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35)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35화
“준비.”
심판의 말에 두 번째 라인에 선 강해솔이 자세를 고쳐 잡았다.
출발선에 선 주자들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오른 순간.
탕!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드디어 계주 결승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치고 나가는 것은, 역시나 레굴루스의 강해솔 선수네요!] [정말 빠릅니다! 바람 같은 속도예요!]총알처럼 튀어 나간 강해솔은 긴 다리를 이용해 빠르게 선두를 차지했다.
예찬은 간만에 365일 중 360일 정도를 방구석에 박혀 있던 이전 회차의 익명의 작곡가 강해솔을 떠올렸다.
‘역시 인재를 낭비하고 있었어.’
남몰래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이, 강해솔이 정의탁이 기다리고 있는 100m 구역까지 도착했다.
[강해솔 선수, 깔끔하게 정의탁 선수에게 배턴을 넘겨 줍니다!] [뒤이어 트럼프, 건곤감리, WW도 두 번째 주자가 배턴을…… 아, 건곤감리의 곤 선수! 배턴을 떨어트렸네요!] [클로버 선수! 빠릅니다!]잔뜩 굳은 얼굴로 정의탁이 열심히 달렸다.
그 뒤를 예선 기록 1위 팀인 트럼프의 클로버가 무섭게 추격했다.
“의탁아, 달려!”
“정의탁!”
“의탁이 형!”
둥글게 만들어 둔 200m 트랙 안쪽에서 주자를 쫓아 달리며 멤버들이 정의탁의 이름을 애타게 외쳤다.
정의탁이 1위로 들어오고 있었으나, 1번 레인에 서 있는 트럼프 멤버 놈은 자리를 비켜 줄 기색이 없어 보였다.
‘개매너네.’
어쩔 수 없이 2번 레인에서 배턴을 받을 준비를 하려던 때였다.
“……정의탁!”
코너를 돌던 정의탁의 발이 바닥을 잘못 짚었는지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우당탕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정의탁이 바닥에 엎어졌고 그 옆을 다른 선수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아, 정의탁 선수! 발이 미끄러졌네요! 배턴도 놓쳐 버렸어요!] [아니, 대체 오늘 몇 명이, 읍! 아이돌은 몸이 재산…… 우읍!]또다시 방송에 쓸 수 없는 말을 뱉으려는 황시우의 입을 중계진이 막은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디 크게 다친 것이 아닌지 다가가려는 예찬과 멤버들을 막은 것은 정의탁이었다.
“오지 말아요! 괜찮아요!”
서둘러 배턴을 주워 들고 일어선 정의탁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예찬은 황급히 가장 바깥쪽 라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사이 선두 팀들은 세 번째 주자에게 배턴을 넘겼다.
“미안해요!”
두 눈을 질끈 감고 달려온 정의탁이 작게 외쳤다.
배턴을 건네받은 예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잘했어!”
완주한 것만으로 대단한 거야.
나머지는 내가 한다.
그런 의미를 담아 입을 움직였다.
곧바로 발을 박차고 달려 나갔기에 정의탁에게 들렸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레굴루스, 조금 뒤처졌던 건곤감리와 비슷하게 배턴 터치를 마쳤습니다! 그렇지만 선두와의 차이가 제법 크네요!] [하예찬 선수, 감 선수를 제쳤습니다! 3위!] [예선 때보다 훨씬 빠른 것 같은데요?] [선두는 트럼프의 다이아 선수입니다!]중계진의 말대로였다.
예찬은 예선과 달리 다소 무리라고 느껴질 정도로 온몸을 사용해 달리고 있었다.
표정도 예선 때와 달리 필사적이었다.
‘미치겠네, 진짜.’
스피커를 타고 체육관에 퍼지는 중계 소리도, 옆에서 따라 달리며 뭔가 말하는 멤버들의 목소리도, 응원석에서 목이 터져라 이름을 부르는 팬들의 응원도, 어쩐지 전부 희미하게 들렸다.
선명한 것은 저 멀리 보이는 따라잡아야 할 등뿐이었다.
‘아니, 미친 게 분명해.’
컴백을 코앞에 두고, 그것도 이미 다친 멤버도 있는 상황에서 겨우 달리기 경기에 이렇게 온 힘을 다하다니.
자신이 생각해도 얼간이가 따로 없었다.
그렇지만.
‘그 얼굴을 봤는데 누가 대충할 수 있겠냐고.’
