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33)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33화
양궁 시합에 참여 중인 세 사람은 결승 티켓을 따낸 후 잠시 멤버들이 앉아 있는 응원석으로 돌아왔다.
어째서인지 배새벽의 어깨가 묘하게 처져 있었다.
“새벽이 왜 그렇게 풀 죽었어. 마지막에 9점 쏴서 그래?”
“……그건 아니고요. 이제 세 발밖에 안 남았잖아요.”
“세 발?”
예찬의 물음에 배새벽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엑스 텐 아홉 개 쏘기로 했는데 이제 화살이 부족해요.”
“아.”
‘……보통 농담 아닌가.’
진심으로 카메라를 아홉 대 부술 생각이었다니 놀라웠다.
다시 보니 표정도 풀이 죽었다기보다 살짝 분한 것 같기도 하고.
“새벽이 너 진짜 최고다…….”
“의탁이 형, 울지는 마. 부담스럽다.”
“안 울어!”
정의탁은 배새벽의 승리욕에 깊은 감명을 받은 모양이었다.
“다음번엔 더 잘 쏠 수 있을 거 같아! 뭔가 감이 왔달까?”
“아까 예선 끝나고도 똑같은 말 하지 않았어? 너 8강에선 전부 0점…….”
“우리 그런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말자!”
“아니, 너는 신경 써 줄래?”
기운을 되찾은 채은성과 범세혁도 옆에서 떠들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복작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 소란스러웠던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이런 걸로 안정을 찾아도 되나?’
“결승 시작하겠습니다!”
“와, 빠른데? 그럼 다녀올게! 자자, 다들 집합!”
생각보다 빠르게 스태프가 결승 진출 팀을 불러 모았다.
심상록이 범세혁과 배새벽을 알아서 잘 끌고 가 준 덕에 예찬은 편하게 자리에 앉은 채 결승전을 기다릴 수 있었다.
[드디어 양궁 남자 결승전을 맞이합니다. 결승전에 올라온 팀은 건곤감리와 레굴루스. 두 팀 모두 쟁쟁한 우승 후보들을 꺾고 올라왔죠.] [네, 건곤감리는 올해 3월, 레굴루스는 올해 5월 데뷔로 두 팀 다 전아체에 처음 참여하는 팀인데요.] [주목해야 할 선수는 누가 있을까요?] [건곤감리의 선수들은 세 사람 다 수준이 높습니다. 예선부터 지금까지 6점 이하를 쏜 선수가 없거든요, 그렇지만 역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레굴루스의 배새벽 선수네요.]중계 스크린에 결승전에 올라온 여섯 사람의 얼굴이 순서대로 지나갔다.
범세혁과 배새벽의 얼굴이 연달아 나오자 다소 소란스럽던 장내가 고요해졌다.
“……이렇게 큰 화면으로 보면 깜짝 놀란다니까.”
채은성이 작게 탄식했다.
확실히 그 말대로 압도적인 얼굴들이긴 했다.
예선전과 달리 8강부터 결승까지는 올림픽 경기와 마찬가지로 각 팀이 번갈아 가며 활을 쐈다.
A팀 세 사람이 먼저 한 발씩.
다음으로 B팀이 세 사람이 각자 한 발씩.
같은 과정을 세 번 반복해, 총 아홉 발의 화살이 맞힌 점수를 더해 승자와 패자가 나뉘었다.
‘올림픽과 다르게 딱 한 세트로 끝이긴 하지만.’
[가장 먼저 건 선수…… 네, 8점입니다.] [곤 선수, 7점입니다.] [감 선수는 6점이네요. 오늘 처음으로 6점을 쐈는데요, 결승이라 긴장한 걸까요? 지금까지 건곤감리의 점수는 21점입니다.] [레굴루스의 범세혁 선수의 첫발은 3점. 자세는 지금 봐도 완벽한데 말이죠.]이차영 전 국가 대표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아리송한 목소리를 냈다.
[심상록 선수, 9점을 쐈습니다. 배새벽 선수가 10점을 쏘면 리드를 가져올 수 있겠는데요.] [배새벽 선수, 10점! 깔끔한 10점입니다!]첫 세 발을 쏜 결과 22점대 21점으로 레굴루스가 미세하게 유리해졌다.
화면에 비친 배새벽의 얼굴은 엑스 텐을 맞히지 못해서인지 살짝 불만스러워 보였지만.
