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51)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51화
수요 아이돌 레굴루스 편은 마지막까지 이클립틱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유쾌하게 끝이 났다.
각자의 프로필을 소개하는 서로 소개 코너나 각종 미니 게임도 반응이 좋았지만, 역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것은 랜덤 플레이 댄스였다.
특히 겉가죽만 보아선 차가운 완벽주의자처럼 보이는 하예찬의 하찮은 모멘트가 예비 복숭아들을 대거 양산해 냈다.
– 황도들아 하예찬 원래 이런 캐릭터임?
– 얘 팀에서 몸 개그 담당이야??
– 얘들아 레굴루스 원래 제일 하찮은 사람이 리더인 팀이니?
– 와 얼굴이랑 이름만 알았는데 완전 반전이다ㅋㅋㅋㅋ
레굴루스의 팬 커뮤니티에 찾아온 예비 복숭아들의 질문에 팬들은 뿌듯한 얼굴로 예찬의 츄마프 시절은 물론 레굴루스 데뷔 후 심상찮은 하찮력을 뽐내는 영상들을 링크로 남겼다.
다음 날 스케줄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예찬은 음방 출근길에 그런 팬들의 반응을 확인했다.
“…….”
좋아해야 할지 아니면 슬퍼해야 할지 모를 모순적인 기분이었다.
* * *
“자, 이번에는 이번 주 1위 후보 두 팀을 모셨습니다.”
“아주 뜨거운 신인들이 만났습니다! 레굴루스와 가온다, 인사 부탁드립니다!”
음악 방송 특별 MC를 맡은 범세혁이 멘트를 끝내고 바로 예찬의 옆으로 붙어 섰다.
범세혁이 자세를 제대로 잡은 것을 확인한 예찬이 먼저 구호를 선창했다.
“둘, 셋.”
“빛나는 당신의 별! 안녕하세요, 레굴루스입니다!”
“하나, 둘, 셋!”
“다라마바사가나, 가온다! 안녕하십니까!”
레굴루스의 힘찬 인사에 이어 가온다도 질세라 목소리를 높였다.
“두 팀 다 인사부터 신인의 패기가 물씬 느껴지네요.”
범세혁과 함께 오늘 특별 MC를 맡은 리스피릿의 정찬양은 ‘신인’에 강세를 넣으며 콕 집어 예찬을 바라보았다.
전아체 때 예찬이 전화를 걸었던 이후로 목소리를 듣는 것은 처음이다.
‘빡치네.’
하는 짓 하나하나가 재수 없기 쉽지 않은데, 그 어려운 걸 저놈은 참 쉽게 해낸다.
정찬양의 말이 끝나자 범세혁이 환하게 웃으며 뒷말을 이었다.
“츄마프 출신의 두 팀이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도 1위 후보로 만났는데요. 오늘 1위를 하면 앵콜 무대에서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 주실지 준비하신 게 있으실까요?”
“네, 저희 레굴루스가 만약 1위를 하게 된다면, 물구나무서서 한 소절씩 이어 부르기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우휘겸이 진지한 얼굴로 미리 정해 둔 1위 공약을 선언했다.
할 수 없는 것을 공약으로 세울 수는 없기에 어제 숙소에서 모두 연습을 마친 상태였다.
‘무슨 서커스단이냐고 정의탁은 싫어했지만.’
그 정의탁도 물구나무서서 한 소절 정도는 어찌어찌 부를 수 있었다.
심지어 배새벽은 세 곡도 연달아 부를 수 있을 것처럼 안정적인 컨디션을 자랑했다.
“저희 가온다는 오늘 1위를 하면 앵콜 무대에서 릴레이 댄스를 추겠습니다!”
가온다의 메인 보컬 박나길도 지지 않겠다는 듯 힘차게 외쳤다.
물론 1위는 이변 없이 레굴루스였다.
“레굴루스, 축하드립니다!”
예찬은 티 없이 맑은 얼굴을 한 정찬양이 내미는 트로피를 건네받았다.
‘가증스러운 놈.’
그렇게 생각하는 예찬의 얼굴에도 구름 한 점 없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번 활동으로 받은 일곱 번째 1위 트로피였기에 오늘은 우는 멤버가 없었다.
“이제 공약 이행해야죠.”
“나 마이크 좀 들어 줘.”
전주가 나오는 사이 짧게 이야기를 나눈 멤버들은 자신의 파트가 다가오자 차례대로 물구나무를 섰다.
