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96)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96화
예찬은 고개를 끄덕인 찬양의 어깨를 무척이나 기쁜 얼굴로 감싸 안았다.
“야. 형님 좀 쑥스럽다.”
“형님은 무슨! 우리 동갑이거든?”
“생일도 같고 말이지?”
언제나 반복하던 레퍼토리에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하경이 웃으며 다가왔다.
“이건 진짜 언제 한번 태어난 시간까지 따져 봐야 돼.”
“내가 할 말이거든?”
그때 찬양의 어깨에 또 다른 손길이 느껴졌다.
“찬…….”
“……!”
어떤 전조도 없이 꿈에서 현실로 끌려 나온 정찬양은 저도 모르게 어깨 위의 손을 쳐 냈다.
“아, 미안. 놀랐어? 쉬는 시간 끝나서…….”
박마루가 빨갛게 달아오른 손등을 감싸며 사과했다.
그제야 정찬양은 자신이 잠깐 선잠이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내가 미안해. 너무 깊이 잠들었나 봐. 손은 괜찮아?”
“어? 어어, 괜찮아.”
정찬양이 고개를 저으며 사과하자 박마루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요즘 사이가 워낙 삐걱거리다 보니 이렇게 흔쾌히 대답할 거라고 예상치 못한 모양이었다.
정찬양은 그런 박마루를 내버려 둔 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럼 다행이고. 다시 연습 시작하자.”
“음…… 그런데 너 요새 너무 안 자는 거 아니야? 안색이 정말 안 좋은데.”
정찬양의 부드러운 태도에 용기가 났는지 간만에 박마루가 사적인 대화를 걸어왔다.
“…….”
박마루의 말대로 정찬양은 근 열흘간 제대로 잠을 청한 적이 없었다.
이유는 별것 아니었다.
잠이 들면 꿈을 꾸니까.
버티고 버티다 정말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순간에만 잠깐씩 눈을 붙이는 날들이 이어지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렇지만 정찬양이 하루 종일 잠을 자든, 일주일간 밤을 새우든 박마루가 참견할 일은 아니었다.
정찬양은 짜증을 감추지 않은 얼굴로 여전히 머뭇거리는 박마루를 돌아보았다.
“내가 잠 좀 안 잤다고 팀에 피해 끼친 적 있어?”
“뭐? 아니,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
공격적인 어투에 박마루가 황급히 손을 내저었으나 정찬양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다시 고개를 돌렸다.
“리스피릿이랑 관계없는 얘기면 더 들을 필요가 없겠네.”
“……너, 진짜.”
꼿꼿하게 세운 정찬양의 등을 바라보며 박마루는 주먹을 꾹 쥐었다.
* * *
어떻게든 데이터를 복구해 보기로 정했으니 일단 데스크톱 본체를 되찾아야 했다.
잠깐 통화 좀 하고 들어간다는 핑계로 엘리베이터에 강해솔과 생수병을 실어 올려 보낸 예찬은 곧바로 PiPiPi의 번호를 찾았다.
늦은 시간이었으나 통화 버튼을 누르는 손에 망설임은 없었다.
‘저지른 짓이 있는데 이 정도 무례는 감수해야지.’
게다가 피대기의 과오와 생판 관계없는 일로 연락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예찬 씨?]아직 일어나 있었는지 피대기는 곧장 전화를 받았다.
“아까 가져간 본체 어디다 버렸어요? 다시 필요해져서요.”
예찬은 PiPiPi가 항상 하는 것처럼 당당히 용건만 내던졌다.
[어…… 작업실 본체요?]전화 너머의 목소리가 애매하게 늘어졌다.
예찬의 목소리가 대번에 날카로워졌다.
세상에 아무리 믿을 놈 하나 없다지만…….
“……작곡가님, 설마 파신 건 아니죠?”
[네? 팔아요? 뭘요? 본체를요? 제가요?]예찬은 사람의 목소리에도 펄떡펄떡 뛴다는 표현을 붙일 수 있겠단 생각을 하며 일부러 더 싸늘하게 대꾸했다.
“너무 당황하시는 거 보니까 수상한데요.”
[진짜 아닙니다!]‘뭐, 그렇겠지.’
