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67)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67화
첫 번째로 참가한 시상식에서 레굴루스는 4관왕을 달성했다.
그리고 정의탁은 팔다리를 같이 움직인 레드 카펫 입장에 이어 길이길이 회자될 흑역사를 하나 더 만들어 냈다.
[이클립틱, 사랑합니다앍―!]소감을 말하던 중, 장대하게 음 이탈을 낸 것이었다.
예찬은 속으로 음 이탈에 78점, 그 뒤 이어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표정에는 97점의 예능 가산점을 주었다.
‘특별한 날이니 후하게 쳐줬다.’
“바보, 멍청이, 얼간이…… 끝났어, 끝났다고…… 지금쯤 다들 노래도 아니고 소감을 말하다 삑사리를 낸 멍청이는 누구인지 묻고 있겠지?”
대기실로 돌아온 정의탁은 오늘이 끝나기 전에 거대한 땅굴을 하나 완성할 기세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심상록이 어깨를 토닥거리며 위로했다.
“아니야, 의탁아. 네 생각만큼 그렇게 잘 들리지 않았어.”
아주 잘 들렸다.
정의탁이 음 이탈을 낸 순간, 차마 웃음을 참지 못했던 선우이경도 거들었다.
“소란스러워서 묻혔을 거야.”
묻히지 않았다.
말주변이 없는 우휘겸도 어설픈 위로를 보탰다.
“그렇게 막 이상하지 않았어.”
이상했다.
쭈그려 앉은 채 무릎에 고개를 묻고 있던 정의탁이 눈만 빼꼼 내밀었다.
좀 더 위로를 해 달라는 신호였다.
기꺼이 요청을 받아들인 멤버들은 정의탁을 둘러싸고 둥기둥기 달래기 시작했다.
“솔직히 다들 조금씩은 목소리 뒤집히잖아.”
“내 말이. 의탁이 정도면 애교지, 애교.”
“그 전에 한 말이 워낙 감동적이라 복숭아들은 삑사리 난 것도 모르지 않을까?”
달팽이가 껍질 밖으로 고개를 내밀 듯 스멀스멀 고개를 들어 올리던 정의탁과 예찬의 눈이 타이밍 좋게 마주쳤다.
“……예찬이 형은 왜 아무 말도 없어요?”
“진짜 내가 말을 해 주길 바라니?”
“이미 표정으로 다 했어요! 난 망했어!”
“예찬아!”
다시 껍질 속으로 들어간 정의탁의 어깨를 감싸며 심상록이 예찬을 나무랐다.
예찬은 순순히 사과했다.
“솔직해서 죄송합니다.”
“전혀 미안해하고 있지 않잖아요!”
울컥한 정의탁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톡톡 건드린 예찬이 문 쪽을 향해 턱짓했다.
“그렇게 화낼 기운 있는 거 보니 멀쩡하네. 슬슬 그만 울고 마지막 인사할 준비 하자.”
“안 울었거든요!”
* * *
시상식에 참여한 모든 가수가 다 같이 무대에 나와 인사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더리얼 뮤직 어워즈가 끝이 났다.
레굴루스의 기념비적인 첫 시상식이 끝났다는 뜻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대상을 놓고 리스피릿과 유피테르의 팬들은 서로를 물어뜯느라 바빴지만, 이클립틱은 여느 때보다 평화롭게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오늘도 애들 얼굴은 최고고, 무대도 최고고.’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던 프리랜서 정모 씨의 손이 한 동영상을 보자 절로 멈췄다.
[레굴루스 시상식 웃참 챌린지 ver. 2 + 덤]삐걱거리는 정의탁을 캡처한 썸네일만 봐도 무슨 장면인지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인터넷에 끝도 없이 올라온 장면이었으나 차마 질린다는 말은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앗, 손이 멋대로……!’
마음대로 움직인 손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문자 그대로 뚝딱거리며 걷는 정의탁을 여러 각도에서 찍은 영상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올라온 여러 영상을 전부 합친 종합편 같은 느낌이었다.
‘오, 완전판!’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고 웃음을 참아 보려고 견디고 있는 채은성의 얼굴과, 소리만 내지 않았을 뿐 배까지 부여잡고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린 배새벽의 얼굴이 절묘하게 클로즈업되었다.
