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11)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11화
라이터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찾고자 하면 찾을 수 있었다.
‘판매글도 판매글이지만, 택배를 보내는 모습도 CCTV에 찍혔을 테고.’
택배에 보낸 이의 신상 정보를 정직하게 적진 않았겠지만, CCTV가 있는 이상 무의미한 발버둥이었다.
‘뭐, 이 이상 루머를 확산시키지 않는다면 양쪽 다 요청하기 어렵겠지만.’
혹시 또 시답잖은 짓을 시작하면, 그때 앞서 했던 짓들까지 모조리 더해서 가중 처벌 받도록 회사가 힘쓸 것이었다.
‘그러니 이걸로 내, 아니, 우리 안에선 사건이 마무리되었다는 거지.’
다음 일정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기다리고 있는데, 이 이상 쓰레기 처리를 위해 직접 신경을 쓸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일정 중 가장 시급한 것은 바로 내일로 다가온 배새벽의 생일이었다.
“……어떡할까?”
“……그러게요.”
“……후우.”
“……후우우우.”
멤버들이 뱉어 낸 깊은 한숨이 거실을 메웠다.
배새벽 몰래 생일 파티를 준비하는 일?
아주 쉬웠다.
배새벽은 바닥이나 벽, 심지어 천장에라도 머리만 닿으면 바로 잠이 드는 데다가, 한 번 잠이 들면 아주 깊게 잘도 잤다.
덕분에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갖췄으나 누구 하나 만족스럽게 가슴을 펴는 이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중 뭘 한다 해도 배새벽이 숨넘어가게 좋아하는 모습이 상상되질 않는단 말이지.’
이미 배새벽 전에 생일을 지낸 멤버가 무려 다섯이었다.
해외 투어 중이라 시간관념이 오락가락해도 놀라게 하기 쉽지 않을 텐데, 심지어 배새벽의 생일엔 아무런 스케줄도 잡혀 있지 않았다.
‘더해서 생일 라이브까지 예정되어 있으니 깜짝 카메라는 애초에 포기했지.’
깜짝을 포기한다면 남은 것은 감동이었다.
‘……감동, 그거 어떻게 주는 건데.’
대체 뭘 해야 무덤덤한 막내가 감동으로 눈시울을 촉촉이 적실 것인지 감이 오질 않았다.
예찬뿐만 아니라 멤버들도 같은 마음이었고, 결국 불안한 마음은 생일 파티 스케일을 점차 키워 갔다.
호텔 뷔페를 예약하고 바닥은 카펫 대신 꽃으로 뒤덮을 것이고, 유명 오케스트라를 섭외한 데다 배새벽의 키보다 클 10단 케이크까지 주문 제작했음에도 영 자신이 없었다.
“내일 잘될까?”
심란한 얼굴로 바닥을 바라보던 채은성이 툭 던진 말에 기다렸다는 듯 멤버들이 달라붙었다.
“‘아, 고맙습니다.’ 하고 끝일 거 같단 말이죠.”
“큭! 말하지 마! 상상하니까 울고 싶어지잖아!”
“난 이미 영혼이 꺾였어……!”
“역시 지금이라도 케이크를 12단으로 변경해 달라고 전화를……!”
“오케스트라 말고 합창단도 부를까? 우리보단 역시 프로가 나을 것 같지?”
“다들 진정 좀 해요. 해솔이 형은 이 밤에 예약을 어떻게 바꾸려고 그래. 그리고 채은성, 우리도 프로다.”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날뛰는 멤버들을 진정시킨 예찬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후― 다들 잠시만요.”
천천히 마셨던 숨을 내쉰 예찬이 멤버들을 불렀다.
“비록 준비한 것이 마음에 차진 않지만, 우린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만약 새벽이가 감동하지 않으면.”
더없이 비장한 눈길이 멤버들을 스치고.
“우리가 대신 감동합시다.”
터무니없는 소리가 모양 좋은 입술 밖으로 흘러나왔다.
“다들 울 각오하고 갑시다.”
실로 엄숙한 선언이었다.
멤버들의 눈에도 비장함이 서렸다.
생일 파티 주인공의 눈물보다 값어치가 떨어지겠지만, 양으로 승부한다!
* * *
승부처는 배새벽의 생일 라이브 2부였다.
오전 연습이 끝나고 배새벽이 회의실에서 홀로 라이브를 진행하는 사이, 예찬과 멤버들은 마지막으로 돌입 전 점검을 마쳤다.
“다들 준비됐죠?”
“완벽해.”
“지금 감정 제대로 잡았어. 새벽이 얼굴 보자마자 울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야.”
