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81)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81화
[리셋 아이돌]네모반듯한 글씨체로 정직하게 박혀 있는 제목을 바라보던 예찬은 결국 참지 못하고 하경의 옆구리를 찔렀다.
“형, 이거 시작부터 너무 촌스러운데?”
“……아직 대충 만들어서 그래. 어느 정도 틀을 갖추면 디자이너 찾을 거야.”
괜한데 트집 잡지 말고 일단 해 보기나 하라며 하경이 마우스를 넘겼다.
예찬은 어깨를 으쓱거리고 얌전히 마우스 위에 손을 얹었다.
“아이돌 연습생 주인공을 스타로 키우는 게 목표인데, 특이한 건 선택을 잘못해서 안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게임 제목처럼 ‘리셋’이 가능해.”
“실행 취소 같은 거네.”
“음, 비슷한가? 이건 언제 ‘리셋’을 하든 연습생 첫날로 돌아가지만.”
“뭐야, 그게?”
진지하게 설명을 듣던 예찬이 미간을 좁혔다.
“그럴 거면 게임을 다시 시작하는 거랑 뭐가 달라?”
“일단 해 보자. 일단 해 보고 말하는 거야.”
“흠…….”
미덥잖다는 표정으로 예찬이 마우스를 달칵거렸다.
그렇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주인공 이름을 정하는 순간이 되자마자 예찬의 입에서 또다시 불평이 쏟아졌다.
“아, 형. 이건 아니지.”
“대체 지금 문제 될 게 뭐가 있는데. 아직 게임을 시작도 안 했으면서 왜 이렇게 어깃장을 못 놓아서 안달이지?”
“아니, 아이돌은 일단 비주얼이 중요하다니까? 주인공인데 이건 좀…….”
주인공 캐릭터의 얼굴을 힐끔거리며 예찬이 싫은 기색을 비치자 하경이 다시금 발끈했다.
“이것도 내가 그려서 그렇다, 내가 그려서! 캐릭터 디자이너도 나중에 뽑을 거야!”
예찬은 펄쩍 뛰는 하경을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았다.
하경은 포인트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고개를 살래살래 내저은 예찬이 친절히 설명을 덧붙였다.
“형, 못그린 게 문제가 아니라 인상이 문제야, 인상이.”
“뭐?”
예찬의 검지가 모니터 속 주인공의 얼굴을 짚었다.
“봐 봐. 주인공이 너무 못되게 생겼잖아. 이거는 아이돌이 아니라 악당 얼굴이라니까? 좀 더 선량하게 생겨야지. 눈초리도 그렇고, 입매도 그렇고. 어?”
차근차근 설명하는 예찬을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던 하경이 기운 없이 중얼거렸다.
“……이거 네가 모델이거든?”
“뭐?!”
이번엔 예찬이 펄쩍 뛰었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혀를 쯧쯧 차고 있던 예찬은 휙 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돌리더니 빠르게 부정했다.
“아니, 아니, 아니, 나는 이 정도는 아니지. 그냥 조금 눈초리가 올라간 걸 가지고 이렇게 사람을 모함해도 되나?”
“……완전 닮았거든?”
“풉.”
침대에 걸터앉아 두 사람을 지켜보던 소년이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예찬은 띠동갑 차이가 나는 형을 향해 언성을 높였다.
“이 형 진짜 무서운 사람이네! 사람을 막 이렇게 그려 놓고, 막 몰아가고!”
“허! 하예찬 네가 이렇게 생겼다니까? 거울 가져다줄까?”
잠깐 머뭇거렸던 것이 거짓말처럼 하경도 예찬에게 지지 않았다.
하경을 노려보던 예찬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잠깐 그만 웃고 이리 와 봐! 네가 보기에도 이게 나야? 진짜 나랑 닮았어?”
예찬의 부름에 소년은 여전히 웃음이 만개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평소처럼 시야가 흐려지는 일은 없었다.
아직 꿈이 더 이어질 모양이었다.
* * *
‘wintering’ 손댄스가 대대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지만, 이클립틱들은 다소 숙연한 분위기였다.
아니, 결연한 분위기라는 말이 더 잘 맞을지 모르겠다.
예찬이 앨범에 남긴 Thanks to 때문이었다.
