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07)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07화
예찬이 PiPiPi를 영혼까지 털어 돌려보내자, 멤버들이 낮에 직원에게 받았다는 시즌 그리팅을 들고 와 분위기를 환기했다.
“예찬이 너 오면 같이 뜯어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지!”
“그래요? 먼저 봤어도 괜찮은데…….”
“에이, 정 없게 어떻게 그래!”
참 별거 아닌 일에서도 정을 찾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을 생각해서 그랬다니 그냥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빨리 뜯어 봐요, 빨리!”
“빨리, 빨리, 빨리!”
회사 쪽에서 샘플을 받았을 때부터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정의탁과 채은성은 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기다렸는지 용할 정도였다.
“알았어, 꼬맹이들아. 성격 되게 급하다니까.”
재촉하는 동생들을 향해 혀를 찬 선우이경이 막 겉 비닐을 뜯으려던 차였다.
“……그런데 오늘은 영상은 안 찍는 건가요?”
“영상?”
우휘겸은 아주 작게 이야기를 꺼냈으나, 멤버들은 어렵지 않게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평소에는 언박싱 영상을 찍긴 했지.”
“근데 이건 앨범이 아니라서.”
“팬클럽 키트도 찍지 않았었나?”
“그건 앨범이랑 같이 겸사겸사 찍은 거 아니었어요?”
의견이 분분히 나뉜 가운데 예찬은 잠시 멤버들의 몰골을 확인했다.
‘하루 종일 연습실에 있던 것치곤 제법 뽀송한데?’
멤버들의 성격상 연습을 설렁설렁하진 않았을 텐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연말 시상식 무대 준비로 체력이 한층 성장한 모양이었다.
‘얼굴에 뭐 난 것도 없는 거 같고.’
연습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거울을 바라보자 멤버들보다 살짝 초췌한 예찬 본인의 모습이 비쳤다.
차를 타고 이동하느라 쌓인 피로보다도 옆에 있으면 절로 기가 빨리는 피대기와, 피대기에게 절대 뒤처지지 않는 안승복이 끼친 영향으로 보였다.
‘……그래도 못 봐줄 정도는 아니지? ……아닌가?’
예찬이 심각한 얼굴로 거울을 보고 있자 어느새 다가온 범세혁이 자신도 괜히 진지한 얼굴을 하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뭐 해?”
“예찬이 흉내?”
“…….”
말을 섞고 지낸 지 근 1년이 다 되었는데도 아직 범세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든 어느 정도 봐줄 만한 면면들임을 확인한 예찬이 손뼉을 쳐 멤버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면 지금부터 라이브로 언박싱 할까요?”
“오, 좋네!”
“저도 좋아요!”
라이브 중독자들답게 당연히 싫다는 반응은 없었다.
그리하여 퇴근을 준비하던 매니저가 급하게 회사 측에 연락을 넣고, 스태프 몇만 앞에 둔 채로 시즌 그리팅 언박싱 라이브 방송이 시작되었다.
하루에 한 번은 라이브를 하던 것이 근래 살인적인 스케줄 때문에 주춤했던 탓일까.
멤버들은 말 그대로 기뻐 날뛰고 있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장판이군.’
다들 제 할 말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교복 콘셉트 재미있었어요!”
“난 좀 양심에 찔렸지만…….”
포토 카드를 꺼내 든 범세혁이 해맑게 외치자 심상록이 슬쩍 바닥을 바라보았다.
옆에서 실링 스탬프를 찍어 보겠다고 왁스를 녹이고 있던 정의탁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상록이 형, 그 말 비하인드 영상에도 들어 있을걸요?”
“어, 그러려나?”
“백퍼야, 백퍼. 한두 번 말한 게 아니잖아. 난 오랜만에 교복 입어서 좋았는데~”
우휘겸, 배새벽과 함께 다이어리 꾸미기에 열중한 선우이경도 귀는 이쪽으로 열어 두고 있었는지 한마디를 보탰다.
미니 포스터를 순서대로 정렬하고 있던 예찬도 빠지지 않았다.
“이경이 형은 좀 양심을 챙기시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예찬아, 잘 어울리면 뭐든 오케이란다.”
예찬이 늘어놓은 자신의 포스터를 들어 올린 선우이경이 뻔뻔하게 말했다.
확실히 포스터 속 선우이경은 다소 성숙한 감이 있긴 하지만 교복이 참 어울리긴 했다.
‘……교복 덕분에 얼추 고등학생으로 보이기도 하고.’
“하하하.”
잠시 선우이경을 바라보던 예찬은 웃음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행복해 죽겠다는 얼굴을 한 강해솔이 있었다.
‘아직도 저러고 있네.’
