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71)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71화
여전히 미심쩍은 강해솔의 얼굴에 예찬은 그냥 생긋생긋 웃었다.
‘좀 과하게 몰입했네.’
남보다 긴 시간을 살아오면서 억울하고 화나는 일도 적잖이 있었다.
리셋을 하게 되면 그 일은 없던 일이 돼 버리지만, 피어난 감정마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예찬은 이미 과거도 미래도 아니게 된 일에 홀로 감정을 소모하곤 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일과 비슷한 일이 발생하거나, 그 원흉과 마주치면 방금처럼 다소 과할 정도로 감정적인 반응이 튀어나올 때가 종종 있었다.
그게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해서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현대 의학의 힘을 빌릴 수는 없었다.
‘제가 사실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왔는데 그 미래에서 비슷한 일로 화가 났었거든요. 그래서 감정 조절이 잘 안 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뭐 이런 소리를 할 수 있겠냐고.’
어디 가서 그런 소리를 해 가며 상담했다간 제정신이 아니라고 자기소개하는 꼴이지 않은가.
‘레굴루스가 되면서 전과 겹치는 일이 그다지 없다 보니 한동안 괜찮았는데…….’
예찬은 지치지도 않고 이쪽의 안색을 살피고 있는 강해솔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들끓었던 마음이 완전히 가라앉은 것이 느껴졌다.
완전히 멀쩡해진 예찬은 주제를 돌리기 위해 다시 윤여울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튼, 윤여울 형은 자신이 했던 거짓말이 진짜라고 믿고 대형 커뮤니티에서도 똑같은 소리를 떠들어 댔을 거야. 결과는 사뭇 달랐겠지만.”
남자 아이돌에 대해 떠드는 글에 댓글이 많이 달려 봐야 열댓 개쯤 달렸던 극단적 성향의 물밑의 사이트와 달리, 이번엔 레굴루스의 팬뿐만 아니라 K-pop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 가십거리를 쫓아다니는 사람들까지 쏟아지는 수위 높은 루머를 구경하려 우르르 몰려들었다.
윤여울은 그 많은 관심이 결국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말에 동조하리라 기대했겠지만, 그것은 대중을 한참 우습게 본 것이었다.
‘우리가 고소 공지를 내기 전에 이미 이클립틱이 아니어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니까.’
증거라고 내민 사진은 글쓴이가 연예계 관계자라는 것을 증명할 뿐, 글이 말하는 루머와는 일절 관계가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자극적인 루머라면 일단 믿거나 퍼 나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게 재미있으니까.’
그렇지만 그 또한 NJ에서 윤여울을 고소했다는 기사가 나가면 순식간에 사그라들 것이었다.
레굴루스의 사생활을 씹는 것보다 윤여울을 욕하는 쪽이 더 재미있을 테니까.
‘아이돌이 다른 아이돌의 루머를 만들어서 익명 게시판에 여러 사람인 척해 가며 퍼트렸다가 고소당하다니. 흔하디흔한 삼류 가십보다 훨씬 자극적이지.’
* * *
이틀 뒤, 레몬 뮤직 어워드가 개최되었다.
국내 최대의 음원 사이트인 레몬에서 주최하는 이 시상식은 독특하게 MC가 없었다.
“와, 여긴 진짜 무대 스케일이 다른데?”
“그러게요! 이런 데서 콘서트 하면 진짜 너무 좋을 거 같아요!”
“전 화장실 가고 싶을 것 같아요.”
“의탁아, 아이돌은 화장실에 가지 않아.”
“아이돌은 외계인인가요?”
웅장한 무대가 설치된 국내 최초의 돔구장 내부를 둘러보며 멤버들이 감탄을 하는 사이, 조명이 꺼지고 본격적인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그럼 레몬 뮤직 어워드, 시상을 시작하겠습니다. 올 한 해 음원 차트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은 열 팀의 아티스트에게 드리는 상인 올해의 베스트 10. 열 팀의 수상자 중 한 팀입니다…… 레굴루스, 축하드립니다!]첫 번째로 시상대에 오른 시상자가 레굴루스의 이름을 불렀다.
동시에 ‘KEEP YOUR CHIN UP’의 하이라이트 파트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벌써 세 번째 시상식에 도합 여덟 번째 수상이다 보니 레굴루스 멤버들은 한결 여유 있는 얼굴로 무대 위로 올라갔다.