PiPiPi가 아무리 개념이 없다고 한들, 지금 저지른 짓만으로도 죄가 무거운데 굳이 재판장에서 만날 일을 또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면 어디다 버리셨는데요. 당장 주우러 가야 하니 빨리 알려 주세요.”
손목시계를 확인한 예찬이 피대기를 재촉했다.
‘그 무거운 걸 지고 다니진 않았을 테니 회사 근처에 버렸겠지? 일단 회사로 택시를 부를까?’
겉보기엔 멀쩡하니 누군가 부품이라도 쓰려고 주워 갈지도 모를 일 아닌가.
1분 1초가 급했다.
‘이미 주워 갔으면 어떡하지? CCTV…… 아니면 전단을 붙일까? 돌려주면 사례를 준다고 해서…….’
택시 앱을 실행하던 예찬의 손을 멈춘 것은 피대기의 고백이었다.
[그…… 우리 집에 있습니다.]“……어디요?”
[집이요. 내 집.]예찬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자기가 버려 주겠다고 부득불 우긴 데스크톱 본체를 자기 집에 가져갔다는 말인데…….
예찬이 마침내 도출한 결론을 입에 담았다.
“……진짜 팔아먹으려고 했어요?”
[아닙니다!]지금까지 중 제일 크게 소리친 PiPiPi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지 말을 쏟아 냈다.
[진짜 사람을 뭘로 보는 겁니까! 내가 진짜 너무 미안해서 따로 사람을 알아봐서 한번 고쳐 보려고 했어요! 강해솔 씨가 신경 쓸까 봐 말은 안 한 거고! 지금도 수리 업체를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거, 나도 염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하예찬 씨! 예?!]눈만 깜빡이며 PiPiPi의 말을 듣고 있던 예찬의 눈동자에 빛이 깃들었다.
‘피대기와 염치라.’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으나 본인이 그렇다면 그런 걸로 해도 좋겠지.
‘그보다 이거 나름 괜찮게 돌아가는데?’
숙소도 회사도 멤버들과 공유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본체를 되찾아 오더라도 강해솔의 눈에 띄지 않게 두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적어도 완벽하게 데이터를 복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진 해솔이 형한테 괜한 희망 고문을 하고 싶지 않으니.’
이건 마침 적당히 전화로 데스크톱이 뭐 하고 있는지 안부도 물을 수 있는 창고가 생긴 셈 아닌가.
예찬은 기꺼운 마음으로 한동안 본체를 PiPiPi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저도 해솔이 형한테는 말 안 하고 좀 더 찾아볼 생각이었거든요. 힘내죠, 작곡가님.”
[어, 네? 네, 그, 그럽시다, 하예찬 씨.]예찬의 빠른 태세 전환에 씩씩 숨을 몰아쉬던 PiPiPi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동의를 표했다.
“언제까지가 될진 모르겠지만 잘 보관해 주세요. 그럼 이만.”
깔끔하게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예찬은 휙 하고 슬쩍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셔터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그러나 곳곳에 설치된 조명 외엔 어둠이 내려앉은 아파트 단지는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잠시 그 자리에 선 채로 주변을 둘러본 예찬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찜찜한데.’
사생일지, 기자일지, 아니면 예찬의 착각일지 모를 일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느 쪽이든 조심해서 나쁠 일은 없단 것이었다.
숙소로 들어간 예찬은 멤버들을 모아 방금 들었던 카메라 셔터음에 대해 말했다.
과자 파티를 벌이며 희희낙락하고 있던 멤버들의 얼굴에 곧바로 그늘이 졌다.
“다른 일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맞아요. 앞으로 혼자 다니지 말아요, 예찬이 형.”
“회사엔 내일 말하는 게 나으려나?”
“와, 여기 그래도 보안이 진짜 괜찮은 곳인데…….”
제각기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와중에 가장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 주인공은 바로 신준일 PD였다.
“……PD님, 왜 그렇게 파랗게 질리셨어요.”
“전 여러분이 더 이해가 안 갑니다. 어떻게 다들 이렇게 태연할 수 있죠? 스토커라니, 무섭잖아요! 집까지 따라오다니, 끔찍하다고요!”
