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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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화
명실상부 현 대한민국의 1군 아이돌과 오디션 프로그램 일반인 참가자.
잘난 듯 선전 포고하고 돌아왔지만, 현실에서 정찬양과 하예찬의 위치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스마트폰 뒷면에 붙여 둔 카드키를 사용해 집 안으로 들어온 예찬은 좁은 침대에 걸터앉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세계의 예찬은 Lee 엔터의 연습생이 되지 않았다.
책상 위에는 졸업식 안내장이 놓여 있었다.
이 세계의 하예찬은 평범하게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늦바람이 들어서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지원한 모양이었다.
당연히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받았을 리 만무했다.
‘그렇다고 능력치가 이렇게 깎이나?’
플레이어 ― 하예찬 Lv. 2
비주얼 : A
노래 : A
춤 : B
랩 : F
언변 : D
반짝임 : C
칭호 : 리셋이 끝난 플레이어
포인트 : 2
예찬은 답이 없는 자신의 상태창을 바라보다 벽에 붙어 있는 거울로 눈을 돌렸다.
“하…….”
그중에서도 가장 답이 안 보이는 것은 비주얼이었다.
객관적으로 어느 그룹에 데려다 놓아도 비주얼 멤버 소리를 들을 수준이긴 했다.
그러나 예찬이 보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맹세컨대 리셋이 없던 첫 번째 생에서도 이렇게 막 생긴 적이 없었다.
‘17살엔 나이가 깡패라 숨만 쉬어도 빛났던 거고 그 후 사춘기 시절을 아무 관리도 안 하고 3년을 보내면 이렇게 변하는 건가? 믿기 어려운데…….’
허탈한 기분으로 비주얼 글자를 누르자 포인트 사용 창이 떠올랐다.
‘혹시……?’
예찬은 레벨 업 보상으로 받은 포인트를 비주얼에 투자했다.
[포인트 첫 사용!> [축하합니다! 포인트를 처음 사용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1 포인트가 추가됐어요!>그새 포인트가 한 점 더 추가됐다.
‘이것도 비주얼에 넣는다.’
예찬은 조금 변화가 생긴 능력치와 거울을 번갈아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비주얼 : A (3/100)
“……아무 변화가 없잖아.”
포인트를 넣으면 바로 올라갈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100포인트를 꽉 채워야 한 계단 올라가는 모양이었다.
노래나 춤은 금방 감이 올 테지만 속절없이 세월 따라 흘러간 얼굴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렇다고 원래 있었던 걸 없이 살 수는 없었다.
‘어떻게 포인트를 얻는지 알아야 하는데. 퀘스트 창은 없나?’
메인 퀘스트
― 츄마프 99에서 1등으로 데뷔하세요.
(남은 기간 99일)
서브 퀘스트
― 완벽한 음정으로 노래를 부르세요. (0/10)
― 완벽한 박자로 노래를 부르세요. (0/10)
― 완벽한 동작으로 춤을 추세요. (0/10)
[처음으로 만난 퀘스트창!> [축하합니다! 처음으로 퀘스트 창을 불러낸 당신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상태창을 열어서 확인해 보세요!>……있네, 퀘스트 창.
헛웃음이 나왔다. 없는 것보다 낫긴 한데 진작 알려 주든가.
가장 눈에 띄는 메인 퀘스트를 확인한 예찬이 인상을 찌푸렸다.
― 츄마프 99에서 1등으로 데뷔하세요.
(남은 기간 99일)
이 허접한 일반인의 몸으로 난다 긴다 하는 연습생들을 전부 꺾고 우승하라고?
지 일 아니라고 편하게 말하는군.
예찬이 띠껍게 퀘스트 창을 쭉 훑고 있자 홀로그램 창이 새로운 메시지를 띄웠다.
[메인 퀘스트 달성 실패 시 플레이어가 삭제됩니다.>“실패라고?”
두 글자짜리 단어가 예찬의 자존심을 팍 긁었다.
