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97)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97화
숙소로 돌아온 이후에도 찜찜한 기분이 영 가시질 않았다.
‘다시 생각해도 칼과 관련된 안 좋은 기억은 없었단 말이지.’
가끔 주변에서 흉흉한 소식들을 접하긴 했으나, 다행히 예찬이나 리스피릿 멤버들은 무서운 일을 직접 당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공포심을 자극당한 것이라 생각하기엔 너무 구체적인 단어들이 거슬렸다.
‘스토커, 합숙, 그리고 칼이라…….’
예찬이 침대에 누운 채 고민하는 사이 머리를 말린 심상록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신 PD님이 다음 주쯤에 다시 방 정하기 하자고 하시네.”
발뒤꿈치를 들고 조심조심 들어오던 심상록은 아직 예찬과 멤버들이 깨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말을 건네 왔다.
“앗, 그러고 보니 처음에 들어올 때 정한 채로 올해가 다 가 버렸네요.”
“처음엔 진짜 갑갑했는데 이젠 완전히 적응됐지?”
“맞아. 호텔 같은 데서 자면 숨소리가 너무 안 나서 이상해.”
“신 PD님, 혼자 주무시기 싫으셔서 방 바꾸려는 거 아니야?”
“내 생각에도 그래.”
흥미로운 주제에 멤버들이 하나둘 말을 얹었다.
말을 꺼낸 심상록도 차마 부정할 수가 없었는지 한참이나 멋쩍은 듯 웃다가 뒤늦게 신 PD를 옹호했다.
“크흠, 내년부터는 자체 예능도 업로드하면서 좀 더 공격적으로 아이튜브를 키워 보실 생각인가 봐.”
“겸사겸사 룸메이트도 만들고 말이죠.”
“으으음…….”
침음성을 흘린 심상록은 또다시 웃음으로 상황을 얼버무렸다.
“이제 다들 잡시다. 너무 늦었어요.”
시계를 확인한 예찬이 말했다.
잠시 눈을 붙이고 나면 다음 날 있을 CBC 연말 가요제 준비를 위해 또 연습하러 나가야 했다.
“와, 시간 언제 이렇게 됐지?”
“아침에 만나요!”
이미 꿈나라에 빠진 지 오래인 범세혁과 배새벽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도 재빨리 자세를 바로 했다.
불을 끈 심상록이 침대 위로 올라갈 때까지 플래시를 비춰 준 예찬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정말로 한 해가 끝나 가는군…… 퀘스트.’
속으로 퀘스트를 불러내고 천천히 눈을 뜨자 어둠 속에서 홀로그램 창이 요요히 빛나고 있었다.
[메인 퀘스트 발생!>― 신인상을 수상하세요!
(진행 상태 5/5, 남은 기간 1일)
[연계 퀘스트 발생!>― 음원 사이트에 일간 순위 1위로 진입하세요!
(진행 상태 15/15, 남은 기간 1일)
― 음악 방송에서 1위를 수상하세요!
(진행 상태 15/15, 남은 기간 1일)
[연계 퀘스트 발생!>― 음반 총판매량을 목표치만큼 달성하세요!
(진행 상태 3,000,000/3,000,000, 남은 기간 1일)
[연계 퀘스트 발생!>― 음반 초동 판매량을 목표치만큼 달성하세요!
(진행 상태 1,500,000/1,500,000, 남은 기간 1일)
예찬은 오래간만에 불러낸 퀘스트 창을 천천히 쭉 읽어 나갔다.
조건을 전부 달성했을 때도 확인했지만, 남은 기간을 전부 채워야 퀘스트가 끝나는 건지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드디어 끝인가.’
이다음에 또 어떤 퀘스트가 주어질지 걱정되긴 했으나, 이전보다 홀로그램 창에 대한 경계는 확연히 낮아진 상태였다.
‘츄마프 때와 다르게 이상한 선택지를 들이미는 일도 없고, 퀘스트도 목표 수치가 너무 높아서 그렇지 어차피 아이돌이 추구해야 할 일들이었으니.’
결과가 좋으면 결국 뭐든지 좋아지지 않는가.
덕분에 반년 만에 앨범을 석 장이나 내는 기염을 토하고야 말았지만 말이다.
‘……역시 내년엔 좀 더 퀘스트 목표가 상식에 부합하면 좋겠군.’