[Keep…… 읍!]그러나 한 가지 멤버들이 간과했던 것은 숙소에서 입고 있던 잠옷과 달리, 오늘 입은 상의는 품이 훨씬 넉넉했던 것이었다.
특히 혼자 무대 의상이 아니라 MC용 의상을 입고 있던 범세혁이 가장 그 차이가 심했다.
중력이 이끄는 대로 저항 없이 흘러내린 상의가 범세혁의 얼굴을 가렸다.
“……!”
물구나무선 채 비틀거리던 범세혁이 그대로 넘어졌다.
“세혁아!”
그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범세혁의 이름을 외친 정찬양이 무대 위로 뛰어들었다.
“괜찮아? 어깨는?”
마이크를 차고 있지 않았기에 레굴루스 멤버들에게나 들릴 크기의 목소리에 걱정이 잔뜩 묻어났다.
예찬은 올라간 범세혁의 옷을 재빨리 수습하며 정찬양의 얼굴을 살폈다.
인간미가 철철 흐르는 그 얼굴엔 온통 걱정이 가득했다.
“어, 네. 괜찮습니다.”
바닥에 주저앉은 범세혁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갑자기 정신이 든 것처럼 벌떡 일어난 정찬양이 손등으로 입가를 가렸다.
떨리는 눈동자에 혼란스러움과 당혹감이 고스란히 배어 나왔다.
“아, 괜찮다니 다행이네요. 순간 너무 놀라서…… 앵콜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정찬양은 마치 비련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대로 무대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세혁이 진짜 괜찮아?”
“네, 저 잠깐 마이크 좀.”
범세혁은 심상록이 들고 있던 핸드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복숭아들! 저 괜찮아요!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범세혁이 손을 붕붕 흔들고 나서야 팬석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팬들과 마찬가지로 숨 쉬는 것도 잊고 있던 정의탁이 조심스레 물었다.
“계속할까요?”
“어어, 그래야지.”
예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멤버들은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상의를 바지에 집어넣은 다음 물구나무를 서기로 했다.
다시 물구나무를 서려는 멤버들을 팬들이 조마조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어쩐지 결연한 눈빛을 하고 있던 배새벽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팬들은 천하장사 막내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게 되었다.
“배새벽!”
“새벽아아아!”
배새벽은 가라앉은 분위기를 쇄신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남은 앵콜 동안 물구나무를 선 채로 팔 굽혀 펴기를 시작으로 여러 묘기를 선보였다.
멤버들도 막내의 재롱에 조금 전 있었던 사고를 잊고 웃음을 터트렸다.
예찬 또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평온을 가장한 얼굴과 달리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분명 어깨라고 했지.’
과거, 데뷔를 목전에 두었던 시기에 범세혁의 맨몸을 보고 느꼈던 것과 똑같은 위화감이다.
잠시 잊고 있었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 가슴이 아니라 어깨가 깨끗해서 본 거거든!
– 지금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 상처가 없어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때 난 당연히 범세혁의 왼쪽 어깨에 상처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어.’
분명 범세혁은 다친 적이 없건만, 예찬은 매끈하기만 한 범세혁의 왼쪽 어깨를 보고 이상하다고 느꼈었다.
그리고 조금 전 하얗게 질린 정찬양이 바라보았던 것 또한 틀림없이 범세혁의 왼쪽 어깨였다.
‘……대체 뭐지?’
불쾌한 기시감이 끈적하게 머리 위로 부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 * *
이 묘한 현실과 기억의 괴리에 대해 물어볼 수 있는 것은 빌어먹을 정찬양뿐이었다.
사적으로 얼굴을 마주 보는 게 고역이긴 하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앵콜 무대 끝나면 붙잡아서 뭐 아는 거 있냐고 물어봐야겠어.’
그렇게 큰마음을 먹었건만 정찬양은 협조해 주지 않았다.
“찬양 씨는 급한 일이 있다며 아까 돌아가셨는데요?”
“아, 네.”
정찬양의 대기실을 정리하던 스태프의 말에 예찬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물러서야만 했다.
‘전화나 메시지로 연락을…… 아니, 아까 분위기를 보면 제대로 얘기할 리가 없지.’
직접 얼굴을 보고 말해도 딴청을 피울 거짓말쟁이를 상대로 전화나 메시지로 원하는 정보를 끌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예찬이 왔어?”
다시 레굴루스 대기실에 들어가자 무대 의상을 갈아입고 있는 멤버들이 아는 체를 해 왔다.
