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24)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23화
8월 15일 자정.
레굴루스의 2집 미니 앨범 트랙 리스트가 공개되었다.
동시에 선우이경의 생일을 축하하는 멤버들의 편지가 공식 SNS에 올라왔다.
약 10분 뒤, 선우이경은 스태프들이 귀엽게 꾸며 둔 회의실에서 홀로 생일 기념 라이브를 시작했다.
[애들 편지요? 사실 쓸 때 거의 다 읽었어요. 아휴, 감동 그 자체죠.]손을 내저은 선우이경이 역시 멤버들이 최고라며 옆자리에 앉혀 둔 여우 인형을 끌어안고 비비적거렸다.
예찬은 회의실 문 앞에 쪼그리고 앉은 채 태블릿을 통해 그런 선우이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안쪽에 소리가 들리면 곤란하기에 무선 이어폰을 앞에 앉은 심상록과 하나씩 나눠 낀 상태였다.
그 밖에도 혹시 회의실 문에 난 반투명한 창으로 그림자가 비칠세라 벽에 딱 붙어 있는 놈들.
거기에 예찬이나 심상록과 마찬가지로 바닥에 앉아서 숨을 죽이고 있는 놈들도 있었다.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다들 머리 위에 알록달록한 고깔모자를 쓰고 있다는 점 정도였다.
“초에 불붙일까?”
케이크를 든 강해솔의 옆에서 성냥을 들고 앉아 있던 채은성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예찬도 최대한 목소리를 줄여 대답했다.
“아직.”
이제 막 라이브를 시작한 참이다.
조금 더 지켜본 다음, 분위기가 무르익은 후에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예찬의 말에 채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선 본격적인 깜짝 카메라를 준비하고 싶었으나, 일주일 전부터 곧 생일이라며 노래를 부른 선우이경을 어지간한 시나리오로 속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컴백 준비 때문에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기도 했고.
그 결과, 아쉽긴 하지만 올해는 선우이경 혼자 생일 라이브를 진행하고 있는 회의실에 케이크를 들고 다 같이 난입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아니, 근데 이런 거 보통 당사자한테 비밀로 하지 않아요? 얘들은 막 나한테 다 물어보면서 쓰더라고요. 볼펜 색은 뭐로 할지, 편지지는 뭐로 할지.]벽에 기댄 채 정의탁과 스마트폰으로 라이브를 시청하고 있던 배새벽의 어깨가 슬쩍 떨렸다.
“…….”
곧 눈을 가늘게 뜬 배새벽이 근처에 있는 멤버들의 눈치를 살폈다.
저 정도면 볼펜 색과 편지지를 물어본 당사자가 자기인 걸 알아 달라고 외치는 수준이었다.
편지 이야기가 끝나자 채팅창에 멤버들을 찾는 글들이 주르륵 올라오기 시작했다.
[애들은 연습실에 있어요! 이제 컴백까지 보름 정도 남았잖아요. 요새 매일 새벽에 연습실 와서 새벽에 집에 가고 있어요. 여러분, 정말 기대해도 좋습니다.]지금이다.
같은 생각을 했는지 심상록과 예찬의 눈이 딱 마주쳤다.
“채은성, 지금 불…….”
[아, 애들이랑 같이 라이브 했으면 좋겠어요? 하하, 조금 기다리면 올 거예요! 아, 어떡해. 자꾸 웃음이 나오네.]막 채은성에게 불을 붙이라고 지시하려던 예찬의 귀에 선우이경의 웃음소리가 박혔다.
예찬은 태블릿을 향해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어? 지금 붙이라고?”
채은성의 말에 대충 아니라는 의미로 손을 내젓고 이어폰을 꽂은 귀에 집중했다.
[아니, 모른 척해 주고 싶은데 애들이 너무 티 나게 파티 준비를 하잖아요. 밥 먹고 나가려고 보니까 고깔모자가 현관 선반 위에 떡하니 있는 거예요. 이거 못 본 척하는 게 더 어색하지 않나, 고민하고 있으니까 예찬이가 잽싸게 집어 가더라고요.]‘범세혁……!’
예찬은 고깔모자를 현관에 던져두었던 범세혁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
우휘겸과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있던 범세혁이 송구한 표정으로 멤버들을 향해 굽실거렸다.
