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52)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52화
신경 쓰이는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해도 일정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정찬양이 아무리 신경에 거슬려도 매일매일 짜여 있는 스케줄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네!”
인원 체크를 마치고 차가 출발함과 동시에 선우이경이 있는 힘껏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꼭 투정 같은 말이지만 목소리에는 뿌듯함이 담뿍 묻어났다.
옆에 앉아서 고개를 끄덕거리는 정의탁도 완전히 흥분한 얼굴이었다.
“교복 광고라니,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미니 앨범 2집 활동이 마무리될 무렵, 레굴루스는 하나를 마무리하면 두 개가 쌓이는 스케줄에 흔쾌히 몸을 맡기고 있었다.
데뷔 초, 인기에 비해 놀라우리만치 광고가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핫’한 스타가 찍는 광고들이 줄줄이 들어오고 있었다.
방금 찍고 나온 뷰티 스토어 광고와 지금부터 찍으러 갈 교복 광고도 그중 하나였다.
‘사실 맥주 광고도 들어왔지만, 아직 미성년자가 둘이나 있어서.’
예찬은 목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잠든 배새벽과 연습생 때부터 교복 모델이 꿈이었다는 정의탁을 슬쩍 돌아보았다.
레굴루스 전원이 동의한 현재 활동의 지향점은 이랬다.
광고는 개인이 아니라 단체로만.
예능이나 연기 오퍼의 경우, 팀 홍보차 단발성으로 참여하되 고정 패널은 삼가는 것으로.
OST 정도는 솔로로 낼 수 있으나 솔로 앨범은 시기상조라는 걸 유념할 것.
그룹 내의 한 사람이 독보적으로 떠서 팀을 견인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 경우 탑스타 A가 속한 팀으로 끝나 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팀 자체를 정상으로 끌어올리려면 모두 개인보다 팀을 우선시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에 정한 방침이었다.
실제로 지명도가 가장 높은 츄마프 1위 출신의 예찬과 전직 알콩이인 배새벽, 그리고 얼마 전 스페셜 MC로 활약한 이래로 비슷한 오퍼가 쏟아지고 있는 범세혁 모두 어지간한 일은 고사하고 있었다.
‘도지윤 팀장님이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 다행이었지.’
근시안적으로 오퍼들을 전부 소화해야한다고 나섰으면 곤란했을 텐데, 레굴루스의 이미지를 우선시하고 싶다는 멤버들의 뜻에 동의해 주었다.
도 팀장과 전담팀 팀원들은 정말로 어디서 이 업계 족집게 과외라도 받고 온 사람처럼 하루가 다르게 능숙해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리스피릿 시절보다 훨씬 편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세세하게 지시해도 매 회차마다 제로로 회귀하던 LEE 엔터 직원들을 보며, 회귀할 기회를 얻었으니 감내해야 할 업보라 생각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에 비해 이번 활동은 데뷔 때 겪었던 시행착오들이 반복되는 일 없이 무척 매끄럽게 지나갔다.
‘컴백 날짜를 정하자마자 회사 쪽에서 임시 타임 테이블을 뽑아오고, 아트 디렉터 섭외나 뮤직비디오 일정도 알아서 척척 정리해 왔으니까.’
컴백 후에도 빠릿빠릿한 일 처리는 변함이 없었고, 덕분에 예찬은 난생처음으로 아이돌 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이렇게 편해도 되는 건가?’
남들이 보기엔 말도 안 되게 빡빡한 스케줄이었으나 예찬이 느끼기엔 너무 여유로웠다.
이렇게 차로 이동하는 중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만 봐도 그랬다.
“얘들아, 내릴 준비 하자.”
목적지가 가까워졌는지 조수석에 앉아 있던 심상록이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세혁아, 다 왔나 봐.”
“새벽이 눈에 힘주자. 그래, 눈 떠야지?”
우휘겸과 정의탁이 머나먼 꿈나라로 떠나 있는 범세혁과 배새벽을 깨우기 시작했다.
스튜디오에 들어가자 낯익은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데뷔 앨범의 재킷을 맡았던 유지예 사진작가가 먼저 아는 척을 했다.
‘다시 보고 싶진 않았는데.’
예찬은 떨떠름한 속내를 숨기고 힘차게 구호를 외쳤다.
“둘, 셋.”
