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10)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10화
범세혁이 워낙 해맑게 대답한 터라 분위기가 심각해지지 않았지만, 부산역에서 있었던 일엔 회사와 멤버 모두 경각심을 가져야 했다.
“앞으로 본가에 갈 때 매니저 형이 제주도까지 같이 갔다가, 제주도로 데리러 온다고요?”
도지윤 팀장이 주고 간 서류 뭉치를 확인한 정의탁이 부담스러워 죽겠다는 얼굴로 살려 달라는 듯 바라보았다.
예찬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이번에 매니저 형 추가로 뽑는다고 했잖아요. 그때 아예 제주도가 본가인 분을 뽑아 달라고 부탁해 주면 안 될까요?”
불편해서 집에 못 간다며 정의탁이 예찬의 소매를 붙잡고 늘어졌다.
“뭐, 그래.”
“정말이죠? 형이 대신 말해 주는 거죠? 와, 살았다……!”
‘얘 마음이 좀 편해진다면 그 정도야…….’
물론 진짜로 제주도 출신의 매니저가 뽑힐지는 모르겠지만.
서류 뭉치 속에서 회사 측 입장문 등을 훑어보고 있자 스마트폰이 울렸다.
– 유피테르 이가원 선배님 : 어제 큰일 있었다면서요? 괜찮아요?
“어, 이가원 선배님이다.”
옆에서 화면을 확인한 정의탁이 입을 열기 무섭게 연달아 메시지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 유피테르 황시우 선배님 : 영상 보고 진짜 놀랐네 다치진 않았고? 살아 있지?
– 유피테르 주태현 선배님 : 그때 비행기여서 지금 알았어
– 유피테르 강연록 선배님 : ㅠㅠㅠㅠㅠㅠ
“범세혁, 선배님들이 너 찾는다. 답장 좀 해 드려.”
“어, 그래? 어디 어디.”
연습실 구석에서 채은성과 깔깔대며 스트레칭을 하던 범세혁이 후다닥 달려왔다.
바로 어제 큰일을 겪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의연한 태도였다.
‘이걸 의연하다고 해도 되나?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거 같은데…….’
예찬이 다소 실례되는 생각을 하는 사이, 범세혁은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귀여운 이모티콘들을 잔뜩 붙여서 괜찮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와, 세상에 친절한 사람들이 참 많다. 유피테르 선배님들 말고도 연락이 엄청 오네.”
“그래?”
“앗. 엄마한테도 전화 왔었잖아? 우와, 몇 통을 거신 거지?”
“세혁이 너, 설마 부모님께 연락 안 드렸어?”
예찬과 마찬가지로 서류에 코를 박고 있던 선우이경이 애매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숙소 도착했다고 문자는 드렸어요!”
“……일단 부모님께 전화 드리자. 아니, 영상 통화가 좋겠다.”
천진난만한 대답에 예찬과 선우이경은 동시에 이마를 짚었다.
SNS와 커뮤니티에 올라온 부산역 영상과 사진들은 무분별하게 퍼지다 못해 기사화까지 되었다.
‘어제 숙소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았어도, 기사를 오늘 보셨으면 걱정하실 만하지.’
어서 멀쩡한 얼굴을 보여 드리라고 범세혁을 떠민 예찬은 끝까지 읽은 회사 측 입장문 샘플을 선우이경에게 넘겼다.
“다른 건 천천히 봐도 될 거 같고, 이것만 한 번씩 확인하고 먼저 연락드리면 될 거 같아요.”
“어어, 내용 괜찮은데? 그런데 아이돌 기획사치고 멘트가 좀 세지 않나?”
“그 부분은 오히려 더 세게 해 달라고 말씀드릴까 했는데.”
“하긴. 전에 고소 공지도 그렇고 우리가 얌전한 느낌은 아니지.”
선우이경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을 확인한 예찬이 덧붙였다.
“연예계에선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무조건 참거나 조용히 처리하는 게 제일이라고 하잖아요. 내가 잘했든 못했든 괜히 입방아에 올라서 좋은 거 하나 없다고. 근데 꼭 그게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리스피릿 시절에는 그 충고들을 깊이 새겨들었으나 이번엔 그렇게 사릴 생각이 없었다.
‘전에 신나게 고소해 보니까 좋던데.’