옆자리에 앉은 채은성은 완전히 과몰입했는지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다.
“제발, 제발, 제발…….”
‘또 갑자기 일어설지 모르니 경계해야겠군.’
그사이 건곤감리의 두 번째 순서가 끝났다.
[감 선수, 지난 차례의 부진을 씻어 내는 10점입니다! 총 여섯 발을 쏜 지금까지의 합계는 45점입니다!] [상당한 고득점인데요. 레굴루스 선수들이 긴장할 것 같습니다.]레굴루스의 첫 번째 순서는 범세혁이었다.
긴장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런 섬세한 생명체가 아니라고, 쟤는.’
[범세혁 선수, 2점입니다!]2점을 쐈을지언정 긴장은 안 했을 놈이었다.
간이 남보다 세 배는 커다랄 것 같은 범세혁과 달리, 평범하기 그지없는 담력을 가진 심상록이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이 스크린에 비쳤다.
팀이 위기일수록 타오르는 놈이니 범세혁의 2점이 좋은 자극이 되었으리라.
“상록이 형……!”
옆자리에 앉은 채은성이 심상록의 이름을 부르며 예찬의 손을 꽉 잡았다.
예찬은 대충 호응하며 화면 속 심상록에게 집중했다.
[심상록 선수 9점입니다! 레굴루스, 아직 추격할 수 있습니다!] [배새벽 선수의 두 번째 화살은…… 관통! 카메라를 관통하는 10점입니다!] [맙소사, 이게 벌써 몇 번째 엑스 텐이죠?]심상록과 배새벽의 노도와 같은 추격으로 점수는 46대 43.
범세혁의 부진에도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
“제바아아아알……!”
채은성에게 잡혀 있는 예찬의 손이 저려 왔다.
이대로 가다간 샅바도 잡을 수 없는 몸이 될 수도 있단 생각에 슬슬 채은성을 말릴지 고민하는 사이, 마지막 순서가 시작되었다.
건곤감리의 마지막 점수는 8점, 5점, 9점.
긴장했는지 처음으로 5점이 나왔다.
‘총합계는 68. 우리가 26점을 내면 이길 수 있지만…….’
[범세혁 선수의 마지막 점수는! 4점! 처음으로 4점이 나왔습니다!] [장족의 발전입니다, 범세혁 선수!]4점을 쏘고 폭풍처럼 칭찬받는 삶이라니, 제법 짜릿하겠는데?
어쨌든 이걸로 남은 두 사람이 10점을 쏴도 금메달은 물 건너가 버렸다.
맥 빠지는 상황이었음에도 심상록과 배새벽은 마지막까지 스포츠 정신을 발휘했다.
[심상록 선수, 시원하게 10점을 맞혔습니다.] [배새벽 선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엑스 텐! 오늘 배새벽 선수는 그야말로 신궁이네요.] [68대 67로, 건곤감리가 남자 양궁 금메달을 차지합니다!]여자 양궁까지 전부 끝난 뒤엔 씨름 결승 준비가 시작되었다.
“예찬.”
정장 재킷을 팔에 걸친 황시우가 껄렁껄렁한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선배님.”
“고생은 너희가 많지.”
황시우는 혀를 차며 단단히 매고 있던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헤쳤다.
“선배님이 순서 바꿔 주셨다면서요? 감사합니다.”
“아니야, 그런 거로 감사하지 마. 음, 그보다…….”
정장 바지를 입은 채로 아무렇게나 체육관 바닥에 주저앉은 황시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선수는 교체 못 하게 했다면서? 으으음…… 미안하다. 그거 아마 나 때문일 거야.”
“네?”
황시우를 따라 바닥에 앉은 예찬이 무슨 뜻이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내가 지랄해서 제작진 기분 잡쳤는데, 나한테 뭐라고 할 건수가 없으니까 너희한테 괜히 어깃장 놓은 거 같다고. 하, 진짜 미안하다.”
“아.”
듣고 보니 꽤 그럴듯한 가설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화풀이하는 놈들은 어디에나 있지.’
황시우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괜히 나섰다가 일을 더 꼬아 버린 거 같네.”
예찬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선배님. 진짜로 그것 때문이라는 확증도 없고, 무엇보다 저희 생각해서 말씀하신 거잖아요.”
설령 제작진이 정말로 황시우에 대한 보복으로 그런 짓을 했어도 고마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아무리 아이돌 업계에서 유피테르와 황시우의 위치가 확고하다고 한들, 타인을 위해 방송국에게 반발하는 행위가 쉬울 리 없지 않은가.
