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50)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50화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요 아이돌 방영일이 찾아왔다.
‘근데 왜 난 여기 있냐고…….’
부모님의 긴급 호출에 본가로 허겁지겁 달려온 프리랜서 정모 씨는 컴퓨터를 사용해야 하는 여러 가지 업무를 대신 해결해야 했다.
‘전혀 급한 것도 아니었잖아. 내일 왔어도 완전 널널했잖아…….’
정모 씨는 거실 벽면에 걸려 있는 시간을 확인했다.
레굴루스가 나오는 쇼 챌린저는 이미 끝났겠지만, 수요 아이돌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을 시간이었다.
중간에 잠깐 쇼 챌린저를 보고 일을 계속할까 고민했었지만 금방 그 생각을 접었다.
‘엄마가 옛날부터 나 덕질하는데 잔소리를 얼마나 했다고…… 다 큰 지금에야 뭐라고 하겠냐만은, 일하는 중간에 보긴 좀 그렇단 말이지.’
너 아직도 그런 거 좋아하냐고 물어 오면 기분이 바닥을 칠 것 같았다.
그리고 정모 씨가 오늘 처리해야 할 일을 전부 끝낸 지금.
수요 아이돌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다 끝났으면…… 좀 봐도 되나?’
정모 씨의 눈이 홀린 듯 TV를 향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봐도 괜찮겠지만, 집에 들어올 때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TV가 다시 보니 너무도 유혹적이었다.
‘크고 눈부시다……!’
얼마 전에 TV를 바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저 화면으로 보면 분명 끝내주겠지? 풀샷으로 잡아도 얼굴이 다 보이겠는데.’
힐끗 눈을 옆으로 돌리자 엄마가 드라마 재방송을 지루한 얼굴로 시청하고 있었다.
‘아, 저거 이서후 나오는 거다. 전에 봤던 거니까 나 TV 좀 본다고 해?’
조금 전까진 분명 아직도 그런 거 좋아하냐는 소리를 들으면 타격이 클 것 같았는데, 저 커다란 TV를 차지할 수 있다면 그 정도 싫은 소리쯤 감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녀왔습니다.”
그때 현관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모 씨는 놀란 얼굴로 거실로 들어오는 동생을 바라보았다.
“아, 누나 왔네?”
“너야말로 이 시간에 웬일이야? 야자 안 해? 학원은?”
혹시 시간을 착각했나 싶어서 다시 확인했지만, 아직 오후 일곱 시 이십 분밖에 되지 않았다.
대답은 동생 대신 엄마 쪽에서 나왔다.
“아름이 너는 오랜만에 동생을 봤으면서 그렇게 쥐잡듯이 잡고 그러니? 꼭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오늘 하루만 일찍 들어오기로 했었어.”
“뭐? TV를 보러 일찍 들어왔다고? 혹시 전에 좋아한다던 아이돌 때문이야? 내가 학생이면 일단 공부부터 잘……!”
“정아름! 엄마가 허락한 거라니까? 왜 열심히 공부하는 동생 기를 죽이려고 해!”
정모 씨는 억울했다.
몇 달 전엔 막 고등학생이 된 동생이 뒤늦게 아이돌에 빠져 버려서 걱정되니까 와서 혼쭐을 내주라더니.
오늘은 또 왜 입 싹 씻고 덕질을 응원한단 말인가.
‘나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아이돌의 이응만 말해도 쥐잡듯이 잡았으면서!’
모녀 사이에 흐르는 살벌한 기운을 감지한 동생이 재빨리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누나, 전에 누나한테 얘기 듣고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오늘은 9월 모의고사 성적이 오르면 하루 힐링 데이를 갖기로 해서 일찍 들어온 거야.”
마침 시기적절하게 보고 싶었던 프로그램이 오늘 방영된다고 덧붙인 동생은 곧장 손을 씻고 돌아왔다.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동생에게 리모컨을 넘겼다.
‘와, 나 고등학생 때는 0교시에 11시까지 야자했는데…….’
여러모로 억울한 기분이 불쑥 고개를 내밀려다가 뚝 꺾였다.
[내 몸에 비타민을 심어 봐! 꼭 맞는 나만의 맞춤 비타민, 비타시드!]“휴, 아직 시작 안 했네.”
동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익숙한 CF가 흘러나오는 TV 화면 우측 상단엔 곧이어 방영할 프로그램인 ‘수요 아이돌’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
정모 씨는 TV와 동생의 얼굴을 몇 번이나 번갈아 바라보았다.
시선이 느껴졌는지 동생이 불안한 얼굴로 정모 씨를 돌아보았다.
“……왜 그래?”
“……보고 싶다는 프로그램이 수요 아이돌이었어?”
“어어, 누나도 아는구나.”
