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87)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87화
오랜 시간 범세혁은 예찬의 머릿속에서 뭐든지 잘하는 ‘아이돌’의 대표 주자였다.
실제로 범세혁의 상태창은 예찬의 생각을 증명하듯 A 아래로 내려가는 스탯이 없었다.
예찬 또한 완벽하게 태어난 아이돌이라 불리고 있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갈고닦았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는 것임을 스스로 알았다.
그래서 예찬은 지금도 만능 아이돌이란 말을 들으면 자연스레 범세혁을 떠올렸다.
그러나 ‘아이돌’이 아닌 ‘인간’ 범세혁은 어떠한가.
‘구멍이…… 너무 많다.’
게다가 범세혁은 자신처럼 뭐든 척척 해낼 수 없는 ‘보통’ 사람의 마음을 몰랐다.
예찬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굴러갔다.
‘저 둘이랑 같이 무대에 서는 게 누구더라?’
범세혁과 심상록이 참여하는 콜라보 무대는 총 여덟 명의 아이돌이 출연했다.
‘우리 말고 가온다, 건곤감리, 블랑딕스, 기어까지 다섯 그룹이었던가? 그러면 뒤의 셋 중에 범세혁이 울린 선배가 있다는 건데…….’
예찬이 홀로 추리하는 사이, 곤란한 듯 눈을 굴리던 심상록이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다.
“음, 다들 너무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거야. 세혁이가 잘못한 건 아니거든. 상황이…… 좀 그랬달까?”
잠시 그때를 회상하듯 눈을 깜빡인 심상록이 다시 말을 이었다.
“뭐, 요약하자면 선배님의 텃세가 있었어.”
문제의 눈물을 터트린 멤버는 그룹 기어의 멤버 제네바, 본명 반재희라고 했다.
참고로 기어는 범세혁과 정의탁의 소속사였던 루벨 엔터 소속의 그룹이었는데, 덕분에 범세혁과 구면이었다.
“그냥 오랜만이다, 잘 지냈냐, 뭐 이런 인사를 하셨는데…… 세혁이는 잘 기억이 안 나는 눈치더라고.”
“하하…….”
범세혁이 멋쩍은 듯 웃었다.
힐끗 범세혁을 확인한 예찬은 심상록을 재촉했다.
“그래서요?”
“음, 그리고 연습을 시작했는데 자꾸 세혁이 탓을 하면서 연습을 중단시키시더라고. 팔 각도가 틀렸다, 박자가 안 맞았다, 보폭이 이상했다, 그런 식으로?”
– 너 연습생 땐 좀 더 잘하지 않았나? 데뷔하니까 끝인 거 같아? 그래서 대충하는 거야?
“제네바 선배님이 제일 선배라 누가 말릴 수도 없고…… 대충 어땠을지 알겠지?”
예찬은 범세혁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예의상 확인을 했다.
“진짜 틀린 건 아니지?”
“으음, 아닐걸?”
“그래…… 그래서요?”
다른 놈도 아니고 범세혁이 대충하는 것도, 안무를 틀리는 것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인 예찬은 다시 심상록에게 물었다.
“아무튼 그래서 분위기가 좀 가라앉아 있었는데, 그때 베넷 선배님이 직접 연습실에 방문하신 거야.”
“베넷 선배님이라면, 빌리브의?”
“와, 진짜요? 부럽다!”
익숙한 대선배의 이름에 선우이경과 채은성이 아는 척을 해 왔다.
범세혁과 심상록이 커버하는 노래는 1990년대 그룹 빌리브의 곡으로, 베넷은 빌리브의 막내 멤버였다.
지금은 가수로서는 활동하고 있지 않지만 예능에선 여전히 활약 중이었다.
“그래서 연습한 걸 보여 드렸는데, 세혁이가 제네바 선배님께 지적받은 사항을 그대로 고쳐서 춤춰 버린 거야.”
“그대로 고쳤다고요?”
“응, 제네바 선배님 말대로 하니까 잘 맞던 박자도 밀리고 보폭도 따로 놀고 팔 각도도 틀리더라고.”
멤버들의 시선이 다시금 범세혁에게 향했다.
범세혁은 별다른 변명 없이 그저 웃었다.
“당연히 베넷 선배님은 어떻게 된 거냐고 하시고…… 세혁이는 또 지적받아서 고쳤다고 말하고. 그러면 원래대로 해 보라고 하시니까 당연히 실수 하나 없고…….”
