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9)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8화
예찬의 기억대로 이번 경연은 여덟 조로 나뉜 연습생들이 같은 곡을 두고 두 조씩 맞붙는 방식이었다.
경연 곡이 될 네 개의 곡들은 모두 인기 아이돌 그룹의 히트곡. 화제가 되기 딱 좋은 대결이었다.
[후보생 여러분은 지금부터 지난 계승식 순위 순서대로 네 개의 숫자 중 하나를 고르게 됩니다. 해당 번호가 적힌 방에 들어간 12명의 후보생 중 랜덤한 6명이 같은 조로 배정됩니다! 그리고 지난 왕위 계승식 전에 미리 안내해드린 것처럼 내일은 게릴라 사인회가 있을 예정이니 그 점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자, 그럼 범세혁 후보생, 먼저 이동해 주시죠.]경연 연습에 사인회 준비까지. 갑자기 떨어진 날벼락에 연습생들 사이로 한 차례 탄식이 흘러나왔다.
새롭게 편성될 조에 집중해야 할 이 시점에 굳이 사인회 얘기를 끼워 넣어 연습생들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예찬이 생각하는 사이, 1위 범세혁이 가장 먼저 제작진의 안내를 받아 강당 밖으로 이동했다.
예찬은 범세혁의 잠버릇대로 눌린 뒤통수를 보며 생각했다.
‘1번 방이 헤븐, 2번 방이 스페이스, 3번 방이 스트로베리럽, 4번 방이 유피테르의 곡이지. 스트로베리럽이 여돌이라 좀 까다롭긴 하지만 네 팀 다 괜찮은 곡이라 어떤 회차든 전반적으로 무대 퀄리티가 좋았어.’
화제성이 부풀어 오르기 아주 좋은 경연이었다.
물론 어떤 팀을 고를지도 미리 생각해 두었다.
‘스페이스로 간다.’
가창력 위주의 곡이라 지난 경연과 차별화되지 않는 1번 방과 직전 경연에 불렀던 유피테르의 곡을 제외하면 남은 것은 스페이스와 스트로베리럽이었다.
예찬은 안무가 더 어려운 스페이스를 선택했다.
확신의 메인 보컬 롤이 춤도 잘 추는 것은 아주 큰 가점 요소였다.
‘네 곡 다 완벽하게 소화할 자신이 있으니, 제일 이점이 많은 곡을 선택해야지.’
아흔아홉 명이 모여 있을 땐 꽉 차던 공간이 널찍해져서 그런지 차례를 기다리는 연습생들의 분위기가 지난 합숙보다 다소 가라앉아 있었다.
[하예찬 후보생, 이동해 주세요.]범세혁이 선택을 마쳤는지 예찬의 이름이 불렸다.
스태프의 뒤를 따라 연습실이 있는 건물로 이동한 예찬은 숫자가 적힌 방문 앞에서 잠시 고민하는 척 턱에 손을 대고 있다가 2번이 적힌 문을 열었다.
‘범세혁은…… 없군.’
예찬은 생각해 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해 간 것에 만족했다.
MC는 랜덤이라고 말했으나 이번 경연은 한 방에 모인 12명의 팀원을 높은 순위대로 차례차례 갈라서 6명씩 조를 짰다.
즉 지난 순위 발표식 2위인 예찬과 1위인 범세혁은 절대로 한 조가 될 수 없었다.
미래에 같은 그룹으로 활동할 것을 생각하면 가뜩이나 개인 팬이 많은 서바이벌 프로에서 범세혁의 팬덤과 예찬의 팬덤을 굳이 더 척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예찬은 가능한 범세혁과의 직접적인 경쟁 구도는 피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붙어 있는 순위 때문에도 계속 부딪힐 텐데.’
예찬이 한쪽 벽면에 나란히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다시 열렸다.
“어, 예찬아!”
심상록의 얼굴이 반가움으로 물들었다.
‘칫. 심상록도 피하고 싶었는데.’
속으로 짧게 혀를 찬 예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심상록에게 다가갔다.
“같은 방을 선택했네요.”
“그러게. 같은 조가 되면 좋겠다!”
‘그건 무리입니다.’
심상록은 같은 방에 들어왔으니 같은 조가 될 확률도 반이나 된다고 기뻐했다.
이미 조를 나누는 방식을 알고 있는 예찬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찬이 앉아 있던 의자를 한번 쓱 쳐다본 심상록이 말했다.
“우리, 의자를 문 앞에 가져와서 앉아 있을까? 여기 딱 있어야 들어올 때 재미있을 거 같아.”
“그래요.”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고 지켜보는 제작진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아서 예찬은 흔쾌히 동의했다.