동생이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다마다.
정모 씨는 자신의 일반인 코스프레가 아주 기가 막히게 효과가 좋았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어쨌든 지금은 좀 더 확인할 것이 남아 있었다.
“너 저 프로그램 팬이야?”
“응?”
“그러니까 매주 챙겨 보는 프로그램이냐고.”
동생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거리다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아아, 그런 건 아니고. 매주 나오는 아이돌이 다르거든. 내가 응원하는 아이돌이 나오는 날만 챙겨 보는 거야.”
정모 씨를 K-pop 문외한으로 취급한 동생은 최대한 일반인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정모 씨는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레굴루스야?”
“어어? 누나가 그걸 어떻게…… 앗!”
동생도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점점 눈이 커졌다.
그래.
내가 어떻게 알았겠니.
나도 오늘 수요돌에 레굴루스가 나온다는 걸 아는 덕후니까 그렇지.
“누나가 복숭아라니…….”
“나야말로 네가 상큼발랄한 여돌에게 빠진 거라고 생각했는데…… 복숭아라니 되게 놀랍다.”
이번엔 과일을 들고나오던 엄마가 의아해졌다.
“아름이 복숭아 먹고 싶대? 다운이도?”
“누나는 언제부터 좋아했어? 혹시 누나도 새벽이 좋아해?”
정모 씨의 띠동갑 차이가 나는 동생이자 한때 배새벽과 같은 반이었던 정다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 * *
[네, 이번 주 아이돌은 K-pop을 접수하러 온 NJ의 왕자님, 레굴루스입니다!]화려하지만 어색한 팡파르 CG가 화면 곳곳에 터지며 레굴루스가 스튜디오로 입장했다.
동시에 실시간 채팅창의 댓글도 배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이날이 와 버렸군.’
오지 않았으면 하는 날도 결국 오고야 만다.
과연 자신이 부렸던 추태가 어떻게 화면에 담길지 아찔한 기분으로 TV 앞에 앉은 예찬과 달리, 오랜만에 숙소에 붙어 있는 신 PD는 활기가 넘쳤다.
“어디 얼마나 재미있게 찍었는지 확인하겠어요!”
CBC 측에서 비하인드 촬영을 금지했기 때문에 전아체에 이어 수요돌 촬영에도 참여하지 못한 신 PD는 의욕이 하늘 끝까지 솟아 있는 상태였다.
‘일을 못 하게 하니 더 불타오르는 건가…… 기억해 뒀다가 써먹어야지.’
[자자, 누구의 프로필을 다시 써 줄지 쪽지를 뽑으셨죠? 그럼 가장 왼쪽에 앉아 있는 상록 씨부터 사이좋게 ‘서로 소개 코너’를 시작해 봅시다!] [아, 네! 저는 이경이, 아니, 이경 씨를 뽑았는데요…….] [그러면 상록 씨의 이경 씨 소개를 들어 볼까요!]녹화 때와 마찬가지로 가장 먼저 심상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찬은 태블릿으로 시선을 내려 댓글들을 확인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하필 이경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운명의 장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악마들아 자꾸 맏형즈 어색하다고 몰아가지 마라!!
└ 어색해서 어색하다고 하는데 어색하다고 하지 말라고 하시면……
– 어색한 어색즈를 사랑해
‘역시 이런 건 팬들이 더 예민하군.’
둘 다 그렇게 눈에 띄게 어색하게 군 적은 없는 것 없었지만, 팬들 사이에선 동갑내기 맏형 둘이 어색한 사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퍼져 있었다.
‘오히려 멤버 중에 전혀 눈치 못 챈 놈들이 있지. 채은성이라든지, 배새벽이라든지, 범세혁이라든지, 범세혁이라든지, 범세혁 같은…….’
그때 주방에서 부산스럽게 굴던 선우이경이 쟁반을 들고 잰걸음으로 돌진해 왔다.
“아슬아슬하게 내 차례에 안 늦었다!”
“이미 시작했으니까 늦은 거 아니야?”
“이 정도면 세이프지!”
심상록의 말에 선우이경이 씩 웃었다.
선우이경과 마찬가지로 쟁반을 들고 다가온 강해솔이 뾰루퉁하게 덧붙였다.
“그렇게 시간을 못 맞출까 봐 걱정되면 앞으론 이렇게 아슬아슬한 시간에 간식을 만들지 마요. 같이 만드는 사람이 더 초조해지거든요?”
“해솔 님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심상록과 선우이경, 거기에 강해솔까지 더해지자 금세 사방이 시끄러워졌다.
속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예찬은 입꼬리를 올렸다.
지난 ‘가족’ 선언 이후, 어쩐지 맏형 둘을 포함해 멤버들 모두 전보다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사실상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관계를 정의하는 단어를 하나 입 밖으로 냈을 뿐인데 말이다.
