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53)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53화
“와, 나 진짜 환장하겠네! 저기요, 신 배우님? 지금 나랑 장난해요?”
“아닙니다, 작가님!”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와하하, 미치겠다!”
유지예 사진작가와 배우 신해진 사이에 끼어 퇴근 시간이 한없이 지체되고 있었다.
이쯤 되니 대체 사진이 어떻게 나오고 있길래 저렇게 난리를 치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기합이 바짝 들어간 신해진이 말했다.
“제가 사진 촬영 경험이 적어서 너무 어설픈 것 같습니다! 작가님이 지도해 주시면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유지예 작가는 그런 신해진을 한참이나 노려보다가 숨을 크게 내쉬고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배우님이 가장 최근에 찍었던 ‘너는 나의 샘’에서랑 똑. 같. 이. 청순하게 웃어 주시면 되거든요. 저 그 이상 안 바랍니다.”
“아, 너나샘의 유미리처럼 말씀이시군요! 네! 이제 확실히 알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한 신해진이 이게 맞냐고 묻는 듯 사르르 웃어 보였다.
‘확실히 조금 전보다 훨씬 청초하네.’
“그거예요, 그거! 딱 그거라고! 아주 좋아요, 신 배우님. 딱 그만큼만 합시다, 그만큼만! 자, 그 표정 잊지 마시고!”
흥분한 유지예가 신해진을 치켜세우며 지금 표정이 사라질세라 다급하게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찰칵.
그리고 다시 셔터음이 울린 순간.
“야, 너 또라이야? 이거 완전 미친X 아냐?!”
카메라를 거칠게 내던진 유지예 작가의 호통이 스튜디오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아이고!”
다행히 카메라는 바닥에 닿기 전, 유지예 작가의 옆에 있던 어시스트가 간신히 받아 냈다.
불편한 기색으로 유지예 작가와 신해진을 번갈아 바라보던 신해진의 매니저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유지예 작가님, 아무리 그래도 말씀이 너무 심하신 거…….”
“심한 건 내가 아니라 쟤거든요?”
신해진 매니저의 책망이 끝나기도 전에 급하게 끊어 낸 유지예 작가는 어시스트의 손에서 카메라를 뺏어 들고 프리뷰 화면을 들이밀었다.
“눈이 있으면 이것 좀 보라고요!”
“으음…….”
신해진의 매니저의 시선이 프리뷰 사진에 닿았다.
아무래도 자기 배우지만 차마 두둔해 줄 수 없는 꼴이었는지 깊은 침음이 흘렀다.
‘대체 어떻길래.’
촬영이 바로 재개될 분위기가 아닌지라, 예찬과 멤버들도 다른 스태프들처럼 슬쩍 움직여 프리뷰 화면을 확인했다.
화면 속 신해진은 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레굴루스 멤버들 사이에서 홀로 톡 튀었다.
좋은 의미가 아니라 나쁜 의미로 말이다.
직전에 지었던 청순가련한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눈은 과장되게 부릅뜨고 입꼬리는 경련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바짝 얼어붙어 있었다.
“어우, 저건 좀…….”
“음…….”
가까이 다가온 스태프들이 보기에도 영 아니었는지 버럭버럭 소리치는 유지예 작가를 힐난하던 눈빛들이 수그러들었다.
그때, 신해진이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경험이 너무 부족해서 폐를 끼쳐 버렸습니다.”
가늘게 떨리는 어깨와 물기에 젖은 목소리에 진심이 눅눅하게 묻어났다.
“아이고…….”
“열심히 해도 잘 안 될 때가 있지.”
“아직 신인인데…….”
뒤편에서 스태프들이 작게 속닥거렸다.
유지예 작가의 편으로 돌아서려던 스튜디오의 분위기가 다시금 신해진에게 기울었다.
“……시정하겠습니다.”
“말은 아까부터 청산유수지.”
속삭이듯 울먹이는 목소리가 퍽 안쓰럽게 들릴 법도 했으나 유지예 작가는 우습지도 않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신해진에게 너그럽게 풀어진 분위기를 느끼고 더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신해진의 매니저에게 들이밀었던 카메라를 다시 거둬들인 유지예 작가가 작게 중얼거렸다.
“진짜 제대로 미친 또라이한테 물렸네.”
