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65)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65화
무대 정면을 꽉 채운 전광판에 떠올랐던 레굴루스의 이름이 문으로 바뀌고, 문이 열리는 것처럼 전광판이 양쪽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하예찬! 심상록! 선우이경!”
“강해솔! 범세혁! 우휘겸!”
“채은성! 정의탁! 배새벽!”
“레굴루스!”
그 뒤로 멤버들의 인영이 보이자 객석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어지러이 뒤섞였던 이클립틱의 목소리는 응원법에 맞춰 멤버들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로 합쳐졌다.
흐르는 전주는 2집 미니 앨범의 ‘KEEP YOUR CHIN UP’.
시상식에 맞춰 편곡했는지 무겁게 쿵쿵 울리는 음향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 순간, 돌연 음악이 멈추고 무대를 요란하게 비추던 조명들이 일제히 앞을 향해 쏘아졌다.
역광으로 실루엣을 선명하게 드러낸 멤버들은 다시 시작된 전주와 완벽하게 박자를 맞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음악에 맞춰 각자 다른 형태로 절도있게 몸을 움직이는 멤버들은 일견 자유롭게 보였으나 그 자유로움마저 계산된 것이었다.
발목의 각도, 손의 높이, 무릎의 꺾임 정도까지 어떻게 해야 돋보이면서도 아홉 사람이 조화롭게 보일지 수백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전주가 막 끝나 갈 무렵, 강해솔이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도는 사이 범세혁과 우휘겸은 무릎을 살짝 낮추고 손을 모았다.
그대로 두 사람의 손을 밟고 평소보다 더 높게 튀어 오른 강해솔이 앞으로 나갔다.
[Hey.]줄어든 음악을 절묘하게 뚫고 강해솔의 미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조명 또한 기다렸다는 듯 멤버들을 비췄다.
레드 카펫에서 입고 있던 점잖은 정장 대신 파란색으로 포인트를 준 캐주얼한 의상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앞머리 아래로 얇게 접은 반다나를 두른 강해솔의 파트가 이어졌다.
[눈 똑바로 뜨고 현실 파악을 해.]무려 첫 시상식 무대 무대임에도 강해솔은 평소보다 더 여유롭게 자신의 파트를 이어 갔다.
뒤이어 나온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강해솔과 심상록, 그리고 선우이경까지 랩 라인으로 시작된 초반부가 강렬하게 휘몰아치며 끝나 갔다.
[한 번 사는 인생언제까지 꼭두각시로 살 거야
K.Y.C.U.
싫은 소리 한 번 들었다고
땅굴 파지 마
Keep your chin up
그래, 기죽지 말고 고개 들어.]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완벽하고 자연스럽게 파트를 끝마친 선우이경 뒤에서 이번엔 채은성이 튀어나왔다.
2집 활동 컴백 무대를 의자에 앉아서 보냈던 채은성은 깁스를 푼 뒤부터 맺힌 한을 풀 듯이 무대 위를 날아다녔다.
오늘도 어김없이 중력을 거스르듯 채은성이 날아올랐다.
채은성의 파트에 코러스를 넣던 예찬은 점점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아마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대에서 한 번만 불러도 기진맥진하는 곡을 평소보다 배는 힘을 줘서 소화하고 있으니 당연했다.
‘다음 곡도 있는데…….’
그렇지만 멤버 중 누구 하나 동작이나 목소리가 느슨해지는 사람은 없었다.
‘여기서 힘을 풀 수 있는 놈이 있겠냐고.’
객석을 향한 예찬의 눈이 절로 가늘어졌다.
머리 위에 쏟아지는 무대 조명보다 객석에서 반짝이는 각양각색의 응원봉이 눈부시게 느껴지기에 어쩔 수 없었다.
시상식 무대는 팬들만 앉아 있는 콘서트와는 또 다른 감각이었다.
어디서든 객석에서 응원해 주는 팬들을 보면 반갑고 기뻤다.
팬들을 더 즐겁게 해 주고 싶은 마음도 강렬하게 들었다.
‘콘서트가 그저 고맙고 벅차다면, 시상식은…… 좀 호승심이 생긴다고 해야 하나?’
시상식에선 거기에 더해 다른 그룹의 불빛을 이쪽의 색으로 물들이고 싶다는 단순하지만 강렬한 욕망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었다.
