번 주 금요일 12화를 마지막으로 종영한다.
그리고 다음 달에 2집 활동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아이튜브 특화형 자체 예능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흠…….”
‘여러모로 생각이 많은 거 같네.’
인상을 찌푸리는 신 PD를 바라보며 예찬은 생각했다.
단순한 업무가 아니라 팬심이 섞인 만큼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고민할 만했다.
예찬은 따스한 눈으로 복숭아 PD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 뭐죠? 뭔가 기분 나쁜데요.”
예찬은 여전히 자기가 입덕한지도 모르는 신 PD를 향해 온화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 * *
다음날, 마지막 콘셉트 포토가 공개되었다.
특히 가장 처음에 찍은 정장 콘셉트 사진은 이클립틱들에게 가장 뜨거운 반응을 끌어냈다.
– 전원 정장 돌았냐????????? 누나 적금 깨고 온다
└ 적금도 깨고 대갈빡도 깼다 진심
– 바로 이거야 내가 원하고 네가 원하고 모두가 원했던 컨셉…..! 진짜 덕지덕지 뭐 안 달고 딱 깔끔한 기본 정장이라고……!ㅠㅠㅠ
– 스타일리스트 선생님들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 아니다 일은 많이 해 주시고 돈은 더 많이 버세요
물론 개중엔 처음부터 너무 반칙인 콘셉트를 남발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 올금발 독기 느낌도 부담스러웠는데 걍 데뷔니까 기합 넣을 만하지^^;;하고 넘겼었거든? 근데 이번에도 올흑발에 올정장은 좀^^;;;
└ 그니까 ㅋㅋㅋ 한두 해 하고 끝내려는 것도 아니고 첨부터 이렇게 치트키 남발해서 기대치 높이면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 근데 ㄹㅇ 이번 콘셉트 반응 좋음?? 넷 말고 현실에서 ㅇㅇ 주변에선 다 ㅈㄴ 부담스럽다는데 넷상에선 또 핫하니까 괴리감 느껴진다 ㄷㄷ
└ 소속사가 바이럴 돌렸겠지
└└ 바이럴은 니가 돌리겠지 ㅂX아 아까부터 말투가 지문 수준이시네요ㅋㅋㅋㅋㅋ
데뷔 때보다 견제하는 글이나 댓글이 확연히 늘었다.
예찬은 이것이 잘나가는 아이돌의 숙명이라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래도 NJ가 조금이라도 선을 넘으면 칼같이 고소한다는 소문이 퍼져서인지, 살살 긁는 수준을 넘어가는 글은 드물었다.
“오늘은 윤지우 프로필 올라왔더라.”
“그래요?”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은 선우이경의 말에 예찬은 츄마프 파생 그룹인 가온다의 SNS를 확인했다.
레굴루스와 정면 승부를 결심한 가온다는 이틀마다 한 명씩 멤버를 공개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공개된 게 이승헌, 임버들, 박나길이었고, 오늘은 윤지우라…….’
남지유에게 이미 멤버 명단을 들은 지 오래였기에 놀라움은 없었다.
물론 인터넷은 여유로운 예찬과 다르게 가온다의 멤버 구성으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 윤지우 ㄹㅇ이네 진짜 츄마프 최종 탈락 멤들인가 봄;;
└ 윤지우는 해림이라 다들 원래 들어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음 모레 공개되는 멤 봐야 정확해질 듯
– 가온다 진짜로 츄마프 10위~18위임?? ㄹㅇ로?
– 이민규도 들어간다고??? 에바 아니냐;; 센트럴 연생 다 조작했다고 인정했잖아;;;;;
└ ㅇㅇ 지금까지 멤버들 보면 빼박임
└└ 이민규는 빠지지 않을까? 3차 19위인 송규하가 들어갈 듯
└└└ 송규하 아님 내 친척이 해림 다니는데 그냥 이민규 껴서 아홉 맞대
└└└└ ㅆㅂ 해림 미친놈들 아니냐? 왜 조작돌을 달고 데뷔해;;;
– 지유랑 태랑이도 있는 거 맞아? 얘네 유랑 채널로 지들끼리 알아서 잘나가고 있잖아
└└ 데뷔하면 거기다가 가온다 영상 올릴 듯
└└└ 지유랑 태랑이 8, 9번째로 공개 예정임
멤버가 공개될 때마다 화제가 되는 것은 단연 츄마프 조작 논란의 핵심이었던 센트럴의 이민규였다.
그다음으로 언급이 많은 것은 유랑 채널로 아이튜버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친 남지유와 기태랑이었고.
‘셋 다 가온다 멤버가 아니지만.’
예찬은 여전히 실시간으로 댓글이 달리고 있는 게시글을 심드렁하게 바라보았다.
남지유와 기태랑은 본인들의 의사로 참여하지 않았고, 이민규의 경우엔 조작 논란 때문에 권유조차 가지 않았을 것이다.
‘10위부터 18위 중 저 셋이 빠지고 3차 순발식 때 19, 20, 21위였던 셋을 끼워서 9명을 채웠지.’
‘가온다’라는 계이름과 관련된 팀명을 생각하면 아홉보다는 여덟이나 일곱이 더 어울릴 텐데도 굳이 아홉을 만들었다.
