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49)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49화
입을 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한 번 입을 열자 그간 겪었던 일들과 그때의 심정이 봇물 쏟아지듯 튀어나왔다.
심상록이 문득 ‘이런 것까지 말하는 건 좀 그런가?’ 고민하는 기색이 보일 때마다 예찬은 추임새를 넣었다.
“와…… 진짜 힘들었겠다.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요?”
적절히 더 말해 보라고 장작을 넣었다는 의미다.
“새어머니는 그대로 나가 버리시고 아버지가…….”
요 일주일간 심상록은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한 상태였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한계에 내몰렸던 심상록은 속절없이 예찬의 페이스에 휘말려 점점 더 사적인 영역까지 털어놓고 있었다.
“올림포스에서 나온 것도 어머님 때문이었다고요.”
“으응. 사실 올림포스에 있을 때, 열심히 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셨는지 연습생일 때 회사 SNS에 얼굴이랑 프로필이 공개됐었거든.”
예찬도 들어 본 적이 있다.
데뷔할 싹수가 보이는 연습생들을 간판처럼 내걸어 외적으론 미리 팬덤을 확보하고, 내적으론 연습생끼리의 경쟁을 과열시키는 올림포스의 오랜 전통이었다.
‘그래서 공개 연습생이었던 심상록이 올림포스를 나간 걸로 꽤 말이 많았다고 했지. 츄마프 때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고.’
민망한 기색으로 심상록이 말을 이어 갔다.
“새어머니 친구의 따님이 올림포스 팬이었나 봐. 그래서 새어머니께 사인 좀 받아 달라든지, 같이 사진 좀 찍으면 안 되는지 계속 졸랐는데 올림포스는 연습생 때부터 그런 건 칼같이 막고 있거든.”
‘확실히 올림포스는 다른 기획사보다 그런 점에서 깐깐하지.’
남자 아이돌만 키우는 것으로 유명한 올림포스는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도 전원 남자만 뽑을 정도로 아이돌을 철저하게 이성과 분리시켰다.
시대착오적이라는 말이 나올 법한 방식이었으나, 그 방식을 지지하는 팬들은 아주 많았고, 올림포스 소속이라는 것만으로 새로 데뷔하는 그룹까지 전부 응원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안 된다고 거절했더니, 그럴 거면 아이돌 연습생은 왜 하냐고, 당장 그만두라고 하시더라고.”
심상록이 곤혹스러운 듯 어깨를 움츠렸다.
어떻게 된 건지 알 만했다.
사진이든 사인이든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를 뻥뻥 쳐 놨는데, 막상 심상록이 안 된다고 거절하니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지.
예찬은 지난 수십 년간 그런 사람들을 꽤 많이 봐 왔다.
“데뷔조에 들어가서 계약서까지 받은 상태였는데, 새어머니가 절대 안 된다며 회사에 자꾸 전화를 하시고, 아버지도 어머니가 싫어하는데 꼭 해야겠냐고 하셔서…… 그냥 그만뒀지 뭐. 그래도 덕분에 너희랑 레굴루스로 데뷔하게 된 거니까 전화위복인가?”
심상록은 웃었지만 예찬은 차마 웃을 수 없었다.
“그러고 집에 들어갔는데, 아무래도 몇 년간 서로 떨어져 살다 보니 상엽…… 동생이 너무 어색해하더라고. 그게 신경 쓰였는지 아버지가 집을 구해 주셔서 따로 살고 있던 거야.”
‘그냥 자기가 불편해서 내보낸 거 아닌가?’
심상록의 아버지가 현 부인과의 단란한 가정에 빠져 전 부인이 낳은 심상록을 치워 버렸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은 예찬에겐 이렇게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몇 번 방문한 적 있는 심상록의 커다랗고 깨끗한 자취방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퇴근하는 길에 종종 들러서 청소해 주신다고 했던가? 하…… 살 집을 마련해 주고, 기분 내킬 때 가끔 들르는 걸로 부모 노릇은 다 했다고 정신 승리라도 했나 보지?’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예찬은 엄한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스렸다.
‘심상록은 죄가 없다. 호구는 죄가 아니다. 아니, 호구라기보다 이건 어린애를 세뇌한 거지. 아…… 열받네.’
빌어먹을 부부의 면상이 어떻게 생겨 먹었나 한번 보고 싶어질 지경이다.
‘보는 걸로만 끝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아, 아버지 쪽은 츄마프 생방 때 봤었군.’
점잖게 생긴 양반이 하는 짓은 양아치와 진배없었다.
‘새어머니와 심상록은 이놈 없으면 그냥 남남 아니냐고. 사람을 가족이란 틀로 묶었으면 책임을 져야지, 애한테 힘든 걸 다 떠맡겨?’
