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39)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39화
두 번째 미니 앨범의 첫 음악 방송 사전 녹화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숙소로 돌아온 예찬은 TV를 켜자마자 반갑지 않은 인물과 맞닥뜨렸다.
[이번 주도 힘차게 이어지는 ○○돌 특집! 오늘 수요 아이돌에 굉장하신 분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힘차게 시작해 볼까요! 오늘의 주제는 바로바로, 작곡돌!] [K-pop 열풍을 만들어 내는 주역들! 오늘의 아이돌 여러분, 들어와 주시죠!]호들갑스러운 소개에 이어 다섯 명의 아이돌이 스튜디오로 입장했다.
그리고 그 선두에 서 있는 것은 정찬양이었다.
‘황시우가 저놈 때문에 작곡돌 특집을 고사한 거군.’
유피테르와 리스피릿을 저울에 재자면 현시점의 실적은 리스피릿이 우세했다.
그러나 유피테르가 아이돌 명가라 불리는 소속사에 선배라는 입장을 가졌기에 전체적으로 봤을 땐 비등비등했다.
다만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저울은 ‘작곡’에 포커스를 맞추면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었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 중 ‘리스피릿의 정찬양’과 견줄 수 있는 아이돌은 존재하지 않았다.
‘뮤지션으로 범위를 확장해도 최상위권이니까.’
올림포스가 황시우를 주역이 아닌 자리에 내보낼 리 없었다.
‘황시우 본인의 의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소파에 방만하게 걸터앉은 예찬은 막 리셋을 했을 무렵보다 자신의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수요돌 작곡가 특집에 정찬양이 나올 거란 이야기를 듣고도 그저 ‘그 새끼는 작곡해 본 적도 없으면서 거기서 할 말이 있대? 미친놈이네.’ 정도의 감상밖에 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예전 같았으면 작곡가 특집 얘기를 들은 순간 눈 돌아서 LEE 사옥 찾아갔지. 아니면 숙소라도.’
지금도 정찬양이 멋대로 훔쳐 간 것들에 대해선 이자까지 쳐서 받아 낼 생각이었으나 조급하지 않았다.
‘그건 역시…….’
“우리 예찬이, 혼자 수요돌 보려고? 같이 보자!”
“정찬양 선배님……!”
“오늘이 작곡돌 특집이었나?”
옷만 대충 갈아입고 소파로 다가온 멤버들이 하나둘 숙소 거실의 인구 밀도를 높였다.
예찬은 풀어지려는 입꼬리를 엄지와 검지로 꾹 눌렀다.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어서 여유가 생겼다, 라니. 내가 생각해도 소름 돋게 유치하군.’
[지금까지 작곡한 곡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이 있다면?] [어,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이요? 전 사실 예전에 작곡한 곡들은 지금 들으면 너무 창피하던데…… 아, 그래도 팬분들이 특히 좋아해 주셨던 곡이 있는데요.] [지금까지라고 해도 아직 작곡한 게 몇 곡 없어서요, 아하하.]‘같은 아이돌 특집이라고 해도 내가 나왔던 때랑은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군.’
생각해 보면 황시우가 나온 래퍼돌 특집이나, 그 전주에 방영한 메인 댄서돌 특집도 조금씩 분위기가 달랐다.
‘이번 특집이 유독 도드라지는 건 정찬양 놈 때문이겠지.’
예능에 얼굴을 비추는 일이 드문 신비주의 아이돌을 모셔 왔으니 아무래도 좀 사리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증스럽게 웃는 얼굴로 경청하는 시늉을 하던 정찬양이 입을 열었다.
[음……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이라. 일종의 ‘자신작’을 골라 보란 거겠죠?]‘웃기고 있네. 지가 작곡한 것도 아니면서. 뭐라 떠드는지 좀 들어 보자.’
화면 너머의 정찬양에겐 보이지 않겠지만, 예찬은 어디 한번 말해 보라는 듯 턱을 치켜들고 다리를 꼬았다.
“예찬이 뭐 하니?”
황당한 얼굴로 선우이경이 이쪽을 바라보았지만 예찬은 거만한 자세를 유지했다.
‘역시 최근 곡을 고르려나? 퀄리티는 그게 제일 높긴 하지. 그래도 데뷔 초 때 곡들도 다듬을 만큼 다듬은 곡들이라…….’
