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8)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7화
스크린에 예찬을 포함해 네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심상록과 강해솔, 그리고 범세혁까지 전부 팀원으로 찍어 둔 연습생들이었다.
예찬으로선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다.
[지금 남은 후보생들은 모두 1차 경연에서 베네핏을 받은 후보생들인데요. 과연 베네핏이 순위에도 영향을 미쳤을지, 지금 공개합니다! 공주님들이 선택한 후보생 그 4위는!]과장되게 심호흡을 한 MC가 봉투에서 종이를 꺼냈다.
[AOB의 강해솔 후보생! 축하합니다!]가장 먼저 이름이 불린 것은 강해솔이었다.
강해솔은 덤덤하게 마이크를 받았다. 예찬은 난생처음 듣는 강해솔의 소감 발표에 흥미롭게 귀를 기울였다.
[저를 응원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같이 열심히 한 랩 3조 조원들에게도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뻔하다면 뻔한 소감이었으나 예찬은 지금까지 중 가장 진심을 담아 열렬히 박수를 보냈다.
강해솔이 그런 예찬을 힐끗 바라보더니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물론 예찬은 그런 강해솔의 반응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형이 내 벅찬 마음을 어떻게 알겠어.’
[이제 정말 결과를 알 수 없는 세 사람이 남았습니다.]MC가 스크린에 비친 세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앞에 남은 가죽 봉투도 단 석 장이었다.
[마지막 주를 제외하고 앞선 모든 온라인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심상록 후보생, 1차 경연에서 득표수 1위에 빛나는 범세혁 후보생, 그리고 1차 경연에서 팀 득표수 1위를 만든 일등 공신인 하예찬 후보생까지. 과연 세 후보생 중 가장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은 누가 될까요?]잠시 말을 멈춘 MC가 3이 새겨져 있는 봉투를 들어 올렸다.
[3위는, GE의 심상록 후보생입니다!]‘됐다!’
예찬은 심상록의 소감을 들으며 티 나지 않게 주먹을 꽉 쥐었다.
분명 욕심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1위를 코앞에 두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남은 후보는 두 사람입니다. 범세혁 후보생과 하예찬 후보생. 누가 1위가 될 것 같습니까?]최후의 2인에게 주는 특혜인지 MC는 인터뷰를 시도했다.
먼저 마이크를 건네받은 범세혁이 눈웃음을 지었다.
[예찬이가 너무 잘해서 사실 좀 자신이 없긴 한데, 그래도 제가 하고 싶습니다.]예찬은 범세혁을 향해 고개를 휙 돌렸다.
‘저놈이 저렇게 자신 없이 말하는 건 처음 보네.’
예찬의 기억 속 범세혁은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항상 과할 정도로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제일 위에 두었다.
안티들이 재수 없다고 난리를 쳐도 타격이 없었다. 범세혁은 자신감을 행동으로 증명했으니까.
예찬과 눈이 마주친 범세혁이 장난스럽게 씩 웃었다.
[오, 범세혁 후보생. 겸손한 듯 아닌 듯 포부를 밝혔는데요. 하예찬 후보생은 어떻습니까?]예찬은 선택창이 뜰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 한 박자 기다렸다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저도 세혁이가 정말 잘해서 합숙하는 내내, 그리고 방송을 보면서 많이 감탄했습니다. 그래도 1등은 하고 싶네요.] [오~ 만만치 않은 두 사람!]범세혁 이상으로 장난스러운 예찬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MC 앤드류가 괴상한 소리로 환호했다. 예찬은 집사가 내기엔 참으로 경박한 소리라고 생각했다.
한참을 좋아하던 MC가 드디어 숫자 1이 적혀 있는 봉투를 집어 들었다.
[그럼 이제 공주님들이 뽑은 최고의 왕자님을 지금 공개하겠습니다. 1위는…….]스튜디오 내 모든 연습생의 시선이 MC의 입으로 모였다.
이윽고 한참을 열리지 않던 MC의 입술이 떨어졌다.
[루벨 엔터의 범세혁 후보생입니다!]간이 축포가 터지고 스크린에 범세혁의 웃는 얼굴이 커다랗게 떠올랐다.
범세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찬에게 다가왔다.
예찬은 팔을 마주 벌려 다가온 범세혁과 가볍게 포옹했다.
“축하한다.”
“고마워.”
짧게 말을 주고받은 범세혁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예찬은 자기 얼굴이 화면에 반쯤 걸릴 것을 예상하고 표정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신경 썼다.
2위는 2위고 표정 관리는 표정 관리였다.
