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38)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38화
스타 라이브를 끄고 멤버들이 2부를 위해 옷을 갈아입는 사이.
막 공개된 앨범을 첫 번째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재생시켜 둔 모양이다.
질릴 정도로 들었던 타이틀곡이 흘러나오자 옆에서 조끼 단추를 잠그고 있던 정의탁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KEEP YOUR CHIN UP’.
직역하면 턱을 들어라.
간단하게 말해서 기죽지 말란 의미의 제목이었다.
2집 미니 앨범의 타이틀곡 ‘KEEP YOUR CHIN UP’은 EDM 트랩 계열의 노래로, 랩 파트를 제외한 작사와 작곡 전부를 예찬이 맡았다.
‘랩 파트가 많아서 실제로 내가 쓴 건 반 정도지만.’
리스피릿의 래퍼 김대훈과 달리, 지금 레굴루스의 랩 라인은 어느 그룹에 가져다 대도 밀리지 않았다.
‘그래서 간만에 창작욕이 최대치로 솟았다고 해야 하나…….’
일단 하고 싶은 걸 다해 보자는 마음으로 만들었더니, 묵직한 베이스를 바탕으로 하면서 BPM은 상당히 높은 재미있는 곡이 완성되었다.
예찬의 마음에는 쏙 들지만 이래저래 까다로운 곡이라 도무지 춤을 추면서는 부를 수 없을 것 같았다.
선우이경이 노래를 듣자마자 휘갈긴 끔찍할 정도로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안무 초안을 보니 더더욱 그랬다.
– 일단 한번 해 보기만 하죠. 어디까지 가능한지 보고 수정을 하는 게 나을 거 같아요.
그러나 예찬의 말에 시험받는다고 느낀 것일까?
지독한 멤버들은 연습의 연습을 거듭해 기어코 노래와 춤 전부를 라이브로 소화해 냈다.
“하, 떨린다.”
이번 앨범을 준비하는 동안 창작의 신이 접신한 수준이었던 선우이경은 설레서 어쩔 줄 모르겠단 얼굴을 했다.
‘좋을 때다.’
까마득한 창작 후배를 다소 귀엽다는 듯 지켜보고 있는 예찬이었지만, 사실 본인도 설레긴 매한가지였다.
‘평생 해도 질리지 않으니까 계속 이 일을 반복해 온 거겠지.’
“다 입은 사람 먼저 머리 만지게 얼른 나오자!”
감상에 젖어 있는 예찬을 간이 탈의실용 파티션 너머에서 스타일리스트가 불렀다.
“네!”
예찬은 빠르게 조끼 마지막 단추를 채우고 탈의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 * *
‘KEEP’ 앨범의 전곡 재생 시간은 약 23분.
6시 정각에 라이브 1부를 종료하고 30분에 2부를 시작하는 것은, 그사이 앨범 전곡을 듣고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예찬론의 홈페이지 마스터 박모 씨는 그 의도를 충실히 따랐다.
1번 트랙부터 7번 트랙까지의 곡을 차례대로 들은 박모 씨는 타이틀곡 ‘KEEP YOUR CHIN UP’ 뮤직비디오를 시청하기 위해 아이튜브 창을 켰다.
물론 보유하고 있는 다수의 공기계와 태블릿, 노트북에 음원 스트리밍 리스트를 짜서 재생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Regulus (레굴루스) ‘KEEP YOUR CHIN UP’ Official MV]섬네일은 ‘Only my you’ 때와 마찬가지로 단체 컷이었다.
푸른 벨벳 카펫이 깔린 계단을 배경으로, 난간에 기대거나 계단에 걸터앉은 멤버들은 전부 서늘한 무표정이었다.
차갑게 생긴 미남의 비율이 높은 레굴루스와 잘 어울리는 콘셉트란 느낌을 새삼스레 받았다.
섬네일을 클릭하고 고풍스러운 원목 엔틱 식탁 앞에 앉은 멤버들이 모습이 화면에 비칠 때까지도 어쩐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습관처럼 손을 움직여 뮤직비디오를 틀었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꿈을 꾸는 것처럼 붕 뜬 기분이었다.
‘왜지?’
느릿하게 식탁을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네 쌍의 멤버를 비추며 테이블 끝으로 다가간 카메라는 상석에 앉아 있는 강해솔의 차례가 되자 갑작스레 움직임이 빨라졌다.