라이브 방송을 준비하는 짧은 사이, USB를 쥐고 안절부절못하다 홀로 작업실에 다녀온 강해솔은 한 번 떠나보냈던 작업물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더없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멤버들이 무슨 말을 하든 간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대는 중이었다.
세상만사가 아름다워 보이는 상태인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와 너무 다른 강해솔의 모습에 의문을 표하는 댓글들이 속속들이 채팅창에 올라왔다.
– 해솔이 어디 감? 저기 앉아 있는 건 내가 아는 해솔이가 아닌데?ㅋㅋㅋ
– 강해솔 왜 웃어 나도 알려 줘 같이 웃자
– 오늘 해솔이 역대급으로 기분 좋은 라이브다ㅋㅋㅋ!!
– HS, I love you!
– 얘들아 무슨 좋은 일 있었어??
– 해솔이만 유독 행복한데? 복권 됐나?
‘데이터를 날린 채로 끝났으면 말하기 그렇지만, 복구를 했으니까 이런 해프닝이 있었다고 언급해도 되겠는데?’
거기까지 생각을 끝낸 예찬은 강해솔의 옆으로 다가가 옆구리를 쿡 찌르고 귓속말을 속닥거렸다.
“어, 그러게. 말해도 괜찮을 거 같은데?”
라이브 방송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얼빠진 얼굴을 지운 강해솔이 예찬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 뭔데 왜 우리 왕따 시키는데
– 얘들아 같이 알자
그 사이에도 멤버들은 제각기 떠드느라 바빴다.
“비하인드 영상도 지금 보면 안 돼?”
“그러면 언박싱 라이브가 아니라 리액션 라이브가 되는 거 아닌가요.”
“그건 그거대로 좋은데? 인섭이 형, 혹시 DVD 연결할 수 있어요?”
“이거 복숭아들한테 투표 한번 받고 싶다. 저 선우이경! 비록 교복을 벗은 지 몇 년이 지났지만, 그래도 팀 내에서 교복이 잘 어울리는 남자 상위권에 들 자신이 있습니다!”
“무슨 자신감인데.”
“진짜로 다녔던 학교 교복이 중고등학교 다 좀 애매했거든요. 이번에 멋있는 디자인으로 많이 입어서 재미있었어요.”
‘오늘은 댓글보다 멤버들이 더 중구난방으로 떠드는데.’
가끔은 이런 날이 있어도 되겠지, 하고 내버려 뒀더니 혼이 쏙 빠질 만큼 정신이 없었다.
“…….”
“…….”
그리고 이렇게 시끄러운 와중에도 입을 꾹 다물고 손가락 끝에만 집중하고 있는 놈들도 있었다.
“휘겸이 형, 거기 스티커 좀요.”
“여기.”
바로 선우이경이 빠진 다이어리 꾸미기 듀오였다.
우휘겸과 배새벽 사이에는 서로 필요한 물건을 교환할 때 외에는 아무런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심지어 꾸물꾸물 움직이다 등으로 카메라를 가리려고 하는 것을 옆에 있던 멤버들이 몇 번이나 원상태로 돌려놓고 있었다.
‘너흰 방송이라는 걸 좀 기억해라.’
배새벽을 옆으로 쓱 옮긴 예찬이 화면 가까이 다가가 손을 흔들었다.
강해솔의 동의도 받았겠다, 슬슬 분위기를 가다듬을 때였다.
“여러분, 오늘 해솔이 형이 좀 많이 이상하죠? 사실 오늘 큰일이 있었어요.”
예찬이 대놓고 카메라를 점령하고 떠들자 제 할 말을 하느라 바쁘던 멤버들이 하나둘 이쪽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그렇죠?”
첫 마디로 관심을 끈 다음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온 예찬은 멤버들에게 동의를 구했다.
“맞아요!”
“진짜 완전 큰일이었어요!”
“기적이 일어났어요, 오늘!”
‘리액션 좋고.’
새로운 주제가 마음에 들었는지 다들 조금 전까지 떠들던 것을 잊고 열렬히 대답했다.
“새벽아, 거기 테이프 좀.”
“여기요.”
“…….”
‘아닌 놈들도 있지만.’
예찬은 조용한 두 놈을 내버려 둔 채 이야기를 이어 갔다.
“사실 제 실수로 저희 작업실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걸렸었거든요.”
“그게 왜 네 실수야!”
“예찬이는 하나도 안 나빠!”
“잘못한 건 네가 아니라…… 이름은 말하면 안 되는 건가?”