[저는 딱히 고를 곡이 없는 것 같아요.]“……?”
예찬은 잠깐 귀를 의심했다.
‘뭐가 없다고?’
화면 너머의 정찬양은 혀에 기름이라도 칠한 것처럼 잘도 나불거렸다.
[사실 지금까지 만든 곡들은 전부 신이 제게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인지 제가 만들었다는 실감이 별로 안 난다고 해야 하나? 이게 제가 온 힘을 다한 ‘자신작’입니다, 하고 자랑스레 소개할 수가 없을 거 같아요.]우수에 찬 눈빛으로 미소를 지은 정찬양이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덮어 두고, 지금부터 만들어 갈 것들이 진짜 제가 만드는 곡이라고 생각해요. 팬분들도 지금까지완 다른 새로운 노래들이 낯설겠지만, 이게 진짜 정찬양이라고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네요.] [찬양 씨가 만든 곡이면 뭐든 멋질 거예요!] [선배님, 기대하겠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정찬양은 눈을 빛내는 동료 아이돌들과 MC들을 향해 수줍게 웃어 보였다.
예찬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신이 주신 선물? 덮어 둬? 진짜 정찬양의 곡?’
예찬이 작곡한 곡 중 하나를 콕 집어 좋다고 떠드는 것보다 훨씬 불쾌했다.
지금까지의 예찬의 것을 훔친 영광은 고스란히 업고 갈 거면서, 도둑놈 딱지를 어떻게든 떼 보려고 시도하는 것이 같잖기 그지없었다.
‘진짜로 분리하고 싶으면 사실 작곡가가 따로 있다고 밝히고 저작권료도 다 뱉어 내라고.’
눈 가리고 아웅도 아니고 뭐 하는 짓이란 말인가.
분노하는 예찬과 달리 스튜디오 내는 화기애애했다.
이미 정상에 오른 정찬양이 새롭게 도전하는 것을 대단하다고 추켜세워 줄 뿐이었다.
[정말로 앞으로 만들 곡으로만 평가해 주시면 좋겠어요. 오늘 작곡돌 특집도 새로 시작하는 신인의 마음으로 참여했거든요. 그러니 오늘만큼은 선배님들, 잘 부탁드립니다.]정찬양이 후배 아이돌들을 향해 너스레를 떨자 다들 손을 내젓거나 마주 고개를 숙였다.
예찬은 주먹을 꽉 쥐었다.
기만이다.
‘곡 하나 없는 신인이 작곡돌에 어떻게 나가냐?’
지금까지 남의 걸로 잘 먹고 잘살아 왔으면서 선을 긋는 꼴이라니.
레굴루스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걸 보고 당장이라도 내 곡 내놓으라고 따질까 봐 겁이라도 난 걸까?
머릿속이 부글부글 끓는 채로 화면을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프로그램이 끝났다.
“역시 수요돌, 재미있네.”
“그래요? 전 작곡 얘기라 잘 모르겠던데.”
“우린 다음 주에 촬영이었지?”
멤버들이 하나둘 소파에서 일어나 자리를 뜰 때까지도 부글거리는 머리는 여전히 식지 않았다.
“하, 역시 정찬양 선배님. 오늘도 멋있었다.”
마지막까지 예찬과 앉아 있던 채은성이 크게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광고가 흘러나오는 TV를 빤히 응시하던 예찬이 휙 고개를 돌렸다.
“뭐가 멋있었는데?”
“뭐?”
다소 공격적인 어조로 말이 튀어 나갔다.
채은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다 멋있는데?”
만족한 팬의 얼굴에서 불량한 도련님 얼굴로 순식간에 변모한 채은성이 눈에 힘을 주고 예찬을 내려다보았다.
예찬 또한 지지 않고 채은성을 올려다보았다.
“다 멋있어? 왜? 네가 좋아한다고 했던 곡들은 없었던 것처럼 덮어 달라고 했잖아. 자기 입으로 신인의 마음이라잖아.”
채은성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말을 그렇게 한다고 그게 없었던 게 돼? 그냥 겸손하게 하시는 말씀이지. 그리고 작곡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하신 활동만으로도…….”
“네 생각도 그렇지?”
“어?”
채은성의 말허리를 뚝 끊은 예찬이 벌떡 일어났다.
