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70)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70화
자리에 앉고 나서도 기분 나쁜 티를 숨기지 못하는 해림의 본부장 대신, 가식적인 미소를 띤 해림 측 팀장이 입을 열었다.
“우선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윤여울 씨.”
정중히 고개를 숙인 팀장이 고개만 숙이고 있던 윤여울을 불렀다.
“……죄송합니다.”
눈시울을 빨갛게 물들인 윤여울이 축축하게 젖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동정심이 들진 않았다.
‘뭘 잘했다고 울어.’
그 뒤로 윤여울이 남긴 글에 대한 사실 확인과, 앞으로의 처분에 대한 대화가 오고 갔다.
윤여울은 잔뜩 기가 죽은 것처럼 움츠러들어 있었다.
그 손가락으로 싸질렀던 글을 전부 읽은 예찬이 보기엔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다.
“아니, 무슨……! 지금 사람 가지고 장난치나! 이봐요, 우리가 뭐라고 해도 고소할 거면 보자고는 왜 했습니까?”
아무리 찔러 봐도 변호사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게 답답했는지 본부장이 책상을 쾅 하고 내리치며 짜증을 부렸다.
물론 이번에도 변호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보자고 한 건 윤여울 씨로 아는데요. 윤여울 씨가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모인 거 아니었나요.”
“허!”
“하시려던 말씀은 아까 사과하신 걸로 끝일까요?”
변호사의 차가운 지적에 윤여울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마찬가지로 침묵을 지키던 우휘겸이 돌연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윤여울 형.”
“……응?”
우휘겸이 직접 말을 걸 줄은 몰랐는지 윤여울이 눈을 깜빡거렸다.
우휘겸은 감정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담담한 말투로 윤여울을 향해 물었다.
“왜 이런 글을 쓰신 건지 알 수 있을까요? 형 마음을 알고 싶어요.”
“나는…….”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우휘겸의 말을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였는지 가온다의 매니저가 나섰다.
“우리 여울이가 요즘 피곤이 너무 쌓인 상태였어요. 츄마프의 피로를 다 풀지도 못 한 채로 데뷔 준비를 시작해 버린 데다가, 데뷔 후에도 제대로 쉬질 못해서 아무래도 정상적인 사고가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사실 여울이가 지금 정신과 치료도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너무 바쁜 나머지…… 음…….”
이때다 싶어 속사포처럼 변명을 늘어놓던 매니저의 목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우휘겸의 무표정에 기가 죽은 티가 났다.
매니저가 말을 멈추자 우휘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윤여울 형, 저는 형한테 듣고 싶어요.”
“…….”
“왜 이런 글을 남겼어요? 저 형이랑 제대로 얘기해 본 적도 없던 거 같은데.”
“…….”
“제가 형한테 뭔가 잘못한 게 있었나요?”
“…….”
윤여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예찬은 그 낯빛에서 수치심과 더불어 분노를 읽었다.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네.’
멤버들보다 수십 년을 더 살아왔기 때문일까.
예찬에겐 윤여울의 마음이 얕은 호수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손쉽게 읽혔다.
처음에 우휘겸 이야기로 어그로를 끈 것에 큰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저 우휘겸에게 학폭이라는 시선을 확 끌 만한 문구를 붙일 수 있어서 정도였겠지.
그냥 인터넷에서 레굴루스를 욕하고 동조하는 댓글들을 보는 걸로 자기 만족을 채웠을 것이다.
“……미안해.”
윤여울은 붉어진 얼굴로 사과 한마디를 뱉고 다시 입을 닫았다.
예찬은 우휘겸을 살폈다.
다행히 속상해 보이진 않았다.
“형이 하고 싶었던 말은, 그걸로 끝인가요?”
우휘겸이 다시 물었다.
잔잔한 호수처럼 일말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는 고요한 목소리였다.
“…….”
“그, 우휘겸 씨? 여울이가 지금 정말 많이 아프거든요. 본인도 말했듯이 많이 반성도 하고 있고…….”
잠시 물러났던 가온다의 매니저가 다시 정신을 차린 듯 변명을 주워 삼키기 시작했다.
또다시 지지부진한 헛소리가 이어질 것 같은 예감에 예찬은 시계를 한번 확인하고 말했다.
“저희는 이만 일어서야 할 것 같아요. 연습하다가 잠깐 나온 거라서요.”
