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42)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42화
[둘, 셋.] [빛나는 당신의 별! 안녕하세요, 레굴루스입니다.] [와, 반갑습니다!] [역대급으로 빠른 컴백인데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MC들과 주거니 받거니 근황 이야기를 나눈 레굴루스는 새 앨범 홍보를 하며 하이라이트 안무에 애교를 곁들여 선보였다.
평범한 26세 남성인 이모 씨가 감당하기에 너무 수준 높은 애교였다.
‘무대도 정말 멋있고 예능도 재밌게 보는데, 이런 건 조금 간지럽단 말이지.’
괜히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진짜 무대가 시작되었다.
‘……!’
선우이경의 너른 등짝을 자랑하듯 찍고 있던 카메라가 선우이경이 뒤를 돌아봄과 동시에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긴 공간을 채우려는 것처럼 양옆에서 멤버들이 하나씩 튀어나왔다.
멤버들은 전에 없이 알록달록 키치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지금 흐르는 흥겨운 댄스 일렉트로닉 전주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차림새였다.
무대를 채운 오브젝트와 스크린, 그리고 조명에서도 당장이라도 톡톡 튀어 오를 것 같은 자유분방함이 느껴졌다.
쿵쿵 울리는 전주에 맞춰 장난스럽게 상체를 튕기던 멤버들이 어느새 일렬로 섰다.
멤버들은 그대로 꼭 바닥으로 쓰러지기라도 할 것처럼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절묘하게 전주가 끊겼다.
쓰러지던 멤버들의 동작도 멈췄다.
곤란한 표정을 한 멤버들의 얼굴이 가장 왼쪽부터 시작해 순서대로 화면에 비쳤다.
마지막으로 배새벽의 얼굴이 화면에 잡히자 멤버들은 몸을 바로 세우고 그대로 점프했다.
공중에 높이 떠올랐던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선우이경이 신나게 첫 소절을 시작했다.
[쉿, 조용히 해!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대로 있어
그래, keep down
이번 주는 이대로.]
경쾌하게 랩을 이어가는 선우이경의 옆에서 멤버들은 발랄한 안무에 맞춰 능수능란하게 표정 연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와……!’
이모 씨의 입이 세로로 길게 벌어졌다.
이모 씨는 앨범이 발매된 날 ‘Keep DOWN’을 처음 듣고, 레굴루스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노래도 가사도 너무 통통 튀었기 때문이다.
아이돌이란 다양한 시도를 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여기저기서 주워듣긴 했지만, 카테고리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걸 컴백 때 같이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Keep down작작 좀 해
나대지 말라는 말
자주 들었잖아
제발 이번 주는
좀 쉬게 해 줄래?]
그러나 멤버들은 전부 꼭 맞는 옷을 입은 사람들처럼 시원하게 무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눈썹을 찡그린 우휘겸이 화면에 잡혔다.
이모 씨는 절로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그야말로 우휘겸의 재발견 수준이었다.
‘휘겸 씨도 저렇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있구나.’
놀라웠다.
평소 지독한 무표정인 것과 달리, 무대 위에선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 연기를 얼마든지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저런 능청스러운 표정 연기까지 가능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휘겸 씨는 절대 이 노래를 소화할 수 없을 거 같았는데, 진짜 말도 안 되게 잘 어울리네.’
어느새 선우이경부터 심상록, 강해솔로 이어진 랩 파트가 끝나고 예찬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를 부르고 있었다.
[Keep it down모두 손 머리 위로 들고 쉿!]
가사에 맞춰 예찬은 검지를 입술 앞에 세웠고, 다른 멤버들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제각기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지난 앨범에 비하면 율동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힘을 뺀 안무는 그 대신 극도의 귀여움을 추구했다.
이모 씨는 다른 이클립틱들처럼 멤버들이 완벽하게 똑같은 타이밍으로 윙크를 날리는 것을 보고 가슴을 쥐어뜯지는 않았다.
다만 너무 가볍지 않나 생각했던 이 무대가 점차 흥미로워졌다.
‘평소와 다르게 다들 자기 느낌대로 안무를 소화하는구나.’
