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55)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55화
“대체 언제 틈이 있었지? 우리 계속 같이 다녔잖아요.”
심상록을 추궁하던 정의탁이 턱에 손을 괸 채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라이브 방송 중인 걸 완전히 잊고 과몰입한 얼굴이었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아직 해야 할 질문이 많습니다. 개인적인 일은 잠시 잊고…….”
“먹었네, 먹었어. 한잔했어, 둘이.”
“와, 형들 진짜 대박이다. 와, 진짜 그렇게 안 봤는데.”
‘빌어먹을. 아무도 안 듣네.’
예찬이 MC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흥분한 멤버들을 진정시키려 했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지난주인가? 화요일에 형들 일본어 회화 배운 적 있다고 빠졌었잖아.”
“어, 맞다! 와, 휘겸이 기억력이 열일했다!”
“그러고 보니 그날 숙소 들어갔더니 뭔가 창문도 다 열려 있지 않았어?”
“환기한 거네, 환기!”
사람 여럿이 머리를 한데 모으니 결국 ‘그날’의 실마리가 드러나고 말았다.
예찬은 탐정에 빙의한 멤버들을 말리는 것을 포기하고 이마를 짚었다.
‘그러니까 왜 콘치즈라고 대답을 해 가지고…….’
“하하…….”
심상록은 제대로 발뺌도 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음만 흘렸다.
“아니, 형들! 우리 팀에서 어색한 사이를 맡고 있으면서 그렇게 둘이 오붓하게 놀면 어떡해요!”
“이 형들이 초심을 잃었네.”
“나도 콘치즈 먹을 줄 아는데!”
완전히 맏형 둘이 완전 범죄를 꿈꾸며 한잔했다고 확신한 멤버들은 장난스럽게 두 사람을 구박하기 시작했다.
“미안, 정말 어쩌다 그렇게 된 거라서.”
“형이 오늘 집에 가서 아주 똑같이 만들어 줄게! 진짜 여태까지 너희가 먹었던 콘치즈는 전부 가짜였다는 걸 알게 될 거다.”
심상록과 선우이경이 시원하게 인정하며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진정되어 갈 무렵이었다.
예찬은 숨을 한 번 크게 고르고 보란 듯이 큐시트를 높이 들고 읽었다.
“자, 그럼 상록 씨에게 다음 질문할게요! 룸메이트를 다시 정한다면 이번엔 누구와 방을…….”
“……그런데 그날 예찬이도 일본어 회화할 줄 안다고 같이 빠지지 않았어?”
“……!”
강해솔이 던진 한마디가 다시금 꺼져 가는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아이고…….”
“하하…….”
심상록과 선우이경이 서로를 한 번 마주 보더니 끝났다는 듯 예찬을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셋이 있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는 제스처에 멤버들은 뒤집어졌다.
“우와, 진짜 무서운 사람들이네! 하마터면 예찬이는 같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넘어갈 뻔했네!”
“하예찬 아까부터 계속 진행하려고 한 게 자기도 공범이라 그런 거였네! 나는 혈관에 MC의 피가 흐르는 줄!”
채은성의 호칭은 어느새 ‘찬’에서 다시 이름 세 글자로 돌아와 있었다.
“이게 바로 가정 내 따돌림?”
“아니, 뭘 그렇게 거창하게 가져다 붙여. 그냥 어쩌다 보니 셋이 마신 거지~”
“셋이 무슨 얘기 했어요?”
“콘치즈 말고 안주 또 뭐 먹었어요?”
“술은요? 술은 뭐 마셨어요?”
조금 전까진 추리 소설의 탐정 흉내를 내던 멤버들이 이번엔 질문을 못 하면 입안에 가시가 돋을 것처럼 세 사람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콘치즈 말고는 과자 몇 봉 뜯은 게 다입니다. 상표명은 저희가 말할 수가 없어요. 끝나고 사적으로 얘기합시다.”
“오늘 집에 가서 똑같이 차려 줘라!”
“차려 줘라! 차려 줘라!”
“이 사람들아, 애가 둘 있다고.”
멤버들에게 휩쓸리지 않고 침착하게 상황을 마무리 지으려던 예찬도 결국 눈을 흘기고야 말았다.