‘말이라는 건 신기하네.’
겨울 앨범은 작곡도 작곡이지만, 새삼 작사에 공을 들여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사이 심상록이 소개하는 선우이경의 프로필, 예찬이 소개하는 강해솔의 프로필, 범세혁이 소개하는 정의탁의 프로필이 지나갔다.
범세혁의 차례가 끝나기 무섭게 정의탁은 분한 얼굴로 범세혁을 쏘아보았다.
“아니, 형은 기본적인 것도 못 외우고 있으면 어떡해요! 어떻게 생일 말고 맞는 게 하나도 없어요?! 저한테 관심이 있긴 해요?”
“앗, 또 화내는 거야?”
화는 촬영 때 이미 다 낸 거 아니냐며 범세혁이 샐샐 웃었다.
정의탁은 답답한 듯 제 가슴을 두들겼다.
“진짜 복숭아들의 기대를 이렇게 저버리고……! 불화설 돌아도 난 몰라요!”
“헤헤.”
정의탁과 범세혁이 츄마프 시절부터 같은 소속사로 묶였었던 만큼, 두 사람이 다른 멤버보다 각별하리라 생각하는 팬들이 많긴 했다.
그렇지만 범세혁의 캐릭터가 워낙 확실하다 보니, 절친한 정의탁의 키나 혈액형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정도로 두 사람의 불화를 의심하지는 않을 터였다.
‘쟤가 좀 나사 빠진 놈인 것도 팬들 사이엔 유명한 일이니까.’
범세혁이 백과사전처럼 멤버들의 프로필을 읊어 대면 그쪽이 더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그런데 범세혁…… 대체 어쩌다 이런 이미지가 된 거지? 아니, 그보단 예전엔 대체 어떻게 이런 이미지를 숨겼는지 궁금해해야 하나?’
예찬이 아직 첫 리셋을 하기 전, 연습생 신분으로 츄마프를 통해 데뷔를 지켜봤을 때도.
여러 번의 리셋을 통해 아이돌 선후배로 마주쳤을 때도 범세혁에게지금처럼 맹한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팬들의 평가도 좀 더 완벽하고 금욕적인 왕자님 느낌이었지?’
“형, 먹는 건 좋은데 얼굴이 엉망이잖아요.”
“어, 그래? 어디 묻었는데?”
“어디라고 할 수가 없어요. 그냥 세수를 하는 게 빠르겠어요.”
정의탁의 지적에 간식을 먹던 범세혁이 또다시 헤실거리며 웃었다.
예찬은 오랫만에 자각한 위화감에 눈을 가늘게 떴다.
‘대체 뭐가 달라졌길래 이런 얼빠진 왕자가 탄생한 거지……?’
“응? 예찬아,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 * *
“뭐? 합숙소에 사생팬이 들이닥쳐서 어깨를 찔렀다고? 어디 봐봐!”
“아니, 나 말고! 세혁이!”
주어는 듣지도 않고 당장이라도 티셔츠를 벗기려는 하경을 막으며 범세혁의 이름을 외쳤다.
“범세혁이라면, 너한테 친절하게 잘 대해 준다는 그 1등 친구?”
“으응…….”
“그렇지만 그 사생은 네 팬이었다며.”
“으응, 세혁이가 같이 있었는데 나를 밀치고 대신…….”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구깃구깃해진 목덜미를 문지르며 대답했다.
하경의 얼굴이 대번에 심각해졌다.
“크게 다친 거야?”
“잘 모르겠어…… 스태프들이 바로 데려갔는데, 일 크게 번지지 않게 하려면 입단속 제대로 하라고 해서…….”
“뭐?”
살벌한 형의 되물음에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 바짝 긴장이 됐다.
“나도 그건 좀 아니지 않냐고 말해 봤는데…… 세혁이도 그러라고 해서…… 그 뒤엔 바로 합숙이 끝나 버려서,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도 못 하고…….”
“하…… 그거 그만두면 안 되겠어? 전부터 느꼈는데, 방송이 인기가 있을진 몰라도 정말 최악이야.”
“……하경이 형, 그래도 한번 하기로 한 거니까, 끝까지 밀어줘.”
가만히 눈을 내리깔고 이야기를 듣던 예찬이 입을 열었다.
잠시 예찬과 눈을 마주친 하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고 동생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서, 그 세혁이란 친구는 어디 사는데? 동생 대신 다쳤는데 감사 인사라도 제대로 하러 가야지.”
“형…… 고마워.”
물기에 젖은 목소리가 멀어져 간다.
눈을 뜨고 확인한 달력은 9월 22일 목요일.
엔카운트다운이 방영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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