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60)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60화
살짝 맛이 간 것처럼 보였던 채은성은 다음 날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멀쩡해졌다.
자리를 비운 사이 정찬양이랑 무슨 얘기를 한 건지 불으라고 닦달하려던 예찬은 조용히 계획을 파기했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예찬은 달력을 한 번 바라보았다.
10월이 며칠 남지 않았다.
그리고 11월 1일은 채은성의 생일이었다.
* * *
“은성이는 잠깐 남아 볼래?”
이미 포섭이 끝난 PT 트레이너가 수업을 마치고 짐을 챙기는 채은성을 불러 세웠다.
“어, 저요?”
근래 멤버들이 어떤 깜짝 파티를 준비하고 있는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채은성은, 이번에도 멤버들과 트레이너를 번갈아 바라보며 경계했다.
“아까 어깨 뭉친 것 같다고 했잖아. 풀고 가야지.”
트레이너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마사지 건을 들어 보였다.
“어, 제가 해도 괜찮은데…….”
“이런 거 해 주라고 돈 주고 나를 고용한 거거든? 얼른 눕기나 하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 채은성이 미약하게 반항했으나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제물을 하나 바쳐야겠군.’
결정한 이상 행동은 빠를수록 좋았다.
예찬은 문득 떠올랐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이경이 형도 뒷목이 뻐근하다고 하지 않았어요?”
“나? 아, 맞아 맞아. 어우, 나이 드니까 여기저기 다 쑤신다니까요!”
‘칫, 제일 능숙하게 받아칠 놈을 고른 건데 어색하기 짝이 없군.’
다행히 PT 트레이너는 선우이경보다 더 자연스럽게 대처했다.
“너 어디서 나이니 뭐니 지금처럼 떠들면 몰매 맞는다. 그럼 이경이 먼저 여기 눕고, 또 어디 아픈 사람 없어?”
“선생님, 저는 허벅지가 좀…….”
이번엔 심상록이 자진해서 나섰다.
진짜로 허벅지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채은성의 경계심을 완전히 허물게 하기 위함 같았다.
“좋아, 은성이랑 상록이는 거기 줄 서 있어라.”
“저흰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내일 뵐게요!”
“아아, 선생님, 살살! 조금만 살살요!”
‘선우이경, 숭고한 희생을 절대 잊지 않겠네!’
선우이경의 비명을 뒤로하고 체력 단련실을 빠져나온 멤버들은 빠르게 회의실로 달려갔다.
‘축! 채은성 생일!’
한 글자씩 크게 써 붙인 회의실엔 신 PD가 미리 설치해 둔 거치용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4월에 있었던 우휘겸의 생일부터 시작해 예찬, 선우이경의 순서를 지나 벌써 네 번째로 맞이하는 멤버의 생일.
당사자인 채은성은 보름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달력부터 확인하는 중이고, 비활동기라 촬영 중에 깜짝 파티를 기획하는 것도 어려웠다.
완전히 속이는 것은 물 건너갔다고 판단한 멤버들은 며칠 전부터 틈나는 대로 한두 명씩 빠져나와 회의실을 파티룸으로 꾸미기 시작했다.
정성으로 상대를 감동하게 하는 쪽으로 노선을 튼 것이다.
멤버들의 열정이 깃든 회의실은 사방팔방 파티용 은박 커튼과 조명, 가랜드, 모빌로 장식되었다.
바닥에는 아직 세팅하기 전인 풍선들과 테이블보 등이 널려 있었다.
‘끝내주게 멋진 파티룸에서 멤버들이 너를 위해 만들었어! 라고 말하면 채은성이 알아서 눈물을 줄줄 흘릴 거라고 다들 자신하던데…… 이 정도로 눈물이 날 수 있나?’
예찬은 다소 회의적이었으나 이왕 하기로 한 거 열심히 참여하고 있었다.
“와, 미치겠다. 이거 오늘 내로 다 꾸밀 수 있어요?”
“못 하면 새벽에 나와서 해야지. 의탁이 너는 항상 새벽 운동하니까 의심받지 않고 나갈 수 있겠다.”
“풍선은 미리 불어 두면 바람 빠지지 않아? 새벽에 무조건 한두 명은 와야겠는데.”
떠드는 와중에도 다들 손은 입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 왔다!”
체력 단련실에서 나온 다음 중간에 홀로 샛길로 빠졌던 범세혁이 의기양양하게 택배를 들고 돌아왔다.
