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08)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08화
새해 둘째 날, 자신들의 라이브 최장 기록을 경신한 레굴루스는 다음날도 연습에 매진했다.
그리고 또 그다음 날인 1월 4일.
레굴루스 멤버들에게 두 번째 공식 휴가가 주어졌다.
“예찬이 진짜 같이 안 갈 거야? 가족들한테 너랑 같이 갈 수도 있다고 말해 놨는데.”
자동차 키가 걸린 고리를 빙빙 돌리며 다가온 선우이경은 정말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고 예찬에게 재차 권했다.
물론 새해 초부터 단란한 남의 가정에 끼어들 생각은 전혀 없는 예찬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진짜로 숙소에서 쉬고 싶으니까 편하게 다녀와요. 지난번처럼 빨리 돌아오지 말고.”
예찬이 멤버들 모두 본가에 얼굴만 슬쩍 비치고 돌아온 첫 번째 휴가를 언급하자, 선우이경은 곤란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에도 그럴 생각이었냐.’
“음…… 뭐, 아무튼 언제든 마음 바뀌면 연락해. 당장 데리러 달려올 테니까.”
“네, 네. 이제 얼른 가 봐요.”
적당히 장단을 맞춰 주자 선우이경이 그제야 안심했단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얘들아, 슬슬 가야 할 거 같은데 아직 멀었어?”
“잠시만요!”
“지금 나가요!”
선우이경의 부름에 방 안쪽에서 대답들이 섞여 날아왔다.
매니저가 교대로 휴가 중인 터라 기차역으로 향하는 멤버들은 선우이경이 데려다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가장 먼저 맨손으로 터덜터덜 강해솔이 나오고, 다른 멤버들이 그 뒤를 따랐다.
“해솔이 형은 그러고 가게?”
먼 길을 가는 것치고 너무나 가벼운 차림새에 예찬이 묻자 강해솔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주머니에 마스크는 있어.”
이른 아침, 피난이라도 가는 것처럼 가방과 캐리어를 이고 지고 떠난 정의탁과 참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차 시간은 괜찮지?”
“응, 여유 있어. 이경이 넌 부모님께 늦을 거 같다고 연락드렸어?”
“걱정 마.”
예찬이 강해솔과 말을 주고받는 사이, 심상록과 선우이경도 시계를 확인하고 있었다.
가족들과 선을 긋기로 한 심상록은 이번 휴가 땐 친가에 잠시 내려갔다 올 예정이었다.
– 앞으로 점점 더 바빠질 테니까 할아버지랑 할머니를 시간이 될 때 뵙고 오려고.
어렸을 적부터 조부모와 자주 만나서 나름대로 애틋한 사이라고 덧붙인 심상록이 밝게 웃었다.
부모님 외에 친척이 딱히 없던 예찬으로선 굳이 불편한 가족들과 마주칠 일을 만드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조부모 앞에선 부모가 말과 행동을 사린다고 하니 걱정은 접어 두기로 했다.
“찬, 너 진짜 같이 안 가? 나 기차표 취소해?”
기차조 중 마지막으로 나온 채은성이 예찬을 보자마자 툴툴거렸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다 흘렀다.
“아직도 취소 안 했어? 전부터 얼른 취소하라고 했잖아.”
예찬의 타박에도 채은성은 꿋꿋했다.
“논산 진짜 괜찮은 곳이거든? 역에 내리면 일단 공기가 다르다고.”
“어, 알겠으니까 딸기 많이 가져와.”
“나 가족들한테 너랑 간다고 말해 놨는데…….”
“은성아, 형도 그거 다 해 봤다. 이번엔 포기하고 가자.”
‘이번에는 무슨.’
포기를 모르고 질척거리는 채은성을 선우이경이 말렸다.
예찬은 속으로 혀를 차며 멤버들을 배웅했다.
“잘 다녀와요.”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네, 네.”
“혼자 자기 무서워도 전화하고.”
“아니, 내가 애도 아니고…….”
“가스 불 끄는 거 잊으면 안 된다?”
“우리 숙소 인덕션이거든요?”
“밥 먹을 때 영통할까? 혼자 먹으려면 외롭…….”
“이제 그만! 얼른 가요, 얼른! 훠이!”
무언가를 쫓는 소리를 내며 한마디씩 헛소리를 늘어놓는 멤버들을 현관 밖으로 떠밀고 나서야 평화가 찾아왔다.
‘조용하네.’
마음 같아선 택시라도 잡아타고 작업실로 나가고 싶었지만, 멤버들끼리 휴가 기간엔 회사 출근 금지라는 약속을 한 터라 그럴 수가 없었다.
