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6)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5화
[미친 나 오늘 츄마프 연생들 봄!!!]저녁에 파스타 먹으러 갔는데 대각선 테이블에 딱 봐도 일반인 아닌 남자 넷이 앉아 있는 거야
솔직히 누군지 되게 궁금해서 은근슬쩍 그쪽을 계속 봤는데 츄마프 연생들이더라 ㄷㄷㄷ
범ㅅ혁 – 정ㅇ탁
하ㅇ찬 – 심ㅅ록
이 자리 배치로 앉아 있었음
내가 사실 츄마프를 인터넷으로 배워서 정확히 누군지 서치해 봄ㅋㅋㅋ
넷 다 조용조용 말해서 소리는 1도 안 들렸는데 누가 그렇게 먹성이 좋은 건지 추가 주문을 계속했음
메뉴판도 보통 직원이 다시 가져가는데 얘네 테이블은 자기들이 계속 가지고 있더라ㅋㅋㅋ
나 들어갔을 때 이미 파스타 먹고 있었는데 나 나갈 때도 뭐 나오고 있었음ㅋㅋㅋ
암튼 넷 다 화면보다 마르고 머리통 쪼끄맣더라
– 미친 귀여워ㅠㅠㅠ
– 넷이 무슨 조합임? 친함?
└ 심범하는 첨에 룸메였음 정은 범이랑 같소속사
└ 하랑 정 이번에 같은 조
– 그럼 맨 첨 룸메에서 우ㅎㄱ만 빠진거임? 쎄한데ㅋㅋㅋ
└ 쎄믈리에 떴나요
└ 응 쎄한 건 니 인생
– 인증도 없는 걸 왜 믿고 있음?
└ 넷이 밥 먹는 사진 스느스에 많이 떴더라
– 실물 어떰? 범세혁 잘생김?? 하예찬 잘생김???
– 상록아 데뷔하자ㅠㅠㅠㅠ
* * *
“저……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중간중간 새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 저녁 식사가 끝났다.
계산하기 위해 카운터 앞에 서자 어쩐지 초조해 보이던 직원이 카드를 긁다 말고 조그맣게 말을 걸었다.
갑작스러운 요청에 눈을 둥그렇게 뜬 세 사람과 달리 예찬은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직원에게 상냥하게 되물었다.
“네, 물론이죠. 어디에 해 드리면 될까요?”
“앗, 여, 여기요!”
목까지 새빨갛게 물든 직원이 내민 메모지와 펜을 받아든 예찬이 빠르게 사인을 마치고 심상록에게 메모를 넘겼다.
“어, 저 이름도 좀…….”
“김은혜 님 맞으시죠?”
진작 이름을 쓴 예찬이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헉, 어떻게……!”
깜짝 놀라는 직원을 향해 예찬은 고갯짓으로 직원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가리켰다.
그 사이 나머지 셋도 사인을 마쳤는지 정의탁이 메모지를 한데 모아 내밀었다. 예찬은 직원이 정의탁에게 메모를 건네받는 타이밍에 맞춰 다정하게 말했다.
“앞으로도 응원 부탁드릴게요.”
예찬의 눈웃음을 정면에서 마주한 직원은 ‘김은혜 님에게.’라고 유려한 글씨체로 적힌 메모지를 소중히 끌어안고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평생 가보로 간직할게요! 당장 투표도 할게요!”
직원의 배웅을 받으며 가게 밖으로 나오자 정의탁이 주변을 휙휙 둘러보고 재빠르게 말을 걸었다.
“형, 되게 자연스럽네요.”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게 제법 감명 깊었던 모양이다.
“그러게. 꼭 팬 사인회 같았어.”
범세혁도 재미있었다며 만면에 화사한 미소를 띠고 다가왔다. 예찬은 슬쩍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경력직도 보통 오래 해 먹은 경력직이 아니라서.’
“난 몇 번 사인해 봤는데 익숙해지지 않는 거 같아.”
“전 사인 요청 받은 거 이번이 처음이에요.”
심상록의 말에 정의탁이 대답했다.
아무래도 아이돌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있어서 꽤 인상 깊은 사건이었는지 세 사람은 한동안 츄마프 방영 이후 각자 겪었던 몇몇 사건들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리저리 돌던 주제는 다시 사인으로 돌아갔다.
“사인회 끝나면 팔이 진짜 떨어질 것 같다던데.”
“와, 그거 진짜 경험해 보고 싶은데요. 사인 때문에 팔이 아프면 어쩐지 뿌듯할 거 같아요.”
“양손으로 사인하는 연습을 해 둘까?
예찬은 평온하게 어린 양들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츄마프 첫 번째 사인회가 열릴 것이고, 그땐 원하지 않아도 다들 팔 빠지게 사인하는 경험을 하게 될 터였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커뮤니티에 벌써 네 명의 목격담이 올라와 불타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들이 머쓱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중간중간 츄마프라든지 네 사람의 이름도 슬슬 들리는 게, 자리를 이동하는 편이 좋을 거 같다고 판단한 예찬이 입을 열었다.