예찬은 재빨리 그 사이에서 범세혁을 찾았다.
“범세혁은요?”
“병원에 들렀다가 숙소로 간다고, 인섭이 형이 먼저 데리고 나갔어요.”
범세혁은 자신이 멀쩡하다고 주장했지만 진단은 의사가 내린다는 배새벽의 말에 얌전히 매니저를 따라나섰다고 한다.
숙소로 돌아와 팬 커뮤니티를 확인하자 역시나 오늘 있었던 사고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앵콜 무대가 중간까지 방송을 탄 나머지, 범세혁이 넘어진 것부터 정찬양이 무대에 난입한 모습까지 그대로 노출이 된 모양이었다.
– 정 선배 솔직히 지난 활동 땜에 비호감이었는데 오늘 좀 감동이었음;;;
└ 나도;;; 잘 생각해 보니까 내가 증오해야 하는 건 리ㅅㅍㄹ이 아니라 개바디들이었던 것임
– 울 애기 호랭이 오늘 넘어진 건 너무 가슴 아픈데 선배들한테도 귀염받는 거 보니까 얼마나 사랑둥이일지 알 것 같음ㅠㅠㅠ 호랑둥이 아프지 말자 ㅠㅠㅠㅠ
– 정 선배 무대로 뛰어 올라올 때 솔직히 선배미 있었다 ㅋㅋㅋ
└ ㅇㅈ
– 둘이 MC 볼 때도 정선배 눈에서 꿀 떨어지지 않음?
└ ㅇㅇ 일단 둘이 그림체가 비슷해서 그런가 케미 좋았음
└└ 님 그림체 얘긴 여기서 언금임
└└└ ㅋㅋㅋㅋㅋㅋ 또라이들이 세혁이가 정 선배 따라 했다고 지X 하던 거 생각나서 ptsd 올 것 같음ㅋㅋㅋㅋㅋ
‘정 선배…… 정 선배라니……!’
한결 호의적으로 변한 정찬양에 대한 호칭에 예찬은 뒷골이 당겼다.
이클립틱 사이에서 정찬양의 주가가 오른 것이 너무 갑갑했지만, 차마 이클립틱들을 원망할 수는 없었다.
‘모든 건 정찬양 때문이다……!’
예찬이 홀로 애먼 가슴을 두들기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범세혁이 돌아왔다.
“병원에서 뭐래?”
“멀쩡하대!”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들어온 범세혁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어깨를 쭉 폈다.
“어우, 다행이다. 일단 씻고 와. 옷도 못 갈아입고 병원 다녀오느라 찝찝했겠다.”
“세혁아, 오늘 일일 MC 하느라 그렇지 않아도 힘들었을 텐데 여러모로 고생했어.”
형들의 격려에 범세혁이 실실 웃더니 ‘네!’하고 우렁찬 대답을 남기고 욕실로 들어갔다.
범세혁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채은성이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그 옆에 달라붙었다.
“오늘 정찬양 선배님이랑 MC 보니까 어땠어? 막 사적인 얘기도 했어? 아까 그냥 이름으로 부르던데 혹시 말 놓기로 한 거야?”
“응? 선배님이 뭔가 계속 얘기한 거 같긴 한데 잘 기억은 안 나.”
“어떻게 그렇게 아까운 짓을!”
채은성과 달리 범세혁은 정찬양한테 관심이 없는 티가 줄줄 흘렀다.
‘두 사람 사이에 내가 모르는 접점이 있는 건 아닌 거 같고…….’
예찬의 머릿속에서 넘어진 범세혁을 보고 파랗게 질렸던 정찬양의 얼굴과, 박마루의 어머니 얘기에 차갑게 대답하던 목소리가 뒤섞였다.
– 괜찮아? 어깨는?
– 필요성을 못 느꼈으니까?
– 아, 괜찮다니 다행이네요. 순간 너무 놀라서…….
– 진짜로 죽은 건 딱 한 번이니까, 어쩌면 이번엔 괜찮을 수도 있지 않아?
‘자기 팀 멤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지로 걸어가는 걸 구경하고 있었으면서…….’
그러면서 바닥에 넘어진 범세혁은 어쩔 줄 모르고 걱정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인간 흉내를 낼 뿐이던 정찬양이, 기껏해야 화내는 모습 정도나 보여 줬던 그 정찬양이, 처음으로 완벽히 통제를 잃었다.
그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