‘회사 나간 거 알면 배신이라고 바닥을 구를 것 같은 놈들이 있단 말이지.’
쉴 때는 쉬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던 멤버들의 얼굴을 떠올린 예찬은 잠시 머뭇거리다 소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항상 비좁게 끼어 앉던 소파를 혼자 차지하고 길게 드러눕자 온 세상을 가진 것 같은 기쁨이 밀려들었다.
‘그래, 사람이 계속 달리다 보면 지치지. 가끔은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아무것도 안 하고 혼자 조용히 쉬는 날도 있어야…….’
“예찬 씨, 저 왔습니다! 숙소에 혼자 남았다는 말을 듣고 어찌나 걱정되던지! 이젠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휴가를 냈으니 외로울 일은 없을 겁니다! ……응? 그 표정은 뭐죠? 반갑다는 표정 맞죠?”
“…….”
고요한 평화는 10분도 가지 못했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신 PD를 소파에 누운 채 떨떠름하게 바라보던 예찬은 한숨을 내쉬고 몸을 일으켰다.
“……굳이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네? 너무 반갑다고요? 감동이라고요? 하하, 너무 이르다고요, 예찬 씨. 제가 가져온 걸 보면 더 감동할 텐데 말이죠!”
‘사람 말을 좀 들어라.’
“제가 예찬 씨의 휴가를 삭제시켜 드리죠!”
신 PD는 가슴을 활짝 펴고 외쳤고, 예찬은 참지 않고 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그리고 사흘이 흘렀다.
“예찬 씨, 아침입니다! 아침 먹어요!”
멤버들이 돌아오는 나흘째 느지막한 오전.
어김없이 신 PD가 예찬을 깨웠다.
예찬이 눈을 뜬 것을 확인한 신 PD는 콧노래를 부르며 방을 빠져나갔다.
예찬은 그런 신 PD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
신 PD와 함께한 휴가는 놀랍게도 괜찮았다.
‘왜…… 재밌지?’
더 놀라운 것은 신 PD가 선전 포고했던 것처럼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는 점이었다.
“멤버들은 오늘 저녁쯤 오겠죠? 그러면 그때까지 오늘도 알차게 놀아 봅시다!”
비적비적 잠옷을 입은 채 주방으로 나온 예찬을 향해 앞치마를 두른 신 PD가 유쾌하게 외쳤다.
예찬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고개를 끄덕거렸다.
식탁에는 유명한 카페에서 주문한 샌드위치가 놓여 있었다.
“예찬 씨 거는 통밀빵에 소스도 뺐다고요.”
예찬이 아침 메뉴를 살피고 있다는 걸 느낀 신 PD는 의기양양하게 엄지를 척 들이밀었다.
예찬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배달 음식을 차리면서 왜 앞치마를 입는 건지에 대한 의문은 첫날 저녁부터 접어 두기로 했기에 굳이 입에 담지 않았다.
늦은 아침을 먹은 예찬은 가볍게 세수를 하고 거실로 나왔다.
“예찬 씨, 빨리요 빨리.”
이번에도 어김없이 신 PD가 예찬을 재촉했다.
신 PD의 옆에는 신 PD가 지인에게 빌려 온 최신형 게임기가 연결된 채 알록달록 빛을 내뿜고 있는 TV가 있었다.
‘오늘은 레이싱 게임인가.’
그렇다.
휴가 내내 예찬과 신 PD는 밥 먹고 게임만 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요즘 게임 무섭네. 내가 알던 거랑 퀄리티가 완전 다른데…….’
신 PD가 건네주는 게임 컨트롤러를 저항 없이 받아 든 예찬은 F1 레이서에 빙의한 마음으로 게임에 몰입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카레이서로 신나게 달리다 세계를 구할 용사로 변하기도 하고, 범인을 잡는 경찰도 되어 가며 마지막 남은 휴가를 불태웠다.
“저 왔어요. ……뭐 하고 있어요?”
지친 기색이 가득한 배새벽이 숙소에 도착했을 땐, 예찬은 막 왕자를 구하기 위해 마왕 성에 잠입한 공주 역할에 몰입해 있었다.
“……어, 새벽이 왔냐.”
성검 대신 게임 컨트롤러를 치켜들었던 예찬은 조용히 팔을 내렸다.
“그거 재밌어요?”
게임기가 연결된 화면과 예찬을 번갈아 바라보던 배새벽이 관심을 보였다.
“……!”
예찬은 황급히 화면을 꺼 버렸다.
“앗! 조금만 더 하면 왕자를 구할 수 있었는데 무슨 짓입니까!”
