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46)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46화
박마루는 예찬을 불러 놓고 정작 다음 말을 하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살이 좀 빠졌나?’
보름 만에 다시 본 박마루는 약간이지만 야윈 것 같았다.
“그, 음…….”
한참 동안 뜸을 들이던 박마루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혹시 신내림 받았어요?”
“미쳤…… 아, 죄송합니다, 선배님. 너무 당황해서 그만.”
뇌를 거치지 않고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간신히 멈춘 예찬이 재빨리 사과했다.
박마루는 예찬보다 더 머쓱한 얼굴이 되어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에요. 제가 좀 이상한 소리를 했죠…… 그런데 진짜로 신내림 받은 건…….”
“아닙니다.”
“아, 아니구나.”
박마루의 눈이 묘하게 생기를 잃었다.
예찬은 저도 모르게 허리 똑바로 펴고 눈에 힘 딱 주라고 외칠 뻔한 것을 참고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 보니 어머님 건강 검진 결과가 안 좋으셨나 보네요.”
“아, 그렇지. 그 말을 하려고 온 건데. 그…… 고마워요, 예찬 씨.”
자세를 바로 한 박마루가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예찬은 마음 내키는 대로 ‘오냐’라고 대답하는 대신 박마루를 일으켜 세웠다.
“예찬 씨 말대로 큰 병원에서 검사했는데, 위암이라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아직 수술로 치료할 수 있는 상탠데…… 그래도 위를 많이 잘라 내야 해서 앞으로 평생 식단 조절을 하셔야 한대요.”
예찬이 일으키는 대로 몸을 세운 박마루는 묻지도 않은 말을 줄줄 쏟아 냈다.
전아체 때 날카로웠던 태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모르는 사람한테 이렇게 금방 경계심을 풀다니.’
정찬양이 교육을 잘못시킨 모양이다.
어쨌든 궁금했던 이야기를 알아서 풀어놓고 있으니, 지금은 내버려 두면 그만이었다.
“진짜 바쁘다는 핑계로 자식 노릇 하나 제대로 못했구나 너무 후회가 되는데, 그때 예찬 씨가 했던 말이 떠오르더라고요. 저희 엄마가 완치된 다음에 아빠랑 같이 해외여행을 가는 모습도 꿈에 나왔다고 했었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그런 말도 했었다.
‘그런 말도 없이 다짜고짜 너희 어머니가 자칫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를 병에 걸린 꿈을 꿨으니 얼른 병원 가서 검사받으라고 했다가 뺨 맞을 일 있나.’
박마루의 성격상 정말로 남의 얼굴에 손을 올리지는 않겠지만, 마음의 문은 굳게 닫힐 게 분명했다.
박마루는 장신의 성인 남성에게 어울리지 않는 울망울망한 눈을 하고 예찬의 손을 덥석 잡아 올렸다.
쭈뼛거리던 것도 잠시, 이젠 완전히 이 상황에 감정적으로 몰입한 모양새다.
“저, 예찬 씨의 꿈을 믿고 의심하지 않으려고요. 그때 못되게 말해서 미안했어요. 그리고 정말 고마워요.”
“괜찮습니다. 그때도 이야기드렸지만 그대로 넘어가기엔 꿈자리가 사나울 것 같아서 말씀드린 것뿐이니까요. 어머님이 빨리 쾌차하시길 바랄게요.”
진심을 담아 쾌유를 빌며 예찬은 잡혀 있던 손을 빼냈다.
“그 말씀 때문에 오셨던 거죠?”
“아…….”
일 다 봤으면 그만 가 보라고 돌려 말했음에도 박마루는 눈만 끔뻑거릴 뿐 움직일 기미가 안 보였다.
그래도 명색이 선배인 놈을 내버려 두고 돌아갈 수 없었던 예찬이 다시금 말을 건넸다.
“혹시 더 하실 말씀이라도?”
“……정말로 신내림 받은 거 아니에요? 아무한테도 말 안 할 테니까 저한테만 살짝…….”
“아니라고요.”
“아니구나…….”
‘그러니까 아까부터 왜 신내림 안 받았다니까 풀이 죽냐고.’
“그러면 나중에라도 받으면 저한테도 좀 알려…….”
“안 받는다고.”
질척거리는 작태를 참지 못하고 말을 놓자 박마루는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이제 다시 대기실에 들어가야 할 거 같아서요. 가 보겠습니다, 선배님.”