앞에 있는 멤버들은 뒤쪽의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멋들어진 미소를 짓고 있는 것도 상황을 더 희극적으로 만들었다.
“크흐흡…….”
정모 씨가 비실비실 웃음을 흘리는 사이, 이번엔 레굴루스의 수상 장면으로 화면이 전환되었다.
[우리 사랑하는 이클립틱! 앞으로도 우리 오래 같이 걸어요.] [이클립틱, 오늘도 와 줘서 고마워요. 사랑합니다.] [여러분께도 멋진 꿈을 보여 드릴 수 있는 가수가 되겠습니다.] [앞으로도 저희에게 보내 주신 그 마음에 보답하는 모습 보여 드리겠습니다.] [아직 이르지만 더없이 행복하고 감사한 한 해를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에 이렇게 상을 또 받았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전부 이클립틱 덕분이에요.] [저 오늘도 너무 행복해요! 복숭아들도 행복한가요?!]정의탁을 제외한 멤버들의 소감을 짧게 편집한 영상이 먼저 흘러나왔다.
더없이 훈훈한 이 장면들 뒤로 뭐가 나올지 알기 때문일까?
벌써 광대가 씰룩거렸다.
그리고 기대하고 기대하던 정의탁의 순서가 드디어 찾아왔다.
[어, 지금 방송을 보고 있을 가족들과 우리 멤버들의 가족들, 그리고 항상 곁에서 열심히 도와주시는 우리 스태프분들, 스타일리스트분들, 또 NJ 레굴루스 전담팀 직원분들이랑 도지윤 팀장님, 신 PD님, 어…… 다 말한 거 같은데 제가 머리가 너무 하얘져서 혹시 언급을 못 한 분이 있다면 너무너무 죄송합니다.]다른 멤버들에 비해 상당히 횡설수설하던 정의탁은 정면을 바라보더니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클립틱.]‘온다.’
[사랑합니다앍―!]마이크를 타고 음 이탈이 장렬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화면이 바뀌었다.
가장 먼저 소리를 듣자마자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심상록이 나왔다.
커다란 손 아래로 숨긴 입이 웃고 있을 것은 자명했다.
두 번째로 나온 것은 다리가 풀렸는지 휘청거린 우휘겸이었다.
얼굴만큼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표정한 것이 더 웃겼다.
다음은 배새벽이었다.
레드 카펫 때와 마찬가지로 웃음을 참아 볼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 옆의 범세혁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입술을 꾹 말아 문 채은성은 괜스레 천장을 바라보았고, 강해솔은 고개를 떨군 채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선우이경은 웃음을 참고 싶은 것 같긴 한데 이미 눈이 반으로 접혀 있었다.
마지막은 예찬이었다.
멤버의 실수를 없었던 일처럼 덮어 주려는 듯 태연한 표정과 자태가 언뜻 고고하기만 했다.
그러나 자비 없는 영상은 그의 섬섬옥수를 점차 클로즈업했고, 정모 씨는 속절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학!”
평온한 얼굴과 달리 예찬의 오른손은 아주 매섭게 자신의 왼쪽 손등을 꼬집고 있었다.
‘고통으로 웃음을 참고 있었던 거냐고!’
정모 씨는 레굴루스 채널이 제발 오늘 대기실 비하인드 영상을 올려 주길 간절히 기도했다.
‘신 PD, 오늘 비하인드 영상 올리면 임종 때까지 우리 애들 발닦개로 살라던 저주를 취소해 준다. 막내가 딱 백 살 될 때까지만 발닦개로 살라고 기도해 줌.’
배새벽이 백 살이 되었을 즘엔 신 피디는 이미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을 확률이 높았지만, 그런 사소한 것은 정모 씨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끝이라 생각했던 영상은 소감을 말하는 정의탁으로 돌아왔다.
[사랑합니다앍―! 앍―, 앍―, 앍―, 앍―, 앍―!]절정인 음 이탈 부분을 다시 보여 주더니, 조금씩 음을 바꾼 ‘앍’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이번엔 ‘KEEP YOUR CHIN UP’과 ‘Only my you’의 가사를 전부 정의탁의 ‘앍’으로 대체한 무대 영상이 시작되었다.
정모 씨는 다시금 편집자의 의도대로 웃음을 터트렸다.
엄청난 퀄리티의 영상이었다.