예찬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좀 약한 소리 했다고 사람을 얕보네?’
예찬은 리셋 때마다 갓 연습생이 된 몸으로 돌아갔다.
리셋 후 처음 2회는 좀 헤맸지만 그 후로는 딱 9개월 만에 항상 데뷔를 했다.
데뷔만 했을 뿐인가?
그 후론 난다 긴다 하는 별들의 전쟁터에서 수년간 정상을 지켜왔다.
그런 예찬이 아무리 허접한 일반인의 몸이 되었다고 해도 햇병아리 연습생들이랑 경쟁해서 실패해?
사람을 우습게 보는 것도 정도가 있었다.
후, 예찬은 심호흡을 한번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미션이 아니었어도 어차피 츄마프를 통해 데뷔할 생각이었다.
예찬의 사전엔 2등이 없으니 당연히 1등을 할 생각이었고.
퀘스트 창인지 뭔지 몰라도 동요하지 말고 원래 하려던 걸 하면 될 뿐이었다.
‘이번 기회에 그놈이랑 제대로 붙어 볼 수 있겠는데.’
지금까지 예찬은 반복적인 리셋을 통해 리스피릿을 최고의 아이돌로 빚어내고자 했다.
회사, 투자자, 제작진, 팬, 안티, 멤버들 등 다양한 문제가 매번 예찬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누군가 가장 넘기 어려웠던 벽이 무엇이었냐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이 츄즈 마이 프린스 99에 참여한 한 연습생이라 말할 것이었다.
범세혁.
실제로 만난 것은 6번의 리셋 중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예찬은 그의 이름과 얼굴, 목소리마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예찬이 본 그 누구보다 아이돌이란 단어가 잘 어울리는 소년은 모든 회차 츄마프에서 1위로 데뷔했다.
리셋을 거듭하며 츄마프를 아예 폭삭 망하게 만든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잠시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아 예찬이 쌓은 탑을 악착같이 기어오르는 무시무시한 재능의 화신이었다.
그렇게 빛나는 잡초는 적어도 예찬이 스물세 살이 될 때까지 또 없었다.
‘남일 때는 참 징한 놈이었다만, 내 거면 이보다 든든할 수 없지. 범세혁을 끼고 데뷔해서 정상에 앉아 주마.’
예찬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방향이 정해졌으면 이제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현재 집은 방음 상태가 좋지 않은 낡은 원룸이라 퀘스트를 완수하려면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택시를 타고 오며 스치듯 봤던 노래방의 위치를 떠올리며 예찬은 지갑을 들고 밖으로 나섰다.
* * *
개별 일정으로 진행된 사전 인터뷰 일주일 후, 츄즈 마이 프린스 99의 공식 첫 촬영 날이 밝았다.
예찬이 촬영장에 들어서자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제작진들 뒤편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연습생들이 눈에 띄었다.
빠르게 연습생들의 얼굴을 훑어보니 익숙한 얼굴이 제법 보였다.
그때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펑 떠올랐다.
[츄마프 99 공식 첫 촬영을 축하합니다!> [연계 퀘스트가 해방됩니다.> [실패 시 페널티가 있으니 주의하세요!>어떻게 텍스트가 사람을 이토록 빡치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예찬은 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상기하며 태연한 얼굴을 가장하고 벽에 기대섰다.
‘퀘스트.’
메인 퀘스트 [열기]
연계 퀘스트 [열기] New!
서브 퀘스트 [열기]
그사이 메인과 서브 퀘스트 사이로 연계 퀘스트가 생겨 있었다.
스트레칭을 하는 척 자연스럽게 손을 움직여 열기를 누르자 내용이 나타났다.
‘이 미친 상태창 새끼가……?’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욕을 할 뻔한 속마음과 다르게 예찬은 태연한 표정으로 퀘스트창을 바라봤다.
연계 퀘스트
― 츄마프 99에 참여하는 아이돌 이름을 전부 외우세요!