도돌이표 같은 대화를 반복하는 것보단 차라리 선배를 복도에 버리는 게 낫겠단 판단이 들었다.
빠르게 걸음을 옮기려는 예찬의 뒤로 박마루가 따라붙었다.
“저도 잠깐 들러도 되죠?”
‘왜 된다고 생각하지?’
예찬은 눈으로 물었다.
박마루는 잠깐 시선을 피하더니 다시 꿋꿋하게 예찬의 옆에 붙었다.
“앨범 하나만 받아 가면…… 안 될까요?”
가엾게 늘어트린 어깨만큼 눈초리를 내린 박마루가 최대한 온순한 표정을 지었다.
일명 빗속에 버려진 강아지 표정으로, 리바디들이 열광하는 표정 중 하나였다.
‘이 자식이 미쳤나?’
물론 예찬은 열광은커녕 소름이 돋을 뿐이었다.
‘왜 나한테 미남계를 쓰고 난리지? 설마 이게 리바디가 아니어도 통할 거라고 생각하나?’
바라는 걸 얼른 줘 버리고 내쫓자고 결심한 예찬은 재빨리 대기실 문을 열고 사인 앨범을 챙겼다.
“헉! 박마루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고생들이 많으십니다.”
그사이 박마루는 대기실 문 너머로 눈이 마주친 멤버들과 살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자, 여기요.”
“고마워요, 예찬 씨. 그리고 언제든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연락해 주세요.”
박마루는 사인 앨범을 든 채로 예찬의 손을 잡고 열댓 번 정도 빠르게 흔들더니 떠났다.
“너, 너, 너! 박마루 선배님이랑은 어떻게 아는 거야?! 전아체? 전아체밖에 없지? 으으, 나도 발목만 안 다쳤으면……!”
괴로워하며 머리를 쥐어뜯으려던 채은성은 자기 머리가 세팅이 되어 있다는 걸 깨닫고 분한 얼굴로 신음만 흘렸다.
“선배님이 뭐가 고맙다는 거예요? 네?”
“박마루 선배님은 오늘 왜 오신 거야? 여기서 무슨 일정이라도 있으신 거야?”
다른 멤버들도 친분 없는 선배의 등장에 궁금증이 샘솟은 눈치였다.
박마루와 이 이상 엮일 생각이 없는 예찬은 최대한 별거 아니라는 뉘앙스로 말했다.
“전아체 때 어쩌다 마주쳐서 얘기를 좀 했었는데, 그게 기억에 남으셨나 봐요.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오신 김에 앨범이나 받아 갈 수 있을까 하셨대요.”
“그럼 고마운 건요? 고마운 건 뭔데요?”
“앨범 받으셔서 고마운가 보지.”
예찬이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본의 아니게 우기기만 느는 것 같단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 * *
“아까 한 말 거짓말이죠! 전아체에서 뭔가 있었던 거 맞죠?!”
1위 트로피를 하나 더 추가하고 숙소로 돌아가던 퇴근길.
막 시트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들려는 찰나, 뒷자리에서 튀어나온 정의탁의 억센 손이 예찬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뭐야, 뭔데.”
난데없는 습격에 어안이 벙벙해진 예찬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여봐란듯이 정의탁이 팔을 쭉 뻗자 그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 화면이 보였다.
‘임스타그램? mrmr_P?’
처음 보는 아이디의 임스타그램 사진 속엔 낯익은 레굴루스의 사인 앨범이 보였다.
‘누구지?’
앨범을 줬던 사람들을 머릿속으로 재빨리 되새겨 보았지만 감이 오질 않았다.
예찬은 괜히 더 고민하지 않고 물었다.
“이게 누군데?”
“누구긴 누구예요! 박마루 선배님이죠!”
“이게 박마루 거라고?”
예찬은 정의탁에게 아예 스마트폰을 건네받았다.
사진을 옆으로 밀자 한 손으로 앨범을 들고 웃고 있는 박마루의 얼굴이 나왔다.
예찬은 사진 밑에 줄줄이 적혀 있는 글자를 읽어 내려갔다.
– 처음 듣자마자 충격적으로 좋아서 후배님을 졸라서 사인 앨범을 받아 왔어요! 한 곡도 빼놓을 거 없이 다 좋네요! 레굴루스 파이팅!! #KEEP #레굴루스 #regulus
‘뭐지, 이 어설프기 짝이 없는 광고인 듯 광고 아닌 광고 같은 멘트는?’