물론 아홉이 한 몸처럼 각을 맞춰 칼군무를 출 때도 저마다의 춤선이 조금씩 드러나긴 했지만, 아예 대놓고 판을 깔아 주자 각자의 개성이 도드라졌다.
‘예찬이는 정말 눈이 가게 추는구나.’
강약 조절이 절묘했다.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컨트롤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아이돌 문외한이었던 이모 씨가 보기에도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쑥쑥 늘고 있는 배새벽은 소녀 같은 얼굴로 누구보다 힘이 넘쳤다.
이모 씨는 어느새 화면 너머의 멤버들의 흥에 전염되어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리고 댄스 브레이크가 시작되었다.
레굴루스에서 춤을 잘 추는 멤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범세혁이 가장 먼저 안무를 시작했다.
동작 하나하나가 정확하고 섬세했다.
다음 박자부터는 범세혁의 뒤에 있던 선우이경과 강해솔도 함께 안무를 이어 갔다.
선우이경은 다소 거친 춤선이 매력적이었고, 강해솔은 펼친 손가락의 끝까지 우아했다.
두 사람의 랩 스타일과는 반대되는 춤 스타일이 재미있었다.
레굴루스는 컴백 스페셜로 준비한 ‘Keep DOWN’을 풀버전으로 선보였다.
레굴루스가 이례적인 대형 신인이라서인지, 아니면 NJ의 아들이라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모 씨는 어느 쪽이든 좋았다.
그저 이 재미있는 무대가 중간에 끊기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 *
화려하게 꾸며진 무대만큼이나 볼거리가 넘쳐 났던 첫 번째 무대가 끝났다.
‘이건 직캠으로 한 명씩 적어도 열 번씩은 돌려보지 않으면……!’
지난주 모의고사에서 목표한 성적을 거둔 기념으로 느긋하게 레굴루스의 컴백 무대를 시청하고 있던 최모 양의 눈이 타올랐다.
레굴루스를 좋아하기 전부터 꽤 오랜 시간 차가운 인상의 아이돌이 강렬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음악에 맞춰 각이 딱 맞는 안무를 선보이는 것을 좋아해 왔는데, 오늘 그 취향을 완전히 갈아엎은 기분이다.
그만큼 방금 화면 속에서 펼쳐졌던 ‘Keep DOWN’의 무대는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그냥 레굴루스가 해서 좋은 거 같기도 하지만…… 아, 다음 곡 시작한다!’
최모 양이 ‘Keep DOWN’의 오색빛깔 여운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타이틀곡 무대가 시작되었다.
이미 뮤직비디오에서 맛보기로, 거기에 컴백 라이브에서 한 차례 무대까지 봤기 때문에 흥분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후, 상큼발랄한 무대도 좋지만 역시 이것도 좋지…… 응?’
라이브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무대를 마주하자 눈이 절로 크게 뜨였다.
‘오…… NJ 돈 좀 썼는데? 앗, 전부 콘셉트 포토 정장 입었다!’
잠깐 놀라긴 했지만 마음에 드는 의상을 입은 멤버들을 발견했을 때까지만 해도 최모 양의 마음은 고요한 바다처럼 잔잔했다.
그러나 범세혁과 우휘겸의 손을 밟고 무대 앞으로 튀어나온 강해솔과 화면 너머로 눈을 마주친 순간.
[Hey.]최모 양은 더 이상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미친!”
머리칼이 쭈뼛 선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청회색으로 번뜩이는 강해솔의 눈동자가 온 신경을 거칠고 탐욕스럽게 잡아먹었다.
[눈 똑바로 뜨고현실 파악을 해
고개 숙이지 마,
뭘 잘못했다고 그래.]
강해솔 특유의 날카롭고 강렬한 랩이 최모 양의 가슴에 큰 파도를 일으켰다.
이미 수없이 반복해 들은 곡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와 다른 단단한 무언가가 강해솔에게 느껴졌다.
‘원래 해솔이가 무대마다 애드리브를 넣는 편이긴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다른데.’
최모 양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화면에 집중했다.