한마디가 끝나기 무섭게 멤버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예찬은 PiPiPi의 이름을 당장이라도 불어 버리고 싶은 듯한 채은성을 향해 고개를 젓고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아, 다들 뭔 말을 못 하게 하네요. 그렇죠? 아무튼 지금까지 작업했던 곡들이 전부 날아갔었거든요.”
거기까지 말한 예찬이 눈짓하자 강해솔이 뒷말을 받았다.
“그래서 한동안 좀 풀이 죽어 있었는데, 오늘 기적처럼 데이터를 복구해서요. ……아주 좋습니다.”
말을 하다가 또 복구된 작업물들을 떠올렸는지 강해솔이 더없이 반짝이는 미소를 지었다.
– 미소 성스럽다…… 오늘 성불합니다……
– 홀리 해솔ㄷㄷㄷ
– 애들 되게 가볍게 말하는데 진짜 큰일 아닌가??
– 해결됐다니 다행이야ㅠㅠㅠㅠㅠ
– 우리 삼촌의 친구의 사촌의 사돈이 되게 유명한 프로그래머인데 다음에 이런 일 있으면 안 되니까 소개해 줄까?
– 다들 마음고생 너무 심했겠다ㅠㅠㅠㅠㅠ 고생했어!!
댓글을 쭉 읽던 예찬도 웃으며 당부를 덧붙였다.
“여러분은 이런 일 겪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저는 USB를 잘못 꽂아서 이런 사달을 냈었습니다.”
“바이러스가 든 USB를 가져온 사람이 나쁘죠.”
“바이러스를 만든 사람은 더 나쁘고!”
멤버들이 입을 모아 예찬을 옹호했다.
좋게 마무리가 된 일이라 그런지 채팅창의 분위기도 대체로 훈훈했다.
물론 가끔 날 선 댓글들도 보였지만.
– 하예찬 때문에 괜히 멤버들 고생한 거네;;
– 컴퓨터로 일하는 사람이 왜 저렇게 조심성이 없어?
– 뭘 자랑이라고 여기서 떠드는지;;
– 너나 잘해세요다 진짜ㅋㅋㅋ
“……아니!”
드문드문 보이는 댓글 중 뭘 읽은 건지 옆에 앉아 있던 채은성이 발끈하는 것이 느껴졌다.
재빨리 벌떡 일어날 기세인 채은성을 붙잡은 예찬은 그런 댓글은 보이지 않는 척 생글생글 웃었다.
‘괜히 반응해 주면 더 한다…… 솔직히 내가 잘못한 것도 맞아서 별로 타격도 없고.’
“예찬이가 바쁜 와중에 사방팔방 뛰어서 고쳐 왔다니까요. 대단하죠, 우리 리더? 역시 근성맨!”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선우이경도 뾰족한 댓글을 읽었는지 조금 완만하게 돌려서 예찬을 두둔했다.
“만약 이번 일에 잘못이 있다면 예찬이 잘못은 1퍼센트 정도라고 전 생각해요. 백업을 안 한 제 잘못은 30퍼센트 정도? 아무튼 결론은 예찬이가 말했던 것처럼 바이러스 조심하세요, 이클립틱.”
마지막으로 강해솔이 나서서 상황을 마무리했다.
그 후로도 라이브는 오래도록 이어졌다.
정말로 비하인드 DVD 리액션을 실시간으로 찍기도 하고, 멤버들이 직접 꾸민 다이어리를 보여 주기도 했으며, 지금까지 나온 실링 스탬프를 하나씩 찍어 보기도 했더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어, 그날은 1위 소감을 쓴 건데요. ‘이클립틱이 준 1위 평생 잊지 않을게요. 사랑해요.’예요.”
마지막 순서는 선우이경의 전년도 캘린더 문구 해석이었다.
팬들이 못 읽겠는 날짜를 채팅창에 치면 그 날짜를 펴고 당사자인 선우이경이 해석을 해 주었는데, 날짜가 제법 되다 보니 전부 읽을 수는 없었다.
– 이경아 나머지는 우리가 해 볼게
– 이러다 날 새겠다ㅋㅋㅋ
– 이경이 캘린더 해석본 모으는 링크 주실 분?
– 며칠 뒤에 진짜 아무도 모르겠는 것들 들고 올 테니까 한 번 더 해석해 주면 안 될까?
그 옆에서 같이 캘린더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멤버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와, 들어도 전혀 모르겠다.”
“저도요.”
“나는 이제 좀 알 거 같아.”
“상록이 형, 이경체 마스터한 건가요.”
“마스터까지는 아니고…… 음, 한자로 따지면 4급 정도?”
“너무 낮은데요?”
“하하…….”
채팅창과 멤버들의 반응에 수줍게 웃은 선우이경은 좀 더 열심히 글씨 연습을 하겠노라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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