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85)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85화
도무지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차라리 연습실에서 몸이나 움직이면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게 나을 것 같았던 예찬은, 같은 처지인 강해솔을 제외한 멤버들을 숙소로 돌려보내려 했다.
“예찬아, 섭섭하다! 너희 두고 우리가 들어가서 발 뻗고 자겠니?”
선우이경이 짐짓 서운하단 얼굴로 양손을 허리에 턱하고 얹었다.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에 예찬은 조용히 배새벽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새벽이는 이미 꿈나라에 반쯤 발을 걸쳤는데요?”
“새벽아!”
선우이경의 애타는 부름에 배새벽이 대답했다.
“아니, 고추장 말고 간장으로…… 네에…… 좀 달달하게…….”
인제 보니 반이 아니라 7할 정도는 잠 쪽으로 기운 상태였다.
“불고기 먹고 싶은가 봐요.”
“그러게. 조만간 해야겠네.”
괜스레 비장한 표정으로 선우이경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지 말고 형들도 같이 들어가요. 억지로라도 눈 붙여야죠.”
정의탁이 예찬의 소매를 잡아끌자 우휘겸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마디를 보탰다.
“모레가 시상식인데 힘들더라도 컨디션 조절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요! 잠깐이라도 누웠다가 내일 아침 일찍 나와요!”
‘내가 안 간다고 하면 얘들도 제대로 못 자겠는데.’
어쩔 수 없단 생각에 예찬이 강해솔을 돌아보았다.
몇 시간 새에 놀라울 정도로 초췌해진 강해솔이 알겠다는 듯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상황이 마무리된 것을 느낀 예찬은 PiPiPi를 돌아보았다.
“……작곡가님은 댁이 어디세요?”
“지…… 집은 왜요?”
예찬의 물음에 PiPiPi가 티가 날 정도로 흠칫 몸을 떨었다.
‘내가 설마 집에 불이라도 지르겠냐?’
예찬은 울컥하는 마음을 다스리고 질문에 살을 덧댔다.
“댁에 모셔다드리려고요. ……그리고 작곡가님 컴퓨터도 바이러스에 걸렸을 것 같은데, 내일 수리 기사님이 저희 거 고칠 수 있다고 하시면 그쪽으로도 가 달라고 부탁드려야 할 거 아니에요.”
“아…….”
PiPiPi가 고개를 떨궜다.
“소, 송구합니다…….”
‘그래, 송구해 해라. 네놈이 할 수 있는 건 고작 그 정도일 테니까!’
괜찮다는 말 대신 서늘한 눈빛이 PiPiPi의 움츠린 목덜미에 내려앉았다.
“그러면 짐 정리해서 내려가죠.”
예찬의 말에 멤버들이 하나둘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언제 어디서든 입만은 바쁘게 움직이는 멤버들이었으나, 오늘은 드물게 말없이 주차장까지 내려왔다.
주차해 둔 차가 가까워지자 김건호 매니저가 PiPiPi를 챙겼다.
“작곡가님은 내가 모셔다드릴게. 인섭이가 애들 좀 숙소로 데려다줘.”
“……정말 미안합니다. 어떻게든 보상하겠습니다.”
“보상 얘기는 일단 할 수 있는 걸 다 해 보고 하죠. 내일 해결이 안 되면 모레랑 글피에 연말 가요제가 있어서 그 후에야 볼 수 있을 거 같네요.”
“네…….”
예찬의 말에 평소라면 누군 안 바쁜 줄 아냐며 땍땍거렸을 PiPiPi는 조용히 고개를 조아렸다.
* * *
“형, 오늘은 먼저 씻어요.”
“어, 저도 나중에 씻을게요. 해솔이 형 먼저 들어가세요.”
숙소에 발을 들이기 무섭게 배새벽과 정의탁이 샤워 순서를 양보했다.
어린이들 나름대로 어떻게 해야 기운이 날지 고민한 것이 느껴졌다.
기특한 마음을 기껍게 받아들인 예찬은 빠르게 씻고 나와 그대로 침대에 몸을 묻었다.
‘심란하네.’
사실 예찬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한 번 만들었던 곡을 다시 쓰는 것쯤이야 리셋을 반복하면서 몇 번이나 했던 일 아닌가.
‘중요한 파일은 백업도 3중으로 해 뒀고.’
