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64)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64화
생일 라이브를 끝내고 나니 채은성의 생일도 끝나 있었다.
‘몇 시간을 떠든 거지……?’
반수 이상이 말 많은 놈이다 보니 라이브 방송을 하다가 탄력을 받으면 서너 시간쯤은 가뿐히 넘겨 버렸다.
“오늘 다들 고마웠어요.”
이제 생일이 지나갔으니 자기도 돕겠다며 바지런을 떨고 있던 채은성이 불쑥 말을 꺼냈다.
신들린 듯 풍선을 떼고 있던 예찬은 채은성을 돌아보았다.
“다들 생일 때 기대해요. 붕어로 만들어 버리겠어요.”
시선이 모이자 쑥스러워졌는지 주먹까지 불끈 쥐고 까불었다.
심상록이 수거한 꽃들을 채은성의 품에 안겨 주며 웃었다.
“그래, 기대할게. 다음은 누구였지? 의탁이였나?”
“의탁이 각오해.”
채은성이 정의탁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아니, 부릅뜨려고 한 것 같았다.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모르겠는데.’
정의탁은 헛웃음을 흘렸다.
“무슨 생일 축하 예고를 그렇게 살벌하게 해요? 그리고 전 절대로 안 울 거거든요. 의젓하다는 게 뭔지 제대로 보여 주겠어요.”
남의 생일에도 펑펑 운 놈이 말은 잘했다.
멤버들 모두 가소롭다는 듯 채은성 다음으로 부어 있는 정의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 *
1년에 아홉 번 있는 큰 행사를 넘기자, 하루하루가 쉴 새 없이 바빴다.
멤버들은 겨울 스페셜 앨범 준비와 시상식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앨범 발매는 12월 초로 딱 한 달이 남았으며, 첫 번째 시상식은 당장 이번 주 토요일이었다.
‘더리얼 뮤직 어워즈를 시작으로, 다음 주엔 디디 뮤직 어워즈, 11월 말엔 레몬 뮤직 어워드와 제일 신경 써야 할 NJ 쪽 모나 어워드(Music of Nnet Awards)까지 연달아 있으니…….’
12월엔 신문사들이 후원하는 어썸 아티스트 어워드와 3사의 연말 시상식이 기다리고 있는 데다, 이듬해 3월까지도 간간이 대중음악 시상식들이 이어졌다.
예찬은 새삼스레 이 시기에 앨범을 하나 더 내자고 주장한 것에 미안함을 느꼈다.
다들 좋다고 동의해서 시작한 일이고, 살인적인 스케줄에도 누구 하나 불평하는 이가 없었지만 그랬다.
‘순수한 마음 때문이 아니라 남아 있는 퀘스트를 깨려고 제안한 거니 찔릴 수밖에 없나…….’
어찌 되었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예찬이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 * *
11월 5일, KSPO 돔에서 올해의 첫 대중음악 시상식인 더리얼 뮤직 어워즈가 개최되었다.
출연하는 가수는 총 열아홉 팀으로 다른 시상식에 비해 수가 한참이나 적었다.
대신 그만큼 참여하는 면면들이 화려했다.
데뷔 반년 만에 신인의 성적을 훌쩍 뛰어넘어 1군 아이돌의 반열에까지 발을 걸친 레굴루스는 당연히 러브콜을 받았으나, 같은 츄마프 출신의 가온다는 초대받지 못했다.
‘여전히 우리랑 엮은 기사를 뿌려서 여론을 만들어 보려고 하는 것 같다만.’
지난 동시 발매 때 너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서 그런지 ‘전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시상식을 시작하기에 앞서 레드카펫 입장이 있었기에 레굴루스 멤버들은 차 안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정의탁입니다. 안녕하세요, 정의탁입니다! 안녕하세요? 정의탁입니…… 이건 좀 아닌가?”
“의탁아, 이러다가 형이 ‘내가 정의탁입니다~’하고 인사하겠는데? 흠흠, 제가 바로 레굴루스의 정의탁입니다! 안녕하심까!”
정의탁이 인사말을 연습하고 있자 옆에 앉아 있던 선우이경이 씩 웃으며 장난을 걸었다.
드물게 잠기운 없이 쌩쌩한 범세혁도 정의탁을 놀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끼어들었다.