* * *
[찬이 너는 그 시간엔 물 말고 아무것도 입에 안 넣잖아. 형들 마시는 거 구경한 거야?] [나도 융통성이라는 게…… 이제 이 이야기는 끝! 그만!]‘질문 하나로…… 이렇게까지 떡밥을 쏟아 줘도 되나? 나야 좋긴 한데…… 정말 이래도 되나?’
경건한 자세로 레굴루스의 ‘제1회 볼프 라이브’를 감상하고 있던 예찬의 홈마 박모 씨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딱 한 질문에 대답했을 뿐인데, 떡밥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애들이 술 얘기 한 적 없었는데, 예찬이랑 맏형즈 셋이 몰래 술 마신 거에 안주가 뭐였는지까지 알아 버린 데다가 그 셋은 일본어 회화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것도 알아 버렸고, 예찬이는 저녁때 아무것도 안 먹는 자기 관리의 화신이라는 점까지 알아 버렸어…….’
지금 주제가 ‘Too much information’이니 어쩌면 주제와 꼭 맞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자, 모두 조용! 우리 지금 몇 분째 질문 하나로 아옹다옹하고 있다고요.]정말 오랜만에 예찬이 꼭 학교 선생님처럼 멤버들을 다뤘다.
박모 씨는 안고 있던 쿠션을 쥐어뜯었다.
‘아옹다옹이래! 미쳤나 봐, 저런 단어를 어떻게 저렇게 막 자연스럽게 쓰고 그러냐!’
박모 씨가 느끼기에 정말로 파렴치할 정도로 귀여운 단어 선택이었다.
치사량에 가까운 귀여움에 박모 씨가 소리 없이 몸부림치는 사이, 드디어 예찬은 두 번째 질문을 입에 담을 수 있었다.
[저희가 게임으로 룸메이트를 정한 지 벌써 반년이 다 되었는데요. 상록 씨는 룸메이트를 다시 정한다면 이번엔 누구와 방을 쓰고 싶으신가요?] [어, 지금 방을 같이 쓰는 동생들이 다들 순하고 착하거든요. 제가 아주 조금 깔끔 떠는 경향이 있는데 잘 맞춰 주더라고요. 동생들 마음은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지금처럼 계속 가도 좋을 것 같아요.] [와. 혼자 방 쓰는 이경이를 서럽게 만드시네요, 상록 씨.] [이경 씨, 다 큰 청년이 그렇게 자기 이름을 부르니까 혼자 방을 쓰게 되는 거예요.]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이야!]진심으로 안쓰럽다는 듯한 심상록의 말에 선우이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항의했다.
그렇지만 슬며시 올라간 광대를 보면,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둘이 진짜 갑자기 확 친해졌네.’
이전에는 서로 어색해서 조심하는 티가 팍팍 나는 맏형 둘이었는데, 서로 술잔을 부딪치며 벽을 허물었는지 이전과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그러면 다음 질문인데요. 반대로 꼭 룸메이트로 피하고 싶은 멤버는 누구일까요?] [아, 이거는 우리 이경 씨.] [아하.] [대답이 너무 빠른데? 좀 고민하는 척이라도 하시죠?! 예찬이 너는 ‘아하’는 무슨 ‘아하’야!] [이유는요?] [저기요? 둘 다 지금 저 무시하시는 겁니까?] [좀 안 맞아요.] [좀 포장하려는 노력이라도 해라!]선우이경이 또다시 자리에서 튀어 오르자 멤버들에게서 와르르 웃음이 쏟아졌다.
박모 씨의 광대도 높게 올라갔다.
‘저런 말도 편하니까 할 수 있는 거지. 얼마 전이었으면 절대 못 했을 텐데.’
멤버들이 사이가 좋은 걸 보면 팬들의 기분도 좋아졌다.
박모 씨는 내려가지 않는 광대를 만지작거리며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 * *
좁은 현관 앞에 앉아 운동화 끈을 단단히 고쳐 매던 예찬이 뒤를 돌아보았다.
“술? 마셔 본 적 없는데.”
스무 살이 된 지 이제 고작 열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연습실과 하경의 집만을 오갔던 자신이 술을 마셔 볼 틈이나 있었겠냐는 예찬의 대답에, 하경은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 형님이 가르쳐 준다고. 원래 술은 어른한테 배우는 거거든.”