우휘겸이 커터칼을 찾는 사이, 성격 급한 정의탁과 강해솔은 손으로 잘도 택배 상자를 분해했다.
상자 안에서 조화 다발과 장식용 소품들을 꺼낸 멤버들이 소란을 피웠다.
“오, 멋있어, 멋있어!”
“누가 골랐는지 진짜 완벽하네요!”
그사이 택배 상자에 붙은 테이프를 완벽하게 떼어 낸 뒤 상자를 납작하게 편 강해솔이 허리를 펴고 물었다.
“내일 생화랑 케이크 픽업은 이경이 형만 가도 되는 거지?”
“그거 알메겐 촬영 잡혔다고 하고 저랑 세혁이 형도 같이 가기로 했어요.”
“혼자 들고 오기 힘들 것 같았는데 잘됐네. 우휘겸, 테이블 보 좀 같이 털자. 여기 끝을 잡아 봐.”
“지금 이경이 형이랑 은성이 형은 마사지 끝났고 상록이 형 차례래요. 슬슬 정리해야겠는데요?”
스마트폰을 확인한 정의탁의 말에 멤버들은 조금 전보다 더 부지런한 손길로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우린 작업실로 갈게.”
“연습실 적당히 어질러 두는 거 잊지 말고.”
“네, 리더!”
예찬의 당부에 범세혁이 번쩍 손을 들며 유쾌하게 답했다.
‘영 믿음직스럽지가 않은데…….’
“적당히 어질러야 한다? 너무 과하게 하지 말고.”
예찬이 좀 더 구체적으로 당부를 하자 정의탁이 눈을 가늘게 뜨고 삐죽거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애도 아니고.”
‘애 맞잖아.’
범세혁과 정의탁, 거기에 우휘겸과 배새벽.
‘사람이 넷인데 믿음직스러운 놈이 하나도 없다니.’
고개를 내저은 예찬은 강해솔을 향해 말했다.
“형, 나도 연습실로 갈게.”
“어, 잘 생각했다.”
강해솔도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흔쾌히 예찬을 배웅했다.
은연중에 얼빠진 사람 취급을 당한 셋은 천진난만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딱 한 사람, 정의탁만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뭐예요! 우릴 못 믿는다는 거예요? 참나! 예찬이 형은 몰라도 해솔이 형은 그렇게 안 봤는데!”
“난 어떻게 봤는데. 그만 떠들고 얼른 들어가자.”
예찬은 왁왁 떠드는 정의탁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아무도 손대지 말아요! 완전 자연스러운 연습실을 저 혼자 연출해 보이겠어요!”
끌려가는 와중에도 정의탁은 입을 쉬지 않았다.
* * *
잠시 후, 노크마저 능청스럽게 한 선우이경이 연습실 문을 힘차게 열었다.
“우리 왔다~ 연습 잘하고 있었…… 의탁이 혼자 연습했니?”
선우이경이 연습한 티가 나는 연습실을 만들어 보이겠다며 혼자 방방 뛰다가 지친 정의탁을 보고 뺨을 긁적였다.
참고로 정의탁이 꾸민 연습실은 너무 인위적이라 예찬이 손을 본 상태였다.
‘흘린 땀을 바닥에 웅덩이로 표현했을 땐 진짜 놀랐지…….’
헉헉대는 정의탁을 대신해서 예찬이 대답했다.
“제가 보기엔 체력 부족이에요.”
“저런. 매일 아침 달리기를 하는데도?”
“그걸 하니까 그나마 이 정도죠.”
정의탁이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예찬을 노려봤다.
“언젠가 형을 부숴 버릴 거예요.”
“기대하고 있을게.”
“이익!”
“하하, 다들 뭐 안 먹었지? 뭐라도 사 올 걸 그랬나?”
얄미울 정도로 태연히 대꾸하는 예찬을 구경하던 심상록이 작게 웃으며 물었다.
그 와중에 채은성은 혹시 연습실에 뭔가 달라진 게 없는지 살피느라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예찬의 시선을 따라 채은성을 바라본 심상록이 이번엔 탄식을 내뱉었다.
“은성이도 진짜 대단하다. 며칠째 24시간 경계 태세를 유지하다니…….”
“방금 제 이름 부르지 않았어요?!”