“그러면 제가 ‘선우이경입니다!’하고 인사할게요! 휘겸이 너는 범세혁이라고 하면 돼!”
“……나도?”
당황한 우휘겸을 뒤로한 채 선우이경과 범세혁은 장난을 이어 갔다.
“이제 휘겸이 할 사람을 구해야겠네. 우휘겸 찾습니다, 선착순 한 명~!”
“의탁이 너는 누구 할래?”
“아, 진짜 그만 놀려요!”
정의탁이 소리치는 것을 곁눈질로 확인한 예찬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파랗게 질려 있던 안색이 다행히 제 색을 찾았다.
첫 시상식이니만큼 다소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가 느슨하게 풀렸다.
선우이경도 이를 느꼈는지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난 사실 군대에 있을 때까진 시상식이라곤 연말 시상식밖에 몰랐어.”
“아, 그럴 수 있죠.”
선우이경의 말에 예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중파의 연말 시상식도 안 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우리 집은 봐도 연기대상만 봤어.”
“나는 연습생 때 다른 연습생들이랑 모여서 소속사 선배님들 나오는 걸 봤던 기억이 나네.”
“얘들아, 이제 내리자.”
저마다 시상식과 관련된 추억들을 하나씩 늘어놓는 사이 레드카펫에 입장할 시간이 되었다.
“상록아아아아아!”
“은성아! 은성아! 은성아아아아!”
“예찬아아악!!”
“해솔아, 누나야!!”
멤버들을 발견한 팬들이 차에서 내리는 멤버들의 이름을 불렀다.
가볍게 손 인사로 화답한 멤버들은 이어 난생처음으로 레드카펫을 밟았다.
처음으로 ‘리스피릿의 하예찬’이 아닌 ‘레굴루스의 하예찬’으로서는 레드카펫에 서게 된 예찬 또한 기분이 남달랐다.
[네, 다음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주목 받는 신인이죠! 파워풀한 음악과 그보다 더 파워풀한 안무로 K-pop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레굴루스입니다!]레드카펫 진행을 맡은 희극인의 소개에 맞춰 멤버들은 차례대로 레드카펫 위에 올랐다.
[먼저 포토타임이 있겠습니다. 정면 봐 주시고요. 네, 다음은 오른쪽. 어유, 오늘 정말 너무 멋진데요? 다음은 왼쪽 한번 봐 주세요. 포즈도 편하게 취해 주시면 됩니다.]MC의 지시에 따라 쏟아지는 한동안 플래시 세례를 맞은 뒤에야 카메라 너머의 팬들을 향해 인사를 할 수 있었다.
[둘, 셋.] [빛나는 당신의 별! 안녕하세요, 레굴루스입니다!] [어휴, 정말 인사처럼 다들 눈부시게 빛나시는데요. 한 분씩 소개 부탁드릴게요.] [네. 안녕하세요, 레굴루스 하예찬입니다.]MC와 가장 가까이 서 있던 예찬을 시작으로 순서대로 인사가 이어졌다.
장난을 치다가 입에 정말로 붙은 건지, 선우이경이 잠깐 이름을 실수할 뻔했지만 그래도 막내 배새벽까지 짧은 인사가 무사히 끝났다.
[오늘 의상 콘셉트에 대해 한마디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희가 시상식에 처음 참여하다 보니, 시상식답게 깔끔하고 정중하게 보일 수 있도록 신경 썼습니다.]레드카펫의 단골 질문 중 하나였기에 예찬은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대답 그대로, 몸에 딱 맞는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멤버들은 안에 입은 셔츠 색과 넥타이 모양 외에는 거의 비슷한 차림새였다.
‘디테일은 전부 조금씩 다르긴 한데, 쓱 보면 그냥 평범한 정장 차림이니까.’
카메라가 멤버들의 전신을 훑는 것이 느껴졌다.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진 MC가 자리를 마무리했다.
[레굴루스의 무대 기대하겠습니다! 자, 다음 분을 소개해 볼까요?]MC가 대기하고 있는 다음 아이돌을 소개하는 사이, 멤버들은 팬들에게 양손을 흔들며 시상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후, 문제없이 잘 끝났군.’