“일단 좀 움직이면서 이야기할까요?”
예찬의 말에 스마트폰으로 잠시 시간을 확인한 심상록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잠깐 노래방만 들렀다 우리 집으로 가자.“
심상록이 자연스럽게 택시를 잡았다.
* * *
“실례하겠습니다!”
노래방에서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도착한 심상록의 자취방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었는데 예찬의 방과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크고 깔끔했다.
“마실 건 커피랑 오렌지 주스 있는데 뭐로 줄까?”
“전 주스로 부탁해요, 형.”
“저도 같은 걸로.”
“전 물이면 돼요.”
텔레비전 앞에 있는 소파에 세 사람이 앉는 것을 확인한 심상록이 부엌 쪽으로 향하자 예찬도 몸을 일으켜 따라갔다.
“저도 도울게요.”
“아니야. 손님이잖아. 편하게 앉아 있어.”
“그럼 제 물만 따라갈게요. 컵은 이거 쓰면 되나요?”
거실이나 부엌도 깔끔했지만 냉장고 안도 20대 청년 혼자 사는 집 같지 않게 칼같이 정리가 되어 있었다.
‘우리 집도 깔끔하긴 하지만 그건 물건이 없는 거고…… 여긴 이것저것 되게 많은데도 잘 정리해 두었군.’
더러운 것보단 깨끗한 게 백번 낫지만 혹시 결벽증이라도 있으면 단체 생활하는데 애로사항이 꽃필 수 있어서 예찬은 심상록을 조금 떠보기로 했다.
“정리 되게 잘하고 지내시네요. 합숙할 때 방이 지저분해서 불편하지 않으셨어요?”
“응? 아아, 이건 내가 한 거 아니고 아버지가 하신 거야. 회사에서 퇴근하시는 길에 내 자취방이 있어서 종종 들르시거든. 나는 그냥 있는 대로 사는 거지.”
다행히 결벽증은 아니었다. 안심한 예찬은 심상록의 손에서 주스 잔을 받아들며 고개를 기울였다.
“본가가 서울이에요?”
“응, 나만 나와서 살고 있어.”
선뜻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따라붙는 게 자연스러울 이유는 나오지 않았다. 예찬은 심상록의 말에서 보이지 않는 선을 읽었다.
‘도심지도 아니고 주택가로 굳이 따로 나와서 살다니 이상하군.’
당사자가 말할 생각이 없어 보이니 예찬도 당장 파고들 생각은 없었지만, 앞으로 7년 넘게 한 팀으로 묶여 있으려면 언제 한번 확인을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니까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고요.”
“그렇지만 같이 보러 온 거잖아.”
음료와 과자를 가지고 거실로 돌아가자 그새를 못 참고 범세혁과 정의탁이 투닥거리고 있었다.
범세혁이 리모컨을 들고 있는 걸 보니 미리 TV를 켜 두려는 범세혁을 정의탁이 말리고 있던 것 같았다. 정자세로 꼿꼿하게 앉아 있는 정의탁을 본 심상록이 웃었다.
“편하게 있어도 괜찮은데. 의탁이 너도 너희 집처럼 있어.”
“아, 감사합니다.”
여전히 허리를 편 채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는 게 누가 봐도 불편해 보였다.
‘저렇게 낯가림이 심한 놈이 노래방에선 어떻게…….’
노래방에서 어찌나 날아다니던지, 탬버린을 흔들다 엉망이 된 머리가 지금까지 자유분방하게 뻗쳐 있었다.
예찬과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심상록의 웃는 얼굴에 영혼이 없었다.
“이제 시작하려나 봐요.”
심상록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TV를 켠 범세혁의 말에 모두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억과 달리 츄마프 3화는 첫 합숙 때 진행한 레크리에이션으로 시작되었다. 티저가 나온 순간 각오했던 바였으나 역시 기껍게 볼 수는 없었다.
짧고 굵게 편집된 예찬과 우휘겸의 활약상이 이어질수록 숨이 넘어가는 양옆과 달리 예찬의 표정은 떨떠름하게 굳어갔다.
‘편집을…… 잘했네.’
“배, 배가 너무 아파……!”
화면 속에서 다섯 개의 화관을 쓴 예찬이 생기 없는 눈으로 힘없이 손을 흔들자 범세혁은 너무 웃어서 아픈 배를 부여잡았고 심상록은 오른손으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입과 함께 틀어막았다.
정의탁은…….
“으흐흑…….”
웃는 걸 넘어서 오열하고 있었다.
소파에서 굴러떨어져 바닥에 엎드린 채로 울고 있는 정의탁을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본 예찬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걸 생각하니 입맛이 썼다.
