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09)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09화
예찬 또한 멤버들과 반응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누가 이랬어?”
조금 전까지 멤버들에게 추궁당하던 일을 완전히 잊을 정도로 범세혁의 몰골은 충격적이었다.
늘어난 티셔츠에 어쩐지 휴가 전보다 확 낡은 것 같은 패딩.
무엇보다 거슬리는 것은 누군가 잡아 뜯은 것처럼 삐죽 솟은 머리카락이었다.
“머리도 쥐어 뜯겼어?”
범세혁을 돌림판 위의 케이크처럼 휙휙 돌려서 확인한 예찬이 물었다.
범세혁은 이번에도 그냥 헤실 거릴 뿐이었다.
울컥한 예찬이 범세혁의 어깨를 붙잡았다.
마음 같아선 어서 대답하라고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으나, 형편없이 늘어진 목둘레는 차마 손을 댈 수 없었다.
“웃지 말고 대답을 하라고.”
“예찬아, 그렇게 흔들면 대답을 하고 싶어도 못 하지 않을까?”
‘대체 어떤 놈이……!’
“……세혁이 너, 역에서 그런 거구나.”
감히 남의 집 아이돌을 쥐어 팬 놈이 누군지 찾아내 배로 갚아 주리라 이를 가는 예찬의 귀로 선우이경의 탄식이 들렸다.
“역이요?”
온 신경을 범세혁에게 기울이고 있던 멤버들이 빠르게 반응했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선우이경이 어깨를 으쓱하며 들고 있던 스마트폰 화면을 멤버들을 향해 돌렸다.
“뭔데요?”
“무슨 역? 서울역?”
“잠깐 나도 보여 줘.”
예찬 또한 범세혁을 팽개치고 뒤늦게 손을 뻗었으나, 이미 작은 스마트폰 하나에 장신의 남자들이 우르르 달라붙어 끼어들기는 요원해 보였다.
‘그러면 내가 검색하면 되지.’
폰을 꺼내 범세혁과 역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기 무섭게 영상과 사진이 쏟아졌다.
‘이게 무슨…….’
“아이고…….”
“으으음…….”
예찬이 눈살을 찌푸리는 것과 비슷하게 멤버들이 침음을 흘렸다.
– 오늘 자 부산역에 출몰한 아이돌ㄷㄷㄷㄷㄷ 우연히 같은 시간에 역에 있어서 목격했는데 사람 개 몰려서 무슨 사고 난 줄ㄷㄷㄷㄷ
└ 아이돌 ㄴㄱ?
└└ 레굴루스 범세혁
└ 덕후 새끼들 진짜 미개하네ㅋㅋㅋㅋ 지네 오빠 머리채 잡은 거 봐ㅋㅋㅋㅋㅋㅋ
└ 내가 아이돌이었으면 현타 왔을 듯;; 지금이 무슨 원시시대냐? 닿아 보겠다고 밀고 당기고 난리네;;;
└└ 진짜ㅋㅋ 인간의 이성과 지성이 느껴지지 않는 손길들 뭐임ㅋㅋㅋㅋ
└└ 혼자 좀비 체험함ㅠㅠㅠ
└ 인파 미쳤네ㅋㅋㅋ 그래서 아이돌 어케 됨? 기차 잘 탔음? 기차에서도 저 지랄 했을 거 같은데ㅋㅋㅋ
“…….”
첨부된 영상은 정말 혼잡함 그 자체였다.
모자와 마스크를 야무지게 썼음에도 영상 속 너무나 아이돌 그 자체인 범세혁을 향해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 인파를 보고 또 다른 사람들이 주변을 에워싸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낮은 화질 속에서도 범세혁이 얼마나 당황했는지가 느껴졌다.
– 오후 2시쯤 부산역에 있던 이클립틱들 부끄러운 줄 아세요. 님들 때문에 아이돌 팬들이 무시당하는 겁니다. 정말로 아티스트를 좋아하고 응원한다면 성숙한 팬 의식을 보여 주세요.
– 오늘 부산역 화장실에서 세혁이 등 만졌다며 계 탔다고 떠들던 분…… 그거 계 아니고 성희롱입니다…… 반성하세요……
– 중고도시에 오늘 세혁이가 썼던 모자 올라온 거 실화냐? ㅆㅂ 인류애 다 뒤지것네
└ 그거 절도로 신고 안 되나요?
