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04)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04화
고칠 수 있다고 자신한 것이 허언은 아니었는지, 키보드를 두드리는 안승복의 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하경이는 어떻게 지내? 요새 연락을 해도 통 답장이 없던데.”
심지어 예찬에게 말을 거는 여유까지 보였다.
“……저도 잘 몰라요.”
예찬은 모니터와 안승복을 번갈아 보며 답했다.
지난 열흘간 예찬과 PiPiPi, 그리고 회사까지 이 바이러스를 고치기 위해 실력 있는 프로그래머를 계속 수소문했다.
– 완전 악질이에요, 이 바이러스.
– 정말…… 그냥 고장을 내는 데 의의를 둔 거라…… 어떻게 건드릴 수가 없네요.
– 내가 이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을 벌써 다섯 번째로 만난 건데, 뿌리가 같아도 퍼지면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화해서 많이 본다고 데이터를 모을 수도 없어요. 하나를 치료해도 다른 건 또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고쳐야 한다니까요?
– 이거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 같은데…… 그냥 액땜했다 치고 잊으시는 게…….
– 이 바이러스, 저도 당했습니다. 으흐흑…….
수많은 프로그래머가 고개를 내저은 바이러스를 이렇게 쉽게 해결해 버리다니.
‘뭐 하는 사람이야, 대체.’
예찬의 미심쩍은 눈빛을 전혀 느끼지 못한 건지 안승복은 천진난만하게 되물었다.
“왜? 집에 안 들어와? 아! 너도 스무 살이 넘었을 테니 혹시 독립한 건가?”
“뭐, 그 비슷한……?”
안승복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하하경과 어떤 사이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지금, 하하경이 현재 실종 상태라는 걸 밝힐 필요는 없었다.
“너희 진짜 사이좋았었는데, 신기하네. 나도 나이 차이가 좀 나는 형이 있는데 서로 소 닭 보듯 하거든.”
“…….”
뭐라 대답할 말이 없던 예찬은 그냥 웃기로 했다.
예찬의 미소를 어떻게 해석한 건지, 안승복도 웃었다.
“그랬던 하 씨 형제도 세월은 어쩔 수 없구만, 하하! ……가만, 하하? 하하, 하하…… 하하경! 너희 형 이름 진짜 웃기지 않아?”
“놀림당하기 좋은 이름이긴 하죠.”
이번엔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예찬은 태연하게 처음 하하경의 이름을 들었을 때 떠오른 감상을 말했다.
“그렇지? 나만 느낀 거 아니지? 허, 근데 내가 왜 대학 다닐 때 이걸로 안 놀렸을까?”
안승복이 과거의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며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다 큰 성인이 유치하게.’
그 사이 서랍을 뒤적거려 USB 하나를 꺼낸 안승복은 본체에 USB를 연결하고 또 키보드와 마우스를 빠르게 조작하기 시작했다.
“하경이한테 내 얘기 들은 적은 없고?”
“…….”
이번에도 예찬은 웃음으로 때웠다.
“하, 진짜 너무하네. 우리 진짜 친했다, 예, 예찬아? 예찬이 맞지? 아무튼 졸업하고도 한참 연락하고 지냈어. 정말로!”
사람 이름도 제대로 외우지 못한 안승복은 예찬의 웃음을 ‘없음’으로 해석하고 마구 푸념을 늘어놓았다.
저쪽이 알아서 해석한 거니 아주아주 만약에 하하경이 갑자기 나타나더라도 빠져나갈 구멍 정도는 되겠지.
“그래도 문자를 읽은 걸 보니 멀쩡히 살아는 있나 보네.”
“문자요?”
“어. 연락이 안 된 건 대충 4년 정도 된 거 같은데, 내가 여기로 이사한 건 반년도 안 됐거든. 혹시 옛날 집으로 찾아올까 봐 이사하면서 문자를 보냈었어. 답은 없었지만. 근데 너한테 알려 준 걸 보면 읽긴 했다는 거잖아?”
“아, 그렇죠.”
여길 알려 준 것은 하하경이 아니라 홀로그램 창이라고 할 수 없었던 예찬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여기 이사 온 지 반년도 안 됐다고?’
예찬은 끔찍하게 더러웠던 거실을 떠올리자 소름이 돋았다.
안승복과 물리적으로 거리를 벌리고 싶어진 예찬이 슬쩍 의자를 뒤로 빼려던 순간, 안승복이 시원스레 외치며 예찬을 돌아보았다.
“자, 이건 끝! 어때, 깔끔하지? 다 복구됐는지 한번 확인해 볼래?”
