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75)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75화
예찬의 말대로 레드 카펫은 두꺼운 천막을 친 덕에 무탈하게 진행되었다.
[금년도 남자 신인상은…… 레굴루스, 축하드립니다!]신인상을 나중에 시상했던 레몬 뮤직 어워드와 달리 모나는 첫 시상이 신인상이었다.
전년도 신인상 수상자인 블랑딕스의 리더에게 트로피를 건네받은 예찬은 팀 인사를 마친 뒤 먼저 소감을 말했다.
[안녕하세요, 레굴루스의 하예찬입니다. 우선 모나 어워즈에 초대를 받게 된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이렇게 신인상까지 받게 되어서 정말 기쁘네요. 전부 저희를 응원해 주신 이클립틱들 덕분입니다.]예찬이 눈웃음을 치며 객석을 바라보자 이클립틱들이 성대한 함성으로 화답했다.
예찬은 이어 짧게 회사 관계자들과 스태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고 마이크를 우휘겸에게 넘겼다.
[……Thank you so much. I am honored to receive this award. (정말 감사합니다. 이 상을 받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긴장한 듯 잠시 숨을 고른 우휘겸은 영어로 소감을 전하기 시작했다.
모나 어워즈가 글로벌 콘셉트를 추구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맞춰 줄 필요가 있었다.
[みなさん、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これからもっと頑張って、 もっといい姿をお見せします。 (여러분,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더 좋은 모습 보여 드리겠습니다.)]우휘겸이 유창한 발음으로 소감을 마치자 이번엔 선우이경이 짧고 굵게 일본어 소감을 덧붙였다.
일본에서 열린 시상식에 대한 일종의 예우였다.
수상을 마친 레굴루스가 자리로 돌아가 앉을 때까지 팬들의 함성은 멈추지 않았다.
멤버들이 상기된 뺨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가수들의 무대와 시상이 다시 이어졌다.
다소 뻣뻣하게 앉아 있던 멤버들은 가수들의 혼을 불태운 무대들이 이어지자 곧 긴장을 잊고 눈앞의 무대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202X년 모나 시상식에만 벌써 다섯 번도 넘게 참여하고 있는 예찬은 종종 전광판에 넋을 놓은 멤버들이 나올 때마다 웃음을 삼켜야만 했다.
멤버들은 무대에 집중한 자기 얼굴이 카메라에 잡히고 있다는 걸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소 바보 같아 보이긴 하지만, 본판이 잘생긴 놈들이라 못 봐 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신인답다고 좋은 소리 좀 나오겠네.’
방금 전광판에 비친 동태 눈깔을 한 리스피릿 놈들보다야 이쪽이 훨씬 좋았다.
‘대체 저놈들은 뭘 하는 건지.’
곱게 차려입은 의상과 공들인 화장이 아까울 정도였다.
[금년도 베스트 뮤직비디오상은…… 리스피릿의 ‘Stare’, 축하드립니다!] [금년도 베스트 댄스 퍼포먼스 남자 부문 수상자는…… 리스피릿! 축하합니다!] [글로벌 트렌드 세터상은…… 벌써 3관왕인가요? 리스피릿! 축하드려요!] [글로벌 팬 초이스, 이번 주인공은…… 리스피릿입니다!]그래도 지금까지 이뤄 놓은 공적과 실적이 있기에 리스피릿은 이번 시상식에서도 승승장구했다.
‘대상 네 개는 이번에도 유피테르랑 두 개씩 나눠 먹겠고…… 많이도 받아 가네.’
물론 리스피릿 못지않게 유피테르도 상을 쓸어 가고 있었고, 레굴루스도 신인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수확을 거두고 있었다.
[금년도 빌러비드 뉴 아티스트상 수상자,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레굴루스, 축하합니다!]“레굴루스으으으―!”
“레굴루스!!”
두 번째로 수상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예찬과 멤버들을 향해 이클립틱들의 열렬한 함성이 쏟아졌다.
[이클립틱, 사랑해요!]이번엔 범세혁과 심상록, 채은성이 차례대로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로 소감을 전했다.
‘없는 시간을 빼서 회화 수업을 들은 보람이 있군.’
예찬은 100점짜리 성적표를 들고 온 자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에 빙의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시상대에서 내려온 멤버들은 이번엔 무대 앞 가수석으로 돌아가지 않고 안쪽 대기실로 향했다.
