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88)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88화
“어때, 마음에 들어?”
“네!”
레드 카펫에 오르기 전, 오늘의 의상을 받은 멤버들은 만족스러운 듯 옷을 몸에 대보기 바빴다.
예찬 또한 두툼한 갈색 털옷을 기분 좋은 얼굴로 만지작거렸다.
후드 부근에 달린 뿔을 찔러 보자 천으로 이어 붙인 게 아닌지 단단한 감촉이 느껴졌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루돌프 의상은 디테일이 여러모로 아쉬워서 주문 제작을 맡긴 것인데,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예찬이는 이것도 받아.”
스태프의 말에 손을 내밀자 빨갛고 반질반질한 루돌프의 코가 손 위에 놓였다.
“오, 리더의 증표~!”
“크, 단 한 번도 리더를 하고 싶은 적이 없었는데 오늘만큼은 부럽다……!”
깐죽거리는 선우이경의 뒤쪽에서 진심으로 루돌프의 코를 탐내는 채은성의 시기 어린 눈빛이 느껴졌다.
예찬은 말없이 채은성의 코에 빨간 코를 꽂아 주었다.
“지금은 너 끼고 있든가.”
“……너!”
무심한 예찬의 행동에 채은성은 반색을 숨기지 못하고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와, 부럽다. 은성아, 나도 한 번만.”
“저도요. 딱 5초만 끼고 돌려줄게요.”
범세혁과 정의탁이 쪼르르 쫓아가 채은성의 양팔에 매달렸다.
“어허허허,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때마침 산타클로스가 탈의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붉은색 모자와 세트인 상하의.
거기에 얼굴엔 구름처럼 풍성한 흰 수염을 붙인 산타는 무척이나 크고 반짝거리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크, 배 산타! 좀 멋있는데.”
“산타 할아버지, 한 바퀴 돌아주세요!”
“선물 주세요!”
형들의 열렬한 환호성에 산타 분장을 한 배새벽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중후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멤버들의 만장일치로 막내인 배새벽이 산타 역할을 맡았는데, 배새벽 또한 굉장히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빙글빙글 열 바퀴쯤 제자리에서 돈 배새벽이 이내 스타일리스트를 찾았다.
“누나, 흰색 가발 없어요? 모자 아래로 머리가 좀 보이는데 거슬려서요.”
‘뭘 그렇게까지…….’
너무 진심으로 분장하는 게 아닌가 싶었으나 다른 멤버들은 예찬과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었다.
“수염을 좀 잘라서 붙여야 하나?”
“어디 솜 남는 거는 없지?”
“내 배털을 좀 잘라 줄까?”
“그만둬, 록돌프!”
한마음 한뜻으로 흰색의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멤버들을 바라보며 예찬은 고개를 내저었다.
어찌어찌 배새벽의 머리를 흰색으로 바꾸자 이번엔 강해솔이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데 산타 할아버지치고 너무 날씬하지 않아?”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배새벽의 날씬한 복부로 향했다.
“맞네. 산타가 이러면 안 되지.”
“그치, 이거는 가짜지.”
“할아버지의 배는 인격을 상징한다고.”
‘이대로 가다간 끝이 없겠군.’
멤버들이 진지한 얼굴로 쑥덕거리는 것을 본 예찬이 끼어들었다.
“산타가 뚱뚱하다는 건 편견 아닐까요? 하루 만에 선물을 주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데 오히려 근육질이 아닐까 싶습니다.”
“앗, 그럴듯한데?”
“나 지금 살짝 귀가 팔랑거렸어.”
그때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휘겸이 입을 열었다.
“……산타의 배는 인격이 아니라 노동력을 착취당한 루돌프의 괴로움을 상징하는 걸지도 몰라요.”
“……!”
돌연 튀어나온 과격한 단어에 멤버들이 우휘겸을 바라보았다.
우휘겸은 갑자기 몰린 시선에 조금 수줍은 듯 우물거렸으나 끝까지 하던 말을 이어 갔다.
“산타는 루돌프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자신은 여유롭게 휴식하며 명성만 가로챘기 때문에 살이 쪘다……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럴듯한데?”
‘대체 어디가!’
안타깝게도 예찬을 제외한 멤버들은 동심을 팔아먹은 우휘겸의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해 버렸다.
“산타 할아버지 무서운 사람이었네!”
“루돌프야, 미안해!”