“그러네요. 바쁜 사람들을 너무 오래 붙잡아 둬서 미안합니다. 먼저 들어가시죠.”
못마땅한 얼굴로 해림 측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도지윤 팀장이 빠르게 말을 받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문까지 열어 주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우린 뭐 안 바쁜 것 같습니까?”
“그러면 본부장님도 지금 돌아가 보시겠습니까?”
“아니……!”
안우정 변호사에 이어 도지윤 팀장에게도 한마디 들은 본부장의 얼굴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리에서 일어선 예찬은 도 팀장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안 변호사를 향해 말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변호사님. 고소 건은 전에 말했던 대로 진행해 주세요.”
“네, 맡겨 주시죠.”
“하, 우리도 그냥 지금 갑시다! 아까부터 뭔 말을 해도 결국 고소할 거라는데 더 있어서 뭐 하겠습니까?”
“본부장님……! 잠깐만요, 진정해 보세요!”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박 팀장? 나 남종석이야, 남종석!”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본부장 덕에 회의실이 소란스러워졌다.
그 틈을 탄 걸까.
우휘겸이 윤여울에게만 들릴 정도의 소리로 무언가 속삭이기 시작했다.
–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어.
–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고.
‘하고 싶은 말이라…….’
우휘겸이 했던 말을 떠올린 예찬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형이 이번 일로 평생 불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법이 형이 잘못했다고 판단하는 만큼, 딱 그만큼만 벌을 받길 바랄게요.”
고개를 숙인 우휘겸은 미련 없이 열린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따른 예찬은 회의실 문을 닫고 난 뒤에야 우휘겸에게 말을 걸었다.
“지찬수랑 네 예전 담임, 너무 쉽게 봐줬나?”
“응?”
“그 두 사람은 지은 죄만큼 벌을 받지 않은 거 같아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하지 않았다는 예찬의 말에 우휘겸이 드물게 작은 소리까지 내며 웃었다.
‘웃기려고 한 말 아닌데.’
“뭐야, 왜 둘만 신났어?”
“우리도 좀 끼워 줘요!”
‘소리 내 웃는 우휘겸’이 워낙 희귀하다 보니 주변에 있던 멤버들이 하나둘 달라붙어 왔다.
레굴루스는 그렇게 커다란 한 덩이가 된 채 연습실로 향했다.
* * *
“내 욕은 별로 없더라.”
작업실에 둘이 남게 된 강해솔이 불쑥 입을 열었다.
무슨 뜻이냐는 듯 예찬이 뒤를 돌아보자 강해솔은 말을 이었다.
“……네가 전에 가수일 확률이 높다고 했잖아. 그 말 듣고 솔직히 윤지우 아닐까 생각했어. 증거가 없으니 아무에게도 말 안 했지만.”
“아, 윤지우 형.”
가온다의 메인 보컬인 윤지우의 얼굴을 떠올린 예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츄마프에서 배새벽과 트러블이 있었던 데다, 생긴 것과 다르게 뒷말을 지저분하게 하는 스타일인 것도 알고 있으니 꽤 타당한 추측이었다.
‘점을 꼭 네 개씩 찍는다는 말을 듣고 따로 찾아봤나 보네. 어휴. 봐서 좋을 거 하나 없다고 말했는데.’
그렇게 찾아본 결과, 악플러가 여러 사람을 사칭하며 늘어놓은 루머의 주인공이 대부분 배새벽이란 점이 범인을 윤지우라고 예상하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윤여울 형은 굳이 따지자면 새벽이보다 나랑 문제가 있었잖아. 새벽이랑 따로 내가 모르는 뭐가 있었나?”
“문제? 츄마프 생방 때 뭐라고 했던 거 말하는 거야?”
강해솔이 부루퉁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윤여울이 범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찜찜해 보이는 얼굴이더라니.
당시 사고로 손목을 다쳤던 배새벽은 안무를 변경하지 않고 무대에 서기로 했었다.
이미 결정된 사항을 가지고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구시렁거리던 윤여울은 강해솔에게 호되게 창피를 당했고.
예찬이 솔직한 생각을 입에 담았다.
“……그 형은 그때 일에 대해서 형한테 아무 불만이 없을걸?”
“나 그때 반말도 했는데?”
강해솔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찬은 이걸 어떻게 말을 하면 좋을지 잠시 고민하다가 설명을 시작했다.