이클립틱들이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며 기뻐하던 것을 떠올리면, 외야에서 좀 과하다고 욕을 하든 말든 과격하게 나가고 싶었다.
‘회사에서 맞춰 주니 다행이지.’
예찬은 다른 멤버들에게도 입장문을 한 번씩 보여 준 다음 도지윤 팀장에게 연락을 넣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레굴루스의 SNS에 공식 입장문이 올라왔다.
* * *
범세혁과 배새벽의 팬인 김모 씨의 입에선 어제부터 육두문자가 마를 일이 없었다.
“와, 진짜 별의별 게 다 올라오네? 미친 새끼들!”
SNS에 막 올라온 판매 물품은 어제까지 범세혁의 가방에 달려 있던 사자 인형이었는데, 무려 ‘쪽지로 가격 제시’란 옵션이 붙어 있었다.
“개자식들, 아주 콩밥 먹여야 돼!”
남의 물건을 훔쳐서 당당히 판매질이라니!
나름대로 자신을 점잖은 사회인이라 생각해 오던 그녀였으나, 이 분노를 풀 곳이 마땅치 않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욕설을 내뱉는 입만큼이나 신고 버튼을 누르는 손도 바빴다.
어제 올라온 모자를 시작으로 운동화 한 짝에 머리카락, 마스크에 키링.
게다가 무려 주머니에서 자기가 직접 꺼냈다는 이어폰까지 각양각색의 물건들이 중고 거래 사이트에 쏟아지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꺼낸 건 진짜 절도 아니냐고. 제발 죽어라.’
심지어 한 사람이 주머니 운운하는 글을 올리자 너도나도 범세혁의 주머니에서 꺼냈다며 아무거나 이것저것 올려 대고 있었다.
‘그게 다 들어가면 그냥 주머니가 아니라 요술 주머니지.’
김모 씨는 신경질적으로 판매글 페이지를 다시 확인했다.
‘제일 열받는 건 역시 이거랑 이거지.’
판매자가 말하기를, 범세혁의 주머니 출신이라는 립밤과 라이터는 한참 전에 신고를 눌렀음에도 처리가 안 된 건지 멀쩡히 살아 있었다.
립밤은 주운 놈이 무려 300만 원으로 올린 범세혁의 마스크가 바로 팔린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아 비슷하게 입술이 닿는 물건으로 한탕 벌어 볼 생각처럼 보였고, 라이터는 개같은 안티 새끼의 짓이 분명했다.
‘보니까 이 새끼는 팔 마음도 없어. 그냥 루머 만들고 싶어서 이딴 짓을 한 거지.’
범세혁의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증거만 확실히 있다면 얼마라도 사겠다며 판매자에게 쪽지를 보냈으나, 읽지도 않은 상태였다.
아이디를 바꿔서 꼭 사고 싶다는 내용의 쪽지도 보냈으나 마찬가지였다.
[범세혁 흡연충이었음?? 의외네] [범세혁 흡연 증거 떴다ㄷㄷ] [라이터면 빼박ㅋㅋㅋㅋㅋ] [헐…… 내가 아는 그 범세혁이 꼴초라고? 왕자 같은 얼굴이라 좋아했는데 깬다;;] [솔직히 가수가 담배 피우는 건 자기 관리 안 하는 거지] [세혁이가 미자도 아니고 성인인데 무슨 상관이냐?] [담배가 불법도 아니고 오버 쩐다 너네;;;] [술 담배 좋아하는 놈치고 오래가는 놈 못 봤음] [저런 라이터를 편의점에서 파나? 술집 같은 데서 나눠 주는 거 아님?] [ㄹ굴루스 ㅂㅓㅁ 말고 또 누가 흡연자일 것 같음? 투표해 보자!]그 와중에 안티들은 신이 나서 범세혁이 흡연자라는 증거가 나왔다며 라이터 판매글을 여기저기 퍼 나르고 있었다.
‘신고, 신고, 신고!’
은근히 범세혁의 편을 드는 척하는 글들도 한패였다.
범세혁이 흡연자라는 걸 기정사실로 하며 사람을 득득 긁고 있지 않은가.
부지런히 PDF를 딴 악성 루머 제조 글들을 모아 회사 메일로 전송하는 한편, 열심히 신고 버튼을 누르는 것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레굴루스의 SNS에 새 게시글이 등록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뭔데.’