‘아니, 뭘 또 그렇게까지…….’
감정에 제대로 심취했는지 채은성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일삼즈의 일원으로서 최고의 눈물을 흘려 보이겠어!”
“일삼즈? 아, 그거.”
11월 1일생인 채은성과 1월 11일생인 배새벽.
둘 다 생일에 숫자 1이 세 번 들어가는 것에서 따와 팬들이 일삼즈라고 묶어 부르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거기서 알 수 없는 책임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2부 시작했어요!”
태블릿으로 라이브 진행 상황을 체크하던 정의탁의 신호에 다들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모두가 무언가를 기다리듯 예찬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끄덕인 예찬이 기대에 부응했다.
“제대로 하고 옵시다.”
“네!”
힘찬 대답과 달리 일행은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회의실 앞까지 이동했다.
이윽고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숫자를 센 멤버들이 문을 열어젖혔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무반주로 시작된 생일 축하 노래는 뒤이어 빠르게 입장해 자리를 잡은 오케스트라 반주가 따라붙으며 금세 웅장해졌다.
허리를 숙이고 들어온 스태프들은 열심히 꽃을 흩뿌렸다.
토끼 머리띠를 쓰고 토끼 발바닥 장갑을 낀 채로 토끼는 육식 동물임을 증명하기 위해 삼겹살 먹방을 찍던 배새벽의 눈이 놀란 토끼처럼 동그래졌다.
“사랑하는 새벽이! 생일 축하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단마다 지금까지 배새벽이 입었던 무대 의상을 본뜬 사탕 공예로 장식된 10단 케이크가 그 웅장한 모습을 회의실 안에 드러냈을 때.
“아핫.”
배새벽이 구김살 없이 웃었다.
“…….”
“이거 지금 불면 돼요?”
“어? 어어…….”
예상외의 반응에 당황한 예찬이 옆으로 비켜서자 배새벽이 케이크를 차분히 살폈다.
“아, 전아체 때 옷도 있다.”
들뜬 얼굴로 케이크 위 장식을 하나하나 살핀 배새벽은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눈을 꼭 감고 소원을 비는 것처럼 두 손을 모았다.
소원을 다 빌었는지 반짝 눈을 뜬 배새벽이 잠시 케이크의 높이를 가늠해 보곤 우휘겸을 불렀다.
“휘겸이 형, 잠깐 들어 줘요.”
“으응.”
우휘겸은 다소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아침에 화장실 거울을 보며 우는 연습을 하다가 들켰던 때보단 낫지만.’
어정쩡한 표정을 한 우휘겸이 케이크 최상단까지 배새벽을 번쩍 들어 올렸고, 숨을 크게 들이켠 배새벽은 단숨에 초를 전부 껐다.
“하하하.”
배새벽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꺼진 초를 보고도 신나게 웃어 댔다.
지금까지 봤던 것 중 가장 어린애 같은 웃음이었다.
‘뭐야 이거.’
배새벽은 바닥에 발을 붙이기 무섭게 다시 우휘겸을 재촉했다.
“휘겸이 형, 다시 다시. 이번엔 케이크 커팅식해요.”
“어, 그래.”
로봇처럼 삐걱거리면서도 우휘겸은 충실히 생일 주인공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다시 높게 올라간 배새벽은 케이크를 자르더니 까르르 웃었다.
‘이거 완전…… 애기잖아?’
아직 준비한 걸 반도 보여 주지 않았음에도 예상외로 열렬히 기뻐하는 배새벽을 보자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배새벽은 그 후로도 박수를 보내며 멤버들이 준비한 생일 파티를 즐겼고, 멤버들은 간지러우면서도 뿌듯한 기분에 연신 몸을 꿈틀거렸다.
* * *
[생일에 진심인 남돌의 막둥이 생일 파티(쓸데없이 굉장함 주의)]볼프 라이브로 생중계된 배새벽의 생일 파티는 터무니없는 규모로 꽤 화젯거리가 되었다.
– 이 팀…… 막내 우쭈쭈에 진심이다……! ㅋㅋㅋㅋㅋㅋ
– 아니 근데 채은성 외발자전거를 저렇게 잘 탐? 농담 아니고 얘네 모르는 사람들한테 보여 주면 서커스단인 줄 알 듯;;;
└ 옷도 진심임ㅋㅋㅋㅋ 저런 건 대체 어디서 파는데ㅋㅋㅋㅋㅋ
– 일삼즈 기여워ㅠㅠㅠㅠ
– 오늘 새벽이 진짜 직업 만족도 최상으로 보이더라ㅋㅋ
– 우리 어린 왕자 배새벽, 태어나 줘서 고마워!