강해솔이 들어 올린 섬세하게 세공된 크리스털 잔 너머 새파란 눈이 섬뜩하게 빛나던 순간.
강해솔이 잔을 쥐고 있던 손가락을 펼쳤다.
바닥에 떨어진 크리스털 잔이 산산이 조각나며 비산하는 것과 동시에 전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박모 씨는 머리털이 곤두서는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왜 조금 전까지 묘하게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너무 좋아서 살짝 정신을 놨었구나.’
짧은 준비 기간이 무색할 정도로 뛰어난 곡들의 향연에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좋은 노래가 진짜일 리 없다고 뇌가 놀란 모양이었다.
타이틀곡을 처음 들은 순간 느낀 충격 이상의 충격을 뮤직비디오 도입부에서 느끼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탐미적으로 느껴졌던 앨범 재킷 사진과 달리 뮤직비디오는 심플했다.
이따금 도입부와 마찬가지로 몽환적인 장면들이 삽입되긴 했으나, 대다수가 댄스 파트로 이루어져 있었다.
처음엔 고난도의 안무에 그저 설레기만 했다.
그러나 음악이 절정에 치달을수록 점점 더 입이 벌어졌다.
‘미쳤다……!’
절도 있는 칼군무가 짜릿하게 이어지는가 하면, 어느새 부드럽지만 강렬한 웨이브가 이어졌다.
점프력은 또 다들 어찌나 좋은지.
다들 무릎 연골을 갈아 넣을 기세로 뛰고 앉고 일어섰다.
도미노처럼 순서대로 이어지는 동작들에서 기합이 들어갔다는 것이 팍팍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선이 터무니없이 복잡했다.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노래의 박자와 아홉 멤버의 동작이 완벽히 일치하는 순간엔 저도 모르게 기립 박수를 보낼 뻔했다.
박모 씨는 멤버들의 관절 걱정은 잠시 잊기로 했다.
‘이건 예술이야…… 이걸 즐기지 않는 건 예술에 대한 모독이고.’
박모 씨가 해야 할 일은 이 예술을 만들어 낸 예술가들을 향해 환호하는 것뿐이었다.
* * *
오후 6시 30분.
컴백 라이브로 이름을 바꾼 스타 라이브 2부가 시작되었다.
라이브 시작과 동시에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사이, 의상과 머리를 바꾼 멤버들이 준비해 둔 세트장에 대열을 맞춰 섰다.
뮤직비디오가 끝나고 화면이 세트장을 비췄다.
머리를 깔끔하게 넘겨 고정한 멤버들은 모두 앨범 재킷보다 더 격식을 갖춘 쓰리피스 슈트 차림이었다.
박자를 딱 맞춰 시작된 강해솔의 랩을 시작으로 처음으로 ‘KEEP YOUR CHIN UP’ 무대가 공개되었다.
3분여의 무대가 끝나고 채팅창은 기쁨으로 물결쳤다.
– 내가 이걸 보려고 살아 있었구나ㅠㅠㅠ 케이팝의 미래가 밝다ㅠㅠㅠㅠㅠ
– 그래서 콘서트가 언제라고요?
– 와미쳤다와미쳤다와미쳤다와미쳤다
강력한 대박의 예감에 이클립틱들은 흥분하고 있었으나, 멤버들은 숨을 헐떡이느라 채팅창을 확인할 여력이 없었다.
“헉, 헉, 헉, 어, 어땠나요?”
“후우, 정말, 열심히, 후, 연습했는데…….”
“얘들아, 하아, 물 좀 마시고, 후우우, 얘기하자.”
확실히 연습할 때보다 힘이 더 들어가서인지 다들 쉽사리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찬은 그새 스태프들이 무대 위에 준비해 준 MC용 의자에 앉아 큐시트를 챙겼다.
“뮤직비디오에 이어 첫 무대까지 준비해 봤는데 마음에 드셨나요?”
사이드 테이블 위에 반응 확인용으로 올려 둔 태블릿을 확인한 예찬의 입가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 예찬이 어깨로 숨 쉰다ㅋㅋㅋㅋㅋㅋㅋㅋ
– 일단 좀 쉬어ㅋㅋㅋㅋㅋㅋㅋㅋ
– 멤버 전원을 평등하게 굴리는 무대 잘 봤습니다
‘좀 심하게 구르긴 하지.’
