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05)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05화
죄를 지었으면 응당 벌을 받아야 하는 법.
안승복을 경찰에게 넘긴 예찬과 PiPiPi는 하드 디스크를 증거물로 넘긴 후, 빈손으로 다시 차에 올라탔다.
하드 디스크는 조사가 끝난 후 돌려받게 되겠지만, 증거물로 제출하기 전에 필요한 몇 가지 내용물을 USB로 옮기게 해 주어서 문제없었다.
운전석에 앉은 PiPiPi가 몸을 축 늘어트린 채 지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뭔가 정신없었네요.”
짧게 고개를 끄덕인 예찬은 문득 ‘크림 브륄레 팝핑 라떼’가 생각났다.
“그런데 작곡가님. ‘크림 브륄레 팝핑 라떼’는 어디 갔어요?”
“앗! 정신없어서 그 돼지우리 속에 놓고 와 버렸습니다.”
“음, 뭐…… 그럴 수도 있죠. 생긴 건 어땠어요? 맛있어 보였어요?”
“네, 제법……. 돌아가는 길에 잠깐 들러서 사 가는 게 어떻습니까? 기념품 같은 느낌으로!”
‘무슨 기념인데.’
예찬은 어이가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라면 절대 안 먹겠지만, 오늘은 너무 기가 빨렸어.’
당장 당을 충전하라고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해커에 경찰까지.
평범한 사람이라면 평생 가까이서 대화할 일이 없는 사람들을 연달아 상대한 것도 지치는 일이었지만, 가장 피곤했던 건 역시 ‘하하경’의 존재를 아는 사람과 만났다는 것이었다.
‘하하경.’
이름만 알고 있는 호적상 형의 존재는 생각보다 거슬렸다.
‘언급하지 않고 살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과거 얘기를 마음 편하게 할 수가 없잖아.’
짧은 인터뷰를 진행할 때만 해도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오면 말을 삼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잘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 ‘하하경’의 존재를 알고 있는 안승복을 만남으로써 헛된 생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하하경’은 분명히 이 세계에 구성원으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내 과거를 아는 사람이 앞으로 더 나타나겠지.’
오히려 지금까지 마주치지 않았던 것이 신기한 일이었다.
‘내일, 아니 오늘 당장이라도 누가 회사로 찾아오거나 인터넷에 글을 쓰면 어쩔 거냐고.’
예찬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엄지로 꾹꾹 눌렀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예찬 씨, 받으시죠. ‘크림 브륄레 팝핑 라떼’ 엑스트라 라지 사이즈입니다.”
때마침 얼굴이 알려진 예찬 대신 카페에서 음료를 받아 온 PiPiPi 덕에 울적한 사색은 끝이 났다.
“……폭력적인 비주얼인데요?”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휘핑크림이 차 천장까지 닿을 것 같았다.
“바로 마실 거라 뚜껑 필요 없다고 하니 이렇게 담아 주시더군요.”
PiPiPi의 말을 들어 보니 연달아 두 번이나 찾아온 PiPiPi가 카페의 시그니처 음료에 완전히 반했다고 생각했는지 카페 주인이 무척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예찬의 눈이 그새 익숙해진 PiPiPi의 차림새를 훑었다.
위아래 서로 다른 원색의 가죽옷에 화려한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으니 다시 방문했다는 것을 충분히 알아볼 만했다.
예찬은 크림의 산을 뚫고 빨대를 꽂은 다음 그대로 쭉 들이마셨다.
‘……달아!’
심지어 에스프레소를 얼마나 때려 넣은 건지 혀가 아릴 정도의 단맛을 뚫고 카페인이 느껴졌다.
생긴 것 못지않게 맛 또한 폭력적이었다.
‘오늘 잠은 다 잤군.’
평소라면 한 입 마시자마자 바로 내려놓을 음료였으나 지금의 예찬에겐 꼭 필요한 음료, 아니 약이었다.
당분이 들어가자 곤두섰던 신경이 실시간으로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예찬에게 강 같은 평화가 찾아왔다.
‘고민해 봤자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게 제일 큰 대비라고 진작에 결론을 내려놓고 괜히 삽질했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갑갑하게 예찬을 내리누르던 문제들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어떻게든 되겠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예찬은 한 번 더 빨대를 길게 빨아들였다.