드디어 긴 시간 동안 준비한 무대를 보여 줄 시간이었다.
“예찬이 여기!”
“상록이 이걸로 갈아입고, 이경이는 혼자 못 입으니까 바지 먼저 입고 불러! 세혁아 그거 거꾸로!”
대기실에 들어오기 무섭게 준비하고 있던 스타일리스트들이 재빨리 멤버들을 채 갔다.
멤버들은 입고 있던 검은 정장을 벗고 빠르게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시상식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갈아입고 있었으면 더 편했겠지만,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서 몸이 좀 바쁜 쪽을 택하게 되었다.
“예찬이 머리 다 했어? 여기 이걸로 입으면 되고, 레이스 진짜 얇으니까 찢어지지 않게 조심해서 입어. ……세혁이는 이미 해 먹었다.”
예찬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기다렸다는 듯 스태프가 다가와서 옷을 건네며 어두운 얼굴로 경고했다.
확실히 재킷 소매와 밑단에 달린 레이스는 잠자리 날개처럼 섬세해 보였다.
파티션을 세워 만든 간이 탈의실 안으로 들어가자 역시나 멤버들이 레이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내가 그나마 양반이었군.’
몸통을 제외한 셔츠의 팔 부분이 전부 레이스로 되어 있는 채은성을 보자, 양손에 들고 있는 자신의 의상이 굉장히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나 등짝이 너무 휑하지 않아?”
“뮤비보단 나아요, 형.”
“…….”
재킷과 셔츠 모두 등판을 레이스로 도배한 심상록은 은근히 비치는 살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뮤직비디오에서 시원하게 등짝을 깠던 심상록은 서서히 팀의 노출 담당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나 너무 수줍어, 얘들아…….”
그때 어울리지 않게 상체를 두 팔로 가리고 몸을 수그린 선우이경이 탈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목티인가?’
선우이경은 전체가 레이스로 된 목티를 입고 있었다.
아니, 혼자선 입을 수도 없었기에 목티 모양의 레이스라고 부르는 게 맞을지도 몰랐다.
숭숭 뚫린 구멍으로 선우이경의 살갗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선우이경을 바라본 심상록은 눈을 서너 번 깜빡거리고 고개를 내저은 다음, 이마의 땀을 닦는 시늉까지 해 보였다.
“……이경이 네가 이겼어. 휴, 겨우 등으로 약한 소리를 하고 있던 걸 반성해야겠다.”
“재킷 입을 거거든! 재킷 입으면 거의 다 가려진다고!”
맏형 둘이 노출을 전적으로 맡은 건지 다른 멤버들의 의상은 대체로 얌전했다.
예찬은 형들의 희생을 기리며 조심스레 재킷 안으로 팔을 밀어 넣었다.
의상과 메이크업, 머리 정돈까지 전부 마친 멤버들은 무대 뒤에서 둥글게 모였다.
예찬이 먼저 중앙을 향해 손을 내밀자 자연스럽게 그 위로 다른 손들이 포개졌다.
‘평소보다 차갑네.’
바로 위에 얹힌 손이 서늘했다.
아무도 입을 열진 않았지만 멤버들 사이로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멤버들의 얼굴을 한 명씩 쭉 둘러본 예찬이 말했다.
“딱 준비한 만큼만 보여 주고 옵시다.”
‘준비한 만큼’이란 말엔 지금까지 해 온 연습들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자연스레 날카로웠던 공기가 수그러들었다.
‘그래, 그렇게 연습했는데 못 할 리가 없지.’
멤버들의 눈빛에 숨길 수 없는 자신감이 배어 나왔다.
정직한 표정 변화에 작게 웃음을 흘릴 뻔한 예찬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팀의 이름을 외쳤다.
“레굴루스! 오늘도!”
“빛나자!”
겹쳐 있던 아홉 개의 손이 동시에 위를 향해 시원스레 올라갔다.
* * *
“모나 어워즈? 무슨 시상식을 11월에 해?”
“형이 몰라서 그렇지 이미 11월 초부터 시상식 시즌이었거든?”
“아, 예. 문외한이라 죄송합니다.”
예찬의 말에 성의 없이 고개를 꾸벅 숙인 하경이 소파 가운데를 차지하고 앉았다.