이걸 공짜로 볼 수는 없겠단 생각에 정모 씨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한 동지들이 많았는지 올라온 지 얼마 안 되는 영상에 댓글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 웃참 난이도☆☆☆☆☆
– 오늘 시상식은 의탁이가 살렸다
– 의탁아 잘했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애들이랑 같이 웃음 참기 챌린지 하니 재밌네요ㅋㅋㅋ
– 분명 다 아는 영상인데 왜이렇게 웃기지???ㅋㅋㅋㅋㅋㅋ
– 아 저항없이 터졌닼ㅋㅋㅋㅋㅋ
– 근엄한 얼굴로 잘 참고 있었는데 예찬이 꼬집이랑 앍 메들리에 개터짐ㅋ
– 이거 영상 되게 많이 봤는데 예찬이 셀프 꼬집은 진짜 몰랐네요ㅋㅋㅋㅋㅋ
하하호호 웃음꽃이 피어난 댓글 창에 정모 씨도 지금 느끼고 있는 행복을 꾹꾹 눌러 담은 댓글을 하나 남겼다.
– 앍의탁 나도 사랑한다!
‘레굴루스 시상식 웃참 챌린지 ver. 2’는 아이튜브 알고리즘의 사랑을 받아 인터넷에서 빠르게 퍼져 나갔다.
더불어 정모 씨의 댓글은 많은 추천을 받아 베스트 댓글이 되었고, ‘앍의탁’은 정의탁의 별명으로 당당히 자리 잡게 되었다.
* * *
더리얼 뮤직 어워즈가 끝난 다음 날부터, 앍의탁, 아니, 정의탁은 각종 시상식의 소감을 찾아보고 있었다.
앞으로 남은 시상식들에서 첫 소감의 실수를 만회해 보겠다는 생각 같았다.
당장 이틀 뒤인 목요일에 디디 뮤직 어워드가 예정되어 있으니 마음이 조급한 것도 이해가 갔다.
“다른 사람들의 소감을 듣다가 생각난 건데, 우리는 대표님 언급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네요?”
정의탁의 말에 잠시 연습실 바닥과 하나가 되어 쉬고 있던 멤버들이 시선을 교환했다.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리던 채은성이 고백했다.
“……나 대표님 이름을 몰라.”
“은성이 너 이 녀석! ……나랑 똑같구나!”
그런 채은성을 혼쭐이라도 낼 것처럼 삿대질을 한 선우이경이 장난스럽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홀로 고민하던 강해솔도 입을 열었다.
“그런데 대표님이라면 NJ 회장님이 아니라 NJ ENM 쪽 대표님을 말해야 하는 건가?”
“그냥 도지윤 팀장님 말하면 된 거 아니에요? 팀장님보다 윗사람은 만나 본 적이 없잖아요.”
범세혁이 더없이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다.
그 옆에서 뒹굴거리는 배새벽도 동의하는 눈치였다.
역시나 오늘도 주제가 스물스물 점차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다른 가수들은 대표님이나 사장님을 막 자주 만나나?”
“대형은 어렵지 않을까요? 루벨은 오가다가 종종 마주치긴 했는데.”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올림포스는 연습생일 때도 회장님이 분기별 평가랑 연말 평가는 직접 오셔서 평가하셨어.”
“오, 역시 올림포스!”
‘60, 59, 58…….’
“이경이 형, 아라는 어땠어요?”
“어, 사실 아라 기획 대표님이 아는 분이라 그쪽으로 들어갔던 거거든. 그래서 나 보러 연습실에 종종 오셨는데 그게 보통인지는 모르겠네.”
“와, 역시 금수저!”
“그냥 어찌어찌 아는 분인 거지, 어찌어찌.”
‘21, 20, 19…….’
“AOB는 어때요, 해솔이 형?”
“……거긴 기획사라기보다 힙합 레이블 느낌이라. 다 같이 모여서 각자 작업한 걸 듣기도 하니까 자주 보게 되지.”
‘3, 2, 1.’
멤버들의 이야기에 끼어들지 않고 조용히 경청하던 예찬이 벌떡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10분 끝. 다시 연습합시다.”
소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대 아니겠는가.
멤버들 또한 예찬과 같은 생각인지 미련 없이 하던 이야기를 중단하고 몸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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