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30)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29화
CBC의 카메라 앞에서 도시락을 들고 재롱을 떨고 있자 점심시간이 끝나 갔다.
밥을 다 먹은 황시우가 와서 집적거리는 것을 대충 받아 주고 있으려니 건너편 팬석이 소란스러워졌다.
“꺄아아아악!”
“마루야아아아!”
“박마루!”
지금까지 들어 본 적 없는 거센 함성이었다.
예찬의 저지를 쭉쭉 잡아당기고 있던 황시우가 소리가 난 방향을 확인하더니 알겠다는 듯 말했다.
“박마루 씨 왔나 보네.”
예찬도 놀란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스피릿의 메인 댄서인 박마루가 올해 추석 특집 전아체에 참여하는 것은 예찬의 기억에 존재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박마루의 이름이 크게 박힌 현수막이나 익숙한 응원봉을 든 팬들이 새벽부터 체육관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올 것은 알고 있었다.
‘이제 리스피릿은 내 기억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해야지.’
포켓볼 경기를 시작할 준비를 마친 뒤에도 미적미적 시간을 끌던 제작진이 기쁜 얼굴로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그럼 나도 중계석으로 가 봐야겠다. 씨름 개인 0승으로 팀 우승을 한번 노려보자고.”
얄밉게 깐죽거린 황시우가 떠나고, 뒤이어 빈 도시락 통을 정리한 선우이경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생들이 너무 활약하니까 좀 부담스러운데? 이번에야말로 나도 힘내 보겠어. 복숭아들!”
팬석을 향해 양팔을 벌리고 돌아선 선우이경이 크게 외쳤다.
“나에게 힘을 나눠 줘!”
상냥한 복숭아들은 그런 선우이경에게 기꺼이 장단을 맞춰 주었다.
“이경아 받아!”
“복숭아 파워~!”
“선우이경 파이팅!”
원거리에서 에너지를 보내는 것처럼 이클립틱들이 이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복숭아 빔!!”
“아니, 빔은 안 되지! 공격이잖아, 그건!”
손을 내저은 선우이경은 무언가에 맞은 사람처럼 가슴을 움켜쥐는 시늉까지 해 보였다.
흥이 오른 이클립틱들이 또다시 요정 드립을 시작했다.
“배구 요정 선우이경, 이젠 포켓볼 요정으로 전직하자!”
“포켓볼의 요정님!”
“팅커벨 님!”
그러나 선우이경은 이미 내성이 생겼는지 능청스럽게 웃으며 이클립틱들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했다.
“네, 포켓 팅커벨 다녀오겠습니다!”
‘쳇.’
정말이지 적응력이 빠른 놈이었다.
포켓볼 시합은 8강부터 시작했다. 당구대를 두 개 나란히 놓고 두 시합을 함께 진행한 덕분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선우이경이 깔끔하게 결승 진출을 확정 짓는 사이, 옆쪽 당구대에선 박마루와 OPE의 메인 댄서가 손에 땀을 쥐는 경기를 이어 가고 있었다.
‘작년은 박마루가 우승이었던가.’
부모님이 당구장을 운영하셔서 큐대를 좀 잡아 본 놈답게 실력이 괜찮았다.
‘처음 데뷔를 못 했을 땐 당구장 알바도 했었지.’
예찬도 몇 번인가 찾아가 일을 돕거나 배달 음식을 시켜 먹기도 했었다.
가끔 손님이 없을 땐 박마루에게 포켓볼을 배우기도 하고 말이다.
‘멤버들한텐 언제 어디서 배웠는지 설명하기도 복잡해서 전엔 칠 줄 모른다고 했지만.’
익숙한 얼굴이 익숙한 표정으로 익숙한 동작을 하고 있으니 절로 옛 생각이 떠올랐다.
리셋을 반복하던 시기엔 떠오르지도 않았던 과거들이 미화되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불쾌했다.
[박마루 선수, 깔끔하게 마지막 공을 성공시킵니다! 전국 아이돌 체육대회 포켓볼 우승 3연패에 빛나는 리스피릿의 박마루 선수가 결승전 진출에 성공합니다!] [디펜딩 챔피언이죠. 결승전이 기대됩니다.]다행히 타이밍 좋게 시합이 끝났다.
선우이경이 예찬의 어깨에 턱을 기대며 우는 소리를 냈다.