– HYC : 언제나 열심히 노력하는 멤버들, 항상 응원해 주는 이클립틱, 그리고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올해부터 멤버들, 그리고 이클립틱과 함께 겨울을 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든든하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간결한 이 Thanks to는 이클립틱들에게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 이거 되게 물어보기 조심스러운데…… 땡스투 예찬이 부모님 안 계신단 뜻 맞지……
└ ㅇㅇ 답글 봤으면 지워 주라
가볍게 가십거리로 삼을 내용이 아니라 판단한 팬들은 물밑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네티즌들은 이게 웬일이냐며 소란스럽게 글을 올렸다.
– 레굴루스 하예찬 부모님 돌아가신 거 알고 있었어?
– 와 츄마프 하예찬 고아였대! 대박
– 하예찬 진짜로 고아임??
– 헐…… 부모 없다고 하니까 왜 내가 괜히 찡하지? 연생 서바 1위에 성공적인 데뷔까지 인간 승리네ㅠㅠㅠ
– 츄맢 때 이유 없이 쎄해서 관심 끊었는데 부모 없단 말 들으니까 이제야 왜 그랬는지 알 거 같음 결핍 있는 애들 특유의 그게 느껴짐
– 예찬아 하늘에 계신 부모님도 분명 예찬이가 자랑스러울 거야!
유명 아이돌의 불우한 가정사를 본 사람들은 쉽게 이런저런 말을 얹었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하루가 멀다고 윤여울이 남긴 게시글과 댓글이 새로이 발굴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한동안 돌태기였는데 윤ㅇ울 뭐지? 왜 이렇게 섹.시.하지….
특히 네티즌들은 잘 모르는 아이돌 H씨가 고아인 것보다, 잘 모르는 아이돌 Y씨가 자신이 섹시해서 밤잠을 설친다는 이야기를 남인 척 올린 쪽에 훨씬 더 흥미를 느꼈다.
가족 이야기를 최대한 조용히 넘어가고 싶던 예찬에겐 무척이나 운이 좋은 일이었다.
인터뷰 요청과 프로그램 섭외가 줄줄이 이어진 것은 예상대로였으나, 가정사를 팔 생각은 요만큼도 없던 예찬은 전부 거절했다.
다만 예찬이 예상치 못한 일도 있었다.
– 예찬이가 우리랑 같이 겨울날 생각에 든든하다는데, 진짜로 든든하다는 게 뭔지 보여 주자!
– 우리 같이 예찬이의 겨울을 포근하게 만들어 줍시다!
└ 포근=X, 후끈=O 한번 가 보자!!
– 진짜 죽을 때까지 같이 겨울을 나자 하예찬
– 예찬아 고생 많았어 이제 우리가 버팀목이 되어 줄게
이클립틱들의 마음에 불이 붙어 버린 것이었다.
자세한 사연을 구구절절 남기지 않았음에도, 팬들은 이번 앨범을 후회 없이 응원하겠다며 너 나 할 것 없이 손발을 걷어붙였다.
‘아니……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자신을 채찍질하며 스트리밍과 투표를 하는 팬들의 모습에 예찬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흥행에 도움이 돼 버린 Thanks to를 비롯해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결합하여 레굴루스의 성적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해외 차트에서도 유의미한 기록을 남겼다.
앨범 발매 후 격동의 2주를 보낸 레굴루스는 다음 시상식을 위해 이클립틱들의 뜨거운 배웅을 받으며 다시 일본으로 출국했다.
* * *
월요일에 열릴 어썸 아티스트 어워드에 참석하기 위해 하루 일찍 일본으로 넘어온 레굴루스는 콘서트홀에서 무사히 리허설을 마쳤다.
“고생하셨습니다!”
“내일도 잘 부탁드립니다!”
스태프들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는 사이, 다음 순서인 가온다가 급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예찬은 보는 눈이 많은 걸 의식해 인상을 쓰진 않았지만, 대신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데뷔 삼 개월 차 신인이 지각이라니, 매니저도 멤버들도 정신이 빠진 게 분명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가온다 멤버들의 버석한 얼굴이 한눈에 들어왔다.
‘……진짜로 정신이 빠졌나 보네. 정말 안색이 말이 아니군.’