원래도 상위권 연습생들은 다른 연습생 팬들이나 할 일 없는 안티들의 견제가 거셌지만, 이번 순위 발표식으로 정확한 순서가 도장처럼 찍혔으니 지금보다 커뮤니티와 SNS의 음험한 뒷공작이 활개를 칠 것이었다.
‘시청률이나 화제성도 점점 더 뛸 거고.’
츄마프는 예찬이 망하라고 고사 지내던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승승장구하던 리셋 전 시간대의 현시점보다도 훨씬 주목도가 높았다.
포지션을 섞는 2차 경연부터는 얼마나 더 인기를 끌어모을지 절로 기대가 될 정도였다.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다. 예찬은 편한 마음으로 객석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뛰어난 후보생 중 1위를 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전부 공주님들의 응원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남은 무대에서도 저를 지지해 주신 공주님들을 실망하게 만들지 않는 왕자가 되겠습니다. 사랑합니다.]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공주와 왕자를 언급한 범세혁이 산뜻하게 미소를 지으며 소감을 마무리했다.
예찬은 범세혁이 건네주는 마이크를 받으며 순수하게 감탄했다.
‘난놈이긴 해.’
이미 데뷔를 한 아이돌들도 음악 방송에서 첫 1위를 하면 우느라 제대로 말도 못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하물며 아직 데뷔도 못 한 연습생들 사이에 있으니 범세혁의 타고난 자연스러움이 더 빛을 발했다.
[그럼 다음은 2위를 차지한 하예찬 후보생의 소감을 듣겠습니다.]이제 예찬의 차례였다.
예찬은 선택창이 떠오를 수 있으니 잠시 기다렸다. 이번에도 잠잠했다.
‘오늘따라 조용하네.’
폭풍전야처럼 이럴 때일수록 기상천외한 상태창이 나올 것만 같았다.
잡생각은 일단 멀리 치우고 예찬은 꼭 잡은 마이크를 들었다.
연습생들과 제작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예찬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공주님들, 저를 뽑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분명 복 받으실 거예요! 앞으로도 저를 뽑고 복 많이 받읍시다!]짧고 굵은 소감을 마치며 예찬은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 하트와 윙크를 날렸다.
‘언제 또 이상한 걸 시킬지 모르니 방심할 수 없지. 미리 미친놈처럼 널뛰는 소감을 해 두자.’
불안한 건 미리 대비하는 게 상책이었다.
사방에서 웅성거리든 말든 앞으로 튀어나올 선택지와 위화감을 줄였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뿌듯해졌다.
[하하, 하예찬 후보생은 언제나 독특하네요! 자, 여러분. 이제 마지막 순위 발표가 남아 있죠. 기태랑 후보생과 한정수 후보생, 앞으로 나와 주시죠.]화기애애했던 장내 분위기가 순간 가라앉았다.
예찬과 범세혁을 비추고 있던 스크린 화면이 순식간에 48위와 49위 후보 연습생으로 바뀌며 뒤쪽에 자리한 D등급 의자에 앉아있던 기태랑이 기운 없이 비척비척 일어났다.
얼굴이 시체처럼 창백한 것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몰골이었다.
좀 더 앞쪽 자리에 앉아 있어서 먼저 무대로 나온 다른 연습생의 상태도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이윽고 스태프가 건넨 갈색 봉투에서 종이를 꺼낸 MC 앤드류가 발표했다.
[48위는 기태랑 후보생입니다! 기태랑 후보생은 구사일생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얻게 됩니다!]MC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태랑이 풀썩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고개를 무릎에 묻은 기태랑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우네.’
점점 더 격하게 흔들리는 기태랑의 어깨를 카메라가 집요하게 찍는 가운데 49위가 스태프의 안내에 소감 한 마디 말하지 못하고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기태랑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싱글벙글 웃고 있던 MC가 기태랑의 등을 두드렸다.
[기태랑 후보생, 공주님들께 한 마디 해 주시죠.] [어, 저, 마지막에 확인했을 때 제 순위가 49위였거든여. 근데 아까 49위 후보에 제가 있다고 해서, 아, 진짜 오늘 집에 가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아, 정말 너무 감사드려여. 진짜, 진짜 열심히 하겠습니다.]급하게 고개를 든 기태랑은 두꺼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띄엄띄엄 시청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워터프루프 화장품의 존재를 모르는 건지 메이크업이 번진 눈가는 처참할 정도로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당사자는 나중에 방송을 보고 땅을 치며 후회할 장면이었으나 제작진들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게 느껴졌다.
MC가 마무리를 짓자 드디어 길고 길었던 방송이 끝이 났다.
쭈뼛거리던 연습생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짜 고생 많았어.”
“형, 힘내세요!”
“너무 아쉽다.”
침묵도 잠시,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졌다.