“어디서 하는 거야? N-net? 츄마프 했던 곳이네?”
상단에 박힌 방송사 이름을 확인한 하경은 이번엔 하단 자막에 나온 오사카 돔구장 이름을 보고 기겁했다.
“교세라 돔? 아니 우리나라 시상식을 왜 외국까지 가서 해?”
화면 속 무대에 집중하려던 예찬이 인상을 찌푸렸다.
“글로벌 시상식이니까 그래.”
“아니, 글로벌 시상식이면 꼭 외국에서 해야 하나? 일본은 글로벌이고 우리나라는 로컬이야? 거, 대한민국 사람 화나게 만드네!”
틱틱거리는 예찬의 반응이 재미있는지 하경은 일부러 더 큰 소리로 불평을 토했다.
눈썹을 꿈틀거리던 예찬은 차근차근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선 시상식 입장권 금액이 소액으로 제한되어 있어. 그렇지만 해외에선 그보다 열 배는 더 받을 수 있으니까 무대 장치 같은 걸 더 화려하게 준비할 수 있거든. 그래서 해외에서 열리는 시상식들이 늘어나고 있는 거야.”
“흐음…… 아니, 그런데 N-net이면 NJ 거잖아. 대기업이 쪼잔하네!”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설명이었으나 하경의 깐족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그래, 쪼잔하다, 쪼잔해! 그러니까 무대 좀 보자고!”
그리고 예찬은 세 번까진 참지 않았다.
예찬이 버럭 화를 내고서야 하경은 입을 다물었다.
매서운 동생의 눈빛에 부끄러울 정도로 어깨를 흠칫 떨어 버린 하경은 조용히 양 무릎을 세워 끌어안았다.
방해꾼이 사라지자 화면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몰입한 예찬과 달리 하경은 절로 나오는 하품을 참지 못했다.
기억 속에 있는 지상파의 음악 시상식보다 확실히 무대는 화려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는 얼굴들이 없으니 영 시시했다.
연달아 하품만 하던 하경은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형 세수하고 온다.”
“…….”
“어이, 이보세요?”
“…….”
“아무도 대답을 안 해 주네. 후, 이래서 애들 키워 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말이 있다니까.”
“…….”
괜스레 푸념하는 시늉을 해 봐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쓸쓸히 욕실로 들어가 찬물을 얼굴에 끼얹고 양치질까지 괜히 한 번 하고 나온 하경은 그제야 화면 속에서 아는 얼굴을 발견했다.
“오, 범세혁 왕자다.”
카메라 마사지라는 게 정말 있는 건지, 아니면 보다 보니 정이 든 건지.
어쨌든 전보다 더 잘생겨 보이는 범세혁이 생긋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앞선 무대들과 달리 노래도 조금 익숙하다 했더니 츄즈 마이 프린스로 데뷔한 그룹이었다.
범세혁의 파트가 끝난 후로도 연달아 아는 얼굴들이 보였다.
“심상록, 이승헌, 남지유, 진…… 아, 진 씨는 맞는데. 진 뭐더라?”
“형, 제발 조용히!”
반가운 마음에 멤버들 이름 맞추기를 하고 있으니 갑자기 튀어나온 손이 입을 틀어막았다.
“저기에 설 수도 있었는데…….”
이어진 동생의 목소리엔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담겨 있었다.
하경은 화면에 고정된 동생의 머리에 가볍게 손을 얹고 토닥거렸다.
어느덧 뿌옇게 흐려진 화면 속 무대는 눈앞의 깜깜한 무대와 겹쳐졌다.
화면 속과 마찬가지로 범세혁과 심상록이 있는 무대엔 그때와 달리 츄마프를 중도 하차하지 않은 선우이경이 있었다.
부모의 뜻을 꺾고 자기가 원하는 길을 걷게 된 배새벽도 있었고, 등급 테스트를 망치지 않고 프로그램 내내 최상위권을 유지한 강해솔도 있었다.
긴장을 이겨 낸 정의탁도, 학폭 논란을 정면으로 돌파한 우휘겸도, 연습생들이 이런저런 논란을 만들고 휩쓸려 나가는 가운데 당당히 9등이란 성적을 쟁취한 채은성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예찬이 있었다.
암전되어 있던 무대에 이윽고 한 줄기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졌다.
레굴루스의 데뷔곡, ‘Only my you’ 무대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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