“빛나는 당신의 별! 안녕하세요, 레굴루스입니다.”
“응, 그래요. 조명 각도 좀 틀어야 한다니까요.”
대충 인사를 받은 유지예 작가는 바로 고개를 돌려 스태프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재빨리 교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멤버들은 이동하면서 흐트러진 머리와 화장을 손보았다.
“새벽이는 차에서 그렇게 자면서 어떻게 이렇게 멀쩡해?”
“요령이 있어요. 목베개 한 다음에 고개를 딱 이렇게 하고 자면…….”
“우리가 아니라 세혁이한테 전수 좀 해 줘. 세혁이는 누가 봐도 숙면하고 온 사람이다, 야.”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번엔 멋쩍은 기색이 역력한 심상록과 괜히 빙글빙글 돌아보고 있는 선우이경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 20대 중반인데 교복이라니 좀 민망하다, 하하.”
“그러게. 교복보다 군복이 잘 어울릴 나이인데.”
선우이경의 말에 정의탁이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저었다.
“형은 군복도 졸업하셨잖아요.”
“그건 그렇지! 아직 예비군 훈련은 한참 남았지만!”
예찬은 세 사람의 옷차림을 가볍게 훑어보았다.
심상록과 정의탁은 셔츠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우고 정갈하게 맨 넥타이와 단추를 잠근 블레이저까지, 완벽한 모범생의 표본이었다.
그와 달리 선우이경은 셔츠 단추를 하나 푸르고 넥타이는 아예 생략한 데다가 블레이저 단추도 잠그지 않은 상태였다.
‘이번 광고는 좀 프리한 스타일이군.’
교복 광고이니만큼 모델 전원이 칼같이 각 잡힌 차림새로 찍는 경우도 많았으나, 종종 변주를 주는 일도 있긴 했다.
이번 촬영은 후자인 모양이었다.
예찬은 멤버들을 쭉 훑었다.
예찬을 포함해 심상록과 정의탁, 우휘겸은 자로 잰 듯 반듯하게 교복을 입고 있었다.
채은성과 강해솔은 선우이경처럼 살짝 느슨한 차림새였고, 범세혁과 배새벽은 니트 조끼와 카디건으로 아예 느낌을 다르게 잡은 상태였다.
‘그래도 머리가 다들 검은색이라 그렇게 심하게 날티가 나지는 않네.’
교복 광고를 노리고 정한 머리 색은 아니었으나, 덕분에 괜찮은 반응이 나올 것 같았다.
찰칵, 찰칵.
테스트 컷을 찍는지 뒤쪽에서 셔터 소리가 연달아서 들렸다.
실력은 있지만 인성은 좀 아쉬운 유지예 작가와는 리스피릿 시절부터 자주 작업을 해 왔으나, 지난 데뷔 앨범 촬영 당시 리스피릿과 더블 부킹으로 예찬의 심기를 건드렸었다.
‘다시 일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이렇게 광고 현장에서 만날 줄은 또 몰랐다.
“준비 다 했어요?”
예찬의 시선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뒤를 돌아본 유지예 작가가 물었다.
유지예 작가는 데뷔 전과 달리 높아진 레굴루스의 위상을 조사하고 왔는지 태도가 깍듯해졌다.
전처럼 채은성이나 다른 멤버에게 데이트 운운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한 사람씩 개인 컷부터 가 보죠.”
“그럼 저 먼저 할게요.”
작가의 말에 정의탁이 흔쾌히 먼저 앞으로 나섰다.
아무래도 아직 교복을 입는 현역 고등학생이다 보니 자신감이 흘러넘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교복 광고에 관심이 정말 많아 보였지.’
요 며칠 시간이 날 때마다 역대 교복 광고들을 찾아보던 정의탁의 뒤통수가 떠올랐다.
‘의욕 넘치네.’
그리고 정의탁은 넘치는 의욕만큼이나 훌륭한 표정과 자세들을 취했다.
“오, 의탁이 멋있는데?”
“준비한 보람이 있네!”
“아, 그만 해요! 쉿! 쉬이잇!”
칭찬을 던지자 순식간에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온 정의탁은 검지를 세우고 멤버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정의탁이 첫 단추를 잘 끼워 준 덕에 이어지는 촬영도 물 흐르듯 평온하게 흘러갔다.