연습실에서 처음으로 풀버전을 춘 직후, 예찬은 확신했다.
‘이걸 추고 뻗는 건 인간이라면 당연하다. 죽어라 췄는데 안 뻗는 놈이 이상한 거다.’
그래도 팬들의 마음에 드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예찬은 몇 번 더 숨을 고른 뒤 다시 진행을 시작했다.
“어, 1부 마지막 질문의 정답을 공개해야 할 시간이죠? 가장 많은 멤버가 1위로 뽑은 ‘KEEP’ 앨범의 곡은 타이틀곡인 ‘KEEP YOUR CHIN UP’이었습니다. 무려 6표를 받았네요.”
“오! 나머지 세 표는 어떤 곡이었나요?”
“일단 저는 ‘KPGG’ 뽑았습니다.”
예찬이 태연하게 답했다.
“진짜? 왜?”
수록곡 ‘KPGG, Keep Gonig의 작곡 겸 작사가 강해솔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너, 내가 이거 만들 때 엄청 시비 걸었잖아.”
“시비라뇨, 해솔 씨. 그냥 이것저것 좀 물어본 거죠.”
예찬은 점잖게 강해솔의 말을 정정했다.
거의 잠에 취한 채로 강해솔이 휘갈겨 쓴 곡이 마음에 꼭 들어서 조금 더 힘내 보라고 옆구리를 쿡쿡 찌르긴 했지만 결코 시비를 건 것은 아니었다.
강해솔이 입을 삐죽거렸다.
“뻔뻔하네!”
그걸 계기로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면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숨은 쉴 틈을 줘야 하지 않아요? 무슨 노래도 계속 몰아치는데 춤도 계속 몰아치잖아요.”
정의탁의 푸념에 예찬은 깊이 공감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이경 씨가 잘못했네요. 노래는 그래도 파트가 끝나면 안 불러도 되는데, 춤은 다른 사람 파트에서도 계속 춰야 되잖아요.”
“아니아니, 노래에 딱 맞게 만든 건데요? 저기 작곡가님, 그렇게 발뺌하시면 곤란한데요?”
생각보다 더 오래 떠들었는지 스태프 측에서 슬슬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클립틱, 오늘 컴백 라이브 어떠셨나요? 아쉽지만 벌써 우리 이클립틱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와 버렸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난데없는 종료용 멘트에 심상록이 당황했지만 예찬은 꿋꿋하게 다음 멘트를 이어 갔다.
“하지만 이번 ‘KEEP’ 활동은 이제부터니까요!”
“다시 만나서 너무너무 반갑고요, 앞으로 더 열심히 ‘keep going’하겠습니다!”
범세혁이 타이밍 좋게 이어 말하기로 정해 둔 엔딩 멘트로 치고 들어왔다.
뒤이어 ‘지금 하는 거야?’란 표정으로 우휘겸이 말을 받았다.
“여러분도 언제나 ‘keep your chin up’하세요.”
“그러면 진짜로 안녕~!”
다 같이 손을 흔드는 것을 마지막으로 라이브 2부가 종료되었다.
예찬은 반 이상 무용지물이 된 큐시트를 그제야 내려놓았다.
‘진행하려던 콘텐츠와는 조금 멀어져 버렸지만 팬들이 좋아했으니 된 거 아닐까.’
“으아아아아!”
그때 오늘 평소보다 조용했던 채은성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왜, 왜 그래? 어디 아파?”
“형, 혹시 다리예요? 다리 아파요?”
‘드디어 머리가……?’
“아니! 몸은 멀쩡해! 그냥 무지 분할 뿐이야!”
채은성은 정말로 분한 것처럼 숨을 씩씩거리더니 목발을 짚고 늠름하게 일어섰다.
“엄청나게 연습하고 싶다! 지금 당장 연습실에 가고 싶어!! 연습실에 가자!”
“네? 지금 가 봤자 연습하는 건 형이 아니라 우리잖아요.”
정의탁이 질색했으나 채은성은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래, 바로 그거야! 나 대신 다들 연습해 줘요! 대리 만족이라도 하게!”
무척이나 당당한 요구였다.
‘어쩔 수 없는 놈이네.’
예찬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연습실에 가 볼까?”
“대리 만족 제대로 시켜 주마.”
그래도 밤마다 숨죽여 훌쩍거리는 것보단 훨씬 보기 좋았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는지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