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68)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68화
11월 8일.
레굴루스는 두 번째 음악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디디 뮤직 어워드는 사흘 전 열렸던 더리얼 뮤직 어워즈처럼 퍼주는 상이 없기에 좀 더 수상이 까다로웠다.
물론 데뷔 앨범 초동 기록을 갱신하고, 올해 발매한 두 장의 앨범 모두 밀리언셀러를 달성한 레굴루스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남자 신인상은…… 레굴루스입니다!] [남자 퍼포먼스상의 주인공은…… 축하합니다, 레굴루스!] [디디 뮤직 어워드, 베스트 뮤직비디오상은…… 레굴루스의 ‘KEEP YOUR CHIN UP’입니다!]3관왕을 달성한 레굴루스는 기분 좋게 선배들이 대상 나눠 먹기를 하는 것을 구경했다.
[올해의 앨범상은, 유피테르! 축하드립니다!] [올해의 음원상, 발표하겠습니다…… 리스피릿, 축하합니다!] [올해의 가수상, 그 영광의 주인공은…… 유피테르!]디디 뮤직 어워드에는 총 3개의 대상이 존재했는데, 유피테르가 그중 두 개를 차지하고, 나머지 하나는 리스피릿이 받게 되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지난 마지막 회차 때는 예찬이 속해 있던 리스피릿 쪽이 대상 두 개를 받은 주인공이었다.
‘……결과가 바뀌었군.’
예상하던 일이라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예찬이 당근을 흔들고 채찍을 휘둘러야 겨우 굴러가는 회사와 멤버들이었는데, 그 역할을 해 오던 정찬양이 상반기 이후로 거의 손을 놓다시피 하지 않았는가.
‘……그 상반기 실적으로 더리얼 대상은 이번에도 리스피릿이 받아 갔지만.’
이걸로 두 팀의 대상 개수는 각각 두 개씩.
지금쯤 인터넷에선 팬들 간의 싸움이 한층 더 격렬해졌을 것이 분명했다.
“……으.”
저도 모르게 커뮤니티에 접속하려던 예찬은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리바디에 대한 건 이제 놓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만 방심하면 본능적으로 그쪽을 기웃거리려 들었다.
‘……답이 없는 짝사랑이네.’
예찬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두 번째 시상식이 끝나고 정확히 일주일 뒤.
레굴루스의 겨울 스페셜 앨범 ‘wintering’의 타임 테이블이 깜짝 공개됐다.
– 12월 2일 wintering 많관부
– 와 캐럴송 미쳤다ㄷㄷㄷㄷㄷ
– 벌써 보인다…… 이번 겨울이 끝날 때까지 노래가 헐 때까지 재생할 내 미래가…… 크큭
– 다음 달 초 발매라고?? 얘들 쉬긴 함??;;;
– 거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거 짜릿하네
– 음방 돈다는 거 카더라야 진짜야? 만약 진짜면 너무 바쁘지 않음? 그렇지 않아도 시상식도 올출할 거 같던데……
– 겨울 연금곡 함 가 보자고
지난 두 앨범의 질이 워낙 출중했던지라, 이번에도 기대하는 반응이 가장 눈에 띄었다.
간간이 다가오는 연말에 맞춰 축배를 들고 있는 분위기 사이로 멤버들의 바쁜 스케줄을 걱정하는 글들도 보였다.
‘열심히 해야지.’
팬들의 반응에 힘을 받은 예찬은 가뿐한 얼굴로 다시금 연습에 열을 올렸다.
“이건 또 뭐야?”
도 넘는 악플러가 설치고 있는 걸 확인한 것은 같은 날 저녁이었다.
여느 때처럼 모니터링을 시작했는데, 댓글 수가 거의 네 자릿수에 육박한 게시물이 바로 눈에 띄었다.
[살아 보니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 난다는 말이 맞더라….]주어 딱히 없음 고소 너무 잘한다고 해서 물어봐도 말 못 해 줌
알아서 생각해라….
서바이벌 참여 중일 때 학폭 얘기가 나왔는데 아니라고 역대급으로 빨리 정리됐잖아….
진짜로 억울해서 그렇게 빨리 해결됐다고 믿었는데 내가 너무 순진했나 봄….
직접 만나 보니까ㅎㅎㅎㅎ 무슨 말 하는 건지 알지?ㅎㅎㅎㅎ
알아보니까 엄마가 무슨 대형 로펌 변호사구……
원래 우리나라가 다 그렇지 하고 그냥 똥 밟은 셈 치고 잊으려고 했는데,
그때 억울하게 사과문 쓴 사람 지금 어떤 심정일까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안 좋아서 이렇게 주어 없이 주절대 봄….