“잘 부탁드립니다!”
채은성의 차례 땐 전적이 있다 보니 조금 신경을 기울였으나, 기우였다는 듯 유지예 작가의 태도는 사무적이기 그지없었다.
“좋아요, 얼굴 살짝만 왼쪽으로 틀게요. 네, 거기까지.”
찰칵, 찰칵.
셔터음이 리듬감 있게 스튜디오를 채웠다.
채은성 다음 차례는 예찬이었다.
“예찬 씨는 그새 더 잘생겨졌네요.”
지난번 촬영 때처럼 칭찬이 날아왔다.
다만 그 뒤에 붙었던 수술이니, 시술이니 하는 사족은 깔끔히 떼고.
예찬은 짧게 감사하다며 웃어 보일 뿐이었다.
단체 사진을 찍은 다음 다른 교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개인 촬영을 시작했다.
이번 광고의 메인인 교복 단체 촬영이 마무리될 무렵, 여성 교복 모델로 섭외된 신인 배우 신해진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신해진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신해진은 스튜디오 안으로 발을 들이기 무섭게 가냘픈 체구와 어울리지 않게 큰 목소리로 깍듯하게 인사를 건넸다.
시종일관 흥겹게 촬영을 이어 가고 있던 유지예 작가가 오늘 처음으로 인상을 구겼다.
“신해진 씨, 늦은 걸 알면 빨리 들어가서 옷이나 갈아입지 뭐 하고 있어요.”
“죄송합니다! 바로 갈아입고 오겠습니다!”
신해진이 허리를 반으로 접다시피 하더니 탈의실 쪽으로 달려갔다.
유지예 작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후, 괜히 흐름만 끊겼네.”
예찬은 슬쩍 시계를 확인했다.
원래 합류하기로 한 시간보다 10분 정도밖에 늦지 않았고, 아직 레굴루스의 단체 컷이 촬영 중이었으니 저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지예 작가의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다.
‘신인이라고 또 푸대접하나. 신해진 정도면 이미 라이징 스타 대열에 올라서 대접해 줄 만한데.’
“분위기가 좀…… 그렇죠?”
“그러게.”
“그래도 우린 단체만 한 번 더 찍으면 끝이니까.”
유지예 작가의 신경이 신해진에게 쏠린 틈을 타 멤버들이 작게 속닥거렸다.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나온 신해진이 합류한 뒤, 남녀 모델 단체 촬영이 시작되었다.
찰칵, 찰칵, 찰칵.
어쩐지 조금 전까지와 달리 유지예 작가의 손이 만들어 내는 셔터음이 신경질적으로 들렸다.
‘예감이 안 좋은데.’
“…….”
아니나 다를까 한참을 별말 없이 셔터만 눌러 대던 유지예 작가가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고 신해진을 향해 손짓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신해진이 물었다.
“네? 저요?”
“네, 너요.”
살벌한 분위기 속에 유지예 작가의 옆으로 신해진이 다가갔다.
“…….”
레굴루스 멤버들은 웃지도 못 하고 울지도 못 하는 얼굴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이거 보여요?”
“네, 보입니다!”
“어때요?”
“사진이 정말 멋지네요, 작가님!”
“멋져? 이게 진짜 멋져 보여요? 지금 신해진 씨 혼자 따로 놀고 있잖아요.”
“네? 어, 그런가요?”
신해진이 깜짝 놀란 얼굴로 유지예 작가를 바라보았다.
유지예 작가는 어디서 이런 꼴통을 주워 왔냐는 얼굴로 앞머리를 향해 후 바람을 불었다.
“교복 광고 찍는데 혼자 표정이 갸륵하잖아요. 좀 담백하고 산뜻하게. 콘셉트 전달 못 받았어요?”
“네에…… 시정하겠습니다!”
잠시 풀이 죽었던 신해진이 다시 힘차게 외쳤다.
그러나 다시 이어진 촬영도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만, 그만! 지금 아까보다 더 갸륵하거든요?”
“네? 제가요?”
“네! 네가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신해진을 향해 외치는 유지예 작가의 목에 핏대가 섰다.
아까부터 초조해 보이던 신해진의 매니저는 이마를 짚었다.
“…….”
레굴루스 멤버들은 이번에도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래도 다 끝났다고 생각한 촬영이 좀 길어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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