예찬은 건네받은 트로피를 배새벽의 손에 쥐여 주고 마이크 앞에 섰다.
[둘, 셋.] [빛나는 당신의 별! 안녕하세요, 레굴루스입니다!]“아아아아아악!”
“레굴루스으으으으으!!”
시상자가 레굴루스의 이름이 불렀을 때와 버금가는 환호성이 객석에서 쏟아졌다.
짧은 소감을 마치고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다시 가수석으로 돌아가던 예찬과 가수석에 앉아 박수를 보내고 있던 가온다의 이승헌의 눈이 마주쳤다.
이승헌은 예찬을 향해 고개를 작게 까딱거렸다. 예찬 또한 가볍게 인사를 받았다.
가온다는 오늘 시상식에 건강 문제를 이유로 불참한 윤여울을 제외한 나머지 여덟만 참여했다.
해림 측에서 윤여울이 빠지는 이유를 굳이 ‘건강 문제’라고 발표한 것을 본 예찬은 절로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이쪽에서 윤여울의 이름을 어떤 일이 있어도 언급할 것이라 딱 잘라 전했음에도 여전히 협상할 여지가 있다고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뭐, 믿는 거야 자유지만.’
레굴루스가 자리로 돌아와 앉을 무렵, 두 번째 베스트 10이 발표되었고, 그 뒤로 무대가 이어졌다.
직전에 예찬과 눈이 마주쳤던 이승헌의 그룹, 가온다가 그 주인공이었다.
윤여울이 빠지기로 한 게 기껏해야 이틀 전이었음에도, 나름대로 칼을 갈고 나왔는지 동선을 제대로 정리해서 나왔다.
‘음방 때보다 훨씬 나은데.’
수많은 댄서를 동원한 무대는 확실히 볼 만했다.
편곡에도 힘을 주었는지 음악도 훨씬 세련되게 들렸다.
‘……이승헌은 제대로 뜨지도 않았으면서 벌써 스타병에 걸렸나? 자기 파트만 제대로 하고 군무는 왜 저렇게 동작에 힘이 없어?’
옥에 티를 찾으라면 있기야 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훌륭한 무대였다.
예찬은 새삼 그래도 츄마프 상위권이었던 놈들을 모은 그룹답다고 생각했다.
‘준비 시간이 짧으면 오히려 더 불타는 건가.’
윤여울 건이 터지면 그 여파가 어마어마할 테니, 더 이를 악물고 무대에 선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는 사이 가온다의 순서가 끝이 났다.
[베스트 퍼포먼스 남자 부분 수상자는…… 레굴루스, 축하합니다!]레굴루스는 그다음 이어진 시상에서 두 번째 트로피를 받았다.
[항상 저희를 위해 힘내 주시는 도지윤 팀장님, 정말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어…… 도 팀장님 진짜 좋아해요. 그리고 우리 이클립틱! 세상에서 제일 좋아합니다!]이번에야말로 회장님 이름을 외워 가겠다며 눈을 빛냈던 정의탁은 도지윤 팀장에게만 거듭 감사를 전했다.
‘회장 이름 까먹었군.’
뭐, NJ 회장도 공사다망한 양반이다 보니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레굴루스가 자신을 언급하든 말든 관심은 없을 것이었다.
[이어지는 무대는 올해 데뷔한 풋풋한 걸 그룹, 필리아입니다.]뒤이어 신인 걸 그룹의 무대가 이어졌다.
이번에도 화려한 조명과 무대 세트가 눈길을 끌었다.
“정의탁아, 팬들이 다 찍고 있으니 너무 좋아하지 마라. 너 필리아 팬이라고 소문난다.”
예찬은 옆에서 너무 눈을 빛내고 있는 정의탁에게 귓속말로 주의를 주었다.
“네? 저 그냥 무대 장치가 진짜 괜찮아서 본 건데요?!”
“그렇지만 남들은 모르지.”
화들짝 놀란 정의탁이 억울하다는 듯 파닥거렸다.
그러나 예찬의 주의에 제대로 귀를 기울였는지 그 뒤로는 무척이나 정적인 리액션만을 취했다.