“……정말 빠르시네요. 이건 제 하드가 아니라 저는 봐도 모를 것 같아요. 형님이 다 됐다면 된 거겠죠.”
“뭐, 혀, 형님? 어우, 야. 낯간지럽다!”
말과 달리 안승복은 좋아 죽겠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나머지 하드가 ‘우리 동생님’ 거였구나. 좋아! 이건 더 힘내서 고쳐 봐야겠다!”
묘하게 ‘우리 동생님’에 악센트를 준 안승복이 콧노래를 부르며 작업실 하드 디스크를 자신의 본체에 연결했다.
‘진짜 다루기 쉽네.’
속으로 감탄하고 있는 예찬을 뒤로한 채 안승복이 가슴을 팡팡 두드리며 호언장담을 했다.
“이 ‘형님’하는 거 잘 보고 있어. 먼저 것보다 훨씬 빠르고 깔끔하게 끝내 줄 테니까.”
“아, 네.”
‘……생각한 거보다 더 마음에 들었나 본데?’
큰소리를 친 안승복은 이런 프로그래머가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놀라울 정도로 이번에도 막힘 없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래서 학식을 먹으러 갔는데 하경이가…….”
그리고 손 못지않게 입 또한 막힘 없이 떠들어 댔다.
“아, 네. 그렇군요. 굉장하네요.”
예찬은 하하경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머릿속에 정리하며 ‘네, 그렇군요, 굉장하네요’ 세 단어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안승복은 상대의 리액션에 연연하는 타입이 아닌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끊임없이 떠들어 댔다.
‘이 정도 실력이면 찾는 사람이 많을 텐데. 그러면 수입도 아쉽지 않을 테고…… 왜 이런 외진 곳에 자리를 잡은 거지?’
“아, 그리고 이건 그전에 있었던 일인데 하경이랑 내가…….”
실력도 있고 저렇게 떠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굳이 왜 이렇게 조용한 동네에서 살고 있는 건지 의아했다.
그 후로도 안승복은 하하경과 대학 시절 있었던 일들을 두서없이 떠들어 댔다.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1할 정도 떠들고 나면 안승복의 개인의 감상이 9할 정도 따라붙었기에 귀가 아픈 것 치곤 영 영양가가 없었다.
“굉장하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피대기를 따라갈 것 그랬나.’
입과 머리가 완벽하게 따로 놀았다.
“자, 이것도 이걸로 끝!”
“그렇군요…… 네?”
안승복의 말에 예찬은 본능적으로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빠른데?’
피대기의 하드 디스크를 수리할 때보다 못해도 배는 빨라진 속도에 예찬이 눈을 깜빡였다.
“벌써 다 된 건가요?”
“후후, 당연하지. 이 형님한테 걸리면 이 정도 바이러스야 눈감고도 뚝딱이라고. 잘 복구됐는지 한번 확인해 봐.”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빠른 거 같은데…….”
의자에서 일어난 안승복이 예찬을 컴퓨터 앞으로 떠밀었다.
“이미 다른 거 먼저 고쳤잖아. 똑같이 반복하기만 하면 되는데 당연히 빠르지. 그보다 얼른 확인하고 이번엔 우리 졸업쯤에 있었던 일을…….”
그 순간, 솔개가 먹이를 낚아채듯 예찬의 손이 안승복의 손목을 낚아챘다.
“……너구나. 이거 만든 놈이.”
예찬의 눈이 확신으로 빛났다.
* * *
“헉, 헉, 헉…….”
작곡가 PiPiPi, 본명 피대기는 계단 난간을 부여잡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난간을 잡지 않은 손엔 빌어먹을 프로그래머가 부탁한 카페 ‘온 더 크림 브륄레’의 시그니처 음료인 ‘크림 브륄레 팝핑 라떼’ 엑스트라 라지 사이즈가 음료 캐리어 안에 소중히 자리 잡고 있었다.
‘크림 브륄레 팝핑 라떼’의 크림 위에 앙증맞게 올려진 팝핑 캔디들을 바라보는 PiPiPi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침이라도 뱉어 버려? ……아니, 먹을 거로 장난하면 안 되지.’
프로그래머 안승복이 콕 집어 지정한 ‘온 더 크림 브륄레’ 카페는 안승복이 살고 있는 남서빌로부터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차를 끌고 갔다 왔더니 또다시 계단 지옥이 PiPiPi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발 한 발 거의 끌다시피 5층에 도착한 PiPiPi가 막 굽혔던 허리를 폈을 때였다.