나라면 나 괴롭힌 사람이 티비에 나와서 하하호호 웃고 팬들이 빨아 주는 거 보면 너무 억울할 거 같은데….
아무튼 그렇다고ㅎㅎㅎㅎ
“…….”
고소 잘하는 소속사, 서바이벌 참여, 학폭 논란과 빠른 해결, 대형 로펌 어머니.
주어가 없다고 떠드는 건 헛소리고 누가 봐도 우휘겸을 저격한 글이었다.
‘뭐지. 미친놈인가? 혹시 지찬수? 또 이런 짓을 벌일 만큼 간덩이가 부은 거 같진 않았는데…….’
학폭 논란 글을 올린 당사자인 지찬수를 직접 만나서 담판을 지은 예찬이 보기엔 황당하기 그지없는 글이었다.
실제로 댓글들도 처음엔 빤히 보이는 관심 종자에게 먹이를 주지 말자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댓글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중간에 글쓴이가 댓글로 관계자 인증을 한 뒤부터였다.
– 믿고 안 믿고는 자유인데…. 나 연예계 관계자 맞음…. ㅎㅎㅎㅎ 이번에 디디 어워드 참여하면서 찍은 사진임ㅎㅎㅎㅎ 이 바닥에 있으면 더러운 얘기 되게 많이 듣는다? 근데 얘는 어린애가 너무 철면피라 그냥 대나무 숲에 떠드는 것처럼 얘기해 봤어…. 내가 이런 말 한다고 달라지는 거 없을 건 나도 안다….
디디 뮤직 어워드 당시 대기실 풍경이나 큐시트 등을 찍은 사진을 함께 올린 댓글에 당연히 많은 관심이 쏠렸다.
└ 헐 ㄹㅇ 계자임?
└ 대박 디뮤 참여한 돌들 실물 어떰??
└ 그럼 ㅇㅎㄱ 학폭 진짜라는 거임?
└ 와…. 나 완전 팬이었는데 실망ㅠㅠㅠㅠ
└ 쓰니 쪽지 확인해 줄 수 있음?
└ N제이 진짜 심심하면 고소하던데 글쓴이 고소당하는 거 아님?
└ 미리 성지 순례합니다.
예찬 또한 절로 표정이 굳었다.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건, 진짜로 이쪽 업계 사람이라는 건데.’
디디 뮤직 어워드 사진 외에도 음악 방송 대기실 사진이라든지, 방송국 복도 등의 인증샷이 이어졌다.
뜨거운 반응을 얻어 낸 글쓴이는 의기양양해진 건지 우휘겸과 레굴루스를 모함하는 것에 박차를 가했다.
– 고소…. 주어 없는데 누가 고소해….? 진짜 고소당하면 찔린다는 얘기네ㅎㅎㅎㅎ
– 원래 연예인은 다 가식이라지만…. 얘네는 진짜 어린애들이 해도 너무하더라…. 이 바닥에서 더러운 꼴 많이 봤는데 얘네만큼 앞뒤 다른 애들은 처음 봄…. 이쯤 되면 팬들은 거의 사기당하고 있는 수준….
– 주어 없는 그분도 대단하지만…. 끼리끼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잖아ㅎㅎㅎㅎ
이용자가 많은 익명 게시판이다 보니 처음엔 글쓴이에게 호응하는 댓글들이 주로 달렸다.
그러나 뒤늦게 소식을 듣고 모여든 이클립틱들이 참전하면서 댓글들은 점점 더 격해지고 있었다.
– 말만 주어 없음이라고 붙이면 다임? 학폭 루머 때문에 우리 애 괜히 욕먹은 거 지금 생각해도 ㅈㄴ 억울해 죽겠는데 어이가 없네ㅋㅋㅋ 팬들은 다 얘가 얼마나 순한 앤지 아는데 저급 어그로 잘 보고 갑니다ㅋㅋㅋ
└ 순한 애…. ㅎㅎㅎㅎ 그렇게 믿는 게 마음이 편하겠지…. ㅎㅎㅎㅎ
└└ 쓰니 혹시 직접 뭐 본 거 있음?? 살짝만 알려 주면 안 돼??
└└ 이렇게 당당한 거 보면 진짜 뭐 있긴 한가 봄ㄷㄷ 나도 주어 딱히 없음ㅋㅋㅋ!
