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48)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48화
“미친 소리죠.”
예찬의 입에서 단호하게 ‘안 된다’라는 말이 떨어진 순간, 심상록은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막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안 되는 게 맞지.’
안 되는 게 맞다는 건 알고 있다.
아니, 분명 알고 있었다.
올림포스에서 5년, GE로 옮겨서 또 2년.
연습생 신분부터 치면 레굴루스 멤버들 중 독보적으로 업계에 몸을 담은 기간이 긴 심상록이다.
데뷔한 지 약 반년 만에 2개월 장기 휴가라니.
이건 거의 탈퇴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 아닌가.
– 하루가 멀다고 TV에 네 얼굴이 나오는데, 정작 너는 집에 얼굴 한 번 안 비추고. 상엽이가 섭섭하지 않겠니?
그러나 전화기 너머에서 자신의 무심함을 탓하는 새어머니께 이 당연한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 내가 알아보니까 연휴 때는 그 음악 방송도 안 한다던데, 너 혹시 나 때문에 안 오는 거니?
–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래, 내가 100점짜리 엄마 노릇을 했다곤 생각하지 않아. 그래도 나도 내 나름대로 너랑 네 아빠한테 최선을 다한 거다, 너?
– 나한테 섭섭한 건 섭섭한 거고, 상엽이는 네 동생이잖니. 얘가 네 동생인 걸 동네 사람들이 다 아니까 얘한테 자꾸 네 얘기를 물어본다잖니.
– 상엽이가 오늘도 너 언제 오냐고 물어보더라. 나한테 좋은 아들이 되라곤 안 할게. 그래도 상엽이한텐 좀 잘해 주면 안 되니? 하나뿐인 동생이잖아.
추석 연휴 마지막 날 걸려 온 새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이후, 매일매일 입 안이 바싹 마르는 기분이다.
– 지금까지 쉬는 날 없이 일했으니까 휴가 좀 길게 내 봐. 상엽이도 학교에 체험 학습 신청서 내고 겨울 방학 껴서 올해도 몇 달 정도 유럽 여행 좀 가려는데, 이왕이면 가족끼리 오붓하게 다 같이 가면 좋잖니.
그 여행 매년 저는 두고 가셨잖아요.
제가 집에 가면 불편해하셨잖아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달이나 휴가는 못 내요.
휴가가 생겨도 그 집에 갈 생각은 없어요.
여러 가지 말이 혀끝에 달라붙었지만, 입 밖으로 나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입이 안 떨어졌어…….’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섞여서, 아니라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제대로 거절하지 못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거절하는 것은 언제나 새어머니의 역할이었기 때문에.
‘그 후에 문자를 보내봤지만, 전혀 얘기를 들어 주지 않으셨지.’
심상록은 심사숙고 끝에 보낸 메시지에 곧장 돌아온 날 선 텍스트를 떠올렸다.
– 회사에 물어본 거 맞아? 네가 오기 싫으니까 마음대로 대답한 거 아니니? 그리고 요즘 세상에 휴가도 못 내는 직장이 어디 있어? 노동법으로 신고한다고 그래!
문자를 확인한 순간 숨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심상록은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선택을 했다.
새어머니의 번호를 차단한 것이다.
그다음엔 새어머니께 이야기를 듣고 연락을 하지 않을까 싶어 아버지와 동생의 번호도 차단했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 도피였다.
‘겸사겸사 친척들 번호도 전부 차단했지…… 아니, 겸사겸사는 이런 데 쓰는 단어가 아닌가.’
번호를 차단했음에도 여전히 숨 쉬는 것이 힘들었다.
차단하고 있는 동안 얼마나 메시지가 쌓였을지.
지금쯤 차단했다는 걸 알아차렸을지.
회사에 전화라도 하는 건 아닌지.
걱정만 켜켜이 쌓아 올릴 뿐, 심상록은 차단 메시지함을 확인하지 못했다.
‘문제가 있다는 건 알고 있어.’
정신적으로 몰려 있다 보니 아무리 티 내지 않으려 해도 티가 났다.
걱정하는 멤버들의 눈을 모른 척하는 건, 메시지가 잔뜩 쌓여 있을 차단함을 모른 척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 너 괜찮아? 요즘 영…… 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언제든 상담해?