└└ 이거는 NJ에 연락해야 할 듯
– 중도에 모자 올라온 거 보고 쓰는데 오늘 세혁이 마스크도 떨어지고 가방에 붙어 있던 인형? 키링? 그것도 떨어지고 난리였음; 진짜 같은 이클립틱이라는 게 너무 창피하다
└ 영상 보니까 또라이들이 얼마나 당긴 건지 크로스백 끈도 반쯤 끊어졌던데요,ㅠㅠㅠㅠ
– 세혁아 내가 미안해ㅠㅠㅠㅠㅠㅠ
– 아니 근데 애 머리는 왜 뽑는 거예요? 어떻게 잘 모아서 달여 먹기라도 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 21세기 최악의 아이돌 팬덤 오늘부로 갱신된 듯?
└ 개바디는 인간적으로 나대지 말자
└└ 나 리바디 아니고 풀멘인데?
└└└ 굳이 개바디를 리바디로 쓰는 거 보니까 개바디 빼박임
‘생각보다 심각하게 당했는데.’
예찬은 범세혁을 향해 달려들었던 사람들이 모두 이클립틱일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이클립틱이 한 명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 거라고도 말할 수 없었다.
‘……아마 상당수 포함되어 있겠지. 평소라면 이렇게 행동하지 않을 사람들도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했을 것이고.’
혹시 범세혁이 팬들에게 정말로 학을 떼었을까 걱정된 예찬은 슬그머니 눈치를 살폈다.
“와, 누가 또 찍어서 올렸구나. 아하하.”
‘멀쩡해 보이네……?’
범세혁은 너덜거리는 몰골과 달리 정신 건강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양호해 보였다.
“세혁이 괜찮아? 많이 놀랐지?”
예찬과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범세혁이 지금까지 매고 있는 너덜거리는 가방을 벗기며 심상록이 슬며시 떠보았다.
“좀 놀라긴 했는데 괜찮아요! 그런데 어떻게 알아본 걸까요? 모자랑 마스크로 다 가렸는데!”
범세혁이 정말로 알 수 없다는 듯 해맑게 대답했다.
예찬이 우리들은 아무리 꽁꽁 싸매도 머리 크기와 비율에서 연예인 티가 난다는 것을 뭐라고 설명해 줘야 덜 재수가 없을지 고민하는 사이, 선우이경이 범세혁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우리 세혁이, 진짜 혼자서 너무 고생했다!”
“진짜요! 형 무서웠죠!”
“별로 무섭진 않았는데. 그리고 진짜 잠깐이었어요! 바로 빠져나갔거든요.”
범세혁은 몰려든 사람들을 잘못 만졌다간 문제가 될 거 같아서 손을 쓰지 않고 빠져나가는 게 좀 힘들었다고 덧붙이며 웃었다.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네가 긍정적이라서 이 아빠는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단다.”
머릿속이 복잡한 와중에도 채은성의 헛소리에는 딴죽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채은성, 네가 왜 아빠야.”
“흑흑.”
“…….”
그러나 이미 자신만의 세계에 푹 빠진 채은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데 세혁이 형, 기차는 어떻게 타고 온 거예요? 보니까 모자랑 마스크 다 날아간 거 같은데.”
“아, 아무래도 기차는 도저히 못 탈 거 같아서 역 앞에서 택시 타고 왔어요. 기차보다 훨씬 오래 걸려서 좀 지루하더라고요. 폰도 충전하려고 했는데 중간에 꺼져 버리고. 그래서 그냥 잠이나 자면서 왔어요.”
“택시에서도 말 하면 충전해 주실 텐데.”
“진짜요? 인생 손해 보고 살았다!”
‘말하는 걸 들을수록 진짜 멀쩡한 거 같아 보이네.’
여느 때와 다름없어 보이는 범세혁의 상태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도 잠시.
예찬은 고요한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예찬의 옆에서 마찬가지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던 강해솔이 툭 팔꿈치를 건드렸다.
“왜 그렇게 죽상이야.”
“지금 이 상황, 아주 문제가 심각해.”
예찬의 말에 강해솔도 덩달아 심각한 얼굴을 했다.
“그건 그렇지. 이번엔 세혁이가 곤란했던 거지만, 우리 다들 그럴 가능성이 있었고. 너무 안일하게 다녔던 것 같아.”
“음.”
‘그 얘기 아닌데.’
강해솔의 말대로 안일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리스피릿 때는 운이 좋았던 건지 이런 일이 없었으니까. 별생각 없이 매니저도 대동하지 않은 채 혼자 돌아다니게 만들어 버렸어.’