“어른이요?”
예찬의 눈이 미심쩍다는 빛을 띠고 하경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훑었다.
하경은 그런 예찬의 이마를 아프지 않게 밀었다.
“얌마! 형이 너희보다 나이가 몇 살이 더 많은데!”
“아, 넵.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아저씨.”
“어휴, 내가 얘 때문에 제 명에 못 산다, 못 살아.”
“헤헤. 그래서 형님, 이 아우 내일 몇 시까지 오면 될까요?”
예찬이 싹싹하게 웃으며 귀여운 척 턱 아래 꽃받침을 만들었다.
다소 사나운 인상의 예찬과 귀여움이 뚝뚝 떨어지는 애교가 수상할 정도로 잘 어울리는 것에 헛웃음을 흘린 하경이 캘린더 앱을 확인했다.
“나 퇴근하면 일곱 시니까 넉넉하게 여덟 시 반까지? 그런데 아우님, 소속사 스케줄은 없는 거 맞죠?”
“낮에 자율 연습이 있긴 한데, 그 시간엔 괜찮아.”
“음…….”
예찬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아직 덜 묶인 운동화 끈에 집중했다.
그러나 하경은 예찬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예찬아, 내 사수 사촌 동생도 아이돌 연습생이라고 하는데 그 친구는 매일 보컬 레슨이라든지 댄스 레슨 같은 걸 받는다고 하더라고. 주에 한두 번은 영어 레슨도 받고. 너희 소속사는 그런 거 없어?”
하경의 입에서 나온 레슨 이야기에 예찬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처음 들어갔던 해에는 있었는데, 반년 정도 지나니까 이제 더 배울 게 없으니 각자 자율 연습으로 바꾸라고 사장님이 말씀하셨어.”
“뭐? 예찬이 네 생각에도 그래?”
하경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예찬은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고개를 젓더니, 비밀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작게 속삭였다.
“아무래도 우리 회사, 되게 가난한가 봐.”
매달 연습생들의 레슨비를 내다간 회사가 부도날지도 모른다며 직원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고 예찬이 덧붙였다.
“나 말고 같이 연습하는 형이랑 애들도 그때 걱정 엄청 많이 했거든.”
물론 세상 물정 모르는 연습생들이면 모를까, 멀쩡한 삼십 대 사회인인 하경이 듣기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무리 가난해도 할 건 해야지! 이래서 너희 데뷔시켜 줄 수는 있대? 요즘 같은 세상에 연습생들한테 투자도 제대로 안 하고 성공할 수 있겠어? 너 기획사 들어간 지 벌써 만으로 4년이 다 돼 간다며! 그렇게 해서 데뷔를 할 수 있대? 데뷔시킬 마음이 있는 건 맞고? 너 정도면 얼굴이야 말할 것도 없고 노래도 잘하는데 차라리 이참에 다른 회사로……!”
“어우, 형. 왜 이렇게 화를 내.”
예찬이 말을 할수록 격양되어 가는 하경을 말렸다.
객관적으로 타인의 눈에 LEE 엔터가 얼마나 보잘것없어 보이는지는 예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예찬은 언제나 객관적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중요한 것이 LEE 엔터에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우리 사장님 진짜 좋은 사람이야. 내가 진짜 힘들었을 때 제일 먼저 도와준 사람이라고 했잖아. 같이 연습하는 애들도 진짜 괜찮은 애들이고.”
“……갑자기 큰 소리를 내서 미안해. 정말 네가 걱정돼서 그랬어.”
“에이, 형이 좋은 뜻으로 그러는 거 나도 다 알지. 걱정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하, 차라리 너도 츄마프 같은 데를 나갔으면…….”
“아아, 이제 이 이야기는 끝! 그만!”
귀를 막는 시늉을 하며 이야기를 끊은 예찬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밝게 인사를 남긴 예찬은 자연스럽게 현관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점차 멀어지는 뒷모습이 흐려지고, 꿈에 푹 잠겼던 정신은 이내 현실로 끌어당겨졌다.
잠에서 깨고 나서도 그리움에 한참이나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생각했다.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할까.’
그때 하경이 준비했던 것과 같은 술로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