‘역시 밥 정도는 먹어야 하나…….’
예찬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이, 황시우가 어울리지 않게 머쓱한 얼굴로 물었다.
“음…… 그래서 씨름은 어떻게 할 거야? 기권하진 않을 거지?”
“일단 저랑 상록이 형이 먼저 나가서 2승을 거둬 보려고요. 은성이 차례까지 가면 기권할 거고요.”
“네가?”
“네, 제가요.”
“어…… 그래, 뭐. 힘내……?”
“왜 의문형이죠?”
역시 밥은 사치다.
황시우를 바라보는 예찬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 * *
[지금부터 남자부 씨름 결승을 시작하겠습니다.]씨름판을 사이에 두고 결승전에 오른 두 팀이 마주 보고 섰다.
양옆에는 우휘겸과 목발을 짚은 채은성.
앞에는 데뷔 4년 차의 OPE.
[하예찬 선수, 지석우 선수 앞으로.]예찬은 처음으로 모래판에 발을 디뎠다.
중앙에서 눈이 마주친 지석우가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예찬도 정중히 고개를 숙여 그에 답했다.
서로의 샅바를 잡고 마주 앉자 상황에 걸맞지 않게 스몰토크가 시작됐다.
“지유한테 네 얘기 많이 들었어.”
“아, 지유 형한테요?”
OPE는 남지유와 같은 비타 출신이었다.
남지유가 더 선배일 텐데 편하게 부르는 걸 보니 꽤 친한 사이인 건가.
“지유가 그렇게 칭찬이 후한 애가 아닌데, 널 엄청나게 칭찬하더라고. 씨름 실력도 기대할게?”
“…….”
말은 기대한다고 하지만 어조는 영 아니올시다였다.
지금까지 경기에 한 번도 나가지 않고 결승까지 올라온 예찬을 무시하는 뉘앙스를 숨기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우리 리얼리티라도 봤나. 뭐, 반응이 좋았으니까.’
전부는 아니더라도 팔씨름 클립 정도는 본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말랐다곤 하지만 눈높이가 저보다 10cm는 높은 예찬을 이렇게까지 무시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예찬은 조용히 샅바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삐익―!
호루라기 소리가 공기를 갈랐고, 예찬과 지석우가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샅바를 당겼다.
“예찬아!”
“하예차아안―!!”
“예찬이 혀어어엉―!”
다치지만 말자던 멤버들이 모래판 옆에서 예찬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그리고 예찬은 그 외침에 답하듯 상대방을 시원하게 넘겼다.
“예찬…… 어?”
환호성이 튀어나와야 할 타이밍이었으나 모래판을 둘러싼 멤버들도, 이클립틱들이 앉아 있는 응원석도 조용했다.
[하예찬 선수, 승리! 레굴루스가 먼저 1승을 가져갑니다!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이었죠?] [네? 아, 네. 어…… 그러게요.]믿기 어려운 것을 봤다는 듯 얼이 빠진 황시우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렀다.
예찬은 태연히 바지에 묻은 모래알을 털어 낸 다음 얼떨떨한 얼굴로 모래판에 누워 있는 지석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선배님, 잡고 일어나세요.”
“어, 어. 고맙다…….”
지석우가 맹한 얼굴로 예찬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예찬이 모래판에서 내려올 때까지도 멤버들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단 얼굴로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예찬은 가슴 앞에 팔짱을 끼고 조금 퉁명하게 물었다.
“이기고 왔는데 환호 안 해 주나?”
“어? 어어, 해야지. 와, 와아아…….”
“예, 예찬이 대단하다!”
“이, 이겼다아아……?”
엎드려 절 받기였으나 환호는 환호였다.
멤버들이 박수를 치는 모습을 본 이클립틱들도 뒤늦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예찬아, 잘했…… 왜 잘하지?”
“오늘의 천하장사, 하예…… 예찬이가 천하장사?”
어쩐지 미묘하게 느껴지는 함성이었다.
예찬은 강해솔처럼 입을 삐죽거리며 코웃음을 쳤다.
‘그러니까 내가 몇 번이고 말했잖아. 자신 있다고.’
레굴루스 놈들이 우투리의 후예처럼 과하게 건강한 거지, 예찬 또한 어디 가서 결코 완력으로 밀리지 않는 건장한 성인 남성이었다.
정말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