아직도 공주 빙의가 풀리지 않은 신 PD가 비명을 질렀다.
“아니, 재미없어.”
그러거나 말거나 짧게 일축한 예찬은 그 길로 게임기를 TV와 분리하기까지 했다.
배새벽의 흥미진진한 시선으로부터 게임기를 가린 예찬은 신 PD를 돌아보았다.
“PD님, 이거 다시 친구분께 돌려주시죠.”
이런 위험하고 중독성 높은 물건을 순진한 멤버들에게 전파할 수 없었다.
‘나도 조금만 더 늦었으면 위험했을지도…….’
“네? 왜요? 한 달 정도 빌린 건데…… 예찬 씨도 재미있게 했잖아요?”
“새벽이는 휴가 어땠어? 맛있는 거 많이 먹었어?”
“예찬 씨, 왕자 안 구할 겁니까? 왕자를 구할 수 있는 건 공주인 우리밖에 없다고요! 네?!”
신 PD가 떠드는 것을 무시한 예찬은 배새벽의 어깨를 감싸고 거실을 벗어났다.
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저녁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다른 멤버들 오기 전에 입을 다물게 만들어 놔야지…… 아예 밖으로 내보내는 게 깔끔하려나?’
그리고 얼마 뒤.
“우리 왔다!”
“요 앞에서 은성이랑 딱 만났어.”
“다녀왔습니다!”
배새벽을 시작으로 휴가를 떠났던 멤버들이 하나둘 숙소로 돌아왔다.
예찬은 신 PD와 게임기를 깔끔히 치우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웃는 얼굴로 멤버들을 맞이했다.
“뭐야, 다들 왜 이렇게 부지런해. 내가 마지막이야?”
양손 가득 반찬과 식재료를 들고 온 선우이경이 복작거리는 거실을 확인하고 실실 웃었다.
예찬이 짐을 받아 들며 대답했다.
“아직 범세혁 남았어요.”
“세혁이 올 때는 기차 타고 온다고 했던가? 몇 시라는 말은 없었지?”
“정확히는 못 들은 거 같은데…… 그래도 아까 출발한다고 했으니 곧 오지 않을까요?”
갈 때는 부산행 비행기를 타고 간다며 정의탁과 함께 매니저의 차를 타고 떠났는데, 언제 온다는 말은 남기지 않았던 거 같았다.
‘메신저 방에서도 지금 출발한다는 말만 했고.’
예찬이 잠시 범세혁의 메시지들을 떠올리고 있자, 선우이경이 아프지 않게 볼을 쿡 찔렀다.
“메신저 방 하니까 생각나는 건데, 예찬이 너 대체 휴가 동안 뭘 했길래 답이 그렇게 느렸어?”
“네? 뭐, 이거 저거……?”
차마 게임을 하느라 폰을 어디에다 두었는지도 잊고 지냈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아, 맞아 맞아. 예찬이가 이렇게 답장 안 한 거 처음이라 걱정되더라.”
“신 PD님이 같이 있다고 안 하셨으면 진짜 달려올 뻔했다고.”
거실에 늘어져 있던 멤버들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합세했다.
그때 놀랍도록 정갈한 젓가락질로 조용히 멤버들이 싸 온 반찬을 집어 먹고 있던 배새벽이 한마디를 던졌다.
“예찬이 형 공주님 하느라 바빴대요.”
“응?”
“새벽아, 물 마시면서 먹어. 목 막히겠다.”
예찬은 조용히 컵을 들어 배새벽의 헛소리를 막았다.
“뭐야, 공주님?”
“누가 공주님이라고?”
“예찬이가 공주님? 왜?”
그러나 주워 뱉은 말은 다시 담을 수 없었다.
멤버들은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음흉하게 웃으며 예찬과의 거리를 좁혀 왔다.
‘이거 들키면 천 년의 놀림감인데…….’
어떻게 빠져나가면 좋을지 예찬이 머리를 굴리는 사이, 현관문이 다시 열렸다.
“다녀왔습니다아아…….”
위기에 처한 예찬을 구할 왕자, 아니, 범세혁이었다.
“어, 세혁이 마침 잘 왔…… 아니, 너 꼴이 왜 그래?”
범세혁도 끌어들이려던 선우이경이 기겁했다.
“세혁아 괜찮아? 어디 다친 건 아니지?”
“형, 강도라도 만났어요?”
“아니, 우리 집 귀공자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선우이경의 놀란 목소리에 이끌려 범세혁 쪽으로 고개를 돌린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아하하…….”
왕자는커녕 완전히 거지꼴을 한 범세혁이 지친 얼굴로 웃어 보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