‘……뭐지? 이 업계 하루 이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예찬 말고 다른 멤버들도 비슷한 생각인지 신 PD를 보는 눈이 묘하게 떨떠름했다.
“회사에 뭘 내일 알려요! 당장 전화해요, 당장!”
“네, 네, PD님.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얼른 방에 들어가서 쉴까요?”
“이런 날 혼자서는 못 잡니다!”
“어이구, 우리 PD님. 빨리 주무시고 싶다고요? 얼른 눕혀드려야겠네. 제가 오늘은 특별 서비스로 이불도 펴 드릴게요. 감동이죠?”
“예찬 씨! ……아니지, 새벽 씨, 아니면 은성 씨! 오늘 제 방에서 같이 잡시다!”
신 PD는 예찬을 부르다 말고 급하게 팀에서 제일 힘이 센 두 사람으로 갈아탔다.
신 PD의 등을 떠밀던 선우이경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옆에서 웃거나 말거나 신 PD는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아니면 이경 씨! 오늘만 이경 씨 방에서 재워 주세요!”
“네에, 거절하겠습니다~”
방싯방싯 웃으며 신 PD를 작은 방으로 밀어 넣는 선우이경을 잠시 구경하던 멤버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곧 큰 방으로 우르르 들어가 문을 잠갔다.
* * *
신 PD가 왜 그렇게 공포에 질려 있었는지 멤버들이 알게 된 것은 다음 날이었다.
“아, 그거. 신 PD님이 얼마 전에 호되게 당하셔서 그럴 거예요.”
얼마 전 레굴루스 아이튜브 팀에 합류한 츄마프 메인 작가였던 신서우 작가가 피식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레굴루스 컨텐츠 찍으면서 가끔 얼굴이 잡혔잖아요. 그래서 스토커가 붙었더라고요.”
“네? PD님께요?”
멤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다니까요.”
저런 모지리 아저씨한테 대체 왜 그런 일이 생긴 건지 정말 놀랍다며 신 작가는 혀를 찼다.
예찬은 그런 신 작가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신준일 PD와 친인척 관계라더니…….’
확실히 PD를 대하는 말이며 행동이 차갑기 그지없었다.
신 작가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N-net 쪽으로 팬레터나 보내는 것뿐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일하고 있는데 불쑥불쑥 튀어나왔나 봐요. 나이는 내 또래 정도 같았고. 뭐, 그때부터 좀 무서워하긴 했는데, 얼마 전엔 미용실에 있는데 꽃다발을 들고 찾아갔다더라고요.”
신 작가가 생각하기에도 그건 선을 넘었는지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모나 어워즈 출국하기 며칠 전이었나? 아무튼 어떻게 시간 맞춰서 찾아온 건지도 소름 돋고, 머리를 하고 있으니까 도망치지도 못하고. 딱 기절하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어우…… 그거 무서운데요?”
정의탁이 소름이 오소소 돋아난 자신의 팔을 마구마구 문질렀다.
생각보다 심각한 이야기에 예찬의 미간도 구겨졌다.
신 작가는 지금은 경찰에 신고를 해서 정리된 상태니 걱정하지 말라며 멤버들을 안심시켰다.
“아무튼 그래서 좀 예민해졌나 봐요.”
“그건 그러실 만한 거 같아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PD님도 엄청난 일이 있으셨구나…….”
멤버들의 감탄에 신 작가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츄마프 때도 합숙 장소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잖았어요.”
“앗, 정말요?”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멤버들이 관심을 보였다.
예찬은 위험한 줄도 모르고 새벽에 홀로 숙소 주변을 달리던 정의탁의 옆구리를 한 번 찔렀다.
“그럼요. 근데 그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더니 막상 자기가 타깃이 되니까 무서운가 봐요. 뭐, 그 나이에 역지사지를 배웠으니 다행이네요.”
곰곰이 작가의 말을 듣고 있던 심상록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도 이해는 가요. 이번엔 꽃다발이었지만 충분히 다른 걸 들고 나타날 수도 있다는 거잖아요.”
“전기 충격기나 칼 같은 거?”
“그렇지,”
칼이라.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지금까지 칼 들고 쫓아온 극성팬은 없었는데.’
선우이경의 입에서 나온 칼이란 단어가 이상할 정도로 신경에 거슬렸지만,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