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1)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0화
‘Don’t bother’ 1조의 조원들이 각자 희망하는 포지션을 말하고 의견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예찬은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연습실을 벗어났다.
‘상태창!’
복도의 카메라를 의식해 느긋하게 화장실까지 들어온 예찬은 조금 전까지의 여유로운 태도를 갖다 버리고 다급하게 상태창을 호출했다.
플레이어 ― 하예찬 Lv. 9
비주얼 : S- (1/10000)
노래 : S-
춤 : A+
랩 : F
언변 : B
반짝임 : B+
칭호 : 리셋이 끝난 플레이어
포인트 : 84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오른 반짝임이란 스탯이 눈에 걸렸지만 지금은 다른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예찬은 빠르게 랩 스탯에 포인트를 하나 투자했다.
랩 : F+
‘F에선 1포인트만 있어도 오르는 건가? 그럼 D에선?’
다시 랩 스탯에 포인트를 하나 넣어서 우선 D-를 만들고, 거기에 또 포인트를 넣자 상태창이 조금 변했다.
랩 : D- (1/3)
D등급에선 포인트가 3점씩 필요한 모양이었다. 예찬은 망설임 없이 아껴 두었던 포인트를 털어 넣었다.
랩 : C- (1/5)
‘C에서는 5포인트…… 분명 B에선 10씩 필요했으니 A-가 되려면 앞으로 44포인트가 더 필요해.’
남은 포인트는 72포인트.
랩에 쓰려고 모아 둔 게 아니었지만 이 상황에 아깝다는 생각은 사치였다.
‘일단 랩부터 올리고 본다!’
예찬은 빠르게 스탯을 올렸다.
랩 스탯이 막 B-가 되던 순간, 홀로그램창이 발랄한 효과음과 함께 훅 튀어나왔다.
[축하합니다! 모든 스탯을 B- 이상으로 만든 당신! 만능 아이돌의 길에 반보 정도 걸쳤네요! 새로운 길을 걷는 당신에게 레벨 업을 선물합니다!> [레벨 업!> [축하합니다! 레벨 10을 달성한 당신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인벤토리와 상점이 열렸습니다!>또 뭔가 이상한 기능이 생긴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이상 홀로그램 창을 붙잡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궁금하긴 하다만 지금은 새 기능을 냉정하게 생각하고 평가할 여유가 없어. 하려던 것만 마저 하고 저건 밤에 차분하게 살펴보자.’
예찬은 빠르게 랩 스탯을 목표치까지 올리고 연습실로 돌아왔다.
“예찬이 왔어?”
연습실 한쪽에 놓여 있던 화이트보드를 중앙까지 끌어와 무언가를 적던 남지유가 예찬을 환영했다.
뒤에 서 있는 조원들도 묘하게 뿌듯한 얼굴이었다.
“예찬아, 우리 팀워크 좀 좋은 거 같아! 자, 여길 보시게나!”
남지유가 의기양양하게 화이트보드 옆으로 비키자 포지션이 일렬로 쭉 적혀 있는 것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해당 포지션을 맡을 연습생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메보는 우휘겸이고, 서브 1이 남지유, 2가 임채진, 3이 기태랑, 메인 래퍼가 나…… 서브 래퍼가 배새벽?’
순식간에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이 자식들이 잠깐 자리를 비웠다고 또 무슨 짓을 저질러 둔 거냐.
예찬은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좀 전에 확인했던 배새벽의 상태창을 앞으로 끌어왔다.
아이돌 연습생 ― 배새벽
비주얼 : S
노래 : A
춤 : A
랩 : F
뒤는 더 볼 것도 없었다.
고개를 돌려 래퍼 자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랩 스탯 F의 배새벽과 눈을 마주친 예찬이 상냥하게 물었다.
“배새벽 씨, 랩 좀 하시나요?”
“어우, 같은 조끼리 무슨 배새벽 씨야! 그냥 이름 부르자, 이름! 새벽이는 형이라고 하구. 괜찮지?”
손사래를 치며 남지유가 말하자 배새벽이 북슬거리는 머리를 끄덕였다.
지금 그게 중요하냐고 따지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 낸 예찬이 다시 물었다.
“새벽이는 랩 좀 하니?”
배새벽은 당당하게 고개를 저었다.
“해 본 적 없어요.”
