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63)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63화
헛된 생각에서 간신히 벗어나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돌린 쥬리의 시야에 예찬의 성스러운 얼굴이 잡혔다.
갑작스러운 화면 정지에도 굴욕이 없는 실로 완벽한 용모였다.
자연스레 예찬의 실물도 떠올랐다.
‘피부가 진짜 도자기처럼 매끄러웠지. 모공도 없었어. 속눈썹도 마스카라를 한 것 같진 않은데 되게 진하고 길었고. 코는 또 엄청 높더라. 그런 코를 가진 사람이 선글라스를 써야 한다니까. 키도 크고, 어깨는 뭐 말할 것도 없고…… 카메라 기술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진짜. 실물을 못 담아요, 실물을.’
내로라하는 연예인들을 많이 봐 온 쥬리의 눈에도 후광이 비칠 만큼 대단한 비주얼이었다.
흑발로 돌아온 지금 머리가 흰 얼굴과 대비되어 찰떡같이 어울린다고 팬들은 극찬하지만, 당시 봤던 백금발도 아련한 느낌이 들어서 무척 아름다웠다.
실제로 만났던 예찬을 회상하자 그 옆에 나란히 서 있던 멤버들의 얼굴도 하나둘 떠올랐다.
‘해솔 씨한테 자꾸 눈길이 가서 고생 좀 했지…… 근데 진짜 미친 거 아닌가? 사람이 그렇게 생긴 건 반칙이잖아?’
새침하게 올라간 눈초리를 가진 180cm의 20대 남성이라니, 현실에 존재하기엔 너무 파렴치한 존재였다.
해솔의 작지만 살짝 도톰한 입술과 그 사선 아래에 콕 박힌 점을 떠올린 쥬리는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다.
그런 입술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까지 립밤 광고를 찍지 않았다니.
광고주도 NJ도 미친 게 분명했다.
그 외에도 지난밤, 하늘에서 별을 따다 박은 건지 영롱하게 반짝이던 배새벽의 눈이라든지 유독 모양이 섬세한 정의탁의 눈썹, 한 손에 앨범이 다 가려질 것같이 커다랗던 선우이경의 손처럼 인상 깊었던 외형들이 차례차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은성 씨는 이마가 반듯하니 정말 곱더라. 휘겸 씨는 눈매가 말도 안 되게 그윽했고. 상록 씨는 목선이 나보다 더 예쁘던데? 그리고 세혁 씨…… 세혁 씨는 진짜 분위기부터 프린스 그 자체…….’
한 명씩 그 눈부신 외모를 곱씹던 쥬리는 한참 만에 정신을 차렸다.
‘아, 또 습관적으로 주접 떨고 있었네. 애들 오기 전에 다 봐야 하는데.’
막 재생 버튼을 누른 순간, 현관 쪽에서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쥬리는 급하게 태블릿의 뒤로 가기 버튼을 연타했다.
대기 화면이 켜짐과 동시에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언니, 우리 왔어!”
멤버 미리와 세리가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어! 빠, 빨리 왔네?”
“언니 혼자 심심할까 봐 달려왔지!”
“감동했어?”
애교 넘치는 말투로 까르르 웃는 동생들을 향해 쥬리는 울지 못해 웃었다.
“어어, 완전 감동이다, 얘들아. 하하하…….”
사이좋게 고깔모자를 나눠 쓴 레굴루스 멤버들이 ‘바이바이, 쥬리’라고 속삭이며 아련하게 떠나가는 환상이 보였다.
* * *
“와, 진짜 미쳤다!”
쥬리와 달리 덕질에 제동이 걸릴 요소가 하나도 없는 예찬의 홈마 박모 씨는 두 번째 생일 파티 영상을 보며 행복한 비명을 연달아 내질렀다.
분명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다음, 좋았던 장면을 복습할 생각이었는데 모든 순간이 참을 수 없이 귀여워서 되감기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10초 전으로 화면을 돌리자 모빌을 들고 한껏 발돋움을 해 보던 예찬이 우휘겸을 불렀다.
[우휘겸, 너 이거 닿아?] [……안 닿는데.]모빌을 건네받은 우휘겸도 예찬처럼 팔을 쭉 뻗어 보았지만 천장까진 어림도 없었다.
한숨을 내쉰 예찬이 한쪽 무릎을 세워 앉았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었다.
[타라.]우휘겸은 전과 달리 익숙한 듯 예찬의 어깨 너머로 다리를 넣으려 했다.