예찬이야 예나 지금이나 인파가 모이는 곳에 일 외엔 발길을 둔 적이 없어서 그렇다 친다 해도, 다른 멤버들도 범세혁처럼 위험할 뻔한 일을 겪은 적은 없었다.
‘휴가를 받아도 본가가 다들 근처라 매니저가 차로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도 했고.’
어쨌든 이번 일은 예찬을 포함해 멤버들의 안전 불감증에 경보를 울리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범세혁이 부산역에서 그 난리를 겪고 벌써 다섯 시간 이상 지났음에도 회사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것이었다.
“범세혁, 너 폰 좀 충천하게 줘 볼래? 회사에서 연락했을 수도 있으니까.”
“오, 진짜 연락하셨으면 내가 답이 없어서 답답했겠다. 자, 여기.”
범세혁은 이번에도 천진난만하게 대답하며 가방에서 휴대 전화를 꺼내 내밀었다.
‘답답으로 끝내도 되는 일이 아니지.’
이 정도로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으면 분명 회사에 직접 연락을 취한 팬들도 있을 것이다.
주말이 없는 업계이니 회사엔 출근한 직원이 있을 것이고.
범세혁이 연락을 받지 않았다면 멤버들에게라도 연락을 했어야 했다.
‘아니, 연락이 됐어도 우리한테도 했어야지.’
다른 멤버들도 본가에 언제 갔다가 언제 올 거라며 회사에 보고하지 않았으니, 회사는 지금 멤버들이 어디 있는지 파악도 하지 못한 상태일 텐데 참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믿음도 이 정도면 태만 아니냐고.’
예찬은 NJ가 LEE 엔터와 달리 날이 갈수록 일을 척척 잘하는 바람에 자신이 해이해졌음을 인정했다.
‘안일한 거야 우리랑 회사 둘 다 마찬가지였다지만, 그거랑 별개로 일이 터졌는데 대처가 늦어도 너무 늦어. 역시 회사는 쪼아야 일을 하는…….’
그때 얌전하던 스마트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NJ 도지윤 팀장님]‘도 팀장님, 분명 다음 주 화요일까지 휴가랬지?’
예찬은 화면에 떠오른 낯익은 이름과 번호를 잠시 응시하다 전화를 받았다.
“네, 하예찬입니다.”
– 도지윤 팀장입니다. 방금 소식을 보고 전화했는데…… 혹시 세혁 씨는 숙소에 도착했나요?
초조함이 느껴지는 목소리 뒤로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렸다.
“누구?”
옆에서 묻는 강해솔을 향해 입 모양만으로 도지윤 팀장임을 알린 예찬이 차분히 대답했다.
“네, 좀 전에 도착했어요. 기차는 못 타고 부산에서부터 택시 타고 왔다고 하네요.”
– 하아…….
수화기 너머로 도지윤 팀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다행입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나요? 다른 멤버들도 다들 숙소로 돌아왔고요?
“네, 일단은.”
– ……너무 늦게 연락드려서 면목 없습니다. 지금 일단 회사로 가는 중인데. 먼저 매니저를 더 뽑고, 앞으로 휴가 때 보고 매뉴얼을…… 아, 미안합니다. 좀 더 정리해서 전달할 생각이었는데.
도 팀장은 완전히 평정을 잃었는지 어울리지 않게 횡설수설했다.
예찬의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끓던 분노가 서서히 식었다.
‘……그래, 우리도 회사도 다 같이 어설프게 굴어서 생긴 일이고 처음 있는 일이니까 대처가 좀 미숙할 수 있지.’
중요한 것은 이 다음부터였다.
“팀장님 지금 휴가신데 고생하시네요. 저도 회사로 갈까요?”
절로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가 나왔다.
– 아닙니다. 일단 회사 측에서 1차로 직원 매뉴얼을 작성한 뒤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요. 이번 일에 대해서도 저희가 좀 더 정보를 취합한 뒤 세혁 씨께 따로 보고드리도록 하고요. ……다치지 않으셨다니 무엇보다 다행입니다. 세혁 씨께 안부 전해 주세요.
“네, 그럼 들어가세요.”
“도 팀장님은 뭐라셔?”
“세혁이 일 때문에 전화한 거지? 우리도 회사로 가야 해?”
예찬이 통화를 마치자 멤버들이 궁금하다는 듯 물어 왔다.
전달해야 할 말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다가 범세혁과 눈이 마주친 예찬이 불쑥 입을 열었다.
“세혁이 너 안 다쳐서 다행이래.”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뜬 범세혁은 씩 웃었다.
웃을 상황이 아님에도 그 티 없는 웃음이 멤버들에게 번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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