“내 생각에 윤여울 형은 강약약강의 표본 같은 사람이야. 아마 그날 일에 앙심이 남아 있다면 그건 형한테가 아니라 새벽이일걸. 새벽이 때문에 괜히 형한테 깨졌다고.”
“뭐? 그게 말이 돼?”
예찬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살아 보니 그런 놈들이 꽤 되더라.
“세상에는 사고방식이 남다른 사람들이 있거든. 형은 등급 테스트 때도 계속 S 등급이었고 투표 순위도 계속 최상위권이었잖아. 자기보다 확실히 ‘높은 등급’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계속해 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강해솔이 답했다.
예찬은 기꺼이 설명을 이어 갔다.
“그에 비해 새벽이는 처음엔 C 등급이었다가 그다음에 갑자기 A 등급으로 올라갔잖아. 윤여울 형은 아마 S였다가 A로 떨어졌던 걸로 기억하고. 1차 순발식까지는 아마 순위도 윤여울 형이 높았을 거야.”
명백히 자신보다 아래라고 판단한 사람이 훌쩍 자신을 뛰어 넘어갔다.
지저분한 감정이 윤여울의 마음을 어지럽혔을 것이다.
“아마 새벽이가 자기 걸 빼앗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지.”
“이해가 안 가네.”
“난 이런 걸 이해하지 못하는 형이 좋다.”
“……바보 취급하지 마라.”
“진심이야. 나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많이 들어서 그럴 수 있다고 얘기한 거지, 이해가 되지는 않거든.”
어쩌면 츄마프가 끝나고 밝혀진 배새벽의 뒷배경도 윤여울은 반칙처럼 느꼈을지도 모른다.
유명한 배우인 아버지와 소속사 대표인 어머니가 있으니, 알게 모르게 편애를 받은 게 아닌지 의심하고 시기했겠지.
승승장구하는 배새벽을 보며, 그 자리가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배새벽이 빠진다고 자신이 데뷔권에 드는 게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예찬은 어깨를 으쓱이고 더 괴담 같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아마 그 형은 이런 악플이나 루머 써 본 게 처음이 아닐걸.”
“뭐?”
“이렇게 큰 사이트 말고 저 물밑에 있는 이름 모를 사이트 같은 데서 별 시답잖은 걸로 씹었겠지. 레굴루슨지 뭔지 잘생긴 줄 모르겠다, 춤을 잘 춘다는데 바이럴 아니냐, 뭐 이런 식으로.”
리스피릿 시절, 예찬은 비슷한 놈들을 수도 없이 겪었다.
아무래도 소규모 기획사 출신인 리스피릿의 성공은 윤여울처럼 이상한 사고방식을 가진 아이돌들의 열등감을 자극하기 딱 좋았기에.
“그러면 거기 회원들은 다들 윤여울 말에 동의해 줬을 테고.”
리스피릿 시절엔 고소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라며 쉬쉬했었다.
그래서 그런 글을 남기고 다니는 게 바로 옆에서 진짜 너무하다며 등을 두들겨 주던 같은 업계 동료라는 것을 예찬이 알게 된 것은 아주아주 훗날의 일이었다.
“처음엔 자기도 헛소리인 걸 알지만 기분 전환 겸 떠들었겠지만 동의하는 댓글들, 비슷한 글들을 보면서 점점 매몰된 거 아니겠어? 쟤들 정말 별거 아닌데 왜 저렇게 떴지? 나 말고 다 그렇게 말하던데? 뭐 이런 마음이 들었겠지.”
“…….”
그때 상대의 정체와 그 상대가 어떤 방식으로 리스피릿을 모함했는지를 찾아낸 것은 팬들이었다.
팬들이 이해하기 쉽게 표로 정리해 둔 글을 밤새도록 반복해서 읽으며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았다.
“가온다는 참여하지 못한 시상식에서 4관왕까지 하니 배도 아팠을 것이고.”
“…….”
왜 그랬냐는 예찬의 질문에 ‘왜 너만’이라고 상대는 답했다.
예찬은 그때 처음으로 상대의 민낯을 보았다.
“게다가 컴백으로 여기저기서 레굴루스의 이름이 들리니 못 참고 좀 더 큰 판으로 기어 들어온 거지.”
“……너 괜찮아?”
잔뜩 뿔이 나 있던 강해솔의 표정이 걱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느새 자신이 화났던 것도 잊어버린 강해솔의 모습에 예찬은 진심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금은 괜찮아.”
정말로 지금은 놀랍도록 괜찮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