만약 날아간 부분이 있어도 이미 요령이 붙었기에, 복구하는 데 그다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예찬을 심란하게 만드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달칵.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수건을 머리에 올린 강해솔이 방으로 들어왔다.
예찬은 이층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해솔이 형.”
“……응? 어, 왜?”
넋을 놓고 있었는지 한 박자 늦게 대답이 돌아왔다.
이쪽을 올려다보는 눈동자엔 초점이 희미했다.
예찬은 진심으로 사과했다.
“미안해. 내가 조심했어야 하는데.”
“뭐래. 우리 원래 USB 같은 거 잘 꽂았잖아. 네 잘못 아니니까 괜히 자책하지 마라. 앞으로 조심하자고.”
빠르게 눈을 깜빡거린 강해솔이 헛소리하지 말라며 일축했으나, 예찬은 여전히 슬픈 눈으로 강해솔을 내려다보았다.
“아, 그 얼굴 하지 말라고! 불쌍한 얼굴 금지!”
“형 백업 언제 했어? 항상 월말에 몰아서 했잖아.”
“클라우드에는 얼마 전에 했었는데…… 너 클라우드 들어가 봤어?”
돌연 클라우드를 언급하는 강해솔의 말에서 불길한 기운을 느낀 예찬이 조심스레 되물었다.
“혹시 클라우드도……?”
“……그런 바이러스도 있다더라.”
눈앞이 깜깜해진다는 게 이런 걸까.
없는 시간을 쪼개 작업에 매진하던 강해솔의 뒷모습이 아른거렸다.
예찬은 진심을 담아 한 번 더 사과했다.
“진짜 미안.”
강해솔이 귀찮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아, 네 잘못 아니라니까. 잘못은 PiPi, 아니지. 작곡가님도 피해자지. 고의로 옮겨 온 건 아닐 거 아니야…… 설마 고의로 그런 건 아니겠지? 우리한테 자꾸 차여서 앙심을 품고…….”
이 모든 게 사실 PiPiPi의 계략이 아닐지 강해솔이 의심을 늘어놓던 순간이었다.
베개 옆에 놓아둔 예찬의 휴대폰 화면이 반짝였다.
[작곡가 PiPiPi]“PiPiPi 작곡가님이다.”
“그거네. 범인은 항상 현장에 돌아오는 그거.”
예찬이 이름을 확인하자 강해솔은 그럴 줄 알았다며 중얼거렸다.
‘형 많이 힘들구나…….’
살짝 나사가 풀린 강해솔을 가엾게 바라보던 예찬은 속으로 눈물을 훔치고 전화를 받았다.
전화 너머로 음울한 PiPiPi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하예찬 씨, 접니다. PiPiPi.
“네, 작곡가님. 압니다.”
– ……아직 멤버들 다 깨어 있나요?
지은 죄가 워낙 커서 그런지 평소와 달리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네, 무슨 일이신데요?”
별로 말을 섞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던 예찬이 얼른 본론을 말하라며 다소 쌀쌀맞게 대답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잔뜩 위축된 게 느껴지는 PiPiPi는 잠시 쭈뼛거리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 잠깐 스피커폰으로 바꿔 주시겠어요? 아까 가져갔던 곡, 지금 들어 줬으면 합니다.
예찬은 귀를 의심했다.
‘지금 누구 때문에 이 밤에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데. 미친놈인가.’
예찬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PiPiPi가 다급히 덧붙였다.
– 꼭 지금 들려 주고 싶습니다.
“……지금 씻고 있는 멤버들이 있어서요. 20분 후에 다시 걸겠습니다.”
– 네, 기다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기다렸다는 듯 강해솔이 침대에 가까이 달라붙었다.
“PiPiPi 작곡가님? 왜 전화한 거래? 혹시 고칠 방법이라도 찾았대?”
“그건 아니고. 아까 가져왔던 곡을 꼭 오늘 들려 주고 싶다는데.”
“뭐?”
잠깐 기대감으로 빛났던 강해솔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이 정리된 듯 진지한 얼굴로 예찬을 올려다보았다.
“……한번 들어나 보자. 대체 뭘 그렇게 들려 주고 싶으셨던 건지.”
다른 멤버들의 의견도 대체로 비슷했다.