선우이경의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휘겸아, 너는 또 뭘 진짜로 목말을 타고 있어. 의자를 밟고 올라가면 되잖아.]예찬과 우휘겸이 눈을 마주쳤다.
두 사람 다 도구를 이용한다는 방법은 생각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바보처럼 굳어 있는 형들을 향해 혀를 찬 정의탁은 의자를 가지고 와 천장에 모빌을 붙이고 보란 듯이 손을 탁탁 털었다.
박모 씨의 광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올랐다.
‘아, 츄마프 추억 돋는다.’
츄즈 마이 프린스 레크레이션 편을 다시 보고 오고 싶다는 충동이 강렬하게 일었다.
잠시 화면이 빠르게 움직이더니, 파티장을 꾸미고 있는 멤버가 바뀌었다.
[이거 불량 같은데?] [어떤데요?]메인이 될 커다란 가랜드 종이를 글자 순서대로 나열하던 강해솔의 말에 배새벽이 다가왔다.
별이나 하트, 달 같은 귀여운 도형들로 눈에 확 튀게 디자인된 알파벳들이 테이블 위에 늘어져 있었다.
[여기도 H가 들어가야 하는데 하나밖에 없어. A랑 Y도 하나씩밖에 없고.]강해솔은 ‘HAPPY BIRTHDAY’라는 글자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알파벳이 부족하다며 손가락으로 빈 곳을 가리켰다.
[이거 현수막 바로 아래에 붙이기로 했었는데…….] [무슨 일인데? 뭐가 덜 왔어?]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사이, 테이블을 닦으려고 다가온 심상록의 물음에 강해솔이 대답을 반복했다.
[다시 보내 달라고 해야 하나?] [배송 좀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그때 화려한 알파벳 글자를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던 배새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디 있었는지도 모를 두꺼운 종이와 마커 펜을 찾아온 배새벽의 손은 종이 위를 거침없이 유영했다.
[와, 색감이…….] [오, 터치가…….]그사이 형들은 감탄사 자판기가 되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쇄된 상품 못지않게 통통 튀는 알파벳 가랜드가 완성되었다.
종이를 들어 올린 배새벽이 형들을 돌아보았다.
[이 정도면 비슷한가요?] [아니, 더 멋있어.] [……진짜 못하는 게 뭐지?]‘새벽이는 못하는 걸 못 하지.’
강해솔의 혼잣말에 속으로 답한 박모 씨는 흐뭇한 얼굴로 코 밑을 괜히 한번 쓸었다.
그 후로도 멤버들이 파티장을 꾸미는 영상과 짧은 인터뷰들이 이어졌다.
[은성이요? 대성통곡한다는 것에 한 표 겁니다.] [아, 거의 완성된 거 보니까 은성이 형 제대로 울겠던데요. 손수건 세 장 챙겨 가려고요.] [은성이의 눈물, 기대하고 있습니다.] [멤버들은 다들 울 거라고 생각하던데 그건 좀 무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생각은 그렇다고요.]모두가 채은성이 폭풍 오열할 것이라 예상하였으나 예찬만은 고개를 저었다.
믿음이 담긴 눈동자는 더없이 꿋꿋했다.
‘울겠네.’
예찬이가 예능에서 저토록 단호할 땐 대체로 하찮아졌다.
박모 씨는 조용히 다른 멤버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
뒤이어 생일 아침 식사 장면이 이어졌다.
[저 한 그릇 더 먹어도 돼요?]선우이경이 어머니께 미역국을 받아 온 것을 알고 있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본 채은성은 실로 귀여웠다.
[당연하지. 형이 떠다 줄게.] [아잇, 송구해라. 와, 그런데 진짜 우리 엄마 맛인데? 형, 이따가 레시피 좀 적어 주면 안 돼요? 엄마한테도 물어봐서 비교해 보고 싶어요.] [그래, 형이 자세하게 적어 줄게.] [와, 진짜 먹을수록 신통방통하네?]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는 예찬과 멤버들은 웃음을 참기 위해 이를 꽉 악물고 있었다.
박모 씨는 새삼 레굴루스 채널의 제작진들에게 감탄했다.
‘여기서부터는 다 오늘 일이잖아. 아까 올라온 영상도 자정에 있던 일이고. 대충 영상만 이어 붙인 것도 아니고 자막에 효과까지 다 넣었는데 이 속도라니…… 이건 돈도 돈이지만 사랑이다, 사랑!’
박모 씨가 레굴루스에 대한 제작진의 사랑을 느끼는 사이 드디어 진짜 생일 파티가 시작되었다.