강해솔의 뒤를 이어 나온 심상록은 강해솔과 달리 CD를 씹어 먹었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발매된 음원과 똑같이 랩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도 최모 양의 마음 속 파도는 폭풍이라도 만난 듯 속절없이 거칠어지기만 했다.
‘왜지?’
온몸에 심장이 달린 것처럼 쿵쿵 뛰고 있었다.
그녀의 의문은 잠시 객석을 잡았던 카메라가 그대로 무대로 빨려 들어가듯 빠르게 무대 위 멤버들을 향해 다가간 순간에야 해소되었다.
‘아, 팬들이 있어서구나.’
눈앞에 레굴루스를 지켜보는 팬들이 있기에, 음원이나 라이브 영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멤버들의 환희가 최모 양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모양이었다.
레굴루스는 자신들이 얼마나 이클립틱을 좋아하는지 무대로 증명하고 있었다.
수능을 앞두고 감수성이 넘실넘실 흘러넘치는 최모 양의 눈가에 눈물도 흘러넘쳤다.
‘반드시 목표한 대학에 가서, 신나게 덕질을 하고야 만다……!’
두고두고 전설로 회자될 무대가 끝나고 최모 양은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엔딩 때도 레굴루스가 잠깐 나오겠지만 그건 나중에 찾아봐도 늦지 않았다.
‘지금은 엄청나게 공부가 하고 싶은 기분이야……!’
간만에 기분 전환도 할 겸 밀린 덕질을 하려고 공부 스케줄을 싹 비워 뒀었지만 취소다.
TV를 끄고 방으로 들어간 최모 양은 수능이 끝난 후로 즐거움을 미루고 늠름하게 문제집을 펼쳤다.
평소라면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라 느꼈겠지만 오늘만큼은 이 문제들이 레굴루스에게로 이어져 있는 레드 카펫처럼 느껴졌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한편 식탁을 마주 보고 앉아 사이좋게 과일을 먹던 최모 양의 부모님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최모 양이 앉아 있던 거실과 방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쟤 지금 공부하러 들어간 거야?”
“설마.”
9월 모의고사도 잘 봤으니 오늘 하루만큼은 건드리지 말라고 생난리를 쳤던 게 아직도 생생했다.
꿀꺽 침을 삼킨 최모 양의 아버지가 슬그머니 딸의 방문을 열었다.
“……!”
책상 앞에 앉아서 문제집에 들어갈 기세로 집중하고 있는 딸의 등에서 끝 모르는 열의와 투지가 느껴졌다.
조용히 뒷걸음질로 물러난 최모 양의 아버지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신중히 방문을 닫았다.
“왜 그래? 진짜 공부해? 아니지?”
어느새 다가온 아내의 물음에 그는 얼이 빠진 얼굴로 눈을 끔뻑거리다 대답했다.
“우리 딸 어디 고장 났나 봐.”
* * *
“헉, 헉, 헉.”
“후우, 후, 하아아―.”
본무대를 끝나고 돌아온 대기실은 온통 밭은 숨소리로 가득했다.
‘본방송은 살살 하자던 놈들 어디 갔냐.’
예찬은 어깨로 숨을 쉬며 마찬가지로 어깨로 숨을 쉬는 놈들을 흘겨보았다.
사전 녹화 때처럼 했다간 정말 기절할지도 모른다며 하하호호 웃던 놈들은 전주가 시작되자마자 눈빛이 180도 돌변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본방송 때도 팬들이 앞에 있는데 어떻게 힘을 빼고 무대를 하겠는가.
‘지들이 리스피릿도 아니고. 아, 이 생각은 그만.’
잠깐 중요한 무대 위에서조차 설렁설렁하던 놈들이 떠오를 뻔했다.
예찬은 머리를 세차게 저어 좋은 날 어울리지 않는 기분 나쁜 얼굴들을 깔끔히 털어냈다.
“하아, 하아, 그래도 진짜 잘했다.”
“헉, 헉, 본방 때 무대는 방송에 안 나가는 게 천추의 한이네.”
제대로 말도 못 하는 놈들이 뭐가 좋은지 실실 웃느라 바빴다.
힐끗 거울을 확인한 예찬은 급하게 손으로 입을 가렸다.
‘미친.’
예찬의 입꼬리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