오늘따라 하늘이 참 파랗고 높았다.
신나게 음료를 들이켜던 예찬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PiPiPi를 불렀다.
“작곡가님, 이거 얼마에요?”
“됐습니다. 안 받아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
“돈 드릴까요?”
“됐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김에 조금 장난을 쳤더니 피대기가 바로 발끈했다.
예찬의 기분이 더 좋아졌다.
“작곡가님, 아무리 부자여도 아껴 쓰셔야죠.”
장난스러운 예찬의 말에 피대기가 눈을 흘기곤 앞을 바라보았다.
“제가 왜 부자입니까? 저보단 예찬 씨가 부자겠죠.”
작곡가가 직업인 자신보다 히트곡을 더 많이 내지 않았냐는 퉁명스러운 대답에 예찬은 슬그머니 번쩍번쩍한 차 내부를 훑었다.
그런 예찬의 시선을 느꼈는지 피대기가 말을 덧붙였다.
“차도 집도 부모님이 해 주신 겁니다.”
“차도 있고 집도 있으면 부자 아닌가요?”
심지어 그 차라는 게 억 단위의 스포츠카라면 집도 어떨지 대충 예상이 갔다.
예찬의 말을 들은 피대기가 고집스럽게 부정했다.
“부모님이 잘사는 거지 내가 잘사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오!’
“스무 살 이후로 손 벌린 건 전부 적어 두고 있습니다. 성공해서 백 원짜리 하나까지 전부 계산해서 갚을 겁니다.”
나사 빠진 피대기가 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똑 부러진 대답이었다.
그렇지만 어째서인지 예찬은 선뜻 대단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음, 그렇게 칼같이 계산하는 걸 알면, 주는 사람이 좀 섭섭하지 않을까요?”
“섭섭이요?”
“네. 뭐라고 할까…… 이만큼 받았으니 이만큼 돌려줘야지 하는 게 느껴지면 부담스러웠던 건가 싶기도 하고, 좀 서운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냥 잘돼서 보답하는 거랑은 다르다고 해야 하나. 정이 없는 거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가족끼리면 더요.”
평소 생각해 본 적 없는 주제였음에도 어째서인지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뭐지?’
자연스럽게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예찬의 유창한 대답에 피대기도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가요?”
“뭐,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요……. 제가 괜한 참견을 한 것 같네요. 작곡가님 부모님이시니 작곡가님이 더 잘 아실 텐데.”
예찬이 재빨리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피대기는 상당히 진지하게 예찬의 이야기를 받아들인 것 같았다.
“아뇨. 꽤 그럴듯한 의견이었습니다. 나중에 갚을 때 통장 입금 내역과 받은 물건의 금액을 정리한 엑셀을 같이 드리는 건 재고해 봐야겠군요.”
‘그렇게까지 계산해 둔 거냐!’
등줄기를 타고 흐르던 위화감이 함께 녹아내릴 정도로 기운이 빠지는 대답이었다.
고개를 한 번 내저은 예찬은 남은 음료를 들이켰다.
* * *
“수학여행은 가는 게 좋지 않겠어? 인생에 딱 한 번뿐인 경험인데 말이야.”
수학여행 신청서를 팔랑팔랑 흔들며 하경이 말하자, 예찬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거실에 가방을 던져 놓는 게 아니었다고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면 지퍼라도 잘 잠가 두었든지.
찬양은 그런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양쪽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하경이 차분한 어조로 예찬을 다독였다.
“예찬아, 돈 때문이면 신경 안 써도 돼.”
“……그게 아니라, 연습을 못 하는 게 아까워서 그래. 어차피 학교에 친한 친구도 없고…….”
“경우랑 승원이가 들으면 섭섭하겠다.”
“……걔들은 또 어떻게 알았어.”
하경이 예찬의 같은 반 친구 중 평소 어울려 다니는 두 사람의 이름을 딱딱 짚어 내자 예찬은 못 당하겠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다 아는 수가 있어.”
턱을 과장되게 치켜들었던 하경이 다시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정말 연습하고 싶어서라면 어쩔 수 없지만, 돈 때문이면 형은 안 그랬으면 좋겠어. 돈이야 벌면 되는 거지만 수학여행은 다시 돌아오지 않잖아.”