[채은성, 생일 축하해!]회의를 하러 왔다가 난데없이 또 생일 축하를 받은 채은성은 말 그대로 폭포수 같은 눈물을 흘렸다.
그런 채은성의 등을 어설프게 두드리는 예찬은 동공에 난 지진을 수습하지 못했다.
– 멤버들은 다들 울 거라고 생각하던데 그건 좀 무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찬의 인터뷰가 환청처럼 들렸다.
박모 씨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예찬이, 역시 오늘도 하찮음을 적립했구나.’
생일 파티 2 영상은 직접 파티장으로 찾아오신 채은성과 부모님의 눈물의 재회로 감동까지 야무지게 챙기며 마무리되었다.
덩달아 손수건을 축축하게 적신 멤버는 정의탁과 우휘겸 정도였지만 눈시울이 붉어진 배새벽이나 코끝이 빨개진 심상록 등 볼거리가 풍부한 시간이었다.
박모 씨는 데뷔 초에 느낄 수 있는 특유의 풋풋함을 만끽했다.
‘하, 좋은 이야기였다…… 응?’
[복숭아들ㅠㅠㅠ 너무 행복한 하루입니다ㅠㅠㅠ 아 생일 라이브예요ㅠㅠㅠㅠ]여운을 즐기고 있는 박모 씨를 포함한 이클립틱들에게 이번엔 라이브 알림이 도착했다.
* * *
“안녕하세요, 이클립틱. 레굴루스 채은성입니다.”
퉁퉁 부은 눈으로 채은성이 첫인사를 건넸다.
– ??
– 은성이 울었어??
– 무슨일이야ㅠㅠㅠㅠㅠㅠ
– 은성아 왜울어ㅠㅠㅠㅠㅠ
아직 생일 파티 영상을 보지 못한 팬들의 걱정스러운 말들이 주르륵 올라왔다.
뒤이어 영상을 보고 온 팬들의 웃음이 쏟아졌다.
– 아 은성이 붕어눈ㅋㅋㅋㅋㅋㅋ
– 너무 울긴 하더라ㅋㅋㅋㅋㅋㅋㅋㅋ
– 귀여워귀여워귀여워귀여워귀여워귀여워귀여워
– ? 애 우는 데 왜 웃어요??
– 눈부은 게 이렇게 귀여울 일인가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한 채은성이 민망한 듯 말을 이어 갔다.
“어,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운 건 아니고요. 생일 파티하다가 좀……? 아, 말로 하니까 왜 이렇게 창피하지?”
얼굴에 열이 오른 채은성이 파닥파닥 손부채질을 했다.
화면에 나오지 않게 옆으로 빠져 있던 범세혁도 손을 보탰다.
– 세혁이다!
– 세혁아!!
– 애들 옆에 있어??
“와, 손만 보고 알아맞히셨어. 신기하다.”
“진짜로?”
“어떻게 아셨지?”
“와, 진짜다.”
“제 손이 뭔가 특이한가요?”
“다른 멤버들도 다 맞출 수 있으시대!”
잠시 후에 합류할 예정이었던 멤버들이 태블릿을 확인하기 위해 우르르 몰려들었다.
작은 화면에 머리통 아홉이 옹기종기 모이자 팬들은 댓글로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나는 왜…….’
채은성의 옆에 앉아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예찬 또한 180이 넘는 장정들에게 인정사정없이 밀렸다.
“아, 저 먼저 얘기 좀 하고요!”
라이브를 켜기 전까지 이클립틱들에게 할 말을 수십 번씩 곱씹던 채은성은 순식간에 눈매를 사납게 치켜세우고 멤버들을 화면 밖으로 몰아냈다.
‘나는 또 왜…….’
이번에도 예찬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속절없이 밀려났다.
“흠흠, 생일 파티 정말 잘했고요. 끝나고 부모님이랑 식사하고 조금 전에 들어왔어요. 어제 올라오셔서 서울 나들이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복숭아들도 축하 많이 해 줘서 고마워요.”
역시 복숭아가 최고라며 팬들에게 한참 애교를 떤 채은성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거짓말 아니고 진짜 지금까지 생일 중 최고의 생일이었어요. 사랑해요, 이클립틱! 사랑한다, 레굴루스!”
멤버들이 채은성을 끌어안겠다고 우르르 몰려들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또……?’
이번에도 인파에 휩쓸린 예찬은 생각과 달리 올라간 입꼬리를 굳이 내리려 하지 않았다.
더없이 보람찬 하루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