(진행 상태 47/98, 남은 기간 7일)
예찬의 기억에 없다는 건 1차 순위 발표식 때 줄줄이 땅콩처럼 떨어질 놈들이란 건데 그런 놈들 이름을 외워서 어디다 쓰라는 건가.
그 시간에 노래 연습을 한 번 더 하는 게 효율적이었다.
[연계 퀘스트 실패 시 스탯 중 하나가 랜덤으로 하락합니다.>예찬의 마음의 소리를 들었는지 홀로그램 창이 묻지도 않은 페널티를 알려 주고 자빠졌다.
이젠 어떻게든 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예찬은 상태창을 욕하는 것을 그만두고 눈앞의 세트장에 집중했다.
그사이 연습생들이 더 도착했는지 주변이 복작복작해졌다.
“무슨 대기실도 없냐, 여긴.”
“진짜 망한 프로인가 봐.”
작게 속삭이고 있지만 워낙 인구 밀도가 높다 보니 거리가 가까워서 다 들렸다.
힐끗 소리가 들린 쪽으로 눈길을 주자 기억조차 안 나는 낯선 얼굴 둘이 속닥거리고 있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저렇게 입단속을 못 하는 걸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름이나 외워 둘까 싶어 가슴에 붙인 명찰을 훑었다.
이름 뒤에 붙은 소속사는 반년 전에 보이 그룹이 데뷔한 회사였다.
‘데뷔 조에서 떨어졌는데 다음 데뷔 조에 들긴 애매한 놈들이겠군.’
연습생들의 말처럼 츄즈 마이 프린스 99는 시작 전에 이미 망했다는 말이 많던 프로그램이었다.
공주님의 왕자님이라는 얼굴 뜨거워지는 콘셉트는 차치하더라도 문제가 많았다.
일단 아이돌 연습생부터 현역 아이돌, 래퍼, 댄서들을 대상으로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이미 여러 차례 와르르 쏟아진 후라 포맷부터 식상했다.
게다가 데뷔할 연습생들이 7년짜리 장기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점 때문에 규모 있는 기획사들은 몸을 사리며 참여를 거부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개인 연습생이 삼 분의 일, 속해 있던 기획사에서 퇴사한 연습생이 삼 분의 일, 어중이떠중이 기획사 소속이 삼 분의 일 정도였다.
모두가 다른 연습생 서바이벌에 비해 인재 풀이 형편없을 거라 예상할 만했다.
‘근데 범세혁 같은 놈이 있거든.’
이미 이 프로그램이 어떻게, 또 얼마나 성공하는지 보았던 예찬은 시큰둥한 얼굴로 다시 머리를 벽에 기댔다.
범세혁 하나뿐이 아니었다.
다들 여태까지 그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르고 어디 있다가 튀어나온 건지, 예찬이 묻어 버리기 전 회차들에서 츄마프 99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역사상 최고의 인재 풀을 자랑했다.
데뷔한 연습생들 대부분이 다른 프로그램에 나왔다면 너끈히 우승을 거머쥐었을 만한 재능과 매력을 갖추고 있었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스태프의 말에 예찬이 벽에서 몸을 뗐다.
항상 어떻게 부숴 버릴까 연구하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생각하니 어쩐지 가슴이 울렁거렸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츄마프 99가 뜬 것의 5할이 범세혁을 필두로 한 뛰어난 연습생들이었다면, 나머지 5할은 막 나가는 제작진들의 공이었다.
일단 편집을 잘했다.
절묘한 사건 배열과 센스 있는 자막, 호흡까지 기가 막혀서 한번 보기 시작하면 끊을 수가 없었다.
근데 그 재능을 악마의 편집에 쏟더라고.
그렇지 않아도 가혹한 프로그램 구성에 악의적인 편집이 들어가니 매워도 이렇게 매울 수 없었다.