– 주어 없음 요지랄 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 거 같음?ㅋㅋ pdf 땄다
└ ㅎㅎㅎㅎ 응 많이 따ㅎㅎㅎㅎ
익명 사이트라지만 이렇게 반응이 뜨거운 글인 만큼 금세 다른 사이트로도 퍼질 게 분명했다.
‘아니, 이미 퍼졌겠네.’
예찬이 어디서부터 문제를 해결할지 잠시 고민하는 사이, 회사 법무팀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하예찬입니다. 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보고 있었어요. 네, 네. 그렇게 해 주시면 될 거 같습니다. 네, 아시는 대로예요. 멤버들에겐 제가 전달하겠습니다.”
예찬은 눈으로는 여전히 게시물의 댓글을 훑으며 법무팀 직원에게 대답했다.
“아직 다 읽은 건 아닌데…… 내용이 좀 심하네요.”
우휘겸으로부터 시작한 폄훼는 다른 멤버들로 서서히 옮겨 가고 있었다.
– 나도 솔직히 주어 없는 그룹 많이 쎄했음…. 리더는 초중고 다 한국에서 나왔는데 동창 인증 하나 없는 것두 그렇고…. 너무 조용하니 오히려 의심스러운 그런….
– 연예계 금수저 물고 태어난 그분은 심심풀이로 아이돌 하는 거 나만 느낌?ㅎㅎㅎㅎ 그냥 배우 일이나 하시지…. ㅎㅎㅎㅎ
– 3대 기획사에서 데뷔조에 들 정도면 어지간한 그룹 센터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누구 덕에 식견이 좁았다는 거 깨달았다ㅎㅎㅎㅎ
– 얘네 팬들이 양아치 얼굴에 그렇지 못한 영혼이라고 영업할 때마다 너무 소름이었음…. 관상이 괜히 있는 게 아닌데….
처음엔 살살 긁는 정도로 시작한 댓글들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일차원적이고 원색적으로 변해 있었다.
음주 가무에 흡연, 연애는 물론이고 클럽이며 헌팅에 심지어 스폰설까지.
세상의 지저분한 단어란 단어는 전부 레굴루스 멤버들에게 붙일 기세였다.
재벌가 사모님 두 분이 예찬을 사이에 두고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웠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화가 나기보다 어이가 없었다.
‘상상력 미쳤네.’
스마트폰에서 법무팀 직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지금까지 올라온 글들은 전부 확인해서 소장 작성했습니다. 지금도 댓글이 올라오는 중이라 계속 모니터링할 예정입니다.
“네, 감사해요. 아래로 내려갈수록 내용이…….”
– ……저희가 꼼꼼히 처리할 테니, 예찬 씨는 불편하시면 그만 확인하셔도 괜찮습니다.
법무팀의 배려에 예찬은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물론 자기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았기에 댓글을 읽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막 멈췄던 부분 뒤로는 이번엔 아직 청소년인 배새벽을 겨냥한 댓글들이 주르륵 이어지고 있었다.
– 거기 막내 알콩달콩 어쩌구저쩌구 불리는 거 진짜 역하다…. 클럽에서 봤을 때 사진 찍어 놨으면 팬들 정신 차리게 해 줄 수 있을 텐데ㅎㅎㅎㅎ
└ 와 혹시 10월 6일 에리스? 나만 본 거 아니었구나…. 그 정도 유명인이면 얘기가 돌 만한데 너무 조용해서 잘못 본 줄….
└└ 그건 아무래도 보정빨이 너무 심해서…. ㅎㅎㅎㅎ
‘……이것 봐라?’
예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확신을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촉이 발동했다.
예찬은 빠르게 스크롤을 꼭대기로 움직였다.
맨 위의 본문부터 휙휙 넘기며 빠르게 댓글들을 다시 확인하자, 의심은 확신으로 기울었다.
‘뭐, 법무팀이 소장 날리면 알 수 있겠지.’
일단 지금은 가볍게 언질 정도만 해 두면 될 것 같았다.
마지막 댓글까지 확인한 예찬은 괜히 멤버들이 놀라기 전에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전하기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 *
– 예찬아 나야…. 혹시 오늘 잠깐만 만날 수 있을까? 이미 알고 있겠지만…. 사과하고 싶어서….
익명 게시판에 글을 쓴 당사자가 직접 만나서 사과하고 싶다며 연락해 온 것은, 그로부터 약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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