이유야 뻔했다.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가온다는 철저히 레굴루스를 벤치마킹할 생각이었다.
‘멤버 숫자도 그렇고, 공개된 멤버들 콘셉트도 그렇고. 노래랑 안무도 뭐, 우리 데뷔곡이랑 비슷하게 만들어서 나오겠지.’
굳이 시기를 딱 붙여서 나오는 것도 레굴루스의 화제성을 이용하려는 수작으로 보였다.
‘기사 헤드라인도 어떻게 뽑을지 벌써 대충 윤곽이 보이네.’
레굴루스의 쌍둥이 그룹이라든지, 또 하나의 레굴루스라든지 말이다.
물론 그럼에도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
‘동종 업계니 어느 정도 체크는 하겠지만.’
리스피릿 시절에도 ‘제2의 리스피릿’, ‘리스피릿의 후계자’, ‘리스피릿의 대항마’ 등이 얼마나 쏟아졌는지 전부 세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앞으로 레굴루스가 더 잘될수록 비슷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것이다.
다시금 잘나가는 아이돌의 숙명을 떠올리며 예찬은 SNS 창을 닫았다.
* * *
이튿날 자정, 유피테르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
단체 메신저 방에 메시지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 하늘처럼 높고 바다처럼…… : 선배님들, 신곡 뮤비 정말 멋집니다! 역시 유피테르! 케이팝의 전설! 케이팝의 대들보!
– 유피테르 강연록 선배님 : 이경이 땡큐~
– 레굴루스 채은성 : 이번 뮤비는 이전과 다르게 늦여름과 꼭 어울리는 키치한 느낌이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습니다!
– 레굴루스 심상록 형 : 저희 다 같이 모여서 봤어요ㅎㅎ
– 유피테르 황시우 선배님 : 너희 컴백 준비하느라 굶고 그러는 건 아니지? 기분이다, 형이 밥 한번 쏜다. 내일 저녁에 보자.
– 유피테르 이가원 선배님 : 너는 열심히 식단 하는 후배들 괴롭히지 좀 마라.
– 유피테르 이가원 선배님 : 레굴루스 후배들은 다들 고마워요~^^
– 유피테르 황시우 선배님 : 가증스러운 이중인격자……
– 나 : 뮤비 보고 나니 다른 곡들도 너무 기대됩니다! 선배님들 파이팅!
예찬 또한 의례적으로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개인 메시지가 도착했다.
– 예찬 씨, 지금 통화 가능해요? 잠깐 노래 들려줄까요?
– 다른 곡들 지금 들려줄까? 지금 숙소임? 우리 숙소에서 거기까지 20분밖에 안 걸리던데.
순서대로 이가원과 황시우였다.
‘또냐.’
예찬이 보기에 이 둘은 이제 진심으로 자신을 꼬드길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저 서로를 향한 견제와 그에 따른 관성으로 예찬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둘이 놀아라, 둘이.’
앨범 발매 시간을 기다리는 즐거움을 빼앗지 말아 달라고 정중히 거절한 예찬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크게 손뼉을 쳤다.
“그럼 다시 연습 시작합시다!”
컴백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손끝의 각도와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범위까지 맞추려면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 * *
같은 날 저녁, ‘Regulus : Debut on air’의 마지막 화가 방영했다.
제작진과 레굴루스 전담팀, 그리고 이 예능의 주역인 레굴루스까지 전부 모여 다 함께 마지막 화를 관람하게 되었다.
마지막 음악 방송 스케줄이 끝난 후, 레굴루스 멤버들의 인터뷰가 순서대로 시작되었다.
“…….”
‘……오늘 잘하면 울겠는데?’
정의탁은 벌써 감정이 북받쳤는지 코끝이 빨갰다.
[너무 꿈같은 날들이었어요. 복숭아 분들을 만나서 큰 사랑을 받고, 무대에 서서 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끝났다는 게 실감이 안 나는데요? 활동하면서 정말 매일매일 너무 즐거웠어요. 얼른 다시 무대로 올라가고 싶네요. 그러려면 다음 앨범을 열심히 준비해야겠죠? 하하.]심상록과 선우이경의 인터뷰 뒤로 채은성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잔잔하던 배경음도 조금 발랄해졌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는데, 막상 무대에 올라가면 연습한 거의 반도 못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기가 막힌 생각을 떠올렸거든요.]갑자기 주변을 살핀 채은성은 손짓으로 카메라를 가까이 불렀다.
목소리를 죽인 채은성이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속삭였다.
‘쟤 단독 인터뷰실에서 뭐 하는 거지.’
[……그래서 다음 앨범은 지금보다 두 배 정도 더 열심히 하려고요. 어때요? 그러면 연습 때 반만 해도 괜찮겠죠? 좀 천재적이었나요?]거기까지 말한 채은성은 대단한 발견을 한 사람처럼 뿌듯한 얼굴로 좋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푸흡!”
맏형들의 인터뷰를 보며 눈가를 촉촉이 적셨던 정의탁의 입에서 희한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 사람이 먼저 물꼬를 터트리자 여기저기서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도 시원스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은성이가 마지막까지 해 주는구나!”
“역시 채은성!”
“우리 요즘 은성이 너만 믿고 있잖아!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제작진들의 칭찬에 채은성은 혼란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대체 방금 인터뷰의 어디가 웃겼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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