잠시 지금까지 찍은 사진을 넘겨 보던 유지예 작가는 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한 대 빨고 올 테니까 잠깐 쉬었다 갑시다.”
거기까지 말한 유지예 작가는 심기가 불편하다는 티를 내고 싶은 건지 쾅쾅 험악한 발소리를 내며 밖으로 나갔다.
“작가님! 같이 가요!”
곁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던 어시스트가 재빨리 그녀를 따라나섰다.
순식간에 주위가 조용해지고 유지예 작가의 패악질로 팽팽하게 긴장되었던 공기가 한결 느슨해졌다.
“……저 화장 좀 고치고 올게요. 분위기 망쳐서 죄송합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신해진이 아까 전보다 더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고 복도 쪽으로 빠져나갔다.
그녀의 얼굴에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린 것을 본 스태프들이 좀 더 시끄럽게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유지예 작가님 좀 너무하시지 않아?”
“그러게. 실력만 있으면 단가.”
“이 바닥은 이래서 문제라니까.”
“유 작가 원래 신인들한테 인성질 하는 게 취미라잖아.”
광고 촬영이다 보니 외부에서 온 인력들도 있어서 더 술렁거리는 것도 있을 것이다.
‘뭐, 그래도 반 이상은 유지예 작가의 자업자득이지만.’
유지예 작가가 입이 더러운 건 사실이었다.
성격이 더러운 것도 사실이었고.
그렇지만 촬영이 늘어지는 이유가 명백히 모델 때문임에도, 그 누구도 유 작가의 편을 들지 않는 것은 다들 유 작가에게 불만이 많이 쌓여 있기 때문이었다.
“촬영이 아니라 사람 하나 잡으려고 온 수준 아니야?”
“진짜 소문보다 더 지독하다, 지독해.”
‘이건 안 되겠네.’
이젠 다들 목소리를 죽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대로 있으면 저 뒷담에 동조하는 것처럼 되어 버릴 수 있었다.
“저희도 잠시 화장이랑 머리 좀 손보고 오겠습니다!”
“아, 네. 작가님 오시면 말씀드릴게요!”
예찬은 일부러 큰 소리로 외치고 멤버들과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그제야 레굴루스가 현장에 남아 있던 걸 깨달았는지 스태프 하나가 민망한 기색으로 멤버들을 배웅했다.
매니저와 함께 복도로 나온 다음에도 입을 꼭 다물고 있던 멤버들은 대기실이 가까워진 후에야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하아, 진짜 긴장했다.”
“그, 신해진 배우님이 일부러 유 작가님 긁는 건가 했는데 아니었나 봐요.”
“사진이랑 영상이랑은 또 다르니까.”
“많이 어색하셨나?”
“잠깐만, 얘들아.”
그 순간, 앞장서서 걷고 있던 선우이경이 멤버들을 멈춰 세웠다.
이유는 굳이 물을 필요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 멤버들이 생각하고 있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어, 어. 진짜 했다니까? 어쩌고 있긴. 완전 뿔났지. 내가 말했잖아. 오늘 유지예 뒷목 잡고 병원 실려 가게 해 준다고.”
문 너머에서 들리는 신해진의 목소리는 스튜디오 내에서 가엾게 떨렸던 것이 환상처럼 유쾌하기 그지없었다.
“…….”
서로를 바라보는 멤버들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오늘 아침, 신해진의 팬이라고 수줍게 밝혔던 매니저 이인섭의 얼굴은 그보다 더했고.
놀라지 않은 것은 예찬뿐이었다.
‘……다들 피곤하게 산다니까.’
아무리 영상과 사진이 다르다곤 해도, 그동안의 연기 실력에 비해 결과물이 너무 인위적이었다.
‘역시 이 바닥에선 누굴 믿으면 안 된다니까.’
누군가와 통화하는 듯한 신해진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됐어. 내가 오늘 소리 눈에 눈물 뽑은 거 배로 진땀 뽑게 해 준다. 아, 나는 소리한테 한 것처럼 못 자르지. 이번엔 지도 나도 고용된 처지인데 어쩔 거야.”
‘잘은 모르겠지만 유지예 작가에게 지인이 크게 당한 모양이군.’