예상보다 더 당돌한 대답이었다. 예찬의 말문이 드물게도 막혔다.
‘얘들은…… 무슨 생각이지? 왜 얘를 래퍼에 넣었지?’
그냥 망해 보자고 결심한 건가?
예찬의 얼굴을 보더니 깜짝 놀란 남지유가 당황해서 양팔로 커다랗게 엑스 자를 만들었다.
“잠깐, 잠깐! 예찬아, 오해야! 지금 정한 건 메보가 휘겸이인 것뿐이야! 오해 금지! 그런 표정 금지!”
아무래도 예찬이 굉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양이었다.
‘벽 쪽에 거울이…… 아니다. 확인하지 말자.’
그편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 같았다.
“다른 포지션은 너 오면 순서대로 한 번씩 해 보고 결정하기로 했어.”
“아.”
임채진이 덧붙인 설명에 예찬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흠흠, 그럼 가볍게 한번 맞춰 보자고! 예찬이도 오케이?”
헛기침을 하며 스피커 앞으로 다가간 남지유가 물었다.
이제 막 래퍼의 길에 발을 들인 예찬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찍고 온 랩 능력치를 믿기로 했다.
‘실전은 처음이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 * *
어떻게든 되지 않았다.
첫 소절을 입에 담는 순간 망했다는 직감이 예찬을 관통했다.
분명 어떻게 하면 좋을지 머리는 알고 있는데 몸이 따라와 주질 못하는 느낌이었다.
‘머릿속에는 완벽하게 재생되고 있어. 몸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는 것 같아. 그런데 둘의 괴리가 엄청나군.’
처참한 래퍼 데뷔 신고식을 치른 예찬은 패잔병처럼 어깨를 늘어트리고 들고 있던 가사집을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단순히 스탯을 올린다고 마법처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연습이 필요해.’
다만 시간이 부족했다.
‘경연이 6일 뒤지만, 그 시간 동안 계속 연습만 할 수는 없어. 바로 내일만 봐도 사인회 때문에 저녁까지는 연습을 못 한다고 봐야 하고…… 어떻게 연습을 해야 가장 효율적이지?’
머리가 정신없이 돌아갔다. 홀로 고민하는 예찬을 지켜보던 남지유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예찬아…… 메인 래퍼도 돌아가면서 해 볼까?”
남지유는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예찬과, 망할 것 같은 경연에 대한 걱정으로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 그, 그거 좋네여! 다음엔 제가 해 볼까여? 저 랩 해 보고 싶었어여! 아, 아마도?”
기태랑도 다급하게 동의했다.
동공이 가여울 정도로 떨리는 게 전혀 해 보고 싶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뇨,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예찬은 이야기가 더 진행되는 것을 막았다.
예찬을 제외한 나머지 조원들이 잠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래, 알겠어. 우린 예찬이 파트는 빼고 나머지만 바꿔서 불러 보자. 휘겸이도 따로 연습하는 게 편하려나?”
“저는 괜찮습니다.”
“그럼 예찬아, 준비되면 알려 줘.”
고개를 끄덕인 예찬이 연습실 구석으로 장소를 옮기려고 일어났을 때였다.
누군가 소매를 미약하게 잡아당겼다.
‘우휘겸?’
이렇게 긴밀한 접촉을 해 온 적이 없는 놈이라 불쾌하기 전에 의아했다.
예찬과 눈이 마주치자 잠깐 망설이던 우휘겸이 작게 속삭였다.
“……내가 듣기엔 방금 네 랩 그렇게 나쁘지 않았어. 그리고 넌 뭐든 해내는 사람이니까 이번에도 잘할 거야. 힘내.”
마이크에 잡히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볼일은 그것뿐이었는지 우휘겸은 잽싸게 옷을 잡았던 손을 놓고 고개를 돌렸다.
예찬이 뭐라고 대답할 새도 없었다.
“…….”
여러 가지 생각이 예찬의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놈 참 어이가 없다. 랩에 대해 문외한이면서 뭐라는 거냐. 나쁘지 않다니 개풀 뜯어먹는 소리하고 있네.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이번에도래? 말수도 없는 놈이 말 한 번 되게 빨리하네. 너야말로 랩에 재능 있는 거 아니야?
예찬은 가사집을 들고 연습실 구석으로 털레털레 걸어가 주저앉았다.
톡톡톡.