여유롭게 반응을 살피고 있는데 익숙한 이름이 화면 위로 떠올랐다.
[유피테르 황시우 선배님]‘문자도 아니고 전화?’
전화를 받기 무섭게 황시우의 목소리가 다짜고짜 귀에 꽂혔다.
– 나도 해 줘.
뭐를?
순간 멈칫한 예찬이 솔직하게 떠오른 의문을 입 밖으로 냈다.
“……뭘요?”
– 생일 파티. 돈은 내가 카드 줄게.
오늘 배새벽의 생일 파티 라이브 방송 하이라이트를 봤다며 황시우가 나잇값 못하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뭐지? 노망날 나이는 아닌데.’
– 아, 나도 좀 해 줘! 서커스 해 줘! 타로점 봐줘! 즉석 초상화 그려 줘!
“그거 다 대충대충 한 거예요. 초상화 보면 견적 나오잖아요.”
– 10단 케이크 해 줘! 나도 초 불래!
“…….”
예찬이 이 나이 먹은 망나니를 어떻게 떼어 낼지 잠시 고민하고 있자, 갑작스레 차분해진 황시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생일 파티는 안 해 주더라도 이 정도 말했으면 생일이 언제인지 정도는 물어보지 않냐? 내 생일 모르잖아.
상대가 이성적으로 나오니 한결 평온해진 예찬이 태연히 대꾸했다.
“포털 사이트에 치면 나오잖아요.”
– 너 안 쳐 볼 거잖아.
“어떻게 아셨지?”
– 쯧.
황시우가 들으란 듯이 크게 혀를 찼다.
당연히 예찬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투어는 잘 끝나셨어요?”
– 말 돌리는 티 엄청 난다. 좀 아닌 척 시늉이라도 하면 덧나냐?
툴툴거린 황시우는 그래 놓고 투어 이야기로 한참이나 꽃을 피웠다.
피곤하긴 하지만 마지막 곡을 부를 때면 항상 아쉽다는 말을 끝낸 황시우가 작게 목을 가다듬더니, 쓸데없이 좋은 목소리로 뒷말을 보탰다.
– 무대에서, 네가 만든 노래를 부르면 정말 좋겠단 생각이 들더라. 너 노래 진짜 끝내주게 만들잖아.
수만 관객이 들어찬 객석을 바라보며 너의 노래를 떠올렸노라 황시우가 분위기를 잡으며 예찬을 띄웠다.
“아, 그거 제가 해 볼게요.”
– 쯧.
예찬이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황시우의 헛짓거리를 차단하자 수화기 너머에서 혀 차는 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바보도 아니고 그런 입에 발린 말에 감동하겠냐. 일부러 목소리 까는 티가 그렇게 팍팍 나는데.’
이러다 저 바보짓에 정들까 봐 무서울 지경이었다.
아무리 실패해도 풀이 죽지 않는 바보 황시우가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 3월에 한국에서 투어 마무리하는데 거기 와라. 3, 4, 5일인데 너희 애들 다 올 수 있어?
‘왜 다른 애들은 권유고 나는 명령이냐.’
예찬은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도 착실히 달력 앱을 켰다.
“막날은 안 돼요. 세혁이 생일이라.”
–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와서 생파 해! 삼 일 다 와!
황시우의 말도 안 되는 억지에 예찬이 띠껍게 대꾸했다.
“선배님, 이 초대가 혹시 저희를 묻어 버리는 게 목적이신가요?”
‘선배 콘서트장에서 생일 파티라.’
과연 무사히 콘서트장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 ……첫째 날이랑 둘째 날만 오든가!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심각한 헛소리였는지 황시우가 빠르게 날짜를 조정했다.
그에 예찬이 평온한 목소리로 답했다.
“첫날 표만 주세요.”
– 진짜 귀여운 구석이라곤 없다니까!
“네, 초대권 감사히 받겠습니다.”
– 끊어!
“넹.”
말은 저렇게 사납게 내질러도 황시우가 먼저 전화를 끊지 않는 걸 알기에 예찬은 사양하지 않고 통화 종료를 눌렀다.
‘유피테르 콘서트라.’
돈 잘 쓰는 걸로 유명한 공연이니 멤버들에게 꽤 좋은 자극이 될 것 같았다.
‘이제 우리도 첫 콘서트 이야기를 해 봐야지.’
그 순간,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켜는 예찬의 앞에 슬슬 기억에서 잊혀 가던 홀로그램 창이 튀어 올랐다.
[메인 퀘스트 발생!>오