[그리고 평소에 보통 저랑 해솔이가 밥을 하거든요? 그런데 아까, 아니, 이젠 어제구나. 아무튼 애들이 막 자기들이 밥할 거니까 절대 주방에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거예요. 뭐 거기서부터 눈치를 채긴 했는데 새벽에 미역국 냄새가 또…… 하하, 주방에 나가 보니까 솥도 안 치웠더라고요. 그래 놓고 또 밥상엔 안 올리는 거 있죠. 그것도 이따가 같이 들고 오지 않을까요?]‘이 자식이…….’
멤버들을 놀리는 것 같은 느물느물한 미소가 더없이 얄미웠다.
“……!”
미역국이 든 보온 도시락 통을 꼭 끌어안고 있던 우휘겸은 당황스럽다는 듯 도시락 통과 스마트폰 화면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멤버들도 깜짝 파티가 시작도 하기 전에 끝이 났다는 것에 살짝 기가 죽은 것 같았다.
선우이경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떤 케이크를 좋아하는지 물어보는 타이밍도 좀…… 그날따라 영 연습에 집중을 못 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참, 그러고 보니 이경이 형은 어떤 케이크를 좋아해요?’하고 묻잖아요. 아무튼 그때도 웃음 참느라 고생했어요. 해솔아, 형 정말 힘들었다.]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강해솔에게 모였다.
케이크를 들고 있느라 라이브를 보지 않고 있는 강해솔은 영문을 모르고 고개만 기울였다.
“아직도 안 돼? 슬슬 들어가자.”
“……지금은 안 들어가는 게 좋을걸.”
“뭐?”
예찬은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아주 가끔, 모르는 편이 나은 일도 있었다.
[당연히 어설프니까 더 귀엽죠. 그나저나 이제 슬슬 들어오면 좋을 거 같은데…… 얘들아, 아직 멀었어? 나 놀랄 준비됐어! 열심히 놀라 볼게!]“어떡할까?”
이 상황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는지 심상록이 피실 피실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한숨을 내쉰 예찬이 입을 열었다.
“채은성, 불붙여라.”
이렇게까지 판을 깔아 준 이상 들어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네, 리더!”
강해솔과 마찬가지로 안쪽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채은성이 발랄하게 대답하며 초에 불을 붙였다.
굳이 스무 개가 넘는 초를 케이크에 다닥다닥 꽂은 탓에 시간이 좀 걸렸다.
“내가 도울게!”
“저도요.”
범세혁과 정의탁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문 열면 내가 바로 불 끌게.”
심상록의 말에 예찬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언제 들어가든 놀림감이 되는 결말이라면, 최대한 빨리 놀림 받고 퇴장하겠다.
“하나, 둘, 셋하고 열게요. 하나, 둘, 셋!”
벌컥.
문고리를 당기고 문을 활짝 열자 심상록이 재빨리 손을 뻗어 벽에 있는 스위치를 눌렀다.
멤버들은 깜깜해진 회의실 안으로 초들로 불타는 케이크를 들고 전진했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와, 어우, 어떡해.”
광대까지 웃음으로 가득 찬 선우이경이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이상한 소리를 냈다.
그사이 채은성은 챙겨 둔 고깔을 선우이경의 머리에 씌웠다.
범세혁은 하와이에서나 쓸 법한 꽃목걸이를 선우이경의 목에 걸어 주었다.
“이경이 형, 소원 빌고 얼른 불어요.”
“촛농 떨어지겠어요!”
“오냐.”
멤버들의 재촉에 두 손을 꼭 모으고 두 눈도 꾹 감은 선우이경은 속으로 소원을 비는가 싶더니 이내 초를 불었다.
“후우우우우!”
초의 개수가 상당하다 보니 좀 오래 불었다.
“오, 한 방에!”
“이경이 형, 폐활량 좀 대박인데요!”
깜짝 파티가 들켰다는 것에 잠깐 풀이 죽었던 것도 다 잊었는지 범세혁과 정의탁은 신이 나서 떠들어 댔다.
“어우, 얘들아. 진짜 깜짝 놀랐다. 어쩜 이렇게 멋진 케이크랑 이렇게 맛있는 미역국을 들고 올 생각을 했어?”
그새 누가 묻힌 건지 뺨에 크림을 바른 채로 선우이경이 가증을 떨었다.
예찬은 힐끗 우휘겸이 들고 있는 도시락 통을 바라본 다음 말했다.