[베스트 송 라이터 상, 수상자는…… 축하드립니다, 레굴루스의 강해솔 님!]시상자의 호명에 강해솔이 눈을 땡그랗게 뜨고 예찬을 바라보았다.
마치 ‘왜 네가 아니고 내가?’라고 묻는 얼굴이었으나 강해솔의 이름이 불리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내던 예찬은 그저 뿌듯하게 웃을 뿐이었다.
* * *
[하예찬이 강해솔 낳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일단 나
– 어떻게 낳은 건진 모르겠는데 낳은 건 맞는 거 같음
– 너곧나
– 난 오늘도 또 낳았네, 싶었음ㅋㅋㅋ
– 여기 한 놈 추가요
– ㅋㅋㅋㅋㅋㅋ나 딱 이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게시판 들어오자마자 이 글이 바로 보여서 사람 눈 다 똑같구나 감탄함ㅋㅋㅋㅋㅋㅋ
– 예찮이 진짜 일관성 있다ㄷㄷㄷ 츄마프 때부터 징하게 좋아하는 티를 내더니 이제 세상이 다 아는 거 같음ㅋㅋㅋㅋㅋ
– 예찬이가 젤 성공한 강프인 듯
짧은 게시물에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츄마프의 작가였다가 지금은 레굴루스 자체 예능의 작가로 일하게 된 성공한 덕후 김상희는 게시판 반응을 체크하며 절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차가운 외모와 다르게 멤버들을 알게 모르게 살뜰히 챙기는 예찬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강해솔에겐 태도가 대놓고 훈훈하기 그지없었다.
‘예찬이도 두 앨범 다 작곡으로 참여했으니까 섭섭할 만도 한데…… 연기가 아니라 정말 흐뭇해 보이지?’
팬들이 농담처럼 예찬이가 강해솔을 낳은 게 분명하다고 숙덕대는 것도 이해가 갔다.
[이렇게 뜻깊은 상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저 말고 이 상에 더 어울리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해서 얼떨떨합니다. 제 옆에 있는 예찬이도 그렇고요.]소감을 말하는 강해솔의 옆에 서 있던 예찬이 빠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피식 웃음을 흘린 강해솔이 다시 정면을 바라보고 소감을 이어 갔다.
[올해 발표한 곡들은 전부 예찬이와 멤버들이 있었기에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 곡들을 사랑해 주셨기에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내년에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강해솔을 따라 시상대 위에 올라와 있던 멤버들이 감격한 듯 강해솔을 끌어안았고, 현장에 있는 팬들의 함성이 돔구장을 가득 채웠다.
김상희 작가는 화면 속 멤버들을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야말로 멤버들을 낳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 * *
그 뒤로 무대와 시상이 번갈아 이어졌고 1부가 끝이 났다.
잠시 안쪽 대기실에 들렀던 예찬은 복도에서 낯익은 얼굴과 마주쳤다.
“어, 예찬. 윤여울 형 얘기 들었어. 욕봤다.”
가온다의 멤버, 이승헌이었다.
예찬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대답했다.
“형네도 고생이죠.”
예찬의 대답에 기다렸다는 듯 이승헌이 고개를 내저었다.
“말도 마. 진짜 미치겠다, 요즘.”
“무대 동선 잘 바꿨던데요? 오늘 무대 정말 잘 봤어요.”
“네가 그렇게 말해 주니 괜히 뿌듯하네.”
이승헌이 피식 웃었다.
주변을 훑어본 이승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곤 이내 푸념을 시작했다.
“예찬이 너 츄마프 때 시나브로 무대 기억나?”
“기억하죠.”
‘현실이 빡빡하니 추억 여행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그 조에서 나만 레굴루스가 못 됐잖아.”
“아.”
그러고 보니 그랬다.
‘시나브로 조원이 나랑 해솔이 형, 우휘겸, 선우이경, 그리고 이승헌이었으니까.’
츄마프의 모든 무대를 통틀어 시나브로는 데뷔조에 든 연습생이 가장 많은 무대였다.
“하, 진짜 츄마프가 열 명을 뽑았어야 했는데.”
이승헌은 정말로 아까워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혀까지 찼다.
‘그러면 10위였던 남지유가 레굴루스가 됐겠지.’
현실적인 대답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예찬은 작은 친절을 발휘해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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