‘다음 합숙 때는 정말 안 엮였으면 좋겠는데. 왜 이렇게 안 좋은 예감이 들지.’
한 번 일어난 일은 우연이지만, 두 번 일어난 일은 세 번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옛 멤버의 입버릇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 말을 한 당사자는 자신의 입버릇의 진실함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는지 잊을만하면 중요한 스케줄을 앞두고 잠적했었다.
“와, 나 욕 되게 먹겠다.”
어느새 소파에 다시 올라와 앉은 정의탁이 태연하게 혼잣말을 했다.
보컬 5조의 센터였던 정의탁이 실수하는 장면들을 보여 주는데 제작진은 무척이나 공을 들였다. 팀원들과의 다툼까지 놓치지 않고 알뜰하게 써먹었으며,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실수 연발이었던 중간 점검이었다.
그 혹평에도 센터를 양보하지 않는 정의탁의 모습을 끝으로 츄즈 마이 프린스 99 3회가 끝이 났다.
‘지금쯤 인터넷은 불타고 있겠군.’
예찬은 정의탁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겼다.
“다음 주까지 인터넷 보지 마라.”
“형이나 보지 마요. 나 센터로 밀었다고 같이 묶여서 얻어맞게 생겼네, 아주.”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코웃음을 치는 정의탁은 제대로 마음의 짐을 던져냈는지 시원해 보였다.
* * *
“매니저 형이 요 앞까지 오셨대요. 저흰 가 볼게요.”
스마트폰을 확인한 정의탁이 가방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가가 제주도라 소속사에서 제공하는 숙소에서 지내고 있는 정의탁을 데려가며 겸사겸사 범세혁도 같이 태워 갈 모양이었다.
“예찬이 너도 같이 타고 갈래?”
“아니야. 난 방향이 완전 반대라.”
범세혁의 제안을 거절한 예찬은 두 사람이 떠난 후 심상록을 도와 집을 정리했다.
“손님한테 이렇게 시키니까 미안한데.”
“그렇게 너무 정중하게 대하면 다음 주에 또 와야 하는데 부담스러워요. 그냥 편하게 합시다, 형.”
“음, 그래. 그럼 사양하지 않을게. 결과 발표는 다음 주에 나오겠네.”
심상록이 과자 봉투를 접다가 광고가 나오고 있는 TV 쪽을 잠깐 보더니 말을 흘렸다.
예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에는 뭔가 사 올까요? 오늘은 어쩌다 보니 맨손으로 와 버렸네요.”
“너야말로 그렇게 정중하게 굴면 부르기 부담스럽다. 편하게 와.”
피식 웃음을 흘린 심상록이 말을 이었다.
“늦었지만 보컬 1위 축하해.”
어쩌다 보니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며 심상록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예찬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형은 아까웠네요.”
“두 표 차이 말이지?”
팀 투표에서는 이겨서 베네핏 3만 표를 받긴 했지만, 지금까지 온라인 투표에서 계속 1위로 승승장구하던 심상록이니만큼 현장 투표에서 강해솔에게 진 게 심적으로 타격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같은 팀이 아니었으니 직접 붙은 건 아니지만.’
심상록은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테이블을 내려다보다 말했다.
“그러게. 아까워야 하는데 아깝지가 않더라.”
“…….”
아예 바닥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댄 심상록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만약 해솔이랑 같은 조였다면 표 차이가 더 컸을 거야.”
너무 패기 없는 소리인가? 라며 덧붙인 심상록은 쑥스러운 듯 웃었다.
“나름대로 실력으로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해솔이 무대를 보니까 기가 팍 죽더라. 해솔이네 무대가 끝나고 우리 차례가 왔는데 다리가 떨리는 거 있지. 하하, 래퍼는 배짱인데 말이야.”
“전혀 티 안 났어요.”
“거기서 티 낼 정도면 관객들도 관객들이지만, 예찬이 네가 먼저 같이 데뷔하자고 한 걸 무르지 않았을까?”
“아뇨, 안 무를 거예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예찬은 슬그머니 홀로그램 창이 튀어나오곤 하는 위치로 눈을 굴렸다.
‘파티 해제하는 법을 알면 모를까, 지금으로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같이 가는 거지.’
예찬의 대답 어느 부분이 웃겼는지 잠깐 어깨를 말고 큭큭 거리던 심상록이 허리를 반듯하게 펴고 앉았다.
“그냥, 너희를 보니까…… 아무튼 좀 더 잘하고 싶어졌어.”
예찬이 멈칫했다. 오랜만에 듣는 팀워크 넘치는 말이었다. 낯간지러웠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같이 힘내 봐요.”
짧지만 많은 게 담긴 말이었다. 말을 마친 예찬은 심상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그리고 다음 날.
정의탁의 예상대로 인터넷은 불타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