“……네에.”
말꼬리를 끄는 대답에 묻어 나는 쑥스러움을 읽어 낸 하경이 웃었다.
“그리고 찬양이 얘기 들어 보니까 예찬이 너, 형한테 받는 돈, 전부 체크하고 있다며?”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예찬이 고개를 휙 들었다.
믿고 있던 친구의 배신에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정찬양, 너……!”
“미안.”
“괜히 찬양이 탓하지 말고.”
한숨을 쉰 하경이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칼같이 계산하면 형은 진짜 섭섭해, 예찬아.”
“…….”
“네가 잘돼서 형한테 고마운 마음을 갚겠다고 하면 기특하고 기쁘지. 그런데 그렇게 뭐 해 줄 때마다 다 생각하고 있으면, 너한테 괜히 부담스럽게 만든 거 같고, 미안해.”
하경이 일부러 더 가여운 척 어깨를 늘어트리자 예찬이 아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형이 미안할 건 전혀 없지!”
“내가 대부업자가 된 거 같기도 하고.”
“그건 더 아닌데!”
당황한 예찬의 얼굴을 보며, 하경이 웃음을 참고 있는 모습이 찬양의 눈에 보였다.
그렇지만 예찬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지 어쩔 줄 모르고 하경의 눈치를 살피고만 있었다.
“큼. 그러니까 앞으론 그렇게 너무 계산하지 말기다? 알았지? 형은 그런 것보다 고맙다는 말이 더 좋아.”
“……응. 고마워, 하경이 형.”
기쁘면서도 불편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어설프던 예찬의 모습이 흐려졌다.
꿈에서 아직 깨고 싶지 않았던 정찬양은 온 힘을 다해 손을 뻗었으나, 미욱하고 찬란한 시절의 꿈은 야속하게 멀어져만 갔다.
* * *
서울에 도착한 예찬과 PiPiPi가 곧장 향한 곳은 당연히 NJ 빌딩이었다.
“해솔이 형!”
늠름하게 연습실 문을 박차고 들어간 예찬은 오늘도 어김없이 연습실에서 한 몸 불사르고 있던 강해솔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짧게 요약해서 전하고 USB를 내밀었다.
“복구했다고?”
강해솔은 지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예찬과 USB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복구…… 그걸 복구…….”
완전히 넋을 놓은 강해솔을 대신해 멤버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진짜 복구했다고? 와, 하예찬 너 진짜 독하다……!”
“은성아.”
채은성의 다소 격한 감탄에 심상록이 짧게 주의를 주었다.
채은성이 억울한 얼굴로 눈썹을 구겼다.
“아니 저도 다른 단어를 고르고 싶었는데, 독하다는 말이 너무 딱 맞잖아요.”
“……그냥 대단하다고 하자, 우리.”
“역시 우리 리더. 새해부터 한 건 멋지게 해 주네. 그런데 왜 작곡가님을 불렀어. 나보고 같이 가자고 하지.”
선우이경이 예찬의 머리를 흐트러트리며 말했다.
예찬의 대답이 망설임 없이 바로 튀어 나갔다.
“확실하지 않은 일에 괜히 고생하면 안 되잖아요.”
“그, 그럼 저는 뭡니까!”
한 발짝 뒤에서 홀로 동떨어져 있던 PiPiPi가 용기를 내 끼어들었다.
예찬의 눈빛이 순식간에 서늘해졌다.
“작곡가님은 작곡가님이 가신다고 하셨잖아요.”
“그, 그건 그렇지만…… 크흠, 아무튼 이걸로 데이터 날린 게 해결됐으니 저의 죄도 사라진 겁니다?”
“네?”
예찬의 목소리가 한층 더 살벌해졌다.
USB를 강해솔의 손에 꼭 쥐여 준 예찬이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기며 PiPiPi를 돌아보았다.
PiPiPi 쪽으로 다가오는 발걸음은 한없이 위압적이기 그지없었다.
‘저거 다 연기다. 내 기를 죽이려고 일부러 저렇게 과장해서 행동하는 거야.’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면서도 PiPiPi는 침이 꿀꺽 넘어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이윽고 PiPiPi의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 예찬이 입을 열었다.
“계산을 참 이상하게 하시네요, 작곡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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