“배에 뭐 넣자. 쿠션 들어가려나?”
당장이라도 소파에 늘어져 있는 쿠션들을 배새벽의 배에 쑤셔 넣을 기세였다.
예찬은 전보다 더 급하게 끼어들었다.
“동작 그만! 새벽이는 그런 산타가 아니잖아요! 배새벽! 너 형들을 막 부려 먹을 거야? 아니지? 우리 레굴루스 마을은 산타와 루돌프가 서로 협력하는 평화로운 곳이잖아?”
예찬의 강요 섞인 물음에 커다란 눈을 서너 번 깜빡거린 배새벽은 입을 여는 대신 조용히 쿠션을 들어 올려 배 쪽에 밀어 넣었다.
산타의 부푼 배를 본 루돌프들의 민심이 크게 흔들렸다.
성난 루돌프들이 불끈 쥔 주먹을 치켜들었다.
“우우우! 산타를 몰아내라!”
“타도 산타클로스!”
“배 산타는 물러나라! 물러나라! 물러나라!”
‘……관두자.’
조용히 고개를 저은 예찬은 털옷을 들고 탈의실로 향했다.
* * *
그리고 몇 시간 뒤.
산타와 루돌프로 완벽하게 분장을 마친 레굴루스는 위풍당당하게 레드 카펫 위를 걸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산타클로스인 배새벽은 채은성과 범세혁, 정의탁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고 있었지만.
‘저 썰매도 할 말이 참 많지…….’
원래 스타일리스트들은 바퀴와 전기로 움직이는 최첨단 썰매를 준비해 두었다.
‘그걸 저 망나니들이 시험 운행해 보겠다고 회사 복도에서 타다가…… 하, 다치지 않은 게 천운이다, 정말.’
[가운데로 먼저 서 주시고요. 네, 좋습니다.]포토 타임을 위해 중앙에 선 예찬은 코에 달린 루돌프 코를 한 번 눌렀다.
빨간 루돌프 코가 화려하게 발광하기 시작했다.
[어우, 코가…… 강렬하네요.]MC의 진심 섞인 감탄사가 들렸다.
기자들의 요청에 따라 포즈를 바꿔 가며 포토 타임을 끝낸 멤버들은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얘들아!”
“새벽아, 선물 줘!”
“레굴루스으으!!”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손을 흔들며 예찬은 잠깐 껐던 코를 다시 켰다.
반짝반짝, 어찌나 코의 빛이 강렬한지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 속에서도 결코 묻히지 않았다.
“꽤 괜찮지 않았어요?”
“꽤 괜찮은 정도가 아니지! 오늘의 베스트 드레서 급이라고!”
팬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들어오기 무섭게 멤버들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긴 해. 진짜 오늘 큰일 해냈다.”
“휴, 패션계까지 접수해 버리다니. 나란 사람, 참 무서운 사람.”
“사람들 들어오기 전에 썰매 좀 치워 둡시다.”
예찬은 멤버들의 헛소리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지시를 내렸다.
대기실에 들러 옷을 갈아입기 무섭게 유피테르의 리더 황시우가 들이닥쳤다.
“루돌프 옷 어디다 팔아먹었어!”
익숙한 선배의 얼굴을 확인한 멤버들이 인사를 건넸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 안녕. 그래, 나도 반갑다. ……루돌프 옷 어디다 팔아먹었어!”
일일이 인사를 받아 준 황시우가 허리를 꼿꼿이 펴고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예찬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벗어 둔 루돌프 옷을 들어 건네주었다.
“자요.”
“아니, 왜 벌써 벗었냐는 뜻이었는데…… 오, 근데 이거 진짜 부드럽다. 완전 따뜻했겠는데?”
부드러운 촉감에 놀랐는지 황시우는 양손으로 예찬이 벗어 둔 가죽을 주물럭거렸다.
두 사람의 모습을 구경하던 멤버들은 이내 신경을 끄고 하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
황시우 또한 언제나 그랬듯 예찬 옆에 붙어서 귀찮게 굴었다.
“썰매는 어디 갔어, 썰매.”
“왜요. 그거 입고 끌어 보려고요?”
황시우가 입을 틀어막았다.
“헉, 끌어도 돼?”
‘왜 좋아하지?’
예찬은 떨떠름한 얼굴로 썰매가 있는 쪽으로 황시우를 데려갔다.