씻고 있던 세 사람이 나온 뒤 멤버들과 거실에 둘러앉은 예찬은 PiPiPi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이제 괜찮을까요?
신호음이 들리기 무섭게 전화를 받은 PiPiPi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네.”
멤버들을 슬쩍 둘러본 예찬이 대답했다.
–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예찬은 짧게 대답하고 스마트폰을 거실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윽고 스마트폰의 스피커를 타고 가야금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가야금?’
예상치 못한 악기의 등장에 눈을 깜빡거린 예찬은 좀 더 귀를 기울였다.
심지어 녹음 파일이 아니었다.
‘이거 실시간이야? 지금 피대기가 가야금 뜯고 있는 거지?’
– 흠, 흠흠―, 흐으음―.
반주 위로 PiPiPi의 허밍이 겹쳤다.
작곡 실력과 달리 노래는 끔찍할 정도로 형편없었다.
그러나 그 형편없는 노래에도 거실에 앉아 있는 사람 중 누구 하나 크게 숨을 내쉬는 이가 없었다.
엄청난 몰입감을 주는 곡이었다.
‘이걸 음치인 피대기가 아니라 우리가 부른다면……!’
머리와 가슴에 불꽃이 튀었다.
– 흠 흐음 흠흠흠―! 흠. ……끝입니다.
마침내 곡이 다 끝났을 때, 예찬은 인정하고야 말았다.
‘이 곡은 우리 거다. 우리가 해야만 한다.’
고개를 들자 멤버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뺨이 상기된 채 눈을 빛내고 있었다.
지금까지 예찬은 결코 PiPiPi의 실력을 무시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거만함과 제멋대로인 성격을 감내해 가면서까지 작업을 할 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
그러나 지금 들은 곡은 지난 모든 회차에서 들었던 PiPiPi의 그 어떤 곡보다 가장 매력적이었다.
잠시 말을 고르던 예찬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제목은 뭔가요?”
어딘가 벅차오른 목소리로 PiPiPi가 답했다.
– 개(開)입니다.
그날 밤, 침대로 올라가려는 예찬을 붙잡은 강해솔은 작게 속삭였다.
조금 전의 곡으로 PiPiPi를 20퍼센트는 용서했다고.
‘……해솔이 형, 생각보다 더 원한이 깊었구나.’
예찬은 후련한 걸음으로 자기 침대를 향해 걸어가는 강해솔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 * *
다음 날 찾아온 컴퓨터 기사들은 작업실 데스크탑을 보며 하나같이 난색을 표했다.
강해솔은 굴러다니던 노트북에 자신의 외장하드를 연결해 보더니 한숨을 숨기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외장하드에 백업한 게 언제냐는 질문에 ‘나를 울릴 셈이냐.’고 대답한 강해솔에게 차마 그 이상 캐물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이 납을 얹은 듯 무거워도, 내일과 모레 연달아 이어지는 HBS와 DBS의 연말 가요제 준비를 허투루 할 수는 없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이따 봐요!”
다른 그룹과의 콜라보레이션 무대를 위해 멤버 중 반 이상이 점심을 먹자마자 자리를 비웠다.
예찬은 운 좋게 다른 그룹을 회사에서 기다리는 쪽이었기에 여유롭게 멤버들을 배웅할 수 있었다.
약속 시간을 30여 분 앞두고 건곤감리의 메인 보컬, 곤과 블랑딕스의 메인 보컬 BB가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 해…… 요.”
상당히 다른 스타일의 두 사람이 동시에 인사를 하니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예찬은 그런 내색 하나 없이 완벽한 웃는 얼굴로 그들을 맞이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기에 잠시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자, 두 사람의 차이가 더 확연히 보였다.
“예찬이 너는 츄마프 때랑 이미지가 완전 다르다! 나 진짜 개또라이가 데뷔한 줄 알았는데!”
“아하하.”
“사람 면전에 대고 그런 단어는 좀…….”
“엉? 방금 뭐라 했어, 형?”
“그러니까…… 단어가…….”
“아, 답답해. 좀 크게 말해 주면 안 돼?”
“…….”
“하하.”
아이돌이란 참 개성적인 놈들을 모아 놓은 집단이구나.
‘역시 우리 애들이 제일 낫다니까.’
예찬은 헛웃음을 흘리며 빨리 나머지 둘이 도착하기를 바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