멘트가 별로인 것과 별개로, 박마루가 왜 앨범 좀 달라고 대기실까지 쫄래쫄래 쫓아왔는지 깨달았다.
‘은혜 갚은 까치 놀이를 하고 싶었군.’
개인 SNS까지 만들어서 글을 올린 것을 보고 있으려니, 박마루가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심경이 복잡했다.
‘……정찬양은 완전히 리스피릿에게 손을 뗀 건가?’
* * *
같은 시각, 정찬양 또한 오늘 막 만든 박마루의 따끈따끈한 SNS 계정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박마루가 올린 게시물이라곤 아껴 두고 있다던 비장의 셀카와 레굴루스의 앨범.
그렇게 딱 두 가지였다.
“다녀왔습니…… 아, 깜짝이야!”
불도 켜지 않은 채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인영을 발견한 박마루의 어깨가 크게 움찔거렸다.
“누구…… 찬양이? 불 좀 켜지 왜 이렇게 어둡게 하고 있어.”
정찬양을 알아본 박마루의 몸에서 긴장이 풀렸다.
정찬양은 SNS 화면에서 눈을 떼고 박마루를 바라보았다.
“…….”
“……왜? 무슨 할 말 있어?”
박마루가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뮤직캐슬에서 레굴루스에게 1위를 빼앗긴 걸로 다툼 아닌 다툼이 있고 난 이후, 정찬양과 대화다운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원래도 편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이젠 눈만 마주쳐도 불편해져 버려서…….’
어쩌면 정찬양이 깔끔하게 자신을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거나, 보고 있던 스마트폰 화면으로 눈을 돌릴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좀 화는 나겠지만, 차라리 그쪽이 더 마음은 편할지도 몰…….’
“임스타 만들었더라?”
그러나 박마루가 생각을 채 끝맺기도 전에 정찬양이 입을 열었다.
“어? 어어, 봤어? 빠, 빠르네.”
짧은 물음에 당황한 나머지 바보처럼 말을 더듬었다.
동시에 머리가 핑핑 돌았다.
‘……그러고 보면 레굴루스가 1위를 해서 우리가 싸운 건데, SNS에 레굴루스 얘기를 올리는 건 좀 아닌가? 혹시 리바디들도 기분 나빠하고 있는 거 아니야?’
뒤늦은 걱정들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늦지 않게 검사를 받아서 천만다행이라 말하던 의사의 표정과 목소리를 떠올리면, 기묘한 후배에게 감사함을 더 표현해도 한참 모자랐다.
“……하예찬이랑 그새 친해졌나 봐?”
“어?”
“허겁지겁 SNS를 만들어서 이렇게 홍보해 줄 정도면 보통 사이는 아닌 거잖아.”
박마루가 의아한 눈으로 정찬양을 바라보았다.
정찬양은 언제나 감정을 읽기 어려운 상대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째서인지 정찬양의 감정이 꼭 손에 잡히기라도 할 것처럼 선명하게 느껴졌다.
‘……화가 난 거 같은데? 정말로 레굴루스랑 엮여서 그런가?’
평소와 다른 리더의 모습에 혼란스러웠던 박마루는 정찬양이 레굴루스가 아닌 예찬을 콕 짚어 물었다는 것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잠시 말을 고른 박마루가 입을 열었다.
“그…… 우리가 레굴루스 때문에 좀 불편했던 걸 생각하면 미안한데, 내가 정말로 고마운 일이 있었거든. 그걸 조금이라도 갚아 보려고 올린…….”
“고마운 일? 그런 새파란 신인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그렇게 고마울 수 있는데?”
정찬양이 불쾌함을 숨기지 못한 얼굴로 불쑥 끼어들어 말허리를 끊었다.
‘얘가 생각보다 더 레굴루스를 싫어하는구나. 그때 1위 못 한 게 진짜 분했나 보네.’
요즈음 좀 달라졌긴 하지만, 그전까지 리스피릿과 리바디를 위해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정찬양이었다.
아마 지금도 그 마음은 여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부터 리스피릿 멤버로서의 자신과 인간으로서의 자신이 둘 다 똑같이 중요해진 박마루는 팀의 리더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찬과 있었던 일을 털어놓을 순 없었다.
‘하예찬 씨가 신기가 있어서 엄마 목숨을 구해 줬단 얘기를 함부로 하면 안 되잖아.’
예찬이 연이어 단호하게 부정했음에도, 여전히 하예찬 신내림설을 진지하게 믿고 있는 박마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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