“와, 선배님 대단하신데? 나 잠깐 복숭아 파워 다시 충전하고 와야 하나?”
선우이경은 당장이라도 팬석으로 달려갈 것처럼 장난스럽게 뛰는 자세를 취했다.
말과 달리 표정이며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잠시 휴식 후에 결승전 이어 가겠습니다!”
“오, 진짜 다녀와도 되겠는데? 예찬이도 같이 갈래?”
선우이경의 제안에 예찬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잠깐 손 좀 씻고 갈게요.”
선우이경과 멤버들을 먼저 보낸 예찬은 팬들은 들어올 수 없게 막아둔 복도 체육관 안쪽의 화장실로 들어갔다.
세면대 앞에 서서 손을 씻으려는 차에, 익숙한 인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오랜만이에요.”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예찬이 몸을 돌려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자 박마루가 급하게 손을 휘저었다.
“하던 일 마저 해요.”
예찬은 사양하지 않고 재빨리 물을 틀었다.
박마루도 손을 씻기 위해 온 건지 예찬의 옆에 나란히 섰다.
“전에도 화장실에서 한 번 봤었죠, 우리?”
“아, 네.”
붙임성 없는 후배를 배려하려는 건지, 박마루가 살갑게 말을 걸어왔다.
‘쓸데없는 친절을…….’
화장실만 들어오면 자꾸 마주치고 싶지 않은 놈들을 마주치는 것 같다.
‘전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거 같은데…….’
“여기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려는데 옆에서 불쑥 손이 내밀어졌다.
어쩐지 뿌듯한 얼굴로 박마루가 핸드 타월을 내밀고 있었다.
“이번엔 내가 더 가까워서.”
눈이 마주친 박마루가 싱긋 웃더니 턱으로 등 뒤의 핸드 타월 케이스를 가리켰다.
“…….”
“어, 전에는 예찬 씨가 줬었는데. 기억 안 나요?”
예찬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의기양양하던 박마루의 얼굴에 민망함이 서린다.
예찬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기억납니다.”
“그렇죠? 하하, 다행이다. 나만 기억하는 건가 해서 민망할 뻔했어요.”
조금 전 대화로 친해졌다고 생각한 건지, 화장실 밖으로 나와 복도를 걸으면서도 박마루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씨름 결승? 와, 그렇게 안 봤는데 예찬 씨 힘이 엄청 센가 봐요.”
“아, 뭐…….”
“선우이경 씨는 포켓볼 되게 잘 치는 거 같아서 걱정이에요. 제가 이래 봬도 부모님이 당구장을 운영하고 계셔서 나름대로 프라이드가 있거든요.”
“예…… 네?”
적당히 호응하고 있는데 그렇게 흘려들을 수 없는 단어가 귀에 들어왔다.
“아, 예찬 씨는 선우이경 씨를 응원하는데 이런 말 하면 부담스럽나? 하, 혼자 오니까 서럽다! 응원해 줄 사람도 없고.”
“……아니, 그게 아니라, 선배님 부모님이 당구장을 하신다고요?”
“네. 어, 꽤 유명한 얘긴데…… 몰랐어요? 전아체에서도 매번 언급했는데…… 아, 창피하다.”
좀 자의식 과잉 같았죠? 라고 덧붙이며 박마루가 웃었지만 예찬은 웃을 수 없었다.
예찬은 혼란스러운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고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정확하게 물었다.
“당구장을 하셨던 게 아니라, 지금도 하신다고요?”
“어, 네…….”
예찬의 태도가 영 이상했는지 박마루의 표정에 불편함이 비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예찬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 박마루의 부모님은 당구장을 하고 있어선 안 됐다.
‘아니, 내가 아는 것과 과거가 좀 바뀌었더라도 아버님은 몰라도 어머님은…….’
머릿속이 복잡한 와중에도 좀 더 확실히 캐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아, 결승전 시작하기 전에 리바디들 보고 와야겠다! 먼저 갈게요, 예찬 씨!”
불편한 공기를 견디지 못한 박마루가 체육관 입구를 향해 빠르게 튀어 나갔다.
예찬은 막 뻗은 손을 내리지도 못하고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 * *
[202X년 추석 전국 아이돌 체육대회 포켓볼 결승전을 시작하겠습니다.]“드디어 결승전이네!”
“이경이 형, 꼭 일등하고 와요!”
“이경이 형이 최고야! 포켓볼 천재!”