어지간한 자극에는 이제 덤덤해진 아이돌 덕후들도 이 어둠의 프로그램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주로 탈락 각이 선 연습생들을 국민 욕받이로 만드는 데 그 힘을 사용했는데, 데뷔권 연습생들은 츄마프로 데뷔하게 되면 7년간 N-net의 소중한 자산이 되기 때문에 자제하는 모양새였다.
예찬은 딱딱한 의자에 앉아 그 몹쓸 프로그램의 서막을 열 세트장을 바라보았다.
‘진행 순서는 똑같군.’
가운데 무대에서 준비해 온 퍼포먼스를 펼치고 바로 등급을 부여받는다.
첫 번째 순서다운 정석적인 등급 테스트였다.
예찬은 심사 위원석 옆에 준비된 과하게 화려한 의자들로 먼저 시선을 주었다. S등급의 자리였다.
그 옆으로 푹신해 보이는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 다음은 딱딱한 의자, 플라스틱 의자가 줄줄이 놓여 있다가 마지막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이었다.
각각 A등급, B등급, C등급, D등급의 자리였다.
다른 프로그램보다 조금 등급 간 격차를 심하게 준다는 점이 있지만 이 정도면 평이하다고 볼 수 있었다.
“본인이 몇 등급이라고 생각해요?”
“어, B, B등급일까요?”
“그래요? 우린 A라고 생각했는데 자기한테 박하네. 본인이 원한다니 B로 가세요.”
겸손한 이미지를 챙기려다가 딱딱한 의자에 앉게 된 연습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카메라는 놓치지 않고 연습생의 얼굴을 담아내고 있었다.
다음 연습생에게도 똑같은 질문이 나왔다.
“본인이 몇 등급이라고 생각해요?”
“S등급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가자는 앞선 연습생을 반면교사 삼아 우렁차게 대답했다.
“뻔뻔하네. 자기 객관화라는 말 들어 봤어요?”
이번에도 결과는 영 좋지 못했다.
방송 직후 심사 위원 놈들은 대체 무슨 대답이 듣고 싶은 거냐며 시청자 게시판을 뜨겁게 불태운 첫 번째 등급 테스트의 시작이었다.
준비해 온 퍼포먼스가 끝나면 본인이 판단한 등급을 물었는데 높게 말하면 자신감이 과하다고 까고, 낮게 말하면 자존감이 낮다며 깐다.
본인의 평가와 심사 위원의 평가가 일치하면 무난히 통과한다?
그것도 아니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어요?”
“어, 앞서 A등급을 맞은 연습생을 보고 추측했습니다.”
“그 말은 본인이 김수영 연습생이랑 동급이다, 이런 뜻인가?”
“네? 어, 그, 그런 뜻은 아닌데…….”
이 자기 평가는 어떤 대답을 하든 연습생들에게 딜레마였다.
낮게 부른 놈은 가증스러운 놈.
높게 부른 놈은 주제도 모르는 놈.
맞게 부른 놈은 먼저 평가받은 다른 연습생이랑 엮여 버리니 이미지를 지구 내핵까지 떨구기 좋았다.
본 방송 때는 심사 위원의 꼬투리 잡기에 혀를 차던 시청자들이 회차가 쌓이고 미는 연습생이 생긴 후엔 다른 연습생들을 깎아내리는 용도로 주야장천 들고 나왔던 게 이 자기 평가 멘트였다.
“다음 하예찬 연습생.”
그럼 이 평가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잘 부탁드립니다.”
뻔한 이야기다.
겸손 떨면 재수 없을 정도로 끝내주게 잘하면 되는 일이다.
예찬은 흘러나오는 반주를 들으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선택지 발생!>퍼포먼스 종료 후 누구보다 인상 깊은 자기 평가를 남겨요!
― 오늘을 위해 칼을 갈았습니다. S등급, 넌 내 것이야.
― 엣, 예찬이는 당연히 S 아닌가요? 뿌우―.
― S…… 갖고 싶다, 너란 알파벳…….
아니 이 새끼가 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