두 사람이 의자를 반쯤 옮겼을 무렵 문이 다시 열렸다.
“왜 의자를 나르고 있는 거야? 미션?”
5위인 선우이경이었다.
“이경이 왔구나. 미션은 아니고, 여기서 기다리면 좋을 거 같아서.”
“그래?”
선우이경은 더 물어보지 않고 남은 의자를 옮겨 왔다.
세 사람이 나란히 앉기 무섭게 다음 연습생이 들어왔다.
“오! 예찬이랑 이경이 형에 상록이 형까지~ 라인업 장난 아닌데?”
활기차게 문을 열어젖힌 남지유가 윙크를 날렸다.
“……!”
그다음으로 들어온 것은 정의탁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중앙에 앉아 있던 선우이경과 눈이 마주친 정의탁은 어깨가 움찔거리는 게 확연히 보일 정도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와, 의탁이다.”
심상록의 목소리에 정의탁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어, 형들도 여기 있었네요.”
예찬과 심상록을 확인한 정의탁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 높아졌다.
“이야~ 의탁이 낯가림 좀 하는 거 같더니 상록이 형이랑 예찬이랑 많이 친해졌나 봐~ 얼굴 완전 풀렸다, 야!”
“벼, 별로 그런 거 아니거든요?”
붙임성 좋은 남지유가 능글능글 웃으며 장난을 치자 정의탁이 발끈하며 부정했다.
예찬은 그런 두 사람을 뜨뜻미지근하게 바라보며 조원을 계산했다.
‘윗 순위부터 지그재그로 조를 나누면 나랑 남지유, 정의탁까지 같은 조군.’
“상위권 너무 우리 팀으로 쏠린 거 아니야? 10위권 안이 넷이죠, 지금? 의탁이는 11위고.”
쉴 틈 없이 열리던 문이 꽤 오랫동안 닫혀 있자 나란히 앉아 있는 연습생들을 살핀 남지유가 말했다.
선우이경이 자신의 단발을 쓸어 넘기며 동의했다.
“그러게. 다들 2를 좋아하나 봐.”
예찬은 다른 연습생들이 말을 주고받는 것을 들으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확실히 좀 몰리긴 했네. 이번에는 조 승리 베네핏을 확실히 잡고 다른 베네핏은 받으면 좋고, 아님 말고로 가야겠어.’
지금까지 정해진 조원들로 어떻게 파트를 분배하면 좋을지 예찬이 생각하는 사이 다시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어김없이 복슬을 넘어 북슬거리는 헤어스타일을 자랑하고 있는 배새벽이었다.
‘배새벽인가. 같은 조였으면 더 좋았겠다만 그래도 이번에 말은 트겠군.’
그 후로도 띄엄띄엄 문이 열리고 연습생들이 인사를 하며 들어왔지만 예찬이 눈여겨보던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뭐, 순위가 순위다 보니 대부분 2차 순위 발표식에 떨어질 놈들이니…… 이제 열 명이 찼으니 곧 끝나겠군.’
어차피 거의 편집해서 내보낼 텐데 팀 나누기에 시간을 이렇게 낭비하다니 효율적이지 못한 프로그램이었다.
“안녕하세여! 기태랑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순간 48위 기태랑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예찬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아직 방에 11명밖에 안 들어왔는데……?’
“태랑아, 네가 마지막 아니야?”
심상록도 예찬과 마찬가지로 이상함을 느꼈는지 목소리에 의아함이 묻어 있었다.
“네? 어, 그럴걸여?”
기태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아 있는 멤버들의 수를 세었다.
“일곱, 여덟, 아홉, 열…… 어? 둘이나 부족한데여?”
손가락까지 접어 가며 열심히 헤아리던 기태랑이 깜짝 놀라자 심상록이 따스하게 웃었다.
“하나는 너야, 태랑아.”
“아.”
“커흥.”
벙찐 기태랑의 얼굴을 정면에서 마주친 남지유가 아이돌답지 못한 소리를 내며 코를 먹었지만 다들 모른 척해 주었다.
“태랑이까지 열 한 명이어도 한 명 부족한데?”
곤란한 얼굴로 심상록이 예찬을 돌아봤지만 예찬도 딱히 해 줄 말이 없었다.
그때 문 너머에서 누군가 노크했다.
똑똑똑.
순식간에 조용해진 연습생들의 시선이 모두 문으로 향했다. 예찬은 어쩐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이윽고 문 뒤의 사람이 들어오는 순간 예감은 단번에 현실이 되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예찬은 정말로 생각한 것을 말로 뱉을 뻔했다.
“휘겸아!”
자리에서 일어나 있던 심상록이 방 안으로 들어온 우휘겸을 반갑게 맞이했다.