‘리스피릿이 벌써 4년 차인데…… 설마……?’
옆에서 멤버들이 선우이경을 응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어쩐지 현실감이 없었다.
현실은 좀 더 진득하고, 우울하고, 옅은 향 내음이…….
“리더는 지금부터 결승전에 나갈 형아에게 뭔가 해 줄 말이 없나요?”
“네?”
선우이경이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예찬은 온 정신을 집어삼킨 과거의 잔재를 급하게 한쪽으로 밀어 버렸다.
“오늘 첫 결승 시합인데, 리더가 뭔가 응원의 말을 해 줘야죠.”
뻔뻔할 정도로 당당하게 눈을 빛내는 선우이경과 마주 보고 있으니 손끝의 떨림이 조금 잦아들었다.
‘……떨리는 줄도 몰랐다만.’
“그, 크흠. 꼭 우승하고 오시죠.”
목소리가 갈라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뒷말을 이었다.
선우이경이 여느 때처럼 씩 웃었다.
“예, 리더! 그럼 다녀올게!”
선우이경을 배웅하고 있자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강해솔이 예찬을 등을 쿡 찔렀다.
“어, 왜?”
“왜?”
예찬의 물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강해솔이 말꼬리를 잡았다.
“무슨 일 있었어? 화장실 다녀온 다음부터 영 맥을 못 추는데.”
“내가? 아니? 괜찮은데?”
재빠르게 부정했지만 강해솔의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다.
“거울 보여 줘?”
“맞다, 해솔이 형 거울 들고 다니는 멋쟁이였지. 체육복인데도 챙긴 거야?”
“말 돌리지 말고.”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강해솔은 입가의 점을 삐죽거렸다.
‘곤란한데.’
꼭 일어나야 하는 중요한 사건이 있는데, 아무래도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왜 일어나지 않았는지 신경 쓰여서 미칠 거 같다.
그렇게 사실대로 털어놓으면 미친놈처럼 보이기 딱 좋았다.
예찬이 뭐라고 둘러대면 좋을지 고민하는 사이, 강해솔이 먼저 입을 열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건 확실해 보이고. 지금 해결할 수 있는 일이야?”
“……어느 정도는?”
어떻게 된 일인지 박마루를 붙잡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단 한 사람, 예찬과 마찬가지로 그 ‘사건’을 몇 번이고 지켜봐 온 사람이 있었다.
‘그걸 사람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잠시 빌어먹을 놈을 떠올리고 있는 예찬의 등을 강해솔이 떠밀었다.
“그럼 빨리 해결하고 와. 피죽도 못 얻어먹은 얼굴하고 있지 말고!”
“어, 그렇지만 결승전…….”
“급해서 화장실 갔다고 하면 돼.”
강해솔은 단호하게 예찬의 말을 끊었다.
예찬은 잠시 눈을 깜빡거리다 입을 열었다.
“형, 아이돌은 급하게 화장실을 가지 않아. 그건 팬들의 꿈에 먹칠을…….”
“됐고, 얼른 다녀오라고!”
네.
* * *
예찬은 가장 외진 화장실을 찾아 수리 중이라는 팻말을 밖에 걸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가장 안쪽으로 이동한 다음에야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010…….’
메시지 함을 뒤져 찾아낸 번호로 전화를 걸자 얼마 지나지 않아 연결음이 끊겼다.
– 응.
태평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 들어왔다.
꼭 십 년 지기 친구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은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태도에 울컥 치민 화를 꾹 참았다.
“어, 난데.”
– 알지.
두 글자로 사람 성질 돋우는 대회가 있다면 이놈이 우승이다.
예찬은 속으로 이를 갈며 하려던 말을 이어 갔다.
“지금 전아체 촬영 중이거든?”
– 힘들겠네.
“여기서 박마루를 만났거든?”
– 그래?
“그런데 얘네 부모님이 아직 당구장을 하신대.”
– 그래서?
“여기에 대해서 할 말이 있을 거 같은데?”
– 내가?
그럼 내가 있겠냐?
예찬은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조금 더 친절히, 그리고 더 자세히 물었다.
“정찬양, 너 설마 멤버들 부모님 건강 검진 안 시켜드렸어?”
너 설마, 박마루 어머님을 죽게 내버려 둘 생각은 아니었지?
정말로 뱉고 싶던 문장이 혀끝에 쓰게 남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