“결국 뭐라고 말한들, 지금의 정찬양은 이제껏 쌓아 온 업적들로 만들어졌다는 거잖아.”
“그, 뭐어…… 그렇지?”
굉장히 찜찜한 얼굴로 우물쭈물 대답한 채은성과 달리 예찬은 무척이나 개운한 얼굴이 되었다.
“후, 역시 그런 거지.”
어딜 이제 와서 발뺌하려고 드는 건지.
정찬양이 지금부터 예찬이 낸 곡을 단 한 번도 부르지 않아도.
지금까지 얻은 수입을 전부 예찬에게 가져다 바쳐도.
앞으로 정말 자기가 만든 곡으로 성공한다 해도.
정찬양이 도둑놈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뭐가 역시 그런 거지야. 그리고 너, 정찬양 선배님이라고 해야지!”
뒤늦게 채은성이 버럭 소리를 쳤지만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었다.
* * *
9월 8일, 목요일 아침이 밝았다.
예찬은 이른 새벽 방문한 샵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잠을 떨쳐 내고 있었다.
“후후. 역사를 쓰기 좋은 아침이군.”
“은성아, 여긴 우리 말고 다른 분들도 많으니 속으로 생각하자.”
예찬의 어깨에 기댄 배새벽은 심상록이 채은성을 다독이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 뛰어온 스타일리스트가 배새벽을 흔들었다.
“아이고, 새벽아! 그렇게 자면 머리 눌린다니까! 목을 빳빳하게 들고, 그렇지! 벽에도 기대면 안 돼! 뒷머리 눌려!”
이 정도면 그냥 깰 만도 한데 배새벽은 역시 비범한 놈이었다.
“……설마 새벽이 지금 자는 거야?”
막 메이크업을 마친 우휘겸이 정좌한 채 잠을 자는 배새벽을 보며 물었다.
예찬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저 우휘겸의 입을 열게 하다니, 역시 보통이 아니야.’
“얘들아, 잠깐 다들 새벽이 옆에 붙어 봐. 영상 좀 남기게.”
선우이경의 말에 다들 배새벽 옆으로 착 붙었다.
배새벽은 멤버들에게 둘러싸인 상태로도 잘 잤다.
신인이지만 N-net의 아들인지라 이번엔 데뷔 때보다 사전 녹화 시간이 늦춰졌다.
‘그래도 팬들은 새벽부터 기다리겠지만.’
예찬은 사녹 출근길을 기다리고 있던 팬들을 향해 하트를 날리며 이 시스템을 어떻게 뜯어고칠 수 없을까 고민했다.
“새벽아!”
“예찬아아아악!!”
“해솔아아아아아!!”
열렬한 환호에 멤버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대기실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마지막으로 상태를 점검하고 나니 무대에 오를 시간이 되었다.
“레굴루스 여러분 주목. 여기 모여 봅시다.”
예찬이 손을 팔랑팔랑 흔들자 멤버들이 다가왔다.
예찬은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 위로 익숙한 무게를 가진 손들이 포개져 탑처럼 쌓였다.
어느새 다가온 신 PD가 흐뭇한 얼굴로 카메라 감독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찰칵거리는 셔터음도 사방에서 들렸다.
“위? 아래?”
“아래요.”
“오케이.”
범세혁의 물음에 잠깐 고민한 배새벽이 대답했다.
막내가 가지는 일종의 특권 중 하나였다.
방향까지 정했으니 이 이상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예찬은 힘차게 구호를 선창했다.
“레굴루스, 오늘도!”
“빛나자!”
바닥을 향해 손을 내린 멤버들은 환한 얼굴로 무대에 올랐다.
데뷔 무대와 달리 이번엔 팬들 없이 리허설을 먼저 시작했다.
죽어라 연습한 보람이 있었는지 실수하는 멤버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사전 녹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아악!”
“얘들아!!”
“레굴루스으으으―!!”
텅 비어 있던 객석을 채운 팬들의 함성이 출근길 이상으로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멤버들과 눈빛을 교환한 예찬이 이번에도 먼저 입을 열었다.
[둘, 셋.] [빛나는 당신의 별! 안녕하세요, 레굴루스입니다.]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자 이 이상 커질 수 없을 것 같았던 함성이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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