‘저런…….’
춤 스탯이 무려 S인 범세혁의 안무에 대선배는 깊이 감명받아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대체 누가 지적을 했냐고 물었다.
사양을 할 줄 모르는 범세혁의 손가락이 제네바를 가리켰다.
‘분위기 대박이었겠는데.’
그 후 고작 1, 2년 차이 나는 선후배 간의 서열은 연습실 내에서 자취를 감췄다.
– 세혁이 네가 잘하니까 네가 잘 가르쳐 줘.
– 네, 선배님!
이번에도 사양하지 않은 범세혁은 페어 안무를 연습하는 내내 제네바에게 해맑게 말을 걸었다고 한다.
– 선배님, 여기선 한 보 빨리 나오셔야 해요.
– 선배님, 지금은 고개 각도를 좀 더 트셔야 해요.
– 선배님, 손을 제대로 잡은 다음에 다음 동작을 하셔야 해요.
– 선배님, 선배님, 선배님…….
끝없는 선배님 지옥에 빠져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지적에 지적을 거듭 당하던 제네바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자초지종을 들은 예찬은 범세혁에게 물었다.
“정말 고의가 아니었어?”
“난 정말 그 선배님이 완벽하게 하고 싶으신 거 같아서 한 건데…….”
범세혁이 쓸쓸한 얼굴로 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정말로 자신과 똑같이 출 수 있도록 도와줄 생각이었다고 작게 덧붙였다.
예찬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범세혁의 어깨를 툭 쳤다.
“잘했어.”
범세혁이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화 안 내네?”
예찬은 코웃음을 쳤다.
“왜 화를 내?”
안 보이는 데서 엄한 놈한테 얻어맞고 오는 것보다야 울리고 오는 게 훨씬 나았다.
‘심지어 저쪽에서 먼저 선빵을 날렸잖아. 저 정도면 점잖게 혼쭐을 내줬네.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음, 이런 못된 상상은 그만두자.’
기특하다는 듯 범세혁을 토닥거리고 있자 다른 멤버들도 하나둘 합류했다.
“그 선배가 잘못하신 거지! 혁이 네가 고생 많았다!”
“휴, 난 세혁이가 울렸다길래 ‘어떻게 하냐고요? 그냥 되던데요. 이게 안 되세요?’ 뭐 이런 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세혁이 욕봤네! 고생했어!”
“……예시가 좀 디테일한데요? 이경이 형, 혹시 세혁이를 평소에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하하하하!”
그사이 다른 멤버들이 하나씩 연습실로 올라왔다.
정의탁은 제네바의 이름을 듣자마자 확 얼굴을 구겼다.
“반재희 형이 그랬다고요? 진짜 사람 안 변하네요.”
정의탁의 말에 의하면, 그룹 기어의 데뷔 조에 막차로 승차한 제네바는 자신이 데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속사에 들어온 범세혁에게 굉장한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회사 사람들이 다들 입을 모아 세혁이 형을 천재라고 하고, 좀만 더 일찍 들어왔으면 기어로 데뷔했을 텐데, 뭐 그런 말을 하니까 괜히 열등감을 느낀 거죠.”
정의탁은 그가 자신에게도 나이 때문에 데뷔 조에서 잘려서 어떡하냐며 걱정하는 척 속을 긁는 짓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며 씩씩댔다.
“우는 얼굴을 내가 봤어야 하는데!”
“비하인드 카메라엔 찍히지 않았을까?”
“앗! 그런데 다른 그룹도 비하인드 캠 찍지 않았어? 혹시 올리면 문제가 되진 않을까?”
모두의 시선이 도움을 요청하듯 예찬에게 향했다.
예찬은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범세혁이 잘못한 게 없는데 뭐 어때요.”
상대방이 이쪽보다 압도적으로 팬덤이 큰 그룹이라면 잘못이 없어도 잘못했다고 얻어맞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쪽들도 생각이 있으면 안 올리겠지.
예찬의 태연한 태도에 다들 안심이 됐는지 한결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우리 말고는 뭐 문제 있던 쪽은 없었지?”
“저요, 저요! 저희도 원곡 선배님이 오셨는데, 갑자기 아크로바틱 같은 걸 넣으면 어떻겠냐고 하시는 거예요! 바닥도 좀 굴러 보라 하고!”
