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92)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92화
어둠 속에서 강해솔과 배새벽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뭐 하는 거지?’
함부로 대열을 흩트릴 수 없던 예찬은 눈을 가늘게 뜨고 꿈틀대는 두 사람의 인영을 쫓았다.
이어 ‘KEEP YOUR CHIN UP’의 전주가 흐르고, 무대의 조명이 켜지고 나서야 예찬은 두 사람이 무얼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Hey.]‘머리 뭔데.’
정확히 말하자면 신나게 첫 소절을 부르기 시작한 강해솔을 보면 알 수밖에 없었다.
강해솔은 첫 번째 곡에서 시원하게 날려 보냈던 고글을 머리에 다시 썼는데, 정말 말 그대로 쓰기만 했다.
뭘 어떻게 한 건지 고글을 중심으로 머리카락들이 각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스타일리스트들의 비명이 환청처럼 귓가에 메아리쳤다.
“흐읍……!”
예찬은 재빨리 입술을 앙다물었다.
‘웃으면 안 된다. 참아야 한다. 웃으면 안 된다. 참아야…… 큭!’
저항 없이 튀어나오려던 웃음을 간신히 참아 낸 예찬에게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아마도 강해솔의 머리를 저렇게 만든 장본인일 배새벽이 이번 위기를 가져온 주인공이었다.
‘진짜 미치겠네…….’
배새벽은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안무를 소화하면서 단 한 순간도 시선을 강해솔의 머리에서 떼지 않고 있었다.
커다란 눈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가끔은 참기 힘든 것처럼 손을 강해솔 쪽을 향해 움찔거리기도 했다.
예찬은 두 사람이 같은 시야에 담겼을 때는 잠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배새벽 게걸음 뭔데…….’
대열을 살짝 벗어나 강해솔에게 다가가던 배새벽의 시도가 실패로 끝나고, 예찬은 모두를 위해 이 이상 강해솔의 중력을 거스른 머리를 방치하면 안 되겠다 결심했다.
타이밍 좋게 마침 우휘겸을 제외하고 옆으로 한 걸음 뛰어서 바닥에 앉는 안무 차례였다.
예찬은 평소보다 보폭을 크게 잡고 옆으로 뛰었다.
‘됐다!’
죽을힘을 다해 손을 뻗으면 강해솔의 고글에 닿을 거리였다.
잠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우휘겸과 객석을 빠르게 훑은 예찬은 재빨리 손을 뻗었다.
계산대로 손가락 끝에 고글 끈이 걸렸다.
‘좋아, 이대로 당기면…… 헙.’
따악!
분명 음악에 묻혀 들릴 리 없을 텐데, 어째서인지 고무줄 튕기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머릿속으로 돌려 본 시뮬레이션과 달리 강해솔의 고글은 깔끔하게 벗겨지지 않았다.
제멋대로 미끄러지듯 벗겨진 고글에 강해솔은 무방비하게 이마를 내주었다.
“……?”
졸지에 고무줄로 얻어맞은 강해솔이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예찬을 돌아보았다.
예찬은 아직도 고무줄이 튕기는 감각이 선연한 손을 내려다보았다.
고글과 함께 강해솔의 머리카락들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거 지금 뽑힌 거지?’
고글 끈에 엉망으로 닿아 있던 것들이 같이 딸려 온 모양이었다.
“…….”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자 여전히 두 눈을 부릅뜬 강해솔이 보였다.
‘그래도 머리는 수습했…… 음.’
예찬은 싱긋 웃고 오리걸음으로 조용히 강해솔에게 다가가 수습되지 않은 머리 위로 자신의 모자를 씌워 주었다.
* * *
HBS 가요제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마지막 순서는 여느 때와 같이 전 출연진이 무대에 올라 부르는 단체 곡이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레굴루스는 레드 카펫에서 입었던 루돌프 옷과 산타복 차림으로 라이브를 켰다.
[이클립틱,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이브 잘 보냈어요?] [오늘 무대 어땠어요?] [루돌프 옷 귀엽지 않아요?]채팅으로 팬들이 질문을 쏟아 내기도 전에 멤버들이 한발 먼저 팬들을 향해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한참을 예쁘다 잘했다 칭찬받은 멤버들은 뿌듯함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입을 모아 루돌프 송을 부른 뒤 방송을 종료했다.