은근히 서로 벽을 치고 있는 선우이경이 지나가듯 물어 왔을 때, 이대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예찬을 불러냈다.
새어머니께 심상록 본인의 의견을 피력할 자신은 없다.
이미 한 번 말했다가 매몰찬 답변을 받은 순간, 의지가 꺾이다 못해 재가 된 지 오래였다.
그러니 이번엔 가장 믿고 의지하고 있는 예찬의 입으로 ‘그런 장기 휴가는 말도 안 된다’라고 확답을 받은 뒤, 그 말을 그대로 옮겨 전할 생각이었다.
‘아닌 걸 아니라고 말도 못 해서 동생 손까지 빌리고…… 진짜 얼간이네.’
하지만 예찬의 경멸 어린 눈길을 받으니 용기가 날 것 같다.
“그렇지? 지금 활동 끝나면 11월인데 그때부턴 연말 시상식 준비도 해야 하고, 계속 바쁠 텐데 휴가는 무리지.”
‘미안해, 예찬아. 그래도 이제 정신 차릴 테니까……!’
새어머니에겐 떨어지지 않았던 입이 이제야 자유분방하게 움직인다.
이걸로 큰 산을 넘을 수 있을 것 같다.
‘고마워, 예찬아!’
안갯속을 헤매는 것 같았던 일주일이 거짓말처럼 머릿속이 맑아졌다.
모든 문제가 전부 해결된 것처럼 심상록의 어깨가 한없이 가벼워졌다.
“상록이 형.”
음산한 목소리가 붕 뜬 심상록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저랑 터놓고 얘기 좀 하시죠.”
“으응?”
돌아본 예찬의 표정은 더없이 섬뜩했다.
눈빛만으로 사람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 예찬이 껄렁한 자세로 턱을 치켜들었다.
여기서 마음대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떠나게 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처럼.
심상록은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세 살이나 어린 동생이 진심으로 무서웠다.
“표정 보니까 형도 이게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거 알고 있는 거 같은데, 왜 내 입으로 듣고 싶었어요?”
“어, 그게…….”
심상록은 어렸을 때부터 남에게 새어머니에 대한 불평을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본능적으로 남들과 다른 가정사가 자신의 치부가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가족 이야기가 나온 순간 먼저 새어머니와 이복동생이 있다는 걸 털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괜히 숨기려 들었다가 상대에게 나중에 들키게 되면, 비록 계모와 이복동생이지만 단란한 가족이라고 말해 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을 테니까.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허상 속 가족을 걷어 낼 수 없는 심상록은 이번에도 말에 거짓을 섞었다.
“그게, 가족들이 원래 겨울마다 해외여행을 가거든. 부모님이 이번에도 같이 가고 싶다고 하시는데, 안 된다고 말씀드렸는데도 나만 두고 가기 아쉽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잘 말해 보면 안 되냐고 하셔서…… 하하.”
심상록의 말을 이해한 건지 예찬의 치켜 올라갔던 눈썹이 아주 조금 내려갔다.
심상록의 입에서 절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때를 노리기라도 한 것처럼 예찬의 입이 열렸다.
“형, 연습생 때도 그렇게 여행 다니셨어요?”
“어? 그땐 못 다녔지…….”
GE면 모를까, 올림포스에서 연습생이 2개월간 가족 여행을 떠난다?
그 정도면 연습생 생활을 접겠다는 뜻이었다.
‘그땐 부르지도 않으셨지만.’
심상록은 말하지 못한 사실을 입 안으로 삼켰다.
예찬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런데 데뷔를 한 지금은 가자고 한다고요?”
“음…… 그때랑 다르게 지금은 여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신 모양이야. 어른들이 생각하기엔 수험생이랑 대학생의 차이처럼 느껴지시는 거 아닐까?”
급조한 변명이지만 그럴듯했다.
심상록의 진지한 얼굴에 예찬의 눈매가 한층 더 서늘해졌다.
‘그냥 예찬이 생각도 같다는 말만 들으려고 한 거지, 이런 얘기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자신의 가족사는 다른 사람과 별로 나누고 싶지 않은 주제였으나, 남다른 가정사를 가진 예찬의 앞에선 더더욱 입에 담고 싶지 않았다.
심상록은 이 불편한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기 위해 한마디를 더 붙이기로 했다.