오랜 시간 애니메이션 덕질을 해 왔던 김모 씨는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작가와 제작사에게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 레굴루스는 좀 다르다는 것을 느꼈기에, 이 타이밍에 올라온 게시물에 조금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올라온 것은 어제 사태에 대한 공식 입장문이었다.
[레굴루스(Regulus) 멤버 관련 루머에 대해 안내 말씀드립니다.]어제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고에 대해 사과하는 한편, 앞으로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주의하겠다는 내용으로 시작한 입장문은 그와 별개로 아티스트에 대해 부당한 접촉을 시도하고, 그로 인해 얻은 물품으로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는 이들을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내용이었다.
– ……바닥에 떨어진 분실물을 취득한 것에는 문제가 없으나, 명백히 주인을 인지하고 있는 물건을 판매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가볍게 넘기지 않을 예정입니다.
“그렇지! 바로 이거지!”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입장문에 속이 다 시원해진 김모 씨는 듣는 이가 없음에도 몇 번이고 이거라며 부르짖었다.
* * *
며칠 뒤, 편지 외 선물을 전면 거절하고 있는 레굴루스 앞으로 드물게 택배들이 도착했다.
“오. 인형이 돌아왔어.”
이미 직원들이 한 번 검수해서 올려 보낸 물건들을 확인하며 범세혁은 연신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여기 모자도 있다.”
“여기는 운동화예요.”
강경한 입장문을 게시한 이후, 습득한 분실물을 돌려주고 싶다는 연락이 회사로 쏟아진 모양이었다.
팔지만 않는다면 버리든지 쓰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할 수도 있었으나, 도지윤 팀장은 주소를 불러 주고 착불로 택배를 보낼 것을 종용했다.
귀찮음을 감수하더라도 제대로 입장을 세우겠다는 뜻이었다.
“와, 머리카락도 있어.”
“근데 이거 세혁이 거 맞아? 색이 좀 다른 거 같은데.”
“그냥 역에서 주운 거 아닐까?”
“…….”
멤버들의 말소리를 들으며 작은 상자를 연 예찬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범세혁, 이건 네 거 아닐 거 같은데.”
“응? 뭔데?”
예찬은 조용히 물건을 집어 내밀었다.
펼친 손엔 형광 주황빛 라이터가 있었다.
“이게 뭐지? 라이터?”
역시나 범세혁은 물건과 초면인 눈치였다.
‘진짜 사람 열 뻗치게 하네.’
흡연 루머를 만드는 또라이가 있다는 것은 예찬도 확인한 상태였다.
NJ에서 공식 입장문을 올린 뒤로 판매글을 포함해 루머 양산 글들이 주르륵 지워지는 걸 보고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잠시 추진력을 얻기 위해 무릎을 굽혔던 모양이었다.
‘대충 쉽게 눈에 띄는 곳에서만 지우고 뒤에서 떠들어 대고 있나 보군. 지금쯤은 라이터 택배로 NJ에 보냈다고 인증샷이라도 찍어 올리고 있으려나?’
하는 짓이 이리도 지저분하다니.
‘경고는 한 번뿐이라는 걸 잘 알려 줘야겠네.’
“어, 예찬아 안 돼!”
라이터를 들고 있던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본 범세혁이 깜짝 놀라 예찬을 말렸다.
순식간에 라이터를 채 간 범세혁이 드물게 훈계하는 말투로 예찬을 타일렀다.
“내 거면 막 다뤄도 되지만, 이건 주인이 따로 있는데 그렇게 막 대하면 안 되지!”
“어, 음…….”
범세혁은 이 라이터가 얼마나 음습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티 없는 얼굴과 마주하자 조금 재미있는 생각이 났다.
“……이거 주인이나 찾아 줄까?”
약 두 시간 뒤, 레굴루스의 SNS에 또다시 새로운 게시물이 올라왔다.
[잘못 온 택배가 있어요! 주인 찾습니다^^]짧은 두 문장이 들어간 게시물엔 마치 쇼핑몰 사진이라도 찍는 것처럼 조명을 완벽하게 비춰가며 찍은 라이터의 독사진과, 멤버들이 다 같이 중앙에 놓인 라이터를 가리키며 웃는 단체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