“바퀴가 없네? 예찬아, 너 타 봐.”
“싫어요.”
“그럼 내가 탈게. 네가 끌어.”
“그건 더 싫어요.”
황시우와 영양가 없는 입씨름을 하는 사이,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과는 달리 신경질적인 노크 소리에 황시우가 예찬에게 물었다.
“누구 오기로 했어?”
“아뇨, 딱히. 들어오세요.”
고개를 저어 보인 예찬이 문을 향해 대답했다.
기다렸다는 듯 벌컥 열린 문 너머에 서 있던 것은 루벨 엔터의 기어였다.
“너희 잠깐 우리 좀 보…… 아, 황시우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들어오던 기어의 리더 하모닉이 황시우를 발견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 뒤에서 씨근덕대고 있던 제네바와 베벨도 화들짝 놀라 허리를 굽혔고.
“어, 오랜만이다. 무슨 일인데? 얘들 말 들어 보니 약속은 없었다는 거 같은데.”
썰매를 보고 바보처럼 눈을 빛내던 황시우는 어느새 냉철한 선배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기어의 세 멤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그, 그게…….”
“거기 세혁이랑 의탁이가 저희랑 같은 루벨 엔터였거든요. 그래서 잠깐 얼굴 좀 보려고…….”
“야.”
제네바가 가여울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으나 황시우는 끝까지 들어 주지 않았다.
“지금 진짜 몰라서 물어보는 거 같아? 잠깐 얼굴 보자는 말을 누가 이런 식으로 해?”
온 세상의 짜증을 다 끌어모은 황시우의 목소리에 위풍당당하게 문을 열어젖혔던 기어 멤버들의 어깨가 한없이 움츠러들었다.
“요즘 세상에 선후배 군기라니 웃기지도 않네. 너희 데뷔했을 때, 군기 잡는다고 나대는 선배 있었어?”
“아니요…….”
‘그러고 보니 유피테르가 1군이 된 다음부터 괜히 선후배랍시고 심하게 텃세 부리는 걸 막았었댔지.’
물론 그들이 없는 곳에서야 알음알음 행패를 부리는 놈들이 분명 있었겠지만, 이전 세대들에 비해 확실히 강도가 약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았다.
리스피릿이야 워낙 마이 웨이 하는 그룹이라 다른 그룹과 엮일 일이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어디서 이상한 문화 전파하지 말고, 자기 할 일이나 잘하자. 좋은 날 뭐 하는 거야.”
“네, 넵, 선배님! 죄송합니다!”
“사과는 나한테 할 게 아닌데?”
“그, 미, 미안했다!”
“그럼 가 봐.”
“네!”
이때까지 제대로 허리도 펴지 못하고 있던 기어의 세 사람이 던지듯 사과하고는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쯧.”
예찬은 혀를 차는 황시우를 새삼스레 바라보았다.
‘……제법?’
대기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문제가 해결되다니.
무척이나 생소한 경험이었다.
‘이게 바로 호가호위? ……좋은데?’
이래서 사람들이 권력자에게 붙는 것인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 예찬의 시선을 느꼈는지 황시우가 고개를 돌렸다.
‘어쩐지 평소보다 훤칠해 보이는 것 같…….’
“하예찬, 나 방금 완전 멋있지 않았냐?”
“…….”
제대로 감탄을 하기도 전에 평소처럼 유감스러운 황시우가 돌아왔다.
‘그 말을 안 했으면…… 하, 아니다.’
예찬은 그래도 도움을 받은 보답으로 말을 삼켰으나 참지 못한 놈도 있었다.
“아이고, 그 말만 안 하셨으면 진짜 멋있었을 텐데…… 아이고, 아까워라…… 아이고…….”
채은성은 정말로 아쉽다는 듯 눈까지 가늘게 뜨고 있었다.
황시우가 휙 고개를 돌렸다.
“뭐?! 그럼 방금 거는 취소! 없었던 걸로 해! 다들 잊어버려! 알겠지?”
“선배님 그 말도 조금…….”
이번엔 안타까운 얼굴을 한 선우이경이 고개를 저었다.
“하, 어떡하지? 기어 애들 불러와서 마지막 문장부터 다시 해 봐?”
쏟아지는 선배님의 추태에 더 이상 말을 삼킬 수 없던 예찬은 황시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건 조금 많이…….”
멋이 없습니다, 선배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