“어유, 귀도 좋아.”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저 끝에 있던 채은성이 자기 이름을 주워듣고 달려오고 있었다.
심상록은 대단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말했죠! 왜 불렀어요? 무슨 말한 건데요?”
“뭐 좀 사 올까 하는데, 은성이 너 특별히 먹고 싶은 거 있냐고.”
아까부터 연기에 물이 오른 심상록이 아주 그럴싸한 핑계를 댔다.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말이다.
‘좀 하는데?’
“아…….”
잔뜩 기대로 부풀어서 눈을 빛내던 채은성은 맥이 빠졌는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예찬은 채은성의 집요함에 혀를 차고 말았다.
‘아니, 깜짝 파티할 걸 빤히 알면 좀 속아 주는 척하면 안 되나?’
정말 어려운 놈이었다.
* * *
– 예찬 씨 말대로 굿은 취소했습니다…….
채은성의 눈을 피해 틈틈이 회의실을 꾸미다 퇴근한 예찬에게 글자만 봐도 우울함이 뚝뚝 떨어지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보낸 이는 박마루였다.
박마루는 알메겐 촬영장에선 예찬에게 ‘네, 네. 시키는 대로 하겠나이다.’라며 굽실거리더니 다음 날이 되자 역시 굿은 꼭 해야겠다며 반항을 시작했다.
전형적인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경우라고 볼 수 있었다.
물론 그런다고 ‘아, 그러세요.’ 하고 넘어갈 예찬이 아니었다.
그 후 며칠 동안 수백 통의 메시지와 수십 번의 통화를 반복한 끝에 박마루가 백기를 든 것이다.
‘……정확히는 백기를 든 척한 거지. 박마루 주제에 감히 누굴 속여 먹으려고.’
박마루와 부대낀 세월이 얼마인데 문자로 불쌍한 척 좀 한다고 속을 예찬이 아니었다.
잠시 화면을 내려다보던 예찬은 발코니로 나와 망설임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박마루의 컬러링이자 요 며칠 지긋지긋하게 들은 리스피릿의 데뷔곡이 귓가에 흘렀다.
방금 메시지를 보냈으면서 노래가 꽤 길게 이어질 때까지 박마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흘러나오는 안내 멘트를 듣던 예찬은 귓가에서 휴대 전화를 떼고 손가락만 움직여 메시지를 보냈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10초나 지났을까.
이번엔 메시지 대신 전화 알림이 울렸다.
“네, 선배님. 전화 주셨네요?”
– 예찬 씨가 전화 안 하면 숙소로 찾아온다고 했잖아요!
억울하다는 듯 외치는 목소리엔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예찬은 가볍게 혀를 찼다.
“그러니까 왜 거짓말을 해요.”
– 거, 거짓말이라뇨?
박마루가 염소처럼 달달 떨며 동요했다.
박마루와 나란히 놓고 보면 낮에 선우이경이 보였던 발 연기가 남우주연상 급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예찬은 손톱 끝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굿 취소 안 했잖아요.”
– 네? 아, 아닌데요? 취소했는데요?
누가 들어도 취소 안 한 놈이다.
“선배님.”
– 왜, 왜요?
“…….”
– …….
“…….”
– ……아, 알았어요! 취소할게요! 취소한다고요!
침묵에서 무엇을 느낀 건지, 완전히 기가 질린 박마루가 외쳤다.
예찬은 태연히 쐐기를 박았다.
“지금 당장 하세요. 괜히 내일 해 뜨면 하겠다는 둥 핑계 대지 마시고.”
– ……끊어요!
서럽게 외치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이건 이제 정말 된 거 같네.’
내일이나 모레쯤 의미심장한 문자를 하나 정도 보내 주면 완벽하게 정리될 것 같았다.
‘종종 다시 빠지지 않았나 확인해야겠지만…… 진짜 귀찮은 놈이네.’
“뭐 해?”
베란다 문이 빼꼼 열리더니 채은성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와중에도 매와 같은 눈초리로 예찬과 발코니를 샅샅이 눈으로 훑고 있는 게 느껴졌다.
“전화 좀 했어.”
“아, 전화. 전화 좋지.”
영혼 없이 추임새를 넣으며 채은성은 발코니의 바닥과 천장까지 열심히 스캔했다.
곧 특별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전화 잘하라는 말을 남기고 채은성의 머리통은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예찬은 조용히 시계를 확인했다.
채은성의 생일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은 1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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