누가 신인에게 반년 만에 앨범 3백만 장을 팔라고 미션을 낸단 말인가.
한숨을 내쉰 예찬은 홀로그램 창을 치우고 눈을 꾹 감았다.
* * *
“늦어!”
콜라보 무대 준비를 위해, 선배님 회사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무섭게 업계 대선배의 호통이 어깨에 내려앉았다.
예찬의 뒤에 서 있던 가온다의 윤지우는 화들짝 놀랐지만 정작 그 노호에 정면으로 노출된 예찬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한 예찬이 뚱하게 대꾸했다.
“아직 15분이나 남았는데요?”
“어허! 하늘 같은 선배님과 같이 연습하는데 한 시간은 먼저 나와 있어야지!”
업계 대선배인 유피테르의 황시우 또한 예찬의 뚱한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층 더 헛소리에 박차를 가했다.
“……꼰대.”
“꼬우면 먼저 데뷔하든가!”
주책맞게 킬킬대는 황시우를 멈춘 것은 같은 유피테르의 멤버이자, 예찬을 비롯한 후배 아이돌들과 함께 콜라보 무대에 서는 이가원이었다.
“황시우, 왜 여기 와 있어.”
“왜긴. 후배들 온다고 하니까 맞아 주러 온 거지.”
“……필요 없으니까 나가시죠.”
“하예찬, 끝나고 전화해라!”
이가원에게 등을 떠밀려 쫓겨나면서도 황시우는 명랑함을 잃지 않았다.
연습실 문까지 걸어 잠근 이가원이 산뜻한 얼굴로 후배들을 돌아보았다.
“미안해요, 잠깐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다들 일찍 왔네요.”
그제야 예찬은 옆에 서 있는 윤지우 못지않게 바짝 얼어붙은 신인 아이돌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로 어느 정도 알 거 같긴 한데, 그래도 소개 먼저 하고 시작할까요? 청팀 보컬 대표를 맡은 유피테르 이가원입니다. 같이 좋은 무대 만들어 봐요.”
CBC 연말 가요제는 청팀과 홍팀으로 나뉘어 대결 구도로 진행되었다.
레굴루스가 속한 팀은 청팀.
그리고 다행히도 꼴 보기 싫은 리스피릿은 홍팀이었다.
‘홍팀 보컬 대표는 정찬양이던데. 만약 레굴루스가 홍팀이었으면 거기서 선배님, 선배님하고 있었겠지? ……끔찍하군.’
예찬이 섬뜩한 상상을 하는 사이, 이가원의 인사로 조금 누그러진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데뷔한 순서대로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트럼프의 하트입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버블리 체리예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어의 베벨입니다.”
“다이아몬드 조유리예요. 선배님들, 후배님들께 많이 배우겠습니다!”
대표인 이가원을 제외하면 데뷔한 지 몇 년 안 되는 신인들만 모았다 보니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얼굴들이었다.
그중 버블리의 체리와 다이아몬드의 조유리는 수요 아이돌 메보 특집에서 이미 한 차례 만난 적이 있었다.
‘남녀 혼성 콜라보라니. 나야 조심하겠지만 다른 놈들은…… 뭐, 알아서 처신하겠지.’
지난 일 년간 멤버들에 대한 믿음이 어느 정도 두터워진 예찬은 사서 걱정하는 걸 멈추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레굴루스 하예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가온다의 윤지우입니다! 가장 후배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예찬의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한 윤지우가 허리를 연신 굽혔다.
각 그룹의 메인 보컬들만 모아 놓은 풍경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이가원이 배부른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오늘 연습부터 내일 공연까지 같이 힘내 봅시다.”
“네, 선배님!”
의욕이 활활 타오르는 연습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불길이 사그라드는 데는 한나절이 채 걸리지 않았다.
“좋아요, 그럼 영상 한번 볼까요?”
연습이 시작된 지 약 일곱 시간 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말끔한 얼굴로 이가원이 후배들을 돌아보았다.
그 말이 신호가 되어 다리가 풀린 아이돌들이 풀썩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이가원과 더불어 이 연습실 내에서 멀쩡한 얼굴을 한 예찬은 물병을 들어 올렸다.
그사이 벽 한쪽을 차지한 스크린에선 방금 찍은 연습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아이돌들의 긴장된 시선이 이가원을 향했다.