“형, 미역국 얘긴 아직 안 했어요.”
“아, 실수. 여긴 편집해 주세요.”
카메라를 돌아본 선우이경은 양손으로 가위질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라이브인 거 뻔히 알면서.’
뻔뻔하다고 혀를 찰 만한 상황이었지만, 사실 화가 나진 않았다.
이클립틱들이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다시 할게요~ 아니, 휘겸아! 들고 있는 그 도시락 통은 뭐니? 혹시 형 주는 거니?”
“아, 네…….”
갑작스러운 부름에 눈을 두어 번 깜빡거린 우휘겸이 도시락 통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뚜껑을 열자 하얀 김이 솟아오르며 미역국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저랑 새벽이가 만들었어요.”
“상록이가 만든 것만 아니면 다 괜찮지! 감동이다. 진짜!”
우휘겸과 배새벽을 끌어안고 선우이경이 말했다.
그 뒤에 서 있던 심상록이 그림처럼 웃었다.
“내년엔 꼭 내가 만들어 줄게, 이경아.”
“죄송합니다. 살려 주세요.”
예찬은 콩트를 찍고 있는 맏형들을 내버려 둔 채 이클립틱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복숭아들 안녕. 이경이 형 생일이라 같이 축하하러 왔어요. 축하 많이 했어요?”
“어, 나도 나도!”
“저도요!”
“나도 할래.”
순식간에 예찬의 옆으로 멤버들이 밀려들었다.
채팅창이 멤버들을 환영하는 인사말과 웃음으로 뒤덮였다.
– 얘들아 안녕~~~!!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내 이름 좀 불러 주라ㅠㅠㅠ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하예찬 결혼하자!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따라 웃는 복숭아들이 되게 많네요?”
조금 전, 미역국 편집 사태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강해솔과 달리 채은성은 천진난만하기 그지없었다.
채은성의 말이 끝나자마자 채팅창이 폭발했다.
– 은성이 연기 진짜 잘한닼ㅋㅋㅋㅋㅋㅋㅋ
– 은성이는 연기해도 돼 이경이는…… 랩 열심히 하자^^!
– 오늘의 연기 대상 채은성 짝짝짝
“연기요?”
여전히 영문을 알지 못하는 채은성 대신 예찬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 은성이랑 해솔이 형은 케이크 준비하느라 이경이 형 라이브를 못 봤어요.”
“진짜?”
선우이경이 눈을 크게 뜨는 것과 동시에 채팅창도 뒤집어졌다.
– ????진짜로???
– 엌ㅋㅋㅋㅋ 연기 아니었구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은성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거 은성이랑 해솔이 깜짝 카메라 아니냐ㅋㅋㅋㅋㅋㅋ
– 마음속으로 은성이 이미 국제 영화제까지 보냈는데ㅋㅋ
– 어쩐지 해솔이도 표정이 애매하더라ㅋㅋㅋㅋㅋㅋ
“라이브? 무슨 소리야?”
“형, 이리 와요. 제가 설명할게요.”
정의탁이 채은성과 강해솔의 손목을 붙잡고 회의실 구석으로 향했다.
세 사람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선우이경이 어깨를 유쾌하게 들썩였다.
“그럼 우리는 계속할까?”
“케이크 커팅식 해요!”
기다렸다는 듯 범세혁이 외쳤다.
멤버들이 부지런히 케이크에 꽂아 둔 초를 빼는 사이, 선우이경은 따끈한 미역국을 한 모금 들이켰다.
“어우, 국물 제대로다. 그런데 이거 어제 새벽에 담아 온 거 아니야? 완전 뜨끈뜨끈한데?”
“중간에 한 번 데웠어요.”
“진짜로? 어디서?”
“범세혁, 크림으로 장난치지 마라.”
“초 이쪽에 두게 나한테 줘.”
소소하게 잡담을 나누며 커팅식을 준비하는 사이, 저 구석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건 말도 안 돼!”
정의탁의 설명이 끝난 모양이었다.
쓱 고개를 빼고 구경하자 눈을 감은 채 이마를 짚은 강해솔과 뭉크의 절규 같은 표정을 한 채은성이 보였다.
할 일을 마친 정의탁은 아직도 현실을 부정하는 채은성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따뜻한 한마디를 남겼다.
“다시 보기 뜨면 꼭 봐요, 형.”
음, 별로 따뜻하진 않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