심상록의 물음에 정의탁이 기다렸다는 듯 펄쩍 뛰어올랐다.
“의탁이네 무슨 곡이었지?”
“스마일 제곱이요!”
“스마일 제곱에 아크로바틱?”
“어우, 굉장한데?”
스마일 제곱 또한 90년대에 유행한 곡이었는데, 꽤 귀여운 안무와 따라 부르기 좋은 멜로디를 가진 노래였다.
난이도가 높지 않다 보니 콜라보를 위해 모인 멤버들의 포지션도 보컬, 랩, 댄스 등 다양했다는데, 갑자기 아크로바틱이라니.
그쪽 연습실 분위기도 대강 짐작이 갔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강해솔이 질색한 얼굴로 묻자 정의탁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하늘 같은 대선배님 말이니까 싫다고 못 하고 하라는 거 다 해 봤죠. 앞구르기, 뒤구르기, 손 안 짚고 옆돌기에, 전 벽까지 탔어요!”
씩씩거리던 정의탁이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두 시간을 내리 뺑뺑 굴리더니, 뭐라고 했는 줄 알아요? 흠흠!”
목을 가다듬은 정의탁이 대선배의 말투를 고스란히 따라 했다.
“‘원곡이 제일 나은 거 같은데? 인제 보니 우리 곡이 밸런스가 딱 적당했구나! 그냥 원곡대로 갑시다!’이랬다니까요?!”
정의탁은 분해 죽겠다며 다시금 팔짝팔짝 뛰었다.
“진짜 장난하냐고요! 강우 선배님은 바지도 찢어졌는데!”
멤버들은 분노에 몸을 맡긴 정의탁을 조용히 달랬다.
정의탁이 좀 진정했을 무렵, 마지막으로 배새벽이 연습실에 도착했다.
“이제 우리 무대도 마지막 연습을 해 보자!”
“네!”
선우이경의 지시에 풀어져 있던 멤버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다.
* * *
크리스마스이브에 제일 좋아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니.
자신은 참 축복받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홈마 박모 씨는 카메라 설정을 한 번 더 확인했다.
12월 24일 오후 다섯 시 반.
HBS의 연말 가요제 레드 카펫이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약 10분 뒤, HBS 연말 가요제에 참여하는 가수들이 속속들이 레드 카펫 위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202X년, 한 해 동안 많은 사랑을 받은 K-pop 아티스트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제가 레드 카펫 진행을 맡게 돼서 너무 큰 영광이네요. 그럼 한 분 한 분 모셔 볼까요?] [OPE 여러분, 반갑습니다!] [네, 이번에 만나 볼 분들은 바로 버블버블, 버블리입니다!] [올해 데뷔한 따끈따끈한 신인, 가온다가 레드 카펫 위로 모습을 드러냈네요!]화려하게 꾸민 아이돌들이 한파 속에서도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들의 훤히 드러난 목덜미며 팔다리를 보자 박모 씨는 어쩐지 뼈가 시린 느낌이 들었다.
‘으…… 아이돌들도 대단하단 말이지.’
괜스레 단단히 매고 있는 목도리를 만지작거리는 사이, 저쪽에서부터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비명이 들렸다.
“예찬아!”
“범세혀어어억!”
“이경아아아아아아!”
박모 씨는 비명들 사이에 섞인 익숙한 이름들을 캐치했다.
‘왔다!’
[다음 아티스트 분들을 모셔 볼까요? 올 한 해, 신인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활약을 해 주신 분들이죠! 레굴루스입니다!]예상대로 다음으로 레드 카펫에 선 것은 올 연말 시상식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박모 씨의 아이돌, 레굴루스였다.
이윽고 카메라 프레임 안으로 리더 예찬의 모습이 잡혔을 때, 박모 씨는 저도 모르게 셔터를 누르며 입을 벌리고 말았다.
“어……?”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따뜻하게 차려입은 산타 하나와.
그 산타가 탄 썰매를 끌고 있는 루돌프 여덟이 사이좋게 레드 카펫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배경음으로 흐르는 ‘KEEP YOUR CHIN UP’과 귀엽기 그지없는 의상이 주는 언밸런스한 매력이 대단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선두를 맡은 예찬 루돌프가 팬들을 향해 한 손으로 손 키스를 날리며 나머지 손을 신나게 흔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