완고할 정도로 흔들리지 않는 응원봉이 무대 위의 퍼포먼스에 감화되어 절로 리듬을 타는 것을 보면 짜릿한 전류가 혈관을 타고 흘렀다.
온 힘을 다한 첫 번째 곡이 끝나고, 자연스럽게 데뷔 앨범의 타이틀 곡, ‘Only my you’의 전주가 ‘KEEP YOUR CHIN UP’의 후주에 섞여 들었다.
조명이 어두워진 틈을 타 무대 중앙에 모인 멤버들은 저마다 입고 있던 겉옷의 지퍼를 내리고 단추를 풀었다.
두 번째 곡의 시작 퍼포먼스를 위한 준비가 끝난 예찬은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You, Only my you.]예찬의 저음을 시작 신호 삼아 조명이 무대 중앙을 밝혔다.
평소와 달리 둥글게 원을 그리듯 서 있던 멤버들은 기다렸다는 듯 입고 있던 겉옷을 벗었다.
일부러 옆 멤버와 소매를 엮어 하나의 긴 끈처럼 옷을 만들어 보인 뒤, 다시 핑그르르 돌며 옷을 강하게 잡아당기자 이어졌던 옷이 풀렸다.
“아아악!”
“얘들아!!”
멤버들은 그대로 상의를 위로 집어 던졌고, 이클립틱들은 그 자리를 격렬한 환호로 채우겠다는 듯 함성을 질렀다.
어느새 무대 뒤 전광판에서 화려한 영상이 흐르고 있었다.
다시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되었다.
* * *
[네가 영원을 바란다면내가 영원히 바라볼게.]
‘전혀 안 쪼네.’
짧은 순간에도 표정을 휙휙 바꾸는 화면 속 멤버의 얼굴에 카메라 감독은 감탄했다.
보는 맛이 있었다.
이 판에서 구를 만큼 굴렀지만 이런 신인은 처음이었다.
세세하게 조명 세팅을 요청하는 게 귀찮아 죽겠다며 혀를 차던 조명 감독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쯤 자신이 했던 말은 까맣게 잊고 완전히 열중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렇게 완벽하게 조명을 이용하다니.’
조명이 꺼지고 켜지는 틈과 역광, 측광이나 다른 색의 불빛까지.
지금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햇병아리들의 머릿속에 이것들이 완벽하게 계산되어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오래간만에 손바닥이 저릿한 감각을 느꼈다.
더리얼 뮤직 어워즈는 다른 시상식에 비해 무대 장치가 단조로웠다.
사실 단조롭다는 말도 미안할 정도였다.
가운데가 열리는 대형 스크린과 조명, 레이저, 그리고 무대를 둘러싼 다소 빈약한 불꽃 효과 외엔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리프트나 계단은 당연히 없었고, 포그 효과나 드라이아이스도 사용할 수 없었다.
시상식이면 으레 등장하는 에어 샷으로 꽃가루나 깃털을 날리는 것도 다음 무대를 위해 금지하고 있었다.
이렇다 보니 괜히 정직한 네모 형태의 무대마저 더 황량해 보였다.
‘음악 방송보다 더 시시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듯, 조명과 레이저가 반주와 호흡이 완벽하게 맞아 들어갔다.
준비해 온 스크린의 화면도 과연 대기업의 자본력이 느껴지는 퀄리티였고.
무엇보다 소름 돋을 정도로 딱딱 맞는 안무와 스피커를 뚫고 터지는 노래 실력이 모든 것이 더없이 완벽하게 느껴지게 했다.
“허…….”
카메라 감독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무대를 조금이라도 현장감 느껴지게 담으려고 기를 쓰는 자신을 깨닫고 웃음이 나왔다.
신인상을 받으러 시상식에 참여한 풋내기들을 상대로 이런 기분이 들다니.
‘레굴루스라…….’
오래간만에 어마어마한 괴물이 튀어나왔다.
* * *
“와, 세혁이는 정말 신인 같지 않네.”
하경의 감탄에 예찬이 고개를 돌렸다.
“형, 언제 이렇게 보는 눈이 생겼어?”
“뭐?”
“아니지. 세혁이를 신인으로 묶었다는 것 자체가 아직 먼 거지. 세혁이는 그런 틀로 묶을 레벨이 아니라고.”
“으휴, 너흰 형 놀리는 재미로 살지?”
인상을 찌푸린 하경은 화면 속 범세혁을 바라보다 다시 말을 꺼냈다.