배턴을 넘겨주기 위해 다가온 정의탁은 바닥에 넘어졌을 때 붙은 먼지를 그대로 뺨에 붙인 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엉망인 얼굴을 본 순간, 무조건 1위를 하고 말 거라는 비이성적인 생각이 불쑥 치밀어 올랐다.
‘할 수 있다, 아니, 한다.’
미끄러운 바닥을 딛는 예찬의 발에 힘이 실렸다.
팀이 위기인 순간, 초인적인 힘을 내는 것은 심상록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하예찬 선수, 대단합니다! 2위인 포일 선수와 한 걸음 차!]‘젠장, 거리가 너무 짧아……!’
선두는 벌써 배턴 터치를 마쳤다.
간발의 차이로 옆 선수보다 빠르게 배턴을 넘긴 예찬이 마지막 주자의 이름을 외쳤다.
“배새벽! 부탁한다!”
“맡겨 주세요.”
힘 있게 배턴을 받아 낸 배새벽이 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멀어지는 등을 바라보며 무릎에 손을 짚고 허리를 구부린 채 헉헉대고 있자, 강해솔과 정의탁이 다가왔다.
정의탁의 뺨은 여전히 먼지로 지저분했다.
“예찬이 형!”
“괜찮아?”
예찬은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내저으며 강해솔이 건네는 물병을 받아 마셨다.
그러나 눈은 자연스럽게 저 멀리 달려가고 있는 배새벽을 쫓고 있었다.
‘……인간이냐?’
오늘 몇 번째인지 모를 감상이 머릿속을 스치는 사이, 중계석에서도 연신 감탄을 터트리고 있었다.
[배새벽, 배새벽 선수 빠릅니다!] [레굴루스, 선두인 트럼프와의 거리를 크게 좁혔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속도입니다! 열일곱 살이면 아직 늦지 않았어요. 지금이라도 육상을……!]전 육상 국가 대표의 목소리가 흥분한 황시우의 말에 묻혔다.
배새벽을 눈으로 쫓던 예찬은 저도 모르게 결승선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로 강해솔과 정의탁이 빠르게 따라붙었다.
예찬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배새벽이, 멀게만 느껴졌던 선두와 나란히 섰다.
마침내 두 사람의 코앞에 결승선이 보이고…….
[배새벽 선수, 조커 선수를 제쳤습니다!! 그대로 골인! 남자 계주 우승은 레굴루스!!]배새벽은 누구보다 먼저 결승선 테이프를 끊었다.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멤버들을 향해 환하게 웃는 배새벽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예찬은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하마터면 형이라고 부를 뻔…….’
“혀어어어엉!”
그러나 멤버 중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놈이 있었다.
“새벽아!”
“아아아악!!”
“배새벼어어억!!”
오늘 촬영 중 최고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우렁찬 함성이 체육관을 꽉 채웠다.
“새벽아, 형이야아아!”
뒤에서 쫓아오고 있던 정의탁은 반쯤 오열 중이었다.
‘1위를 하면 울 것 같다는 생각은 했다만.’
흐트러진 머리를 하고 다가온 배새벽이 의젓하게 정의탁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건 역효과일 것 같은데.’
“어흐흐흑…….”
아니나 다를까 정의탁의 눈물샘이 더 느슨해져 버렸다.
‘눈물로 얼굴의 먼지를 씻어 내다니…….’
배새벽에게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멤버들이 흐뭇한 얼굴로 정의탁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어깨에 툭 얹어진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채은성이 기쁨으로 빛나는 눈을 마주쳐 왔다.
“고생했어.”
담백한 한 마디에 예찬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보처럼 무아지경으로 달려 버린 것에 대한 후회는 마음속 어디에도 없다.
‘이런 것도 신인 때의 묘미 아니겠어.’
* * *
계주에 참여했던 네 사람이 팔목에 나란히 1등 도장을 받고 기념사진까지 찍은 뒤에야 소란이 잠잠해졌다.
어느새 중앙에 마련된 단상 위엔 배구 우승팀이 올라가 있었다.
공간이 좁다 보니 서로서로 부담스러울 정도로 다정히 끌어안은 모습이었다.
짝짝짝.
박수를 보내고 있자 곧이어 MVP 수상과 다음 종목 시상이 이어졌다.
[다음은 남자 양궁입니다.]준우승을 차지한 배새벽과 심상록, 범세혁이 2라고 쓰여 있는 단상 위로 올라갔다.
스피커에선 연초에 발매한 건곤감리의 타이틀 곡이 흘러나왔다.