[오늘도 재밌게 무대 할게요!] [복숭아들 굿나잇!] [메리 크리스마스! 이따 또 만나요!]멤버들의 라이브는 자정을 조금 넘기고 끝났지만, 찾아봐야 할 컨텐츠들이 쌓인 팬들은 깊은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예찬론의 홈마 박모 씨 또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가요제 본 영상 복습한 다음 대기석 직캠 보고 콜라보 무대 직캠, 애들 무대 직캠, 아! 레드 카펫 영상이랑 사진들도 주워야 하는데…….’
거기에 급하게 프리뷰만 올렸던 사진도 한두 장 정도는 제대로 보정해서 업로드 해 주고 싶었다.
‘우리 애들 화력이 이렇게 대단하다! 하고 보여 주고 싶단 말이지. ……음, 내가 딱히 거들지 않아도 이미 어마어마하긴 하다만.’
레굴루스의 이름만 검색창에 입력했을 뿐인데 끝도 없이 쏟아지고 있는 자료들을 보니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박모 씨는 뿌듯한 얼굴로 1분 전에 새로 올라온 레굴루스 투닥 콤비의 대기석 영상을 클릭했다.
레굴루스의 스페셜 앨범 수록곡이 배경음으로 흘러나왔다.
화면 속에선 이야기를 주고받던 예찬과 채은성의 모습이 점차 줌인 되었다.
눈을 흘기는 예찬의 머리를 채은성이 무대 쪽으로 살그머니 돌려놓는 것을 본 박모 씨는 주먹을 꽉 쥐었다.
‘대기석에서 무슨 얘기하는지 찍어서 올리는 법이 생겨야 한다, 진짜…….’
영상을 본 팬들도 다들 같은 마음인지 댓글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 7:23 은성이 쑥스럼 타는 듯
– 뭔데…… 왜 니네끼리만 아는데…… 나도 같이 좀 알려 줘……
– 은성이 진짜 살짝 민 거 같은데 예찬이 머리 저항 없이 돌아가는 거 왜일케 중독성있냐ㅋㅋㅋㅋ
– 근데 그거 알아요? 귀여운 사람을 보면 기억을 잃는대요. 근데 그거 알아요? 귀여운 사람을 보면 기억을 잃는대요……
열혈 팬에 빙의해 다른 멤버를 응원하는 모습과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떠나는 멤버를 배웅하는 모습.
그리고 무대를 마치고 돌아온 멤버를 반기는 모습을 담은 영상들도 색다른 재미를 주었다.
‘그렇지만 역시 백미는 단체 무대지.’
품이 넉넉한 흰 스키복이 누구 하나 빠지는 사람 없이 어쩜 그렇게 다들 잘 어울리는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잠시 잊고 있던 떡밥이 머릿속을 스쳤다.
‘미친, 이걸 까먹고 있었다니!’
박모 씨의 손가락이 미친 듯이 키보드 위를 유영했다.
[HBS, 가요전쟁, 레굴루스, 머리, 순서]적당히 그럴듯한 키워드를 아이튜브 검색창에 집어넣자 원하던 정보가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왔다.
[HBS 가요전쟁 레굴루스 머리 바꾸기 순서 정리]꽤 멀리서 찍었는지 다소 투박한 화질의 썸네일이 눈에 들어왔다.
박모 씨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손 빠른 사람들이 정리해 놨을 줄 알았다니까.’
제목을 클릭하자 현장의 소란스러움이 그대로 느껴지는 날것의 영상이 재생되었다.
* * *
비슷한 시각, 예찬 또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같은 영상을 보고 있었다.
‘대체 어쩌다 다들 머리가 엉망이 된 건데…….’
무대를 마치고 돌아온 멤버들을 바라보던 스타일리스트의 눈빛이 아직도 잊히질 않았다.
‘완전 철딱서니 없는 세 살배기 조카를 보는 것 같은 눈이었지.’
차라리 혼을 냈다면 이렇게 기억에 남진 않았을 텐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은 예찬은 화면에 집중했다.
영상은 커버 곡이 끝나 갈 무렵, 강해솔의 고글이 날아가고 그걸 배새벽이 발끝으로 받아 내는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다시 봐도 진기명기인데?’
예찬이 새삼 배새벽의 운동 신경에 감탄하는 사이, 어둠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강해솔과 배새벽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후보정을 했는지 대충 뭘 하고 있는지 알아볼 만했다.
‘저걸 저렇게 하면 안 될 텐데. 거기는 그렇게…… 아아…….’
결과를 알고 있어서 그런지 배새벽의 손놀림을 보는 예찬의 입에서 절로 탄식이 쏟아졌다.
아니나 다를까 조명이 켜지자 자유분방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강해솔의 머리카락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화면을 끄고 싶은 충동을 꾹 참아 낸 예찬은 그 대신 눈을 가늘게 떴다.