예찬이 멤버들을 기특해하며 준비된 대기실에 들어온 순간, 채은성이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
“못 본 척한다면서요! 은성이 형, 진짜 완전 거짓말쟁이!”
그리고 정의탁이 분해 죽겠다는 얼굴로 채은성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달려들었다.
“…….”
아무래도 예찬의 시선이 닿지 않는 뒤쪽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모양이다.
“뭐야, 왜 둘만 재밌어. 우리도 같이 재밌자!”
이런 일에 절대 빠지지 못하는 선우이경이 느물느물 웃으며 두 사람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에이, 아무것도 아니긴. 우리 사이에 비밀이 있으면 쓰겠어?”
“그럼그럼.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잖아. 너의 슬픔, 형들이 나눠 들어 줄게.”
“왜 벌써 슬픈 일이라고 확신하는데요!”
정의탁이 발뺌했지만 넘어갈 하이에나들이 아니었다.
어느새 떼로 몰려든 멤버들이 두 사람을 추궁하는 사이, 예찬은 조용히 SNS에 접속했다.
‘채은성이 본 걸 복숭아들이 놓쳤을 리 없지.’
아니나 다를까, 몇 가지 키워드를 넣어 검색하자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영상이 상단에 떴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스마트폰의 스피커를 타고 팬들의 엄청난 함성이 퍼져 나왔다.
[예찬아, 결혼하자!] [배새벼어어억!] [범세혁 잘생겼다!!]“예찬이 형? 지금 뭘 보는……!”
[어, 의탁이 뭔가 이상하지 않아?]멤버들을 부르는 팬들의 외침 사이로 의아함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속삭였다.
정의탁의 기겁한 목소리도 이에 묻혔다.
이내 화면이 정의탁을 향해 확대되었다.
그리고 예찬은 레드카펫을 걷는 내내, 평온한 표정과 달리 계속 같은 쪽 팔과 다리가 튀어나오는 정의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유, 의탁이 잘 걷네.”
“긴장 많이 했구나.”
“그래도 얼굴은 프로야!”
“얼굴과 몸이 따로 노는 점이 재미있네요. 그래서 제 점수는…….”
“점수 매기지 금지! 웃지도 말아요!”
언제 이리로 자리를 옮긴 건지 멤버들은 옹기종기 예찬의 옆에 붙어 화면을 향해 한마디씩 던졌다.
정의탁이 버럭 화를 냈지만 멤버들의 입은 그 정도로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걸은 거지? 이렇게?”
“하나, 둘, 하나, 둘!”
“와, 나는 이게 더 어렵다. 세혁이는 되게 잘 따라 하는데?”
아예 둘씩 셋씩 짝을 지어 정의탁의 걸음걸이를 따라 하기에 이르렀다.
말리는 것을 포기한 정의탁은 그 대신 표독스럽게 눈을 치켜떴다.
“다들 두고 봐요. 어디 실수 한 번만 해 보라고요…….”
“얘들아, 휘겸이 완전 똑같아!”
“……휘겸이 형마저!”
아무리 포기했어도 우휘겸마저 그럴 줄은 몰랐다는 듯 정의탁이 배신감에 치떨었다.
우휘겸은 빠르게 동작을 멈추고 눈치를 살폈으나 이미 늦은 상태였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
* * *
KSPO 돔을 꽉 채운 관객 중 한 사람인 전직 애니메이션 덕후, 현직 이클립틱인 김모 씨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앞으로 2분…….’
보안을 아주 철저히 챙겼는지, 놀랍게도 이번 더리얼 어워즈는 큐시트가 유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다수의 이클립틱들은 당장 레굴루스가 무대 위에 올라오기라도 할 것처럼 긴장한 상태였다.
‘그야 신인이 레굴루스 밖에 안 나오는걸…….’
올해 데뷔한 신인들의 성적이 부진했다고는 하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덕분에 팬들은 이번 시상식의 유일한 신인인 레굴루스가 시상식의 첫 무대를 장식하리라고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때 무대 중앙의 전광판에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각양각색의 조명들이 화려하게 반짝이며 무대를 훑듯이 움직였다.
10부터 시작한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어 마침내 0이 되고, 기다렸던 이름이 전광판에 당당하게 떠올랐다.
[REGULUS]레굴루스의 첫 시상식 무대가 바로 지금, 시작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