톡톡톡톡톡.
톡.
검지로 바닥을 두드리던 예찬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인정했다.
‘근데 진짜 어이없는 건, 내가 저 헛소리에 정신을 차렸다는 거지.’
과거와 달라진 미션 곡에 형편없는 랩 실력을 가진 조원들.
예기치 못한 상황이 연속적으로 벌어지자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는 마음에 난생처음 해 보는 랩을 하겠다고 나섰다.
모아 둔 포인트로 스탯을 올리면 가볍게 문제가 해결될 거라 낙천적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자 평정심을 잃어버렸다.
‘아니, 평정심은 어쩌면 그 전부터 이미 잃고 있었던 걸지도. 리셋이 끝나고 맨땅에 들이박는 느낌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리셋 시절에 익숙해져 있었던 모양이야.’
우휘겸은 그냥 예찬이 망할 게 뻔히 보여서 위로차 응원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상투적인 응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돌은 믿음을 현실로 만드는 직업이었다.
팬의 믿음이든, 동료의 믿음이든, 본인의 믿음이든.
‘랩이 처음인 게 뭐 어때서. 하기로 했으면 해내는 거지, 뭘 시간을 따지고 있어?’
연습할 시간이 부족하면 자는 시간을 줄이면 됐다.
그래도 부족하면 그다음은 먹는 시간, 그다음은 씻는 시간이었다.
사인회 때문에 연습할 시간이 없어? 웃기는 소리. 의지만 있다면 이동하는 시간과 준비하는 시간, 그리고 대기하는 시간까지 알뜰히 쓸 수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투지가 끓어올랐다.
예찬은 저편에서 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는 우휘겸의 옆모습을 노려보았다.
‘이 빚은 언젠가 갚아 주마. 넌 곧 하차하겠지만!’
그리고 문득 예찬은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저 자식 정확한 하차 타이밍이 언제였지?
* * *
다음날 이른 새벽, 아직 졸음이 가득한 얼굴을 한 연습생들이 합숙소 앞에 모였다.
“예찬이 굿모닝~ 하아암.”
“안녕하세요, 지유 형.”
예찬은 정말 잠깐 눈을 붙인 후 새벽 내내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진작 깨어 있던 예찬을 제외한 연습생 대부분은 눈을 뜨는 것도 버거워하고 있었다.
“형, 언제 일어난 거예여?”
같은 방을 쓰게 된 기태랑이 눈을 비비며 물었다.
졸음이 가득 담긴 얼굴이 평소보다도 더 앳되어 보였다.
“얼마 안 됐어.”
“진짜 성공하려면 이렇게 부지런해야 하나 봐.”
기태랑의 어깨에 팔을 걸친 임채진이 독하다며 혀를 찼다.
“아니, 잠도 몇 시간 못 잤을 텐데 피부는 또 왜 이렇게 깔끔해? 새벽에 연습하면서 팩이라도 붙였어?”
“어.”
“어?”
진짜로 예찬이 얼굴에 뭘 했을 거라고 생각은 못 했는지 임채진의 말문이 막혔다.
“와, 난 오늘 팬분들 만난다고 하니까 설레서 잠만 설쳤는데 완전 프로구먼!”
“그러게요. 지유 형이 아니라 예찬이가 데뷔했다 온 거 같은데?”
“뭐! 요놈 자식이!”
남지유가 아프지 않게 임채진의 멱살을 잡고 장난스레 흔들었다. 예찬은 의외로 핵심을 찌른 말에 남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데뷔를 몇 번이나 하고 1군 아이돌 생활은 또 몇 년을 했는데 이 정도 멀티 플레이는 식은 죽 먹기였다.
‘팬들은 내 얼굴이 푸석하면 푸석한 대로 고생한다고 안쓰럽게 여겨 주겠지만 그건 내가 싫어. 역시 직접 만날 때는 제일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단 말이지.’
“네, 여러분. 오늘은 전에 미리 알려드린 대로 사인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습생들 못지않게 잠이 덜 깬 얼굴의 메인 PD가 오늘의 일정을 브리핑했다.
오늘이 바로 츄즈 마이 프린스 99의 첫 번째 사인회였다.
‘진짜 미친 제작진 놈들…….’
참고로 이미 떨어진 연습생까지 싹싹 긁어모아 진행하는 99인 게릴라 사인회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