물론 새어머니란 작자도 문제가 많았다.
‘쫓아냈다가 불렀다가, 아주 제멋대로네.’
레굴루스의 인기가 심상치 않으니 심상록을 집으로 불러들여 쥐락펴락할 속셈이 빤히 보였다.
이대로 심상록이 차단을 풀지 않으면 NJ에도 충분히 연락할 만한 사람이었다.
‘얘기를 들어 보니 별 같지도 않은 체면을 중시하는 타입 같은데…… 그나마 인터넷에 글을 쓰진 않을 것 같아서 다행이군.’
어쨌든 이대로 둘 순 없었다.
예찬의 침묵이 길어지자 눈치를 살피던 심상록이 어색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 얘기하다 보니까 좀 불평하는 것처럼 돼 버렸는데, 사실 새어머니가 이해되긴 해. 상엽이 때문에 많이 힘드실 테니까. 아버지도 그런 새어머니랑 나 사이에서 힘드셨을 거고…….”
“아니, 그걸 이해…… 하아…….”
예찬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허탈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심상록이 하는 말이 치부를 감추기 위한 변명이 아닌, 진심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심상록은 원망하는 것보다 이해하는 것을 택한 것이었다.
아무도 받아 주지 않는 원망을 계속하며 자신을 갉아먹는 것보다 혼자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분명 더 쉬웠으리라.
‘부모란 작자도, 주변의 어른들도, 그렇게 할 때마다 착하다고 칭찬했겠지.’
그렇게 주변에서 원하는 착한 아이를 계속 연기하면서, 혹시 누군가 불쾌해하기라도 하면 잔뜩 움츠려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았을 것이다.
악성 댓글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성격이 대체 어디서 기인했는지 알 것 같아서 분했다.
예찬은 심상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상록이 형.”
“응?”
“화내도 돼요. 아니, 화내야 해요.”
심상록은 무언가 말하려고 입술을 달싹거리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지금까지 봐 온 심상록은 지극히 상식적인 인물이었다.
예찬은 조곤조곤 심상록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런 말을 하게 돼서 정말 유감이지만, 형은 자기 일에 객관성을 잃었어요. 만약 나나 다른 멤버들이 가족에게 형처럼 대우받고 있다고 한다면, 형은 절대 그 가족을 이해한다고 말 안 해요.”
“그건…….”
“그거참, 안 됐다. 그래도 너희 가족도 힘들었을 거다. 그렇게 말 안 하잖아요, 절대.”
“…….”
“저는 화가 나요.”
심상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예찬이 어깨를 짚은 손에 힘을 빼고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아무도 형한테 화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게.”
심상록은 여전히 흔들리는 눈을 한 주제에 눈썹을 찡그리며 웃었다.
“……그야 아무한테도 말을 안 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아무도 들어 주려고 하지 않았겠죠.”
예찬은 선후 관계를 확실히 했다.
어린 시절부터 아무도 심상록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에, 심상록은 말하는 걸 포기한 것이다.
뒤이어 예찬은 자신 또한 심상록의 주변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시인했다.
“형이 가족에 대해 숨기려고 한다는 거, 저도 솔직히 몇 번 느꼈어요. 이유가 있으니 숨기는 거겠지, 남의 가족 일에 끼어들어서 좋은 꼴 못 본다, 괜히 캐물었다가 형이 더 불편해질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넘겼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전부 변명이네요.”
예찬은 심상록이 아닌 스스로에게 들으라는 듯 말했다.
“그래서 이젠 안 그러려고요.”
목소리를 한결 가볍게 바꾼 예찬이 심상록의 어깨를 두들겼다.
“지금부터 세 가지 선택지를 드릴게요.”
예찬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손가락을 하나씩 세워 가며 말했다.
하나.
예찬에게 가족들의 번호를 넘겨서 상황을 해결하고 앞으로 평생 예찬에게 아기 새처럼 케어를 받는다.
둘.
차단을 풀고 더 이상 사람 휘두를 생각하지 말라고 가족들에게 제대로 전한다.
셋.
찜찜함은 언젠가 잊히리라 믿고 번호를 바꾼다.
심상록은 황당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두 번째 말고는 전부 이상하지 않아?”
“두 번째가 제일 힘들걸요.”
재빠른 대답에 심상록이 또다시 곤란한 듯 웃었다.
“첫 번째가 정말 궁금하긴 한데…… 그래도 두 번째로 할게. 너한테 털어놓으니까, 정말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드네.”
예찬이 한 것이라곤 그저 이야기를 들어 주고 몇 마디 거든 것뿐인데도, 심상록의 마음에 작지 않은 파문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예찬은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도 혼자 하라는 거 아니에요.”
혼자 해결한다면 지금까지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같이해요.”