안면이 있는 연습생들끼리 모여 탈락자를 위로하고 합격자를 응원하는 분위기에 예찬은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카메라가 계속 돌아가고 있어서 이 훈훈하며 감동스럽고 울컥한 분위기에 합류하는 편이 그림이 좋다는 건 알지만, 처음에 같이 연습했던 S등급 연습생들은 다 남았고 이번 조별 미션의 조원 중에서도 탈락한 사람이 없었다.
“예찬아.”
그때 D등급 연습생 몇이 예찬의 곁으로 다가왔다.
다들 이미 한차례 눈물을 쏟은 모양인지 눈가가 빨개져 있었다.
“주제곡 연습 때 그렇게 도와줬는데 이렇게 우르르 떨어져 버렸네.”
“형, 그때 정말 고마웠어요. 그리고 진짜 잘하세요!”
그제야 예찬은 주제곡 촬영 당시 예찬의 주도로 안무를 함께 맞췄던 것을 떠올렸다.
‘딱히 얘들을 도우려던 게 아니라 수월하게 끝내고 집에 가려던 거였지만.’
예찬의 속마음을 모르는 세 사람이 티격태격했다.
“야, 너는 무슨 그런 말을 이 타이밍에 하냐!”
“아니, 볼 때마다 진짜 잘하신다고 하고 싶었는데 말할 시기를 자꾸 놓쳤단 말이에요! 형, 제 눈에는 형이 진짜 최고예요! 완전 대박!”
“어, 고마워.”
일부러 분위기를 띄우려 하는 건지 과하게 밝은 목소리였다. 좀 낯간지러운 기분에 예찬은 손을 들어 목덜미를 주물렀다.
“아무튼 우리 몫까지 힘내!”
“매일 투표할게요!”
“……난 아이돌 할 팔자가 아닌가 봐. 내 꿈은 너한테 맡기마. 파이팅!”
어느새 눈물이 배어 나온 목소리 끝이 떨렸다. 씁쓸하지만 후련한 목소리였다. 주먹까지 꽉 쥐며 응원하는 연습생을 나머지 두 사람이 타박했다.
“얘 어떡하냐. 꿈을 맡긴대.”
“형, 촌스러워요. 그리고 내가 예찬이 형이면 형 꿈은 별로 맡고 싶지 않을 거 같은데요.”
“이 자식이?”
눈물은 그쳤지만 여전히 코 먹은 목소리였다.
시끄럽게 떠들던 세 사람은 예찬의 등을 두드려 주고 자리를 떠났다. 이젠 정말로 가야 할 때였다.
예찬은 스태프들의 안내를 따라 캐리어를 보관해 둔 방으로 이동했다.
탈락한 연습생들의 짐은 그새 다른 곳으로 옮겨 두었는지 가방들로 빽빽했던 방이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순위 발표식 촬영이 끝나면 합격자는 바로 합숙소로 이동하고, 탈락자는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탈락한 연습생들이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쓸쓸히 돌아가는 장면을 찍겠다는 제작진의 의지가 돋보였다.
“예찬아, 피곤해 보이는데 눈 좀 붙여. 도착하면 깨워 줄게.”
“감사합니다, 형.”
합숙소로 가는 버스 안.
옆자리에 앉은 심상록이 자신은 졸리지 않다며 예찬에게 잠을 권했다. 예찬은 호의를 거절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기분이 묘했다.
대형 회사에서는 경쟁 끝에 소수의 연습생만이 살아남는 것이 당연하다지만, 예찬은 지금까지 망해 가는 회사의 남은 연습생들을 전부 긁어모아 데뷔했던 터라 누굴 누르고 데뷔했던 적이 없었다.
매번 같은 멤버들과 같은 그룹으로 활동했기에 이렇게 누군가 탈락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 또한 처음이었다.
우느라 코맹맹이가 된 목소리들이 문득 떠올랐다.
– 우리 몫까지 힘내.
– 매일 투표할게요!
– 내 꿈은 너한테 맡기마.
누군가의 꿈까지 맡아 간다니 이상한 기분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강당으로 모인 연습생들이 서로를 향해 인사했다. 반절의 탈락자가 사라진 만큼 넓어진 강당이 어색했다.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예찬은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잡념을 털어냈다. 상념에 잠길 시간이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더 정신을 차려야 했다.
곧 오늘도 변함없이 연미복을 차려입은 메인 MC 앤드류가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왕자 후보생 여러분! 세 번째 합숙도 이렇게 함께하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연습생들이 일제히 단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드디어 다음 경연의 시작이었다.
이윽고 예찬이 예상했던 말이 이어졌다.
[이번 합숙에서는 같은 곡으로 두 조가 일대일 배틀을 하게 됩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