“노, 놓으라고!”
“너라면 놓겠냐?”
“너, 너라니! 형 친구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범죄자 주제에 지금 호칭 투정을 부리다니. 뻔뻔하네.”
열린 502호 문 안에서 굉장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지?’
PiPiPi는 격한 운동으로 굳어 버린 머리를 굴리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여전히 지저분한 거실을 지나 방문 안쪽을 살피자 바닥에 엎어진 안승복과 그를 발로 눌러 제압하고 있는 예찬이 보였다.
아무래도 방 밖으로 탈출하려다 잡힌 것 같은 모양새였다.
“하, 하예찬 씨……?”
“작곡가님 오셨어요?”
예찬이 태연하게 고개를 들어 PiPiPi를 반겼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이봐! 이 망나니 좀 치워 주쇼! 내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할 테니!”
“그게 설명하자면 좀 긴데…… 아, 하드는 일단 다 고쳤습니다.”
아래에서 꽥꽥 소리를 지르는 안승복을 깔끔하게 무시한 예찬의 말에 PiPiPi가 반색했다.
“정말입니까?!”
“네. 아직 연결되어 있으니 확인해 보세요.”
“역시 신은 있구나!”
하드 디스크가 고쳐졌다는 말에 PiPiPi는 안승복 따위는 깔끔하게 머리에서 지우고 컴퓨터를 향해 달려갔다.
안승복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외쳤다.
“내가 고쳤다고! 내가 신이야! 신을 이렇게 놓고 가는 게 어디 있어!”
“신은 무슨. 병 주고 약 준 주제에 말이 많네. 심지어 약을 가져다준 것도 아니고 내가 와서 타다 먹은 거잖아?”
괘씸하다는 듯 예찬이 안승복을 내려다보았다.
“이, 있다! 있어요, 예찬 씨! 진짜 다 고쳐졌다고요!”
그러거나 말거나 PiPiPi는 자신의 하드 디스크를 샅샅이 살피고 기쁨의 환호성을 내지르기 바빴다.
“그렇다네요.”
예찬이 PiPiPi가 아니라 안승복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안승복은 두려움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느 쪽이든 예찬은 상관없었지만.
잠시 뒤, 거실에 굴러다니는 노끈으로 안승복을 의자에 꽁꽁 묶어 둔 채 예찬과 PiPiPi는 하드 디스크를 그의 컴퓨터에서 떼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 사람이 범인이라는 걸 알고 온 겁니까?”
“그건 아니고요. 프로그래머분들이랑 말이 너무 달라서 알았죠.”
그간 방문했던 프로그래머들은 몇 시간씩 땀을 빼면서 이 바이러스의 종류를 판단했고, 그 뒤로는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 바이러스는 고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 뿌리가 같아도 퍼지면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화해서 많이 본다고 데이터를 모을 수도 없어요. 하나를 치료해도 다른 건 또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고쳐야 한다니까요?
같은 바이러스에 걸렸어도 전개 방식이 달라서 전부 다른 방식으로 고쳐야 한다는 말도 했고.
그러나 안승복은 잠시 피대기의 하드 디스크를 본 것만으로 이 바이러스를 특정해 냈으며, 하나를 고쳤으니 나머지를 고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식으로 답했다.
예찬은 잠시 안승복을 돌아보았다.
‘이 정도 심증이면 찍어 볼 만하지.’
눈이 마주친 안승복이 매섭게 소리쳤다.
“내가 했다는 증거 있냐고!”
“증거는 경찰들이 찾아 주겠죠.”
“히익!”
경찰 소리가 나오자 안승복은 언제 표독스럽게 소리를 쳤냐는 듯 가여울 정도로 몸을 벌벌 떨었다.
‘경찰이라면 기겁하는 저 모양새도 한몫했고.’
외진 곳에 사는 이유도 이제 대충은 짐작이 갔다.
‘해 놓은 짓이 어지간히 많은가 보군. 뭘 더 저질렀는지는 별로 관심 없지만.’
데이터를 복구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창밖으로 경찰차가 빌라 앞에 도착한 것이 보였다.
지금까지 강해솔이 마음고생을 한 것에 대한 보복은 그들에게 맡기면 되겠지.
“뒤는 공권력에 맡기죠.”
예찬의 말에 PiPiPi가 산뜻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입니다.”
“안 돼애애애애!”
그리고 계단을 올라온 경찰들은 울부짖는 한 사람과 상쾌한 얼굴을 한 두 사람이란 기묘 한 조합과 마주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