예찬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또 너냐…….’
“그런데 휘겸이 너 6위 아니었나? 먼저 뽑았을 텐데 왜 지금 들어와?”
“아, 중간에 일이 좀 있어서…… 마지막 남은 방으로 들어왔어요.”
남지유가 궁금하다는 듯 묻자 우휘겸이 대답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으면 이렇게 되는데?’
우휘겸의 순위가 지나가서 내심 안도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예찬을 음해하고자 하는 게 아니면 이럴 수는 없었다.
예찬은 빠르게 우휘겸을 집어넣어서 조를 다시 나눠 보았다.
‘우휘겸이 남지유보다 순위가 위니까…… 나랑 같은 조라고?’
예찬의 머리가 차가워졌다.
지금까지 생각해 둔 플랜이 다 날아간 건 아무래도 좋았다.
문제는 예찬의 무대에 자꾸 우휘겸이 붙는 것이었다.
예찬의 츄마프 시절 무대를 재탕하고 싶어도 우모 씨 때문에 기분이 잡쳐서 할 수가 없다며 한탄하는 팬들의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사이 천장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MC 앤드류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후보생 여러분, 여러분과 같은 선택을 한 열한 명의 후보생들은 잘 만나 보셨나요? 그럼 지금부터 여러분이 준비해야 할 곡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저기, 뒤쪽 스크린을 봐 주세요.”
문 앞에 의자를 옮겨서 앉아 있던 탓에 안쪽에 있는 스크린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화면이 나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연습생들에게 스태프가 작게 지시했다.
연습생들이 몸을 틀어서 앉자 마침 1조의 곡이 공개되었다.
[1번 방 곡은 헤븐의 ‘바라보다’입니다.]몇몇 연습생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헤븐하면 가창력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보컬 멤버들에게도 부담이 되는 모양이었다.
힐끗 연습생들을 곁눈질한 예찬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 이어질 발표를 기다렸다.
이제 예찬이 기다리던 이름이 나올 차례였다.
‘그래, 2번 방은 스페이스의…….’
[2번 방은 리스피릿의 ‘Don’t bother’입니다.]“……뭐?”
넌 또 왜 거기서 나와?
예찬은 츄즈 마이 프린스 99 촬영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생각한 것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 * *
Don’t bother.
리스피릿의 정규 2집 리패키지의 타이틀곡으로 드물게 예찬이 작사, 작곡에 참여하지 않은 곡이었다.
이전까지 리스피릿의 노래들과 전혀 다른 분위기라 발매 당시 팬덤 내에서는 호불호가 갈렸었으나 파워풀한 랩으로 대중적으로 꽤 괜찮은 반응을 얻었던 노래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예찬에게도 무척 의미 있고 그리운 곡이었다.
‘근데 여기서 만나선 안 되는데.’
잘못된 만남에 예찬의 머릿속이 복잡한 것과 관계없이 촬영은 계속 이어졌다.
[3번 방이 부를 노래는 스트로베리럽의 ‘소녀의 기도’입니다!]“앤드류 집사님, 스베럽 팬인가? 뭔가 지금까지 들어 본 목소리 중 제일 신난 거 같지 않아?”
“그런가요?”
“듣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옆에서 진지하게 속닥거리는 남지유와 연습생들의 말에 웃을 기운도 없었다.
[4번 방의 곡은 유피테르의 ‘Last Circus’입니다.]마지막 방까지 곡명이 발표되었다.
나머지 세 곡은 예찬의 기억과 일치했다.
그렇다면 이 변화는 어째서 일어났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리셋 이후 지긋지긋할 정도로 찾아본 정찬양의 낯짝이었다.
츄마프가 과거와 달리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정찬양이 관심을 가지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참가자 명단에 예찬의 이름이 떡하니 올라가 있는 걸 확인했다면 어떻게든 어깃장을 놓고 싶어졌으리라.
예찬은 애써 주먹을 꽉 쥐었다. 속이 끓어올랐지만 이 이상 지금 일어난 변화와 정찬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이미 벌어진 일을 곱씹을 시간에 대책을 세우는 게 최우선이었다.
‘생각한다고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야 할 일은 최고의 무대를 만드는 거지.’
예찬은 생각을 가다듬었다.
몇 번이고 무대에 섰던 익숙한 곡이니 오히려 좋았다.
강렬한 노래인 만큼 랩만 커버한다면 오히려 눈에 띌 가능성이 높았다.
마음을 다잡은 예찬은 우휘겸을 포함해 자신과 한 조가 될 연습생들의 얼굴을 다시 살폈다.
‘우휘겸이랑 남지유, 배새벽…… 잠깐만.’
같은 조에 래퍼가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