“예찬이 너는 연습생 한 지 꽤 됐잖아. 네가 보기에도 세혁이는 좀 남달라?”
예찬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얼굴 되고, 춤 되고, 노래 되고, 랩도 잘한댔나? 아무튼 저 정도면 활동 중인 아이돌 내에서도 찾기 힘들지.”
“예찬이 너랑 비교하면 어때?”
하경의 말에 예찬은 잠시 눈을 깜빡거렸다.
“……일단 얼굴은 내가 낫지?”
“그건 취향의 문제 아닐까?”
“…….”
예찬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노래는 나도 어디서 안 지지. 춤은 솔직히 지금 무대 정도면 따라 추겠는데, 츄마프 때 생각하면 범세혁이 낫고.”
“츄마프 때가 지금보다 더 잘 췄다는 뜻이야?”
“지금은 다른 멤버들이랑 맞추느라 원래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자제하고 있으니까. 팀 전체로는 보기 좋을지 모르겠지만 범세혁은 좀 손해 보고 있는 느낌이지…… 뭐, 아이돌이니 팀이 더 중요하다면 중요하지만.”
모두의 얼굴이 조그맣게 보이는 단체 안무에서도 범세혁은 주머니 속 송곳처럼 눈에 띄었다.
하향 평준화를 해도 어차피 묻히지 않는 존재감이라면, 차라리 더 드러내는 게 낫지 않나?
애초에 못하는 멤버한테 맞추는 것도 이상해.
잘하는 쪽에 맞출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데까진 노력해 봐야지.
예찬의 중얼거림에 하경도 생각에 잠겼다.
“음…… 역시 난 잘 모르겠다. 그래서 예찬아, 랩은 어떤데?”
“어?”
“노래는 네가 낫고, 춤은 세혁이가 낫다며. 랩은?”
“……형, 저 포지션 보컬이거든요?”
“응, 세혁이는 댄서라며.”
“……나, 갈래!”
“하하하, 미안 미안. 이제 안 놀릴게! 오늘 자고 가기로 했잖아.”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준비했다며 하경은 예찬을 붙잡아 앉혔다.
그 사이, 츄마프 데뷔팀의 무대가 끝이 났다.
집중해야 할 무대가 끝났으니 이제 먹으면서 보자며 하경이 먼저 식탁 쪽으로 이동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저녁 메뉴는 예찬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했다.
“숙소로 돌아갔으면 후회할 뻔했지?”
“음…… 맛있긴 하네.”
예찬의 떨떠름한 대답에도 하경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생글생글 웃었다.
그러는 중에도 TV에선 각종 상의 시상과 무대가 번갈아 이어졌다.
세 팀이 연달아 무대를 선보인 뒤, 다시 MC들이 진행을 시작했다.
하경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원래 시상식은 무대가 더 화려하지 않아? 다들 좀 심심한 느낌인데.”
가끔 보는 음악 방송보다 오히려 더 심플한 느낌이었다는 말에 예찬도 동의했다.
“무대 장치가 아예 없어서 그럴 거야. 음악 방송은 사전 녹화를 할 때 세트를 크게 짓는 경우도 많으니까. 더리얼은 작년에도 무대 효과가 심심하다는 얘기가 나왔었는데 올해도 그러네.”
“와, 역시 업계 관계자다운데. 바로바로 분석이 튀어나오네.”
“관계자는 무슨. 그냥 장기 연습생이지.”
“그렇게 실력을 차근차근 쌓는 거지. 형은 예찬이도 곧 저렇게 시상식 무대에 설 거라고 믿어.”
진심이 담뿍 묻어나는 따뜻한 말에 예찬은 쑥스러운 듯 입술을 깨물었다.
“……고마워.”
하경은 지금은 됐다며 손을 내저었다.
“감사는 아껴 뒀다가 그때 되면 수상 소감으로 해 주라. ‘저를 응원해 준 하경이 형에게 감사합니다! 형 덕분에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어요!’ 하고.”
“그게 뭐야.”
연극이라도 하는 것처럼 과장된 어조에 예찬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이내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 점의 그늘 없이 웃고 있는 얼굴들이 멀어져 갔다.
그제야 등 뒤의 현실이 덥석 어깨를 붙잡는다.
‘분명 시상식장이었는데? 아, 잠깐 선잠이 들었구나…….’
깨달음이 머리를 스쳤을 땐, 귓가에 맴돌던 그리운 웃음소리는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