예찬은 바닥에 닿을 것처럼 벌어진 정의탁의 턱을 손으로 꾹 밀어 닫으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뚜껑 열리니까 카메라도 던지던데? 소리한테 프로 의식 운운했다더니, 자기야말로 프로 의식 없는 거 아니야?”
‘결정했다.’
예찬은 망설임 없이 신해진의 대기실 문을 두드렸다.
“예찬아!”
“어쩌려고!”
놀란 멤버들이 입 모양만 벙긋거리며 소란을 피웠으나, 예찬은 대충 손을 젓고 대기실 안쪽을 향해 말을 걸었다.
“신해진 배우님, 잠깐 말씀 좀 드릴 게 있는데요.”
“……네, 네에! 잠시만요!”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안쪽에서 무언가 우당탕 소리가 들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조금 전 들렸던 까칠한 목소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련한 얼굴이 문 너머에서 쏙 튀어나왔다.
과연 연기파 배우답게 당황한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 레굴루스 님? 씨?”
“씨로 불러 주시면 됩니다.”
‘어차피 다시 볼일도 없을 거 같고.’
호칭을 정리한 예찬은 곧장 하고자 했던 말을 전했다.
“신해진 배우님, 여기 방음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안 좋습니다.”
“네?”
“유 작가님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나 다른 스태프까지 말려들게 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제삼자에게 민폐라는 말을 차갑게 던지자 신해진의 낯빛이 흐려지더니 이내 빨갛게 달아올랐다.
자세를 바로 한 신해진이 짧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생각이 짧았어요.”
‘……또 일부러 망치면 방금 한 말을 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려 했는데.’
빠르게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에 예찬은 입 속에 담아 두고 있던 협박을 고이 접어 두었다.
신해진과 마찬가지로 짧게 고개를 숙인 예찬이 이내 몸을 돌려 다시 스튜디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멤버들과 매니저가 빠르게 뒤에 따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스튜디오에 돌아오자 얼마 지나지 않아 신해진과 유지예 작가가 짠 것처럼 비슷한 타이밍에 돌아왔다.
신해진을 노려본 유지예 작가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한번 다시 해 보죠.”
신해진은 묵묵히 자세를 취했다.
이어진 촬영은 누구 하나 언성 높이는 일 없이 고요하게 끝이 났다.
“……레굴루스는 먼저 들어가 봐요.”
프리뷰 화면을 확인한 유지예 작가의 말에 멤버들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났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재빨리 스튜디오를 빠져나와 차에 오른 뒤, 멤버들은 촬영 내내 입에 담고 있던 말들을 빠르게 쏟아 내기 시작했다.
“와…… 일부러 그렇게 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진짜!”
“배우는 진짜 무섭네요. 아, 새벽이 너희 아버님 얘기는 아니야!”
“딱히 배우가 아니어도 세상에 무서운 사람 진짜 많다. 우리 애기들은 형아들 말고는 아무나 믿으면 안 된다?”
“……유미리는 환상이었나.”
“인섭이 형, 그건 드라마잖아요.”
“해솔아, 그럴 땐 위로를 해 줘야지.”
멤버들이 오늘의 일을 교훈 삼아 어디서든 입을 조심하길 바라며 가만히 듣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채은성이 돌연 옆구리를 꾹 찔렀다.
“왜?”
“아니, 너 대단해서.”
‘대단한데 왜 옆구리를……?’
“나는 거기서 절대 문을 못 두드렸을 것 같거든. 덕분에 일찍 퇴근했다.”
순순히 고맙다고 하기엔 민망한 건지 채은성은 새침한 표정으로 말을 마쳤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말을 들은 다른 멤버들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 진짜 터프하게 문을 팍 열고! ‘저희나 다른 스태프까지 말려들게 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라니! 크으! 멋지다, 하예찬!”
‘문은 그쪽에서 열어 준 건데.’
“우리 리더 카리스마가 아주 흘러넘친다!”
“멋지다, 리더! 장하다, 리더!”
“리더만 믿고 갑니다, 리더!”
“그 강렬한 눈빛! 녹화를 못 한 게 천추의 한이네!”
주접루스 아니랄까 봐 물꼬가 트이자 기다렸다는 듯 멤버들의 주접이 쏟아졌다.
예찬은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등을 시트에 기댔다.
“듣기 좋네. 더 해 봐요.”
“……!”
그렇게 차가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예찬을 향한 칭송은 끊이지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