자연스럽게 코믹한 배경음이 깔리고, 자꾸만 강해솔에게 시선을 뺏기는 멤버들의 모습이 화면을 번갈아 가며 채웠다.
“하…….”
웃음을 참느라 바들거리는 자신의 얼굴을 객관적으로 마주하게 된 예찬은 침음을 흘렸다.
수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강해솔의 고글을 벗긴 예찬이 앉은 채로 꿈틀꿈틀 다가가 어색하게 웃으며 모자를 씌웠다.
모자를 벗으며 흐트러진 예찬은 제 코가 석 자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태였다.
‘……저런 꼴이라 채은성이 참견한 거였군.’
이어 기억하는 대로 살금살금 다가온 채은성이 자기가 쓰고 있던 털모자를 예찬의 머리에 씌웠다.
그다음은 엉망이 된 채은성에게 선우이경이 다가오고, 그런 선우이경에겐 우휘겸이, 또 우휘겸에겐 정의탁이…….
결국 머리에 뭘 쓰거나 얹고 있던 멤버들은 전원 마지막엔 처음과 다른 무언가를 단 채로 무대에 서 있었다.
– 얘네들 모자 돌려 쓰기 챌린지라도 한 거냐?
추천을 잔뜩 받은 댓글이 그럴듯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 유피테르 황시우 선배님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찬이 새로이 적립한 흑역사에 잠시 애도를 표하는 사이, 남을 놀릴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는 하이에나 같은 선배가 단체 메신저방에 점화를 했다.
– 유피테르 황시우 선배님 : (사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디서 구했는지 예찬에게 고글을 뺏기고 나라 잃은 얼굴을 한 강해솔의 고화질 사진을 올린 황시우는 별다른 말 없이 웃기만 했다.
– 해솔이 형 : 선배님 안 주무십니까……
– 유피테르 황시우 선배님 : (사진) 너무 웃어서 잠이 깨 버렸어 책임져라 레굴루스
이번엔 쭈그려 앉아서 걷고 있는 예찬의 사진이었다.
“…….”
“쯧.”
강해솔의 침대가 있는 방향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신호가 된 것처럼 메시지 옆에 읽음 표시가 빠른 속도로 붙었다.
– 레굴루스 채은성 : 와 하예찬ㅋㅋㅋㅋㅋㅋ 와ㅋㅋㅋㅋㅋㅋㅋ
– 유피테르 이가원 선배님 : 오늘 무대 재미있었어요ㅋㅋ 혹시 모자 바꿔 쓰는 거 진짜 퍼포먼스였던 건 아니죠?
– 유피테르 황시우 선배님 : (사진) 이 표정을 보고도 그 말이 나오심?
– 레굴루스 채은성 : 아 선배님!!ㅠㅠㅠㅠㅠㅠ
기다렸다는 듯 봉두난발이 된 채은성의 사진이 올라왔다.
‘아주 날을 잡았군.’
잠시 단체방 화면을 끈 예찬은 기억을 더듬으며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시도했다.
그 짧은 사이에도 단체 메신저 방의 알림이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다.
원하던 사진을 찾은 예찬은 유유히 메신저 앱을 다시 켰다.
– 유피테르 황시우 선배님 : (사진) 새벽이는 자나?
여전히 레굴루스의 사진을 보내며 희희낙락하고 있는 황시우를 위해 예찬도 준비해 온 사진을 보냈다.
– 나 : (사진)
– 유피테르 황시우 선배님 : ……이게 왜 여기서 나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물에 흠뻑 젖은 사진 속 황시우는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땡그랗게 뜨고 있었다.
무대 장치가 발동하는 타이밍을 놓친 자의 말로였다.
흑역사 대결이라니, 내년이면 데뷔 10주년을 맞이하는 유피테르가 무조건 지는 싸움 아니겠는가.
추억을 발굴해 준 친절한 예찬을 향해 유피테르 멤버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 유피테르 이가원 선배님 : 와
– 유피테르 강연록 선배님 : 와
– 유피테르 주태현 선배님 : 와
– 나 : 선배님 존경합니다^^
그리고 건너편 침대에선 박수 소리가 들렸다.
빼꼼 고개를 내밀자 이쪽을 보고 있던 정의탁이 기다렸다는 듯 진중한 얼굴로 엄지를 내밀었다.
“예찬이 형, 나이스샷.”
근처 침대들에서도 정의탁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즐거운 기색이 역력한 박수들이 터져 나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