“음, 역시 한 번 더 맞춰 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
이가원의 혼잣말에 연습실 안은 순식간에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었다.
‘진짜 남의 사정 봐줄 줄 모르는 사람이라니까.’
예찬은 속으로 한숨을 삼키고 총대를 멨다.
“선배님, 이 이상 연습하면 내일 목소리가 안 나올 것 같은데요.”
이가원을 포함한 모두의 시선이 예찬에게 쏠렸다.
아이돌들의 눈이 신의 강림을 목도한 것처럼 과하게 빛났다.
“아, 그런 문제가 있군요.”
이가원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이제 눈빛들은 아예 광신도처럼 발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싱긋 웃은 이가원이 후배들을 돌아보았다.
“이제부터는 허밍으로만 연습하는 걸로 하죠. 자, 다들 일어나세요.”
“……!”
서서히 차오르던 희망이 산산조각 난 인간이 어떤 얼굴을 하는지 알고 있는가.
예찬은 조용히 그 얼굴들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난 최선을 다했다.’
그 후로도 연습은 후배들을 죽일 셈이냐고 황시우가 연습실 문을 거칠게 두드릴 때까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 * *
“저녁 같이 먹자고 했는데 이가원 때문에 엉망이 됐네!”
주차장까지 데려다주겠다며 나선 황시우는 자기 팀 메인 보컬은 적당히를 모른다며 혀를 찼다.
곰곰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예찬이 어깨를 으쓱였다.
“다큐에선 그 점이 좋다면서요.”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는 유피테르의 다큐멘터리를 언급하자 황시우가 대번에 흥분했다.
“너 우리 다큐도 봤냐? 하, 참! 요 녀석, 아닌 척하더니 완전 우리 팬이었네. 형이 사인해 주랴?”
“아뇨, 괜찮은데요.”
“이 새침데기 놈.”
“…….”
예찬은 뭐라 말해도 황시우가 새침 떤다고 몰아갈 것 같아서 말을 아꼈다.
‘에너지 아껴야지.’
그런 예찬의 반응을 멋대로 해석한 황시우는 기어코 자기가 메고 있던 크로스 백에 사인을 한 뒤 예찬의 목에 걸어 주었다.
“무려 소장품에 사인이다. 어떠냐. 영광이지?”
“이거 팔아도 되죠?”
“또 맘에도 없는 말 하긴.”
“진짜 팝니다?”
“그래그래, 어디 팔 수 있으면 팔아 봐.”
‘……내가 진짜로 팔아 버린다.’
예찬의 흉흉한 눈빛에도 황시우는 변함없이 킬킬거리며 예찬의 속을 긁을 뿐이었다.
“선배님들은 항상 오늘처럼 연습하시는 거죠?”
예찬이 주제를 되돌리자 황시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그렇지. 나도 그렇고, 멤버들이 다들 적당히 하는 거 싫어하니까 우리끼린 잘 맞아.”
“역시 대단하시네요.”
“대단은 무슨. 나도 너희 데뷔 다큐 봤거든? 너희도 비슷하더구만.”
황시우가 여느 때처럼 뻔뻔하게 굴지 않고 겸양을 떨었다.
예찬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다큐라…….’
예찬은 빈틈을 놓치지 않고 반격의 칼날을 휘둘렀다.
“그러고 보니 선배님, 저희 데뷔 다큐까지 보셨잖아요? 선배님이야말로 저희 팬이셨군요. 저도 사인해 드릴게요.”
“뭐? 야! 잠깐! 하지 마! 악, 간지럽다고!”
“사양하지 마세요.”
“사양이 아니…… 으앗, 진짜 간지럽다니까?!”
황시우가 크로스 백에 사인을 하겠다고 꺼낸 뒤로 계속 들고 있던 펜을 빼앗은 예찬은 거침없이 손을 움직였다.
황시우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 대문짝만하게 사인을 하고 나니 속이 좀 시원해졌다.
개운하게 샤워라도 마친 것처럼 상쾌한 얼굴이 된 예찬과 달리 황시우의 원래도 쀼루퉁한 얼굴은 평소의 배는 퉁명스러워졌다.
“지독한 녀석…….”
“칭찬 감사히 받겠습니다, 선배님.”
“너 귀엽지 않다, 정말.”
“최고의 칭찬이세요, 선배님.”
“…….”
말로는 도무지 예찬을 이겨 먹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황시우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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