특히 윤여울 다음으로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김세경의 얼굴은 관 속에서 방금 튀어나왔다고 해도 믿을 만했다.
윤여울처럼 활동 중지시키는 게 아닌가 했는데 그냥 모르쇠로 활동할 예정인 듯했다.
‘둘이나 빠지긴 좀 그렇지,’
“…….”
두 그룹은 서로를 향해 가벼운 묵례를 건네고 스쳐 지나갔다.
레굴루스 멤버들의 얼굴이 어색하게 굳었다.
흥망성쇠가 눈 깜짝할 사이에 바뀌는 업계란 걸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말도 적잖게 섞어 본 아는 얼굴들이 직접 겪는 것을 보자 비로소 피부에 와닿은 것 같았다.
“푹 자고 내일 아침에 보자.”
“안녕히 주무세요!”
호텔로 넘어온 멤버들은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얼마 뒤, 재빨리 샤워를 끝낸 멤버들이 예찬과 강해솔의 방으로 모여들었다.
“안 들켰죠?”
“당연하지.”
예찬의 물음에 선우이경이 씩 웃었다.
수마를 밀어내며 시계를 바라보고 있던 멤버들은 자정이 가까워지자 드디어 행동을 개시했다.
정의탁의 호텔 방을 습격한 것이다.
룸메이트인 심상록의 협조 덕분에 방문은 아무런 방해가 되지 못했다.
“정의탁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의탁이~ 생일 축하합니다!”
12월 19일.
정의탁의 생일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리허설을 마치고 들어와 쉬고 있던 정의탁은 코와 수염까지 붙어 있는 이상한 안경에 고깔모자를 쓴 멤버들이 들이닥치자 당황했다.
“불어라! 불어라! 불어라!”
“후, 후우―!”
기세에 휩쓸려 그대로 초까지 불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정의탁이 외쳤다.
“아 참, 번거롭게! 해외까지 와서 뭘 이런 걸 준비했어요! 진짜 안 해도 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얼굴은 좋아 죽겠다는 듯 헤실거리고 있으면서 말은 참 잘했다.
실제로 정의탁은 자신의 생일이 일본 나고야에서 열리는 시상식과 겹친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 꾸준히 올해는 생일 파티를 해 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 생일이 뭐 별건가요. 매년 오는 건데.
– 그보단 시상식에 신경 쓰는 게 맞죠.
– 당일에 복숭아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게 선물인데요, 뭘.
의젓하기 그지없는 정의탁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사람은 물론 아무도 없었다.
정의탁의 눈은 간절히 생일 파티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 성대하게 축하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은 늦은 밤까지 시상식에 참여해야 했다.
호텔 근처 유명 제과점에 미리 케이크를 주문해 놓는 정도가 멤버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하, 다들 너무 고생했어요. 진짜 고마워요.”
다행히 정의탁은 다소 열악한 이 생일 축하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는지 진심으로 감동한 눈치였다.
“의탁아, 지금 이경이 형이 들고 있는 거 라이브 카메라다?”
채은성의 말에 케이크를 소중히 든 채 울망거리던 정의탁이 파다닥 선우이경을 향해 달려갔다.
“복숭아들, 안녕! 생일 축하해 줘서 고마워요. 복숭아들과 보낼 수 있다니 최고의 생일이에요!”
멤버들도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여러분, 우리 의탁이 오늘 생일 됐어요!”
“오! 얘들아, 채팅창 좀 봐 봐. 생일인 복숭아들 엄청 많다! 다들 축하해요!”
“의탁이가 오늘 복숭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최고의 생일이래요!”
“그걸 왜 말해요! 쑥스럽게!”
얼굴이 확 빨개진 정의탁이 파닥거렸다.
카메라를 맡은 선우이경이 웃음을 흘리며 그런 정의탁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다.
“아잇, 그만 다가와요! 이거 근접 샷 수준이 아니잖아요!”
“모공 샷 찍자, 의탁아.”
“복숭아들! 이경이 형이 괴롭혀요! 나 생일인데!”
그리고 정의탁의 생일 라이브는 맨얼굴임에도 굴욕 한 점 없는 그룹이란 부제로 커뮤니티에서 꽤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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