“예찬이가 나를 응석받이로 만들려나 보구나.”
심상록은 정말 오래간만에 구김살 없이 웃었다.
* * *
예찬은 이 이야기를 다른 멤버들에게 털어놓을지 아닐지는 심상록이 내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말했다.
잠시 고민하던 심상록은 여러모로 걱정을 시켰으니 짧게나마 멤버들에게도 사정을 털어놓겠다고 말했다.
예찬은 곧장 별자리 좌담을 개최했다.
“……해서, 그런 일이 있었어. 개인적인 일로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해.”
멤버들의 반응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니, 형이 왜 미안해요!”
“와, 와, 와씨…….”
다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눈치였으나, 차마 남의 부모에게 험한 말을 뱉을 순 없기에 제자리에서 빙빙 돌며 탄식만을 쏟아 내고 있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제 편을 들어 주는 멤버들의 모습에 심상록이 쑥스러운 듯 뺨을 긁적였다.
“음, 그래서 부모님께 연락은 언제쯤 드릴 생각이야?”
“전 솔직히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하예찬에게 맡기면 분명 깔끔하게 해결을…….”
“채은성, 넌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루벨 엔터에서의 일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했다, 하예찬.”
예찬과 채은성의 말씨름을 바라보던 심상록이 입을 열었다.
“오늘 바로 하려고.”
“그렇게 빨리요?”
“예찬이 너를 본받아 보려고. 하겠다고 결심했으면 빨리 해야지.”
의젓하게 입술을 양옆으로 당긴 심상록이 이내 어리광을 부리듯 덧붙였다.
“옆에 있어 줄래?”
“당연하죠!”
멤버들은 이번에도 곧장 대답했다.
“내용도 대신 써 드릴 수 있어요! 패륜적이지 않게! 그렇지만 단호하게!”
“응, 그건 마음만 받을게.”
그 후 심상록은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편지에 가까운 긴 메시지를 작성했다.
어깨너머로 보인 메시지에는 오늘 심상록이 이야기했던 이런저런 일들과 감정들이 조리 있게 나열되어 있었다.
심상록은 중간중간 숨이 가빠질 때면 곁을 지키고 있는 멤버들을 슬쩍 바라보고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멤버들은 누구 하나 자리를 비우거나 심상록을 재촉하는 일 없이 조용히 기다렸다.
“다 썼어.”
메시지의 수신인은 심상록의 아버지였다.
새어머니의 번호는 일단 차단을 풀지 않기로 했다.
메시지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돌아왔다.
“음…… 읽어 볼래?”
여상한 표정으로 메시지를 확인한 심상록이 예찬에게 스마트폰을 건넸다.
숨을 죽이고 있던 멤버들이 예찬의 옆으로 다닥다닥 달라붙었다.
‘…….’
메시지는 심상록의 것보단 한참 짧았지만 그래도 제법 길었다.
네가 그렇게 힘든 줄은 몰랐다, 아버지가 미안하다, 진작 말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어머니도 그럴 의도는 아니었을 거다, 앞으론 너에게 그런 부탁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 그래도 우린 가족 아니냐, 너그럽게 풀고 앞으로는 그런 일 없게 서로 잘하자.
말투만 점잖을 뿐 숨을 턱턱 막히게 만드는 메시지였으나 심상록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했다.
“……괜찮아요?”
“응, 이상하게 괜찮네. 내가 생각보다 아버지께 기대가 없었나 봐. 그냥 내 얘기를 한 것만으로 만족스러워. 일단 새어머니한테 더 시달릴 일도 없게 해 주신다고 하고, 또…….”
심상록은 고개를 기울이고 잠시 고심하더니 말을 이었다.
“스물세 살이면 이제 부모에게서 독립해도 될 나이잖아.”
“이제 새 가족도 있고요.”
“……!”
다른 누구도 아닌 강해솔이 저런 말을 자진해서 꺼냈다는 게 무척이나 놀라웠다.
멤버들의 시선이 몰리자 강해솔은 목덜미까지 빨갛게 물들이고 입술을 삐죽거렸다.
“제가 틀린 말 했어요?”
“아니, 너무 감동이라 그렇지! 해솔이가 말 잘했다!”
“레굴루스는 가족이죠!”
“가족! 패밀리!”
“9인 가족이면 완전 대가족이네요.”
심상록은 왁자지껄해진 멤버들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며 옆에 앉은 예찬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걸로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점점 더 괜찮아질 것 같아.”
예찬은 시름이 걷힌 심상록의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남의 일이든 뭐든 끼어들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심상록의 진심 어린 목소리가 예찬에게 닿았다.
“가족들이 같이 있으니까.”
분명 그럴 것이다.
그래, 그렇게 만들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