[남자 양궁 MVP는 레굴루스의 배새벽 선수입니다.]단상 근처에 서 있던 전 국가 대표 양궁 선수가 누구보다 열렬히 박수를 보냈다.
우승팀이 아니었음에도 이견을 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렴, 아무리 실제 양궁 경기보다 훨씬 거리가 짧다지만 열 발을 쏴서 단 한 발을 제외하고 전부 10점을 맞췄는데 누가 불만을 표할 수 있겠는가.
‘그중 다섯 발이 엑스 텐이었고.’
게다가 배새벽이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활을 잡아 봤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저놈을 인간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어도 되는지 의심스러워졌다.
[다음은 남자 씨름입니다.]벌떡 일어나려는 채은성을 부축해 단상 위에 오르자 이클립틱들이 저 멀리서 큰 소리로 이름을 불러 주었다.
그 목소리에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Only my you’가 점차 섞여 들어갔다.
프로그램이 방영될 때는 이미 새 앨범이 발매된 후일 테지만, 전아체는 꿋꿋하게 데뷔 앨범의 타이틀곡을 틀어 주었다.
‘우리 쪽에서 준다고 했는데도 필요 없다고 했댔나?’
참 여러모로 선을 긋고 싶게 만드는 놈들이었다.
[남자 씨름 MVP는 레굴루스의 우휘겸 선수입니다.]MVP는 예상대로 우휘겸이 받았다.
우휘겸은 굉장히 민망해하며 MVP 상패를 받아서 들었다.
‘뭐 남들이 보기엔 무표정이겠지만.’
잠시 고민하던 우휘겸이 무언가 생각난 것처럼 밝은 얼굴로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뭐 이것도 남들이 보기엔 무표정이겠지만.’
성큼성큼 걸어온 우휘겸이 상패를 든 손을 불쑥 내밀었다.
“이거.”
“어…… 나한테?”
눈이 휘둥그레진 채은성이 자신을 가리켰다.
우휘겸은 상패를 좀 더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음, 고맙다.”
채은성은 기쁨과 놀라움이 섞인 복잡한 얼굴로 상패를 건네받았다.
후배들이 뽑아낸 훈훈한 장면에 선배 아이돌들이 장난스럽게 야유하며 박수를 보냈다.
[남자 50m 달리기 시상이 있겠습니다. 동메달, 트럼프의 조커 선수. 은메달, 레굴루스의 강해솔 선수. 금메달, 마찬가지로 레굴루스의 배새벽 선수.]씨름 시상이 전부 끝나기 무섭게 이번엔 배새벽과 강해솔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포켓볼 시상을 포함해 오늘 벌써 세 번째로 체육관에 ‘Only my you’가 울려 퍼졌다.
메달을 걸어 주기 위해 다가간 전 육상 국가 대표가 배새벽에게 말을 거는 것이 보였다.
꽤 오랜 시간 질척댄 그는 결국 아쉽다는 얼굴로 단상에서 내려갔다.
전아체 역대 50m 기록을 두 번이나 갱신한 배새벽이 이번에도 양궁에 이어 단거리 MVP를 차지했다.
“하, 진짜 새벽이 최고다…….”
“그러게…….”
뒤에 앉은 정의탁과 심상록이 진심으로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리로 돌아오는 배새벽을 바라보는 눈빛에선 열성 학부모 못지않은 열기가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남자 400m 계주입니다.]“나가자.”
예찬이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동메달, WW. 은메달, 트럼프.]팔목에 선명하게 찍힌 파란색 도장을 내려다보자 어린애처럼 가슴이 설렜다.
예찬은 느슨하게 풀어지려는 뺨을 단속했다.
[금메달, 레굴루스.]“얘들아악!”
“태릉 가자!”
“……진짜로 가진 말고!”
스크린에 단상을 향해 나가는 레굴루스가 비치자 이클립틱들이 또다시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오늘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목이 쉰 팬들도 다수 있었다.
단상 위에 오르는 순간, 네 번째로 ‘Only my you’ 흘러나왔다.
고개를 살짝 숙이자 묵직한 금메달이 목에 걸렸다.
배새벽은 전아체 역사상 두 번째로 MVP 삼관왕을 차지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다음번엔 4관왕에 도전하고 싶습니다.]황시우의 물음에 배새벽은 열일곱 살다운 패기 넘치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예찬은 그런 배새벽이 귀여워서 단상에 선 채로 조금 웃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