“아무튼, 멤버들이나 회사도 곤란해했다고 하면 이해하실 거…….”
“형.”
“응?”
“제가 터놓고 얘기하자고 했죠.”
마주친 예찬의 눈에 한심함이 그득했다면 아마 심상록은 찔끔 눈물을 쏟았을지도 모른다.
“제대로 얘기해 줘야 도울 수 있어요.”
그렇지만 예찬의 눈은 싸늘한 목소리와 달리 따뜻했다.
성가시다는 듯 가라앉은 목소리도.
삐뚜름하게 선 자세도.
예찬의 눈에 가득 묻어나는 심상록에 대한 걱정과 염려를 빛바래게 하지 못했다.
심상록은 새어머니의 연락을 받았을 때완 다른 의미로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얘는…… 지금 자기가 어떤 눈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정말로 상대를 돕고 싶어 하는 눈을 앞에 두고, 심상록은 오랜 시간 남 앞에서 꺼내지 않던 백기를 결국 들고 말았다.
“연습생이 된 건…… 아직 미성년자인 내가 집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그것뿐이라고 생각해서야.”
긴 시간 거짓말로 덧칠해 왔던 두꺼운 껍질이 부서져 내렸다.
* * *
심상록이 털어놓은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랬다.
아버지와 새어머니 사이에 동생이 태어났을 때까지도 새어머니와 심상록의 사이는 양호했다고 한다.
막 걸음마를 뗐을 무렵부터 아버지와 둘이 살았던 심상록에겐 어머니란 존재 자체가 꿈에 그리던 것이었다.
동생에게 하는 것처럼 심상록을 따뜻하게 안아 주거나 사랑스럽게 바라봐 주진 않았지만, ‘어머니’라고 칭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상록은 만족했다.
형으로서 동생을 잘 돌봐야 한다는 말도 부모의 말도 네 사람이 진정한 가족이 된 것 같아서 기뻤다고 한다.
그러나 늦둥이 동생이 자폐증을 진단받은 후, 집안 분위기가 급격히 달라졌다.
아버지는 자폐 아동을 돌보느라 지치고 예민해진 새어머니에게 전적으로 맞춰 주려 노력했고, 새어머니는 점차 노골적으로 동생을 편애했다.
거기까지였다면 그냥 아픈 동생이 있으니 조금 소외당한 형 정도로 끝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새어머니의 애먼 분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잘못된 방향으로 틀어져, 멀쩡한 심상록을 원망하고 시샘했다.
넌 동생이 불쌍하지도 않니?
분명 네가 동생의 몫까지 빼앗은 거야.
지나가듯 내뱉던 한두 마디의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상이 되었고, 심상록은 집 안에서 웃지 못하게 되었다.
새어머니는 밖에서는 그림처럼 상냥한 계모의 가면을 뒤집어썼기에, 가까운 친척들마저 그녀가 집에서 어떤 말을 뱉고 있을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른들은 심상록에게 가여운 새어머니와 동생에게 잘해야 한다고 당부했고, 어린 심상록은 그들이 옳다고 생각했기에 자신을 탓했다.
나만 건강해서, 나만 행복해서, 그래서 미안하다고.
“조금 머리가 크고 난 다음엔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깨달았지만…….”
그러나 오랜 시간 고개만 끄덕이던 상대에게 저항할 의지가 솟지 않았다.
그래서 도망치는 것을 택했다.
올림포스의 스카우터에게 명함을 받은 순간, 심상록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붙잡은 사람처럼 그 길로 아버지의 회사까지 달려갔다.
아버지를 만나자마자 입에 침도 바르지 않았는데 거짓말이 마구 튀어나왔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꿈은 아이돌이었다며, 제발 오디션을 보게 해 달라고 졸랐고, 무사히 올림포스의 연습생이 되어 집에서 나올 수 있었다.
“올림포스는 연습생 때부터 숙소 생활을 하는 경우가 잦아서 나도 거기서 생활했어. 새어머니와의 관계는 얼굴을 매일 보지 않아도 되니까 나아졌고.”
예찬은 다행이라며 웃는 심상록의 멱살을 붙잡고 뭐가 다행이냐며 짤짤 흔들어 주